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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게 믿으면 사부님께서 돌봐주신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85세다. 2003년에 나는 한 학교에서 청소와 위생일을 했는데,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한창 시끄러웠을 때 학교에서는 나를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나는 공구를 보관하는 작은 방에 침대를 놓고 혼자서 생활했다. 마침 시간이 있어 밤낮으로 틈만 나면 대법책을 봤다. 나는 그렇게 해서 진정한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선 것 같다.

대법을 수련한 후, 이전에 앓던 요추 골절, 다리 통증, 유전적인 천식 등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 나았고, 주변의 친구와 이웃들은 모두 건강한 내 몸을 부러워했다.

2015년 10월 어느 날, 나는 점심을 먹은 후에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 작은 골목 한 곳을 모두 나눠주고 나가는 중 어쩌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양손으로 땅을 짚다가 모두 다쳤고, 모래투성이가 되었다. 나는 일어서려 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길을 가던 17~8세가량의 소녀가 나에게 물었다. “제가 부축해 드릴까요?”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녀는 나를 살피다 가버렸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니까 사부님께서 돌봐주셔서 괜찮아.’ 나눠주지 못한 자료가 그대로 있는지 주머니 속을 더듬으니 떨어진 것은 없었다. 나는 통증을 참으면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나 다리가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담장으로 다가가 담을 의지하고 섰다. 그래도 나는 주머니 속의 자료를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고, 큰길을 지나 작은 골목으로 가서 주머니 안의 자료를 모두 배포했다. 배포하는 동안 다리에 큰 통증도 없었다.

집으로 갈 때가 되어 다리가 아주 아팠지만, 그래도 걸을 수는 있었고, 통증이 심할 때는 잠시 서 있으면 좋아졌다. 그렇게 집으로 왔는데, 우리 집은 3층에 있다. 집에 온 후, 나는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재빨리 주방으로 가서 점심때 쓴 냄비를 씻었다. 냄비를 다 씻었을 때 아내가 산책하러 나가는 것이 보였고,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법공부를 했다. 반 시간 넘게 법공부를 하니 다리가 심하게 아파왔다. 나는 곧 발정념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내가 침대 위에서 쉬려고 생각했을 때 오른쪽 다리는 아파서 침대 위로 올릴 수 없었고, 왼쪽 다리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아내가 돌아와서 눈앞의 상황을 보고는 빨리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하면서 둘째 아들까지 불렀다. 둘째 아들도 와서는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나는 아들에게 괜찮으니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며느리와 아들들이 모두 왔고, 손자와 손녀까지 와서는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온 가족이 병원에 가라고 하니 당해낼 수가 없었다. 식구들은 나를 큰 의자에 앉히고 아래층으로 옮겨 병원으로 데려갔다.

병원에서 사진을 찍은 후, 의사는 내 다리에 어혈이 있다며 뽑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피를 뽑을 때 의사가 말했다. “아픈 걸 참아내면 마취약을 안 놓을 겁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의사가 내 무릎에서 여덟 통의 피를 뽑았는데, 나는 아픈 것을 느끼지 못했다. 피를 뽑고 나서는 넓은 거즈로 무릎을 싸맸다. 의사는 사진 판독 결과 무릎뼈(의학용어 기억 못 함) 부러졌는데, 아주 심각한 데다 위치가 틀어져 수술해야 한다며, 입원부터 하라고 했다. 당시 나는 내가 사부님의 제자이므로 아무 일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의사에게 말했다. “수술을 안 해도 되고, 내가 80세나 됐으니 붕대로 감아 주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집으로 갈 겁니다.” 의사는 보내주지 않았다. 손녀는 X-레이를 찍어 베이징 병원에서 일하는 동창에게 보내면서 전문가에게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베이징의 전문가는 반드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저녁 9시가 넘어 나는 병실로 보내졌다.

저녁에 나는 침대에 누워 이어폰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다리 통증이 사라졌다. 이튿날 의사가 회진을 왔을 때 내가 의사에게 말했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수술을 안 합니다.” 의사는 내가 아주 단호한 것을 보더니 다시 사진을 찍어 보자고 했다. 촬영할 때 나는 다시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부탁드렸다. ‘사부님, 저는 수술을 하고 싶지 않은데, 저들이 꼭 수술하겠다고 합니다. 제자를 도와주십시오!’ 오후 3시가 넘어 의사가 사진을 들고 병실로 와서는 어제 찍은 사진을 찾았다. 의사는 사진 두 장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우리 부부에게 말했다. “어제와 아주 다르네요. 집에 가서 요양해도 됩니다.” 아내는 너무나 기뻐하면서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말을 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아내는 수련하지 않지만, 대법책을 봤고,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사부님께서 나를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나를 집으로 데려가자고 했지만, 둘째 아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둘째는 두 번째 촬영 결과를 믿지 않았고, 이렇게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걱정된다며, 퇴원에 동의하지 않고, 의사를 찾아 동의서를 받아야겠다고 했다. 의사는 가족들에게 결정을 맡길 수밖에 없다며, 10일 후에 와서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단호하게 퇴원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오후 5시경부터 서로 맞서다 10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첫날에 나는 침대에서 내려올 수가 없어 침대 위에서 법공부, 발정념, 정공을 했는데, 다리를 올릴 수 없어 펼치고 앉았다. 2일째와 3일째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나는 테이블을 짚고 침대에서 내려와 테이블에 기대어 연공을 할 수 있었다. 며칠 후 나는 스스로 벽을 짚고 작은 지팡이를 짚으며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나는 기쁘게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걸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들과 손녀는 모두 걱정하면서 움직이지 말고 침대 위에서 지내라고 당부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너희들 말을 들을 수는 없고,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나는 사부님의 보살핌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한 달도 안 되어 딸과 아내는 나를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이발을 하러 갔다. 이웃들은 내가 아래층으로 내려온 것을 보고 놀라서 달려와 이렇게 빨리 나았느냐고 물었다. 두 달도 안 되어 나는 또 버스를 타고 수련생의 집에 가서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다. 수련생의 집은 5층이었는데, 내가 문으로 들어서자 모두가 나를 보고는 아주 기뻐했고, 사부님께서 큰 난을 넘도록 나를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수련생 집의 수련하지 않는 가족도 나의 다리가 이렇게 빨리 나은 것을 보고는 몹시 놀라워했다.

나의 다리는 지금까지 한번도 다친 적이 없는 것과 같은 상태다. 내가 사람들을 만나 대법 진상을 알리면 그들은 모두 나의 신체가 좋아 80여 세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이 일체를 사부님께서 주셨으며, 진정하게 사부님을 믿으면 사부님께서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세 가지 일을 잘 하면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18년 12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교류>수련체험>수련경험>정념으로 박해 해결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8/12/27/3785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