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자비심을 닦아내자

최근 랴오닝 차오양(朝陽) 지역에 나타난 교란에 대한 재인식

글/ 랴오닝(遼寧) 차오양(朝陽)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수련생 구출에서 방해를 받았다. 변호사는 몇 차례 차오양에 와서 불법 감금된 수련생을 만나려 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 지역에 여태 없었던 현상이다. 2017년 이래 시 국보인원은 자주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을 몰래 촬영했다. 큰 시장이나 작은 시장에든 모두 나타난 적이 있다. 시 국보인원은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을 몰래 촬영한 후, 공안지국에 통지해 납치를 실시했는데, 이미 몇 차례 발생했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수련생을 구출하고 박해를 제지하는 데 있어서 생각해야 할 모든 방법을 생각했고 박해를 거듭 폭로했지만 모두 효과가 미미했다.

작년 한 수련생이 말했는데, 사복 경찰 몇 명이 근처 시장에 늘 있었고, 이런 사람은 시 국보지국 경찰로, 시장에서 수련생을 본 후 몰래 촬영을 해 공안지국에서 사람을 붙잡게 한다고 했다. 본 지역 3~4명 수련생이 붙잡혔는데, 이 수련생도 그 중 한 명이기에 그들을 안다고 했다. 사실 수련생들도 줄곧 발정념을 해 마당을 청리했다. 수련생은 말했다. “이 몇 사람이 아직 시장에 있으면 어떻게 하는가?” 이런 것을 듣고도 어찌할 수 없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왜 끝이 없는가? 그들을 촬영해 폭로할까? 이것은 첫 번째 반응이었다. 그리하여 시장에 가서 사람을 찾으러 갔다. 그들을 찾는 과정에서 연민의 마음이 올라왔다. ‘중생이여! 저는 정말로 이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더는 오지 마세요.’ 수련생은 후에 말했는데 그 후부터 그 몇 사람은 더는 나타나지 않았고, 시장도 그 후부터 조용해졌다고 한다. 원래 사부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제자에게 선한 마음으로 중생을 대하라고 일부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다.

우리 지역의 이런 ‘번거로움’은 선한 마음을 잘 수련하지 못해 불러온 것이 아닌가? 1999년 4․25 후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우리에게 발생한 사건을 겨냥해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진상을 알리고, 선의 일면으로 중생을 대해야 하고, 대법제자가 어떤 일을 하든 심태는 반드시 순선(純善)해야 한다고 하셨다. 7․20 전, 그때 대법제자가 일을 하든, 일을 생각하든, 모두 선했는데, 느낌에 상태가 아주 좋았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까지 수련했고, 정법이 이미 최후에 이르렀고, 이번 사악한 박해를 경험했는데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 마음속에 선이 도대체 얼마나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볼만하다!

장쩌민 고소 이 사건을 말해보자. 우리가 일을 할 때 심태는 어떤가? 지금 생각해보면 장쩌민 고소는 작은 일이 아니다. 우주 정법의 하나의 큰 과정이다. 대법제자는 마땅히 대선대인(大善大忍)의 상태로 이 천상(天象)에 협력해 더욱 많은 중생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중생을 구하는데 영향주는 나쁜 관념을 닦아버리지 못해, 이런 순정하지 않는 마음을 지니고 급히 일을 하니 일부 손실을 조성했다.

법을 실증하고 반(反)박해 중 비록 일을 하는 초심은 좋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사당(邪黨)이 주입한 증오심, 원망심, 쟁투심, 또 알아차리지 못한 복수심, 사람을 다스려는 마음, 그것은 각 방면에서 표현된다. 이런 나쁜 생각은 때로 깊이 숨어 있어 자세히 느끼지 않으면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마땅히 없어야 할 것이 대법제자가 대법에 동화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장애를 주고 있다. 우리는 순선의 ‘진, 선, 인(眞, 善, 忍)의 대법을 수련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땅히 갈수록 선해야 비로소 대법제자의 정확한 상태가 아닌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시작하여 당신들은 서로 좀 보도록 하라. 누구의 면모가 고쳐졌으면 누가 사부의 말을 들은 것이고, 누가 고쳐지지 않았다면 누가 사부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다!”[1]

오랫동안 당문화에서 주입된 ‘투쟁이론’의 나쁜 생각은 우리가 겉으로 상화롭고 자비로운 면모를 나타내지 못하게 한다. 이런 선하지 않는 것은 때로 수련생 자체와 가정에서 표현된다. 서로 상처를 주고 수련생의 집착심을 볼 때 마음에 두고 이끌려 화를 낸다. 특히 수련생이 박해당할 때 이 방면에서 더 뚜렷하다. 서로 질책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서로 배후에서 조롱하는 말을 하고, 풍자하고 비꼬는 말을 한다. 우리는 모두 이런 것이 법에 부합하지 않고 밖으로 찾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법에 있지 않기에 이런 선하지 않는 것이 줄곧 바로 잡히지 못했다. 오랫동안 자신과 타인에게 많은 시련을 가져다주었다. 예를 들면 병업, 박해 등이다. 이로써 우리에게 중생을 구도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좋은 수련 환경이 없게 되었다. 사실 우리 마음은 모두 이런 현상으로 초조하지만 오히려 개인 수련을 소홀히 한 것이다. 자신부터 시작하여 자신을 닦고 자신의 사람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의 수련 장애이고 자신이 전진하는 하나의 벽이다. 현재 우리는 갈수록 수련이 엄숙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생각의 차이가 조금 나도 되지 않는다. 이로 보아 우리 환경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충분한 선(善)이 없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당신이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당신은 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2] 때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생각해 봐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 자신에게 번거로움과 심성관을 가져다준 사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 대립정서가 있는 경찰을 포함해, 마음속에 아직 얼마만한 ‘적(敵)’이 있는가? 자신의 마음을 여과해 보고 본질에서 변했는가를 보면 자신의 선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우리는 서로 일깨워주고 함께 정진하고 일을 할 때 선념으로 해야 하고 나쁜 생각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고 나쁜 생각과 사람 생각을 없애야 한다.

우리는 최근 차오양(朝陽)시에서 발생한 박해를 보면 거의 모두 차오양시 공안국, 중공정법위, 시위 서기 등이 직접 다른 공간의 사악이 이용한 사람을 직접 조종한 것이다. 아래 각 지부, 공검법 직원은 그들이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거의 자발적으로 박해하지 않고 모두 명령 하에 피동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이런 사람을 겨냥해 우리 차오양시 대법제자는 정체적으로 협력해, 그들을 겨냥해 가장 큰 선한 마음으로 그들을 구하면, 그들은 대법 진상을 알고 많은 중생이 대법에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해외 수련생의 도움아래 진상을 알리는데 의지하면 안 되고, 우리 차오양 대법제자도 반드시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으며, 자신을 잘 수련하고 중생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진상을 알릴 수 있다. 편지를 쓰고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할 수 있지만, 심태는 변해야 하고 진심으로 선한 생각으로 법이 우리에 대한 요구로, 전에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번거로움을 가져다 준 것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소중히 여기고 우리 주변의 매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고 생각해야 한다. 생명은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이고 대법제자의 순선(純善)은 중생에게 생명의 희망을 보게 한다. 그들이 알고 있는 일면은 모두 대법의 구도에 감사하고, 모두 바른 작용을 할 것이다. 이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불광이 널리 비추나니, 예의가 원만하고 밝도다”[3]의 법의 한 층의 내포를 일부 깨달을 수 있다.

최후 사부님의 법으로 수련생과 함께 노력하고, 우리가 함께 최후의 마지막 정법의 길을 지도하여 잘 걷기 바란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자선(慈善)이 나오기만 하면 그의 힘은 끝없으며, 어떤 좋지 않은 요소도 모두 해체할 수 있다. 자비가 클수록 그 힘은 더욱 크다. 과거 인류사회는 올바른 이치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은 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으며, 사람은 여태껏 모두 징벌이라는 수단으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리하여 이것이 사람의 이치가 되었다. 사람이 신(神)이 되고자 한다면 사람의 상태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럼 이런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며, 자비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4]

“사실 자비는 거대한 에너지이며, 바른 신(正神)의 에너지이다. 자비로울수록 이 에너지는 더욱 커서 어떤 좋지 못한 것도 모두 해체할 수 있다. 이는 과거 석가모니든 그런 수련인이든 모두 말한 적이 없다. 선의 최대 표현은 바로 자비이다. 그는 거대한 에너지의 체현이다. 그는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모두 해체할 수 있다.”[4]

만약 우리가 자비가 있고 모든 중생을 포용하고 박해자를 포용하며, 순선의 마음을 품고 정념정행하면, 순선의 거대한 에너지는 모든 것을 개변할 수 있고, 악한 사람이 악한 생각을 포기하고 구도되게 할 수 있다. 그것은 대법의 무한한 위덕을 펼쳐보여 주는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용법(容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

 

원문발표: 2018년 11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26/377661.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