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자신을 잘 수련해 학업과 사제의 관계를 잘 균형잡다

글/ 타이완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청년 대법제자입니다. 지금 타이난에서 연구생으로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법 수련생인 어머니께서 오빠와 저를 데리고 함께 법 학습하고 연공을 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성격이 좋지 않아 늘 화가 나 있었는데 대법은 특별한 힘이 있어 매번 법 공부를 하고 나면 화나던 마음도 없어지고 불쾌하던 감정도 사라지고 아주 즐겁고 편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줄곧 수련을 견지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수련은 저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속인사회에서, 특히 장기간 학교생활에서 저는 변이된 과학 관념을 많이 받아들이게 되었고, 저 자신의 오성도 그리 좋지 않았기에, 법리에 대한 이해와 심성제고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아래에 저는 지난 2, 3년간 학교에서 수업과 사제 관계가 큰 난에 봉착했을 때 법을 학습하고 안으로 찾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제고했는지를 여러분과 교류하려 합니다.

기억하기로 저는 아주 어렸을 때 성적과 명성을 추구하는 생각이 없이 늘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또래들의 영향을 받아 저도 등수와 선생님의 평가를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중, 고, 대학에서 줄곧 수업을 아주 중시해 많은 시간을 책을 읽고 연구했기에 대학시절 아주 우수한 학생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동기들보다 몇 년 일찍 연구실에 들어가 교수님의 연구 보조를 했습니다. 저는 이 기간 자신의 환희심, 과시심, 쟁투심, 질투심, 명리심이 갈수록 커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학우들보다 대단하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에게 추월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저의 집착심은 교수의 중용을 받으려는 데에서 나타났는데 과외 시간에 연구업무를 더 많이 했습니다. 후에는 이런 연구업무 때문에 정상적인 학업에 영향을 받았고 제가 책임진 대법 항목의 진도에도 늘 영향을 줬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구세력이 배치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아주 바쁜 일상에서도 억지로 견뎌내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또 석사과정에 진학했습니다.

석사과정에 들어간 후 저에 대한 교수의 요구는 더 높아졌고 저는 이런 업무 방식과 과중한 부담을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대법의 세 가지 일과 연구실 업무 간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늘 억지로 하려했으나 모두 기대만큼 결과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는 점점 괴로웠고 집에 돌아가서 울음을 터뜨렸으며, 심지어 매일 눈물을 흘렸는데 몸은 갈수록 수척해졌습니다. 저는 자신이 우울증에 걸린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매일 법을 학습했지만 상태는 굴곡이 심했고 뚜렷하게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태는 1년 넘게 지속되었고, 그 사이에 몇 달 출국하면서 학교 환경을 떠나 잠시 불량한 상태에서 벗어났지만 학교에 돌아오면 또 이전의 갈등이 반복됐습니다. 저는 반드시 저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직시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때 저는 남구(南區)에서 하는 일일 법학습에 참가하여 ‘정진요지3’ 의 경문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를 외웠습니다. 그것은 제가 처음으로 외운 새로운 경문이었습니다. 저는 경문을 외우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자신의 그 뿌리 깊은 관념을 아주 많이 발견했습니다. 바로 사부님께서 경문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달프게 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사람은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고난에 대항하는데, 목적은 좀 행복하게 살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행복을 추구하는 중에서 사람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피해(傷害)를 받지 않고 어떻게 잘 살며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공명을 성취하며 어떻게 더 많은 것을 얻고 어떻게 강자가 되겠는가 하는 등등이 형성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경험이 있는 동시에 또한 인생의 관념이 형성되었고 경험은 또 실천 중에서 관념으로 하여금 완고(頑固)하게 변하도록 하였다.” 이 한 단락 경문을 다 외우고 나서 저는 사람의 관념이 너무 강해서 사부님께서 전수하신 이 우주대법을 이해하는 것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저는 매일 ‘전법륜’을 한 페이지씩 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저의 머리에 담은 것이 법이라면 과학이 아닐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지 교수가 배치한 길을 걷는 것이 아닙니다.

법을 외운 후 가장 큰 변화는 매일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한 단락 법이 저의 머릿속에서 떠올라 항상 법으로 저의 언행을 대조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연구실에서 발생한 일에서 질투심, 쟁투심, 환희심, 과시심과 아주 깊이 숨어 있는 명리심 등 집착심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마음을 내려놓은 후 점점 주위 사람들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연구실에서 일어난 이 모든 갈등은 저의 사람마음을 겨냥해서 온 것으로써 저 자신이 안으로 찾아야만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갈수록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연구실 회의 때 제가 가장 많이 말하는 사람이었고 교수님도 저의 견해에 아주 공감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가 업무 진행상황을 교수님께 보고하게 됐는데 다른 학우들은 모두 주저했지만 저는 먼저 나서서 저의 견해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저에게 말을 하지 말라 하고 다른 학우들에게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순간 저는 좀 낙심하고 풀이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앞장서 의견을 발표하면서 자신을 나타내기 좋아하는 것은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는 과시심리라는 것을 재빨리 알게 됐습니다. 저는 또 회의하거나 학우들과 숙제에 관해 논의할 때면 언제나 도리를 따지며 극력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고 다른 논점의 틀린 점을 미주알고주알 캐면서 논평했습니다. 이런 고집스러운 소통방식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어떤 친구들은 제가 자기 의견만 고집한다고 느껴 저와 소통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다른 사람에게 제 말에 순순히 따르라고 한 적이 없는데 학우들이 왜 저에게 이런 편견을 갖는지를 몰랐습니다. 나중에 밍후이왕에 발표된 교류문장을 통해 다른 공간에서 본 쟁투심은 싸우기 좋아하는 괴물이었다는 것을 읽고서야, 저는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면서 애써 도리를 따지려 드는 관념 뒤에 아주 강렬한 쟁투심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 저는 점점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조용히 경청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연구실 일을 최우선에 놓았습니다. 만약 연구실에 할 일이 있으면 다른 활동은 미루었습니다. 대법활동이 있어도 저는 가급적 연구실의 일을 다 한 후에야 참가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해야만 사람들이 저를 아주 착실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교수님에게도 제가 아주 많은 시간을 대법항목에 쓴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하는 것은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이 저의 시간을 배치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이렇게 하면 옳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저는 수련과 대법 활동을 우선으로 하기 시작하고 연구실에 참여하는 시간을 줄였습니다. 그러자 연구실에서의 저의 위상이 영향을 받아서 저는 이전처럼 중용되지 않았고, 교수님은 다른 후배들에게 연구 계획을주관하게 하고 저는 그들의 관리를 받았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교수님의 배치를 이해하고, 이렇게 하면 저 자신의 수련에도 비교적 좋다는 것을 안다고 했지만 때때로 질투심과 과시심리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속적으로 법을 배우고 법을 외우면서 점차 이런 질투심과 과시심리의 배후에 제가 오랫동안 내려놓지 못한 명리를 추구하는 마음과 승부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며, 혹시 후배 학우들처럼 교수님의 곁에 남아 일할 수 없더라도 저 자신의 길을 걸으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매일 연구실에서 어떤 불쾌한 일에 봉착해도 안으로 찾으면서 태연하게 집착심을 내려놓았습니다. 점차 이전에 복잡해 보이던 교수님과의 갈등도 서서히 풀렸습니다. 참으로 기묘하게도, 교수님은 이전에는 늘 많은 주요 업무를 저에게 주면서 이런 업무가 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다른 학우들을 중용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저와 토론하는 것도 잊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 시간이 더 많아져 더 정상적으로 법을 학습하고 연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모든 일을 해결해주신다고 느꼈습니다. 원래 교수님이 저에게 하라고 한 일들이 유야무야 되거나 다른 사람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석사 2년 되는 이 해에 저는 정상적으로 논문을 쓰고, 대법의 세 가지 일을 하는 시간을 안배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법을 외우는 과정을 통해 많은 관념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갈등에 봉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저 사이의 일들을 법으로 대조할 수 있었으며, 보통 사람처럼 그 속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또 예전처럼 늘 과학과 논리로 다른 사람과 공방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이 기간 저는 한 차례 큰 심성 고험을 겪으면서 마음 속 깊이 숨어있는 명리 추구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닦아 없앨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커서까지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명리를 추구하는 관념이 형성됐습니다. 학업성적이 좋고 큰 사업을 해내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인정했고, 심지어 스스로 학술연구의 성과와 명리를 얻는 것을 동등하게 보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배후에 명리심이 있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주관해서 쓴 학술문장이 게재됐는데 저자 명단에 저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저는 교수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후에 수련생과 교류하고 법을 학습하면서 점차 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명예가 사라진 것을 태연히 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교수님은 마치 저의 연구 성과를 가져만 가고 더는 저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치지 않으려는 것 같았습니다. 교수님이 저의 아직 발표하지 않은 논문 자료를 내놓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쓰라고 요구하자 저는 아주 괴로웠습니다. 저는 어느 날 법 공부를 끝내고 무슨 마음이 이렇게 저를 불안하게 하는지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갑자기 저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럼 교수님이 저에게 이런 요구를 할 때에는 반드시 제가 제고해야 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은 저에게 자비를 수련해 내라는 것임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어도 원망을 품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은 후 평온한 마음으로 태연하게 교수님에게 저의 정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도 저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서 다시는 저에게 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수련상태가 조정된 후 저는 예전처럼 독서와 연구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지 않고 최대한 더 많은 시간을 세 가지 일을 잘하는 데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논문 연구에서 뒤떨어지지 않았으며, 업무 효율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빨라졌고, 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연구실에서 더는 이전처럼 교수님이 저에게 새로운 지식을 가르쳐주거나 저를 인정해 줄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법리로 자신의 연구를 대조해보니 사고 맥락은 더욱 뚜렷해졌으며, 교수님들도 더욱 저의 관점을 인정해 논문을 아주 순조롭게 완성했습니다.

저는 이 심득교류를 쓰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집착심을 많이 찾았습니다. 그 중에는 두려워하는 마음과 잘 수련하지 못했다는 자기 비하의 느낌이 있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 갑자기 항목 책임자가 저에게 너무 뛰어나서 이렇게 바쁜 것이냐, 그래서 항목의 작업 수준을 향상시키지 못하냐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 순간 멍해졌지만 또 계속 향상해야 함을 알게 됐습니다. 속인의 일에서 평형을 잘 잡아야 할 뿐만 아니라 심성을 계속해 더 높이고 용량을 더 넓혀야 진정으로 대법제자의 본분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층차의 제한으로 부족한 곳은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8 파룬따파 타이완 수련심득교류회 발언고)

 

원문발표: 2018년 11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해외법회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28/377759.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8/11/29/173441.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