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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속세에서 잠시 투숙하며 사명을 완성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존께서 제자들에게 명시하셨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여기 속인 사회에 와서, 마치 여관에 투숙하듯이 며칠 좀 묵었다가 총총히 간다. 일부 사람들은 바로 이곳에 미련을 두고 자신의 집을 잊어버렸다.”[1]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귀착점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제자가 속세에 온 것은 바로 잠시 여관에 투숙하다가 가는 것이며 여관의 물건들은 원래 제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한 가지도 욕심나지도, 가져가지도 않을 것이며 모두 남겨둘 것입니다.

남에게 지고는 못 배기는 마음을 수련해 버리다

저는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강해서 뭐든지 1등을 다퉜습니다. 학교에서 여러 방면에서 우수했고 뭇사람의 주목을 받는 출중한 사람이었으며, 집에서는 맏이로서 동생들에게 여러 방면에서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군대에 입대한 후 저는 노력하여 뭇사람 보다 뛰어나려 했고 직무에서도 끊임없이 승진했습니다. 직장에서 부서장을 담당해 악착같이 일했기에 늘 병이 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계속했습니다. 다년간 당(黨)문화에 젖어 힘겹게 일하며 고통스러웠기에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습니다.

저는 40여 세에 각종 질병을 앓았는데, 가장 심한 것은 간경화 초기였습니다. 또 신경성 두통이 매우 심해서 아프기 시작하면 구토를 동반했는데 그런 고통은 지금 생각해도 아직 공포가 남아있습니다. 이 밖에 또 신경쇠약, 저혈압, 미열, 관절염, 심장수축, 자궁근종, 미저골 분열 등 질병이 있어 사람들은 ‘임대옥(林黛玉)’, ‘관차이랑(棺材瓤)’이라고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남편은 늘 어이없어하며 말했습니다. “천둥번개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연이은 장마가 두렵네.” 뜻인즉 저의 신체는 건강할 때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 상사는 제게 신경을 많이 써주어 병 치료에 필요한 의료적 지원을 아무 말 없이 해줘 아무리 비싼 약이라도 청구하면 정산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몸 상태가 전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늘 비관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필사적으로 분투해서 바꿔온 명예와 직위, 영예로 어떻게 질병으로 인한 끝없는 고통을 당해내겠는가? 설마 내 이 한 생이 이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최후를 맞아야 한단 말인가?

1997년, 먼저 법을 얻은 여동생이 아버지 편으로 제게 대법 서적으로 보내주면서 재삼 부탁하며 말했습니다. “이 파룬궁은 대단히 좋아. 우리 고향 누구누구가 수련해서 병이 나았고 어느 집 며느리는 이전에 아주 행실이 나빴는데 이 공법을 배우고서는 효도하게 되었거든. 이 공법은 정말 좋으니까 언니도 빨리 시작해봐.” 아마 당시 제가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 저는 전법륜을 받아서 보관해두었습니다. 그해 5월 아버지 생신 차 고향에 갔는데 대법 수련을 하는 가족들의 계발과 도움으로 저는 비로소 이전의 인연을 이어 반본귀진(返本歸真)의 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호탕한 불은(佛恩) 속에서 신체의 모든 병은 연이어 모두 사라졌습니다. 예전의 오랜 환자가 20년간 더는 약 한 첩도 먹지 않았습니다. 현재 저는 팔순이 넘었지만, 얼굴에 주름이 없고 잘 걷고 일할 때도 젊은 사람처럼 깔끔하게 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건강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제가 대법의 요구에 따라 수련한 후 저의 인생은 철저히 바뀌었습니다. 저는 이기려는 마음을 내려놓았고 일체를 순리에 따랐습니다. 바꾸어 온 것은 인생의 여유로움과 대법 수련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딸이 사부님을 공경하고 법을 믿어, 큰 쓰나미 조난에서 상서로워

수련 후 저는 한 차례 교통사고를 당했고 또 한 차례 넘어져 요추를 다쳤습니다. 두 차례 사고에서 저는 모두 사부님의 가지로 매우 빨리 회복했습니다. 저의 이런 두 번의 경험으로 가족들은 대법의 신기함을 인정했고 모두 대법을 매우 믿었습니다.

두 딸은 비록 아직 수련하지 않지만, 사부님을 존경하며 어려운 일에 마주하면 곧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처음 대법이 박해당할 때 적색테러는 매우 심각했고 진상 자료가 매우 부족했는데 딸이 자발적으로 사무실에서 묵묵히 진상 자료를 복사해주었습니다. 어느 한 번 큰딸이 직장에서 자료를 복사하다가 주의하지 않는 사이에 동료가 보았는데, 동료는 농담조로 딸을 신고하겠다고 했습니다. 딸은 두려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용감하게 말했습니다. “신고하세요. 저는 복사했고 이번이 처음이 아니거든요.” 친구와 동료들이 대법을 오해했을 때 딸들은 대법을 위해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박해당하고 교란받을 때 저를 도와 대법 서적과 자료를 숨겼습니다. 딸들의 모든 행동은 대법의 복을 받았고 그중 가장 불가사의한 것은 바로 생명을 위협하는 큰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신기한 경험입니다.

2004년 크리스마스에 딸이 친구와 함께 태국의 유명한 푸켓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세계를 뒤흔든 인도양 쓰나미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수십만 명의 생명을 삼켜버린 거대한 쓰나미가 오기 20분 전 딸은 배를 타고 푸켓을 떠나 또 다른 관광지인 피피섬으로 향했습니다. (역시 재해지역)

피피섬으로 가는 배에서 딸은 아름다운 풍경을 누렸는데 거센 파도의 쓰나미가 소리 없이 배 밑을 지나 푸켓을 공격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딸은 바닷물이 혼탁하게 변한 것을 보고 사실을 알아차리고 즉시 옆의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빨리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워!” 친구는 의심하며 말했습니다. “효과 있어?” 딸은 견정하게 대답했습니다. “효과 있어!”

딸은 운이 매우 좋았습니다. 만약 딸이 푸켓에서 20분 뒤에 떠났거나 혹은 피피섬에 30분이라도 일찍 도착했더라면 이런 재난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몇 시간 뒤 딸이 푸켓에 돌아왔을 때 지상의 낙원이라 불리던 섬이 지옥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딸이 호텔에 도착하자 로비에는 여기저기 시체뿐이었습니다. 돌아올 때 딸은 주머니의 돈을 모두 현지 이재민들에게 기부했습니다.

딸의 이번 경험을 들은 친척 친구들은 행운을 축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또한 더욱 신기하여 불가사의해 하기도 했습니다!

이익을 내려놓으니 있어야 할 것이 모두 있다

현재 중국대륙에서 ‘집’은 초점 중의 초점으로 거의 모든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부대에서 퇴직한 후 규정에 따르면 저는 마땅히 주택 한 채 혹은 상응하는 보조금을 받아야 합니다. 등기서류, 대조하고 심사하고, 일련의 번거로운 수속절차를 거친 후 거의 확정된 일이었는데 나중에 저에게 확정된 것은 의외였습니다. 제 노력은 헛되어 집도 없고 돈도 없었습니다. 저와 같은 조건의 사람 대다수는 집 아니면 보조금을 받았습니다. 저는 사람 마음이 일어났고 마음이 혼란했습니다. 제가 사는 대도시에서 집값은 최고가이기 때문에 이 손실은 절대로 아주 적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수련하는 중에, 나는 모든 방법으로 당신들의 온갖 마음을 폭로하게 하며 뿌리부터 그것을 파낸다.”[2] 이번에 저의 이익에 대한 마음은 이미 모조리 폭로됐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저는 이런 마음을 절대로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겨냥하여 발정념을 했고 법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비록 노력하여 그것을 제거하려 했지만 관련된 일에 조금이라도 마주치면 그런 마음은 다시 튀어나왔습니다. 특히 가끔 전우들과 함께 이 일을 이야기할 때 그들이 저를 위해 불공정하다고 토로하면 그런 마음은 더욱 심했습니다. “왜 찾아가지 않는 거야? 수중에 돈이 많나 봐?” “자격이 되는데 왜 마다해?” 가족들도 늘 잔소리를 했습니다. “부대에서 한 평생 일했는데 아무것도 못 받았네.” 마침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1]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 “때로는 당신이 보기에 그 물건이 당신의 것이며 남도 당신에게 이 물건은 당신의 것이라고 알려주지만, 사실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당신은 바로 당신의 것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최후에 이르러서는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서 당신이 이 일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내려놓지 못한다면 바로 집착심으로서, 곧 이런 방법으로 당신에게 이 이익에 대한 마음을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바로 이 문제다.”[1]

수련인의 일생은 사부님께서 이미 모두 배치해 놓으셨고 일체는 순리대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은 원래 명(命)에 없는 것인데 무슨 집착할 것이 있는가! 여관에 묵는 사람이 여관의 물건에 집착해서 무엇하겠는가! 내게 필요한 것은 심성의 승화, 층차의 제고, 사부님을 따라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법공부를 한 후 이런 마음을 진정으로 내려놓았습니다. 올해 상반기 전우들의 작은 모임이 있었는데 또 한 명이 이 일을 물었습니다. 어떤 이는 제게 말했습니다. “왜 그리 사람이 쉬워?” “똑똑한 사람이 왜 이런 손해를 봐?” 등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마음은 고인 물처럼 차분했고 미동도 없었습니다. 지나고 나서, 저는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예전의 성격으로는 당신들이 나한테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나도 어떻게 했을지 모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대법은 정말로 저를 개변시켰습니다!

이익의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이익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는데 사존의 배치는 우리의 기본적인 생활을 충분히 보장해 주셨습니다. 저는 마치 저의 것인 것 같은 집을 다투지 않았지만, 결코 이 때문에 집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현재 예전에 남편이 회사에서 할당받은 후 개인 돈을 내고 구매한 집에 살고 있는데 방 3개에 거실 하나로 면적은 크지 않지만 인테리어하고 나서 넓고 편안해진 느낌입니다. 자녀들도 각자 자기 집이 있고 심지어 남방 유명 휴가지에서 집을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살건 휴가를 보내건 있을 것이 다 있어 만족합니다.

정 때문에 힘들어서는 안 된다

비록 최근 가족 방면의 난관이 수시로 나타났지만 사존께서는 이런 방면의 물질을 적지 않게 제거해주셨는데, 표현된 그런 것들은 조금 많았습니다. 모친과 남편이 얼마간 시간을 두고 연이어 세상을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도 병에 걸렸는데 비록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3]의 느낌이었지만 저는 법으로 가늠하고 자신을 귀정했고 행동 역시 많이 이성적이었습니다.

남편의 묘지를 택할 때 저는 아이들에게 싱글묘지를 선택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일은 일부 친척들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통상 배우자 한쪽이 세상 뜨면 모두 2인용 묘지를 준비했지만 저는 미래의 귀착점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은 매우 탄연했습니다. 남편의 장례가 끝난 당일 곧 유골을 안치했습니다.

묘지로 가는 도중 저는 옆의 기사에게 진상을 알리고 아울러 삼퇴(三退)까지 시켰습니다. 한 수련생이 안 후, 그런 환경과 분위기에서도 제가 사람을 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서 일반적인 사람은 해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병을 앓은 몇 년간 저는 정 때문에 많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병이 위중할 때 남편을 돌보며 틈나는 대로 매일 나가 진상을 알렸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뜬 후 저는 조금이라도 더 지켜주지 못하고 돌보지 못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법으로 가늠하여 제가 일부 시간과 정력을 사람을 구하는 곳에 사용한 것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남편의 명백한 일면도 저를 탓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세상 뜬 후 저도 점차 정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그런 일에 마주하면 상의할 사람이 없고 하소연할 곳이 없는 허전함과 그런 고독한 느낌, 뼈까지 스며드는 그리움 등 여러 가지 정들은 가끔 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사존의 가지 하에 저는 매우 빨리 걸어 나왔습니다. 이런 천금만금의 시기에 고독하고 허전할 틈이 없었던 것입니다.

당당한 대법제자가 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걸어 나오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들은 이런저런 구실을 대지만, 모두 두려운 마음을 덮어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수련자가 사람과 신으로 구별되는 증거(見證)이자 수련자와 속인의 구별이며 또한 수련자가 제거해야 할 최대의 사람 마음(人心)이다.”[4]

걸어 나가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은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이며 저에게는 우선 먼저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두려움은 다른 수련생에 비해 더욱 심각한 것 같은데 주된 요인은 자신의 수련이 착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제가 처해 있는 환경이 조금 특수한바, 거주하는 지역·이웃·주위의 접촉하는 사람들, 가족 성원의 직장 및 자신의 예전 직업 등등이 무형 중에 모두 저에게 일정한 압력을 조성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법제자이며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라고 하셨기에 가는 길이 평탄하지 않아도 반드시 무조건 가서 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박해 초기 저는 걸어 나가 자료를 배포했는데 정말로 심장이 뛰고 손이 떨렸습니다. 매번 2~3장만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나갔고 두 번은 긴장해서 제 돈을 넣어둔 봉투를 진상 자료인 줄 알고 나눠준 적도 있습니다. 기억에 어느 한 해 늦가을 저와 수련생은 산에서 진상 자료를 걸고 있었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들렸고 저는 놀라서 나무숲으로 숨었는데 온몸에 흙이 묻었고 머리에는 나뭇잎이 붙어 있어 매우 지저분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매우 우습지만, 당시는 그랬습니다.

어느 한 번 한 안전요원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는 듣다가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들고 말했습니다. “기다리세요.” 저는 놀라서 그가 머리를 돌리는 순간 도망쳤고 뛰면서 외투를 벗어 머리에 쓰고 “사부님 저를 구해주세요!”를 외치며 길을 에돌아 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당시는 경찰과 경찰차를 봐도 가슴이 뛰었고 누가 문을 두드려도 긴장했습니다. 그래도 사부님의 가지로 무섭지만 그런마음에 이끌려 나가서 진상알리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정법이 진행되면서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들은 줄어들었습니다. 법공부를 깊이 하면서 자기에게 존재하는 두려운 요소도 점차 약해졌습니다. 법에서 저는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두려움’이란 근본적으로 제게 속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이고, 대법이 양성한 생명이 해낸 것은 전 우주의 가장 신성하고 가장 바른 일인데, 무엇 때문에 사악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2012년 전, 저는 조용하게 진상 자료를 배포했고 나중에는 얼굴을 마주하고 진상 알리기를 주로 했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저는 매일 오전에 나가서 진상을 알렸는데 이 몇 년간 이미 점차 습관으로 형성되어, 일단 일이 있어 나가지 못하면 마음이 곧 불편하고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부님의 경문 ‘위덕’, ‘무엇을 두려워하는가(怕啥)’와 정법 구결 등은 제가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늘 묵념하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인이 중시하는 것은 정념이다. 정념이 아주 강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인이고 당신은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며, 당신은 속인 요소와 저층 법리에 통제당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5] 법공부를 많이 하고 100%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것은 정말로 가장 안전한 것입니다. 저는 현재 얼굴을 마주하고 진상을 알릴 때 기본적으로 두려움이 없습니다. 예전에 두려운 마음으로 제3자의 신분으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일반적으로 모두 당당하게 신분을 알리며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하며 자신이 대법 수련으로 심신상에서 받은 이익에 대한 상황을 사실대로 이야기합니다. 퇴당이 순조로울 때 저는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 또 한 명의 생명을 구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순조롭지 않았다면 곧 자신의 어떠한 마음이 조성한 것인지를 찾았습니다.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할 때 비록 많은 객관적인 이유로 실명 사용이 불편했고 심지어 어떤 일은 마치 넘어설 수 없는 것 같았지만, 법공부를 하면서 수련생들의 격려로 한동안의 고민 끝에 끝내 이 한 발을 내디뎌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했습니다. 이후 일부 번거로움이 왔지만 저는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으로서,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힘든 것을 이야기한다면 이 몇 년간 걸어온 길은 확실히 힘들었습니다만, 그런 두려운 물질, 무형의 압력, 자존심의 좌절, 뼈에 사무치는 집착을 제거하는 과정, 육체가 감당한 고통 등등이었습니다. 고생 중 가끔 안일함을 추구하는 마음도 튀어나왔고 심지어 속인을 부러워한 적도 있었고 사람들이 해변에서, 수림 속에서, 공원에서 한가하게 보내는 것은 얼마나 좋을까…… 그랬는데, 이런 염두가 나오면 이런 것들은 나 자신이 아니라고 즉시 인식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해외 수련생들도 어느 누가 고생 속에서 수련하지 않는가를 생각했고, 우리 위대한 사부님께서 중생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고 계시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힘들까! 내 이런 고생이 고생인가? 대법제자로 될 수 있고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것은 얼마나 신성한 일이고 영광스러운가!

기억에 삼퇴자가 근 2억에 달했을 때 저는 병을 앓는 남편의 수발을 드느라 지방에 있었고 현지 수련생들을 몰랐습니다. 스스로 삼퇴 명단을 보낼 상황이 되지 않아서 3개월간 받은 800여 명의 삼퇴 명단을 제가 사는 지역 수련생에게 보냈습니다. 나중에 수련생은 전날 저녁 삼퇴 인원수를 확인할 때는 2억 명이 되지 않았는데 그날 제가 발송한 명단을 올리고 다음 날 새벽 확인해보니 2억에 도달했다고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운 좋게도 이런 마무리 단계에 다그쳤는데 이는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이 몇 년간 저는 시종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첫 자리에 놓았습니다. 특히 최근 생활은 매우 소박했고 가끔은 일주일에 요리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적도 있고 가사를 될 수 있는 한 적게 했습니다. 매일 시간을 긴박하고 질서 있게 배치해, 새벽에 전 세계 수련생과 함께하는 연공도 5장 공법 모두 한 후 법을 1시간가량 외웠습니다. 오전에 나가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했으며 오후와 밤에는 법공부하고 법을 외웠고 대법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기도 했습니다. 식사할 때나 가사를 할 때면 밍후이라디오로 수련생 교류문장을 들었고, 외출하면 길에서 법을 외우거나 발정념을 했습니다. ‘전법륜’을 6번째 외웠고 한 번 베껴썼습니다. ‘홍음’은 수차례 외웠고 ‘각 지역 설법’은 주기적으로 재차 읽었습니다.

법공부를 많이 하니, 일에 부딪히면 법으로 가늠하고 가급적 법 속에서 수련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사부님의 가르침과 가지(加持) 하에서 수련했습니다.

대법제자는 속세에 내려와 잠깐 머물다 서둘러 갈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을 바라보고 계시는데 우리가 수련하여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서로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람의 관념을 모두 내려놓고 병 속의 그런 더러운 물건을 빨리 전부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자신의 진정한 집으로 돌아갑시다.

위대하신 사부님께 무릎 꿇어 절을 올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뿌리를 캐다’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마음고생’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법 공부를 잘하면 사람 마음을 제거하기 어렵지 않다’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

(밍후이왕 제15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18년 11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제15회 밍후이법회(2018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6/3764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