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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수련의 길

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9년 7월 20일부터 중국공산당은 미친 듯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에 대법을 계속 수련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이웃 마을에도 수련생이 없었다. 나는 1998년에 행운으로 대법을 얻었다. 초등학교 2학년 학력밖에 되지 않는데 가정의 환경을 바로잡았고 진상자료를 전달했으며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많은 고비는 법공부와 발정념을 중시한 덕분에, 자비롭게 점화해주신 사부님의 덕분에 깨닫고 넘겼다. 박해가 가장 심각한 시기에는 매일 14번 정각에 고밀도로 발정념을 했고 사악이 많이 제거되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도 매일 7번 정각에 발정념을 했다. 여기에서 가정환경을 바로잡고 정정당당하게 온 마을 사람들을 구도한 수련과정을 여러분과 교류하려고 한다.

첫째, 울고불고 원망만 하던 내가 참기 어려운 일을 참을 수 있는 수련자가 됐다

남편과 혼인신고한 날부터 갈등이 생겼는데 결혼 후 시어머니도 날 괴롭혔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10살 된 아들은 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와 이혼하라고 했고 이혼하면 날 따라가겠다고 했다. 눈앞의 생활을 보면 계속 살고 싶지 않았지만 이혼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화가 나 “남을 위해 산다고 세상 사람이 어머니의 어려움을 알아주겠어요?”라고 했다.

1998년부터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지만 갈등이 많은 이런 가정에서 어떤 때는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남편과 싸우기도 했다. 그러면 수련인 답지 않다고, 자신이 못났다고 울었다. 한번은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있는데 남편이 팔을 들고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짚으며 “아직 멀었어! 아직 멀었어!”라고 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속으로 이번엔 최선을 다해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았다.”[1]를 해내야겠다 라고 결심했다.

이를 견디고 나자 가정환경이 점차 좋아졌다. 1998-2007년, 10여 년 동안의 갈등에서 마침내 걸어 나왔다. 이전에 남편은 내가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반대했고 “정말 재수 없네! 마을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한 명밖에 없는데 내가 만났구나!”라고 했다. 가정환경이 바로잡힌 후 남편은 “나는 정말 복 있는 사람이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한 명밖에 없는데 내가 만나다니!”라고 했다.

지금 남편은 이미 대법 책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발정념을 중시했기 때문에, 손자가 우리 집에 오기만 하면 마음이 깨끗하고 편안해진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길을 잘 걸으려면 반드시 가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체면을 차리는 마음을 내려놓고 전심으로 사람을 구했다

‘9평’이 발표된 후 삼퇴를 권하고 사람을 구하는 정법이 새로운 노정에 이른 후 나도 나가서 사람을 구했는데 우리 마을 사람부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이웃집으로 갔다. 이웃집 남편은 구들에 가만 앉아 있었고 아내는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었다. 내가 몇 마디 진상을 알리자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았고 아내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어색해 작별인사하고 나가는데도 바래다주지 않았다. 체면을 차리기 좋아하고 마을에서 평판도 좋아 이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어 마음이 괴로웠다. 집에 돌아온 후 통곡했다. 3일간 밥 먹고 잘 때만 울지 않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슬피 울었다. 3일 후 집에서 울기만 해서는 안 되고 나가서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걸음 나아가게 도와달라고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요청했다.

옷 몇 벌을 가지고 빨래하러 우물로 갔다. 마침 우리 마을 한 부녀자를 만나 그녀에게 삼퇴를 권했는데 아주 흔쾌히 동의했다. 속으로 아주 기뻤다.그녀가 간 후 또 한 사람이 왔다. 그녀에게 삼퇴를 권한 적이 있었는데 동의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씻은 옷을 털면서 그녀의 표정을 슬쩍 보고는 “안녕하세요,그 소선대를 탈퇴해요.”라고 했다. 뜻밖에 그녀도 아주 시원스럽게 동의했다. 소선대에만 가입했던 것이 아니고 공청단에도 가입했던 적이 있으니 다 탈퇴시켜달라고 했다. 속으로 도와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이렇게 진상을 알리는 신심을 확고히 했다.

집집마다 다니며 삼퇴를 권했는데 마을의 삼퇴율은 95%였다. 열 집가량 남았다. 탈퇴하지 않은 집마다 3번씩 넘게 갔지만 그들은 탈퇴하지 않았다. 처음에 퇴짜 맞은 이웃집도 15개월 후에는 삼퇴 했다. 속으로 ‘15개월의 시간은 비록 길지만 그들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우리 마을,이웃 마을 한 집도 빠뜨리지 않고 혼자서 정정당당하게 진상자료를 배포했고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대범하게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시간이 촉박해 인사할 시간이 없어서 진상자료를 문 앞에 놔뒀다.

한번은 주변 3개 마을의 사람들이 함께 과수원의 사과를 수확하는 일을 했다. 휴식할 때 ‘톈안먼분신자살’은 거짓말이고 대법은 세계에 널리 전해졌다고 알려주고 그들에게 삼퇴를 권했지만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또 일하기 시작하자 일하면서 혼잣말로 “물건을 팔아 돈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돈도 바라는 것이 아니고 탈퇴하면 평안을 보장할 수 있다고 하는데 왜 ‘좋아요!’라고 한마디 하지 않느냐?”라고 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좋아요!”라고 했다. 목소리는 우렁차고 층층 천체에서 맴도는 것 같았고 날 깜짝 놀라게 했다.

시댁형제들에게 삼퇴를 권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시댁식구는 모두 속인 중 ‘총명’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고모는 시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데 내가 춥든 덥든 매일 3시 50분에 일어나 연공하고 시어머니의 이전 잘못을 따지지 않고 마음을 다해 모시고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자기 딸마저 못 알아보셨지만 나만 알아보는 것을 보고 삼퇴를 했다. 고모부는 그렇게 흔쾌히 탈퇴하지 않았다. 처음에 그에게 물었는데 그는 “말은 좋은 말이에요.그런데 해낼 수 있어요?”라고 했다. 두 번째는 고모 일가가 시에서 돌아왔을 때다. 이번 기회를 틀어쥐고 막내 고모부에게 삼퇴를 권했다. 점심에 마당에서 수박을 먹을 때 내가 진상을 알리자 남편은 “빨리 수박을 먹어요!”라고 했다. 나는 “먹고 있어요.”라고 했다. 남편은 “수박도 당신의 입을 막지 못하네요.”라고 중얼거렸다. 막내 고모부는 이번에 순조롭게 탈퇴에 동의했다.

시아주버님은 “제수씨는 정말 대단하네요.막내고모부도 설득했네요!”라고 했다. 나는 “고모부가 제일 어려운 분은 아니에요. 제일 어려운 분은 아주버님이에요!”라고 했다.

시아주버님은 어릴 적에 공부를 잘했는데 가정성분이 좋지 않아 소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공산당을 뼛속까지 미워했는데 40세쯤에 사당에 가입했다. ‘9평 공산당’ 등 진상자료를 본 적이 있고 대법이 좋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여전히 탈퇴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집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시아주버님이 삼퇴하게 도와달라고 사부님께 빌었다. 시아주버님은 완고하고 형님은 시아주버님의 눈치를 보면서 행동하는 사람이므로 그들 앞에서 동시에 삼퇴를 권한다면 시아주버님이 탈퇴하지 않으면 형님도 탈퇴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형님이 밥을 하러 간 짬을 이용해 몰래 시아주버님에게 “아주버님,그 당에서 탈퇴하지 않으실래요?”라고 했더니 시아주버님은 “탈퇴해줘요.”라고 했다. 속으로 진심으로 기뻤다. 돌아서서 밥을 하고 있는 형님에게 “형님도 탈퇴하세요.”라고 했다. 형님이 말하지 않고 아주버님을 보자 아주버님이 “다 탈퇴해요.”라고 하였다. 형님은 바로 머리를 끄덕이며 “탈퇴해요. 탈퇴해요.”라고 했다.

지금 친정집, 시댁의 형제자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을 포함해 10여 명이 다 탈퇴했다. 나는 인연이 있는 사람을 구도하는 약속을 실행했다.

물론 20년 가까이 되는 반박해 중 중생을 구하는 과정 중에 완전히 구도할 수 없는 개별적인 생명을 만난 적도 있다.

2001년 박해초기 진상자료는 아주 적었다.학교를 며칠 다니지 않았지만 붓글씨는 썼기 때문에 붓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쓰고 나가서 붙였다. 남편이 붓글씨를 잘 썼다고 칭찬하자 환희심이 생겨 많이 붙였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이마에도 가득 붙여놓았다.’ 그 결과 나쁜 사람에게 무고당해 10일간 구류 당했다. 올해, 날 무고한 그 사람은 응보를 받았다. 80여세인데 도랑에 빠져 온몸이 부서질 듯 넘어져 아직까지 병원에 입원해있다. 또 한 사람은 그깟 포상금을 위해 전문적으로 대법제자를 미행하고 고의로 고발했었는데 지금 식물인간이 됐다. 그야말로 자기도 남도 해쳤다.

시간을 밀어 빨라졌다고 알려주신 사부님의 말씀에 대해 깊은 체득이 있었던 적이 있다. 2007년 추수 후 나의 상태는 줄곧 추수 후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고 몸에 나무막대기가 꽂혀있는 것처럼 편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물처럼 흘러가는 것을 두 눈으로 빤히 보고만 있었다. 아들이 그믐달이 됐다고 했을 때야 갑자기 어떻게 이렇게 빨리 그믐달이 되었나 생각했다. 후에 사부님의 “사람의 신체능력 또한 따라가지 못한다. 매 한 층의 물질은 그 한 층의 극한이 있는 것으로 이 물질요소가 따라가지 못한다.”[2]라는 설법을 배우고 당시의 상태가 어떻게 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법을 수련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부님의 말씀대로 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나의 수련은 확고했고 박해초기 몇 번 잡혀 남편이 욕하고 아이가 울었지만 동요한 적이 없었다. 진상자료를 배포하든 집집마다 다니며 삼퇴를 권하든 어려움을 대면할 때마다 정념으로 했기 때문에 날 막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구도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도와주신 수련생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5-2005년 맨해튼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8년 12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6/3776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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