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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수련생 “질투하는 나쁜 생각을 뿌리에서부터 해체하다.”

글/ 타이완(台灣) 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지금까지 질투심의 표현에 대해 비교적 주의를 기울였지만, 최근에 자신의 질투심이 여전히 아주 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의 질투하는 마음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자기보다 강한 사람을 질투하는 것과 다르게 ‘다른 사람을 깔보는’ 것에서 표현된다. 그래서 나는 자신이 깔보는 사람과 왕래하기 싫어하는데 일반 사람들과는 괜찮지만, 수련생을 대할 때는 이 마음이 아주 강하게 표현됐다.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했기에 지금까지 수련하면서 대다수 수련생과 늘 거리감이 아주 컸다. 비록 타이완에 수련생이 아주 많지만 나는 줄곧 단독 수련하는 상태와 비슷했다.

한 걸음 더 자신의 사상활동을 살펴보니 질투하는 표현은 하나의 완전한 사유계통을 갖고 있었다. 다른 수련생을 무시하게 된 것은 내가 수련하면서 법 중에서 깨달은 이치에 대해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수련생은 의미가 없는 여행이나 춤과 노래와 같은 오락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수련생은 사치하거나 좋은 음식을 너무 먹기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등등이다. 평소에는 이런 이치에 대한 자신의 집착을 발견하지 못하지만, 수련생이 내 앞에서 이와 비슷한 표현을 하게 되면 직접 나의 이 마음을 건드려, 나는 마음속에서 평형을 잃고 수련생에 대해 반감을 품었다.

지금 나는 이것도 질투심의 표현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바로 자기가 깨달은 법리를 대법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더 높게 보면서 자기가 깨달은 이치로 수련생에게 요구하고 가늠하는 것이다. 더 큰 잘못은 바로 이런 요구는 선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가 깨달은 이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기가 법에서 깨달은 부동한 층차(層次)의 이치를 절대적 진리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 역시 변형된 자아수호가 아닌가! 수련자는 응당 사부님을 수호하고 대법을 수호해야지 어찌 자아를 수호할 수 있는가?

이때 나는 최소한 자기가 깨달은 이치를 법의 위치보다 높게 보았으니, 사부님께 불경하고 법에 불경했다. 심각하게 보면 자심생마(自心生魔)도 바로 이렇게 시작된다.

사부님께서는 이런 한 단락의 법을 말씀하셨다. “부동한 층차 중에서 불법은 부동한 현현(顯現)이 있다. 그러나 높을수록 진리와 더욱 접근하며, 낮을수록 진리와 더욱 멀어진다. 그러므로 그런 승려들은 저층차(低層次)에서 개공개오했기에, 그들은 자신의 그 층차 중에서 본 우주 중의 현상(顯像), 요해(了解)한 정황과 깨달은 이치로 석가모니의 말을 해석했다.”[1]

나는 이 법에서 깨달았다. 자기가 깨달은 이치에 집착한 과거 불교 중의 승려들이 자신의 이해로 석가모니의 법을 해석했으며, 심지어 석가모니의 법으로 삼아 이야기했기에 마지막에는 불교 중의 불법이 인도에서 소실됐다. 자기가 깨달은 이치로 수련생을 요구하면서 자기의 표준에 닿지 못한 수련생을 온 마음으로 깔본다면 이것은 나쁜 생각을 움직인 것이며, ‘진선인(眞善忍)’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이것은 구세력(舊勢力)이 그들의 이치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구(舊) 이치를 필사적으로 견지하면서 사부님의 정확한 법리를 무시하고 수련생에게 박해를 가하는 것과 그 심태는 얼마나 유사한가.

그리고 수련생을 깔보는 뒷면에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마음이 숨어 있을 것이다. ‘나는 매일 이렇게 고생하는데 당신들은 먹고 마시고 놀면서 정법의 발목을 잡고 있다.’라고 느끼는 이것이 바로 늘 볼 수 있는 질투심의 표현이다.

최근 법을 학습하는 중에 사부님께서 나에게 대법의 홍대함을 구체적으로 점화해 주셨다. 그 순간 나는 대법이 그렇게 홍대하고 장엄하고 신성하여 우주의 만사만물을 포용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자기가 깨달은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를 느끼게 됐다. 장래에 원만을 이룬다 해도 깨달은 것은 대법중의 작은 일부분이며, 더욱 많고 더욱 깊은 법리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고 믿기지도 않을 것이다. 순간 나는 정말 충격을 느꼈으며, 마음이 비할 바가 없이 경건해졌다.

그리고 나는 2018년 10월, 한국 서울에서 참가했던 퍼레이드 정경이 떠올랐다. 퍼레이드 전에 각 나라의 수련생은 남산에 있는 백범 광장 공원에서 연공을 하고, 현수막, 풍선 등등을 배치하면서 퍼레이드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한 나라 한 나라 수련생들이 산을 내려갔다. 일본, 말레이시아, 타이완 등 지역의 수련생들이 일일이 산을 내려갈 때 나는 이 생명이야말로 인류의 희망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느꼈다. 그들은 이 악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여전히 바른 믿음을 견지하고, 힘써 수련하고, 거슬러 올라가고 있으며, 모든 중생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그들이 오늘날 가장 소중한 생명이다. 나는 이 장면에 감동되어 눈물을 머금었으며, 진심으로 수련생들을 위해 응원했으며, 또 사부님께서 왜 모든 대법제자를 소중히 생각하시는지 깊이 깨닫게 됐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질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선함과 자비라는 것을 점화해 주셨다. 우리가 마음에 모두 선념(善念)을 간직할 때 온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할 때 질투와 나쁜 생각은 숨을 곳이 없으며, 자연히 닦아 버리게 되고, 없어지게 된다. 우리도 근본적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하고 수련과 중생구도의 길을 바르게 잘 걸어갈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1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7/3800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