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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자비와 선택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존님 안녕하십니까!
세계 각지 대법제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평범한 대법제자이고 노력해서 자신을 잘 수련하는 동시에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고, 현지에서 대법진상자료를 만들고 있습니다. 펜을 드니 이 십몇 년 동안 정법수련의 한 막 한 막이 눈앞에서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자료점을 건립하라고 점화하시다

전에 저는 합격하지 못한 제자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대법제자라고 스스로 감히 말하지 못했는데 대법에 먹칠할까봐 두려워서였습니다. 법 공부는 어머니(어머니도 수련하심) 수련생이 억지로 끌어서 견지했고 비록 우연히 자료를 배포하러 나가도 원만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안고 갔습니다. 자료를 배포하면 그것은 진짜로 눈과 귀로 사면팔방 다 살피고 가만히 남의 집 문손잡이 혹은 대련 속에 집어넣는데 이미 온몸은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2005년 나의 지역 자료점이 파괴되었고 자료점 수련생과 협조 수련생들이 모두 납치되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납치당하는 동시에 나는 아주 청성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사부님께서 거대한 연화좌(蓮花座)에 앉아계셨고 사부님 맞은 편 양옆에는 큰 것에서 작은 것에까지 두 줄의 연화좌가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먼저 나의 이름을 부르셨고 나는 즉시 여자부처의 형상으로 승화하였고 금빛이 사방을 비추고 천지를 비추면서 사부님 옆의 대연화좌에 앉았습니다.

그날 아침 나는 수련생이 납치되었음을 알았고 그날 낮에 세 명의 수련생이 찾아왔습니다. 어머니를 찾아서 의논을 했는데 현지에 자료점이 없으면 안 되고 제가 젊으니 제가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 꿈을 되새겼습니다. ‘오, 원래 사부님께서 나에게 자료점을 감당하라고 하셨구나! 사부님께서 나를 정해주셨으니 나는 망설임 없이 감당할 것이다. 사부님께서 그렇게 큰 연화좌에 나를 밀어주셨고 사부님께서 또 나의 곁에 계셨으니 내가 생각해야 할 것은 자료점을 어떻게 잘 건립할 것인가이다.’

순정하게 점검하다

자료점을 건립하고 점검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나는 시종 밍후이에서 발표한 자료만 선택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명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모두 대법제자들이 원만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어떠한 일도 모두 오늘날의 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하는 이 형식을 교란해서는 안 되는데, 이것은 중대한 일에 관련되는 일이다. 법 공부를 제외하고, 어떠한 것도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절대로 대법제자 중에서 대법 자체에 속하지 않은 어떠한 것을 유전시켜서는 안 되며, 절대로 대법제자들에게 교란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1]

몇 해 전 항상 일부 수련생들이 타 지역 혹은 다른 사이트에서 수련생들이 흥미를 느끼는 일부 자료를 가져왔고 나에게 제작하여 그들이 가서 배포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한번 수련생이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것을 짜깁기하여 가져왔고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는 전단지였습니다. 나에게 제작하라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습니다. 수련생은 복사가게에 가서 아주 많이 복사했는데 배포하던 과정에 세인들에게 에워싸여 구타당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척 마음을 건드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수련생이 타 지역에서 일부 영상물을 가져왔습니다. ‘항일전쟁 중의 XXX’ ‘태양XX’ 등이고 수련생들은 대다수가 무척 보기 좋아했으며 제가 만들면 일부는 배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밍후이에서 이런 영상을 찾을 수 없었고 나는 이런 것이 우리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과 큰 관계가 없다고 여겨져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수련생이 냉담하게 말했습니다. “당신은너무나 이기적이네요. 수련생들 중 누가 당신을 거들떠보나요. 내가 그나마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지.” 저는 자신이 행한 것이 법에 부합된다고 여겨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2]

얼마 안 가서 우리 세 개 지역 수련생들이 법회를 열 때 나는 또 이 문제를 교류했는데, 우리 작은 파일함에 대법과 관련 없는 내용, 대법진상과 상관없는 것은 삭제할 것을 요구했고, 우리는 인쇄하지 말고 접하지도 말아야 하며, 사람을 구하는 것과 실질적 작용이 없는 문고리걸이 등등을 대량으로 제작하지 말아야 하고, 다른 사이트에서 전해지고 있는 대 겁난과 결속의 시간 등을 수련생들 사이에서 전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말한 이가 바로 모모모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누구도 다 알아들어요.” 얼마 안 가서 또 수련생 두 명이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마땅히 함께 앉아서 당신들의 모순을 해결해야 합니다.” 처음에 나는 진짜로 무척 억울했습니다. 마음을 내려놓은 후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모순이 없어요. 나는 단지 법을 위해 수련생을 위해 책임지는 것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더욱이 우리 이 정체를 위해 책임진 겁니다.” 그리고 더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정체와 수련생을 자신의 위에 놓다

자료점이 건립되어서 지금까지 13년이 되었고 저는 시종 ‘사부님께서 나에게 박해당할 난을 배치하지 않았고 나는 그런 난이 없다.’라는 아주 강한 일념 있었습니다. 저는 반 정도 열려서 수련하고 있는데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말씀하신 일부 경지, 큰 눈 속의 작은 눈, 무형, 진공, 진공 위 등등을 저는 승화과정 중에서 모두 계속 보았습니다. 현지에 몇 차례 박해가 있었고 저도 꿈속에서 사전에 조금 현현되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몇몇 수련생들이 여러 번 박해 당할 때 제가 보게 된 정황은 수련생이 납치된 후 사악이 또 저를 납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저는 줄곧 안정 속에서 평온했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수련생들과 교류하려고 합니다.

처음 여러 수련생이 납치된 후 저는 안을 향해 찾아보았고 자신이 자료를 인쇄하는 과정에 일종의 사심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수련생이 얼마를 요구하면 그만큼 제작했고 집에 자료를 남기지 않으려고 했으며 자신의 안전을 가장 중요시했습니다. 일부 수련생은 아주 바빴고 한가할 때 저에게 일부를 요구했지만 제가 인쇄를 마치면 그들은 또 배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사심을 찾은 후 이 한 점에서 제고해야 했습니다. 이번에 저는 집에서 항상 일부 자료를 보관하도록 했고 수련생들이 수시로 와서 가져가게 했습니다.

두 번째로 여러 수련생들이 납치될 때 저는 역시 자신의 가장 강렬한 자아를 보호하는 그 사심을 찾아냈습니다. 그 시기에 물품이 들어왔고 저는 자신과 자료점 안전을 위해 전화를 걸어 물품을 체크한 후 핸드폰을 껐습니다. 물품 수령인의 핸드폰은 다른 수련생의 전화번호로 해서 수련생이 수령하고 다시 저에게 보내게 했고 위층으로 가져갔습니다. ‘자신이 위험하다고 여기는 것을 다른 수련생한테 떠넘기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더러운 사심인가!’그 이후 저는 물품 오가는 것은 모두 자신이 감당하고 다른 수련생한테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로 또 수련생이 납치되었고 저는 자신의 가장 강한 집착심이 여전히 사심임을 찾아냈습니다. 표면에서는 수련생과 함께 교류하면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법제자는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 가장 안전한 겁니다.” 저는 확실히 자신을 세 가지 일 속에 들어가게 했지만 안전을 말할 때 생각한 것은 오히려 자신의 안전이었습니다. 대법제자는 타인을 위하고 무사무아하고 법속에 용해된 생명입니다. 합격된 대법제자는 마땅히 먼저 정체의 안전과 협조를 고려하고 더 나아가 다른 수련생의 안전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로지 열심히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고 법을 위해 책임지고 수련생을 위해 책임져야 합니다. 이후 저는 무엇을 하든지 모두 정체와 수련생을 자신의 위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이 10여 년 동안 저는 가장 평온하고 가장 안전했습니다. 매번 수련생이 박해당할 때 저는 숨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구세력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은 우리의 사람 구하는 것을 저애하려는 것이 아닌가? 수련생이 박해 당해도 우리는 마땅히 더 잘해야 하고 자신의 사람을 구할 그 한 몫을 잘 감당할 뿐만 아니라 또 납치된 수련생의 그 한 몫도 보충해야 합니다. 우리 정체의 사람구하는 노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 기초에서 더 잘 협조하여 수련생을 구원하고 구세력에게 코 꿰어 끌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자비와 선택

사부님께서는 자비를 닦으라고 말씀하셨고 또 선택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13년 동안 자료점에서 법을 실증하면서 자신의 자비심은 끊임없이 확대되었고 저도 갈수록 많고 많은 감당을 선택했습니다.

첫 시작에 저는 기계 한 대만 있었습니다. 출근할 때 기계와 소모품을 모두 집어넣었고 매일 10시 반에서 11시까지 일했습니다. 기계를 잘 조율한 후 저는 법공부하거나 집안일을 했고 아주 많은 시간은 아이를 데리고 있었습니다(자료점을 갓 시작할 때 아이는 겨우 4살이었다.) 그 시기에 우리 현지에서 자료를 만든 것이 아주 적었지만 저는 늘 세인들이 버린 자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보면 단지 가슴 아팠지만 점차적으로 경각심을 갖게 되었는데 ‘왜 나는 늘 이것을 보게 될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또 버려진 자료를 줍게 되었고 눈앞에 하나의 정경이 나타났습니다. 한 수련생 아주머니가 자료를 함부로 폐기된 자전거 광주리에 던져 넣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또 마침내 다 배포했으니 집에 가서 밥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또 하나의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한 수련생 아주머니가 자료를 인쇄하면서 집안일을 하고 있었는데 마음속으로 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인쇄를 다 했구나, 청소를 잘 해야지.’ 저는 이런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비할 바 없이 부끄러웠는데 저도 이러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구하는 이렇게 엄숙한 일을 자신은 오히려 조금도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이는 대충 때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심혈을 기울여 특별히 공을 들였습니다. 저의 손을 거쳐 절단된 스티커, 포장된 영상 포장지, 매 한 개 자료는 모두 정연했습니다. 자료의 내용은 표준 속도로 인쇄하고 기타 자료 뚜껑, 영상, 겉표지, 스티커, 달력, 탁상달력 등 모두 정교하게 인쇄하고 심혈을 기울여 아름답게 만들었고 가장 좋게 만들었습니다.

후에 저는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서 정법 결속의 시간을 연장하셨다고 여러 번 말씀하신 것을 보았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잘 수련하지 못한 것이고 사람을 구한 숫자가 모자란 것이다. 우리 현지를 놓고 말하면 자료점을 하겠다고 서약한 이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속인 속에 미혹되어 사명을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기다릴 수 없고 마땅히 그들이 감당하지 못한 그 한몫도 감당할 것이다. 이로써 사부님께서 배치한 이 정법노정을 보장할 것이다.’ 그리하여 저는 인쇄기 3대와 영상 제작기 한대를 추가했습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0시 반까지 했고 저는 전문적으로 자료를 만들었는데 매우 많이 만들어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 아들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저와 같이 있었습니다. 전남편은 매달 아이한테 500위안(한화 약 8만원)의 생활비를 주었고 저는 직장이 없고 돈도 없고 저축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시기에 양말도 살 돈이 없었고 구멍 나면 다시 기워서 신었습니다. 그 당시 밤에 잠들기 전에 아들을 보면 모성애가 넘쳐나 눈물이 글썽거렸고 여러 번 이런 사람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저는 아주 지쳐요. 사부님, 제자는 견지 못하겠어요.’ 저는 자료점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연공을 마친 후 자신은 또 예전처럼 컴퓨터를 열고 기계를 가동시켰습니다. 이는 저의 선택이었고 얼마를 감당할지라도 저는 후회가 없었습니다.

이 과정 중에 저는 자신이 우주에서 아래로 걸어 내려온 많은 정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지구를 보았고 자신이 바다에서 오랫동안 기다린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지구에서 자신이 전에 불가, 도가, 기문공법에서 전후로 수천 년의 수련을 겪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세기는 대법 속에서 수련하고 자신이 끊임없이 도달하는 경지를 보았습니다. 저는 단지 저의 헌신과 저의 소득이 전혀 정비례 되지 않음을 알고 있는데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후에 어느 날 저는 구세력이 만들어낸 그 경지를 보았고 구세력이 저에게 배치한 일체를 보았는데 마치 시계종의 톱니바퀴처럼 돌고 있었고 제가 끊임없이 이 경지를 승화하고 초월할 때 저는 구세력이 우리 지역 대법제자에게 배치한 이 톱니바퀴를 보았습니다. 우리 매개 대법제자의 이 작은 톱니바퀴는 또 정체적인 한 개 큰 톱니바퀴를 형성합니다. 우리 주변 이런 시와 현의 큰 톱니바퀴가 또 더욱 큰 톱니바퀴를 형성했고 전 성의 큰 톱니바퀴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각 성의 톱니바퀴는 또 전국의 한 개 큰 톱니바퀴를 형성했고 각 국의 톱니바퀴가 또 전 세계의 톱니바퀴를 형성합니다. 그것들의 이 한 세트는 매우 세밀했고 또 질서 있게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정경을 보기 시작하여 저는 자신의 마음을 정체가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정법노정에 따라가는 것에 놓았습니다. 저의 기계도 3대에서 5대로 증가했습니다. 이 몇 해 동안 우리 현지는 일 년에 대면적으로 두 차례 자료를 배포하는데 매년 봄에 시작하고 몇몇 수련생은 차를 몰고 가서 자료를 배포 했습니다. 수련생들은 핸드폰으로 지도를 검색하고 주변 마을 하나, 읍 하나 누락 없이 행하는데 최대한도로 누락 없이 행했습니다.

매년 ‘5·13’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날이 오면 두 달 전부터 대량 제작에 들어가고 파룬따파의 날 스티커를 붙입니다. 만약 현지 시에서 한 사람이라도 파룬궁진상을 모르고 한 사람이라도 ‘5·13’이 세계 파룬따파의 날임을 모른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잘하지 못한 것입니다.

매년 11월 마을 진상자료를 만든 후 달력과 탁상달력도 만들고 저는 우리 현지의 진상 정기간행물을 편집하기 시작합니다. 수련생들은 정체적으로 협조하여 이 몇 해 동안 악당의 우리에 대한 벌금, 집 수색, 납치를 전부 낱낱이 폭로했습니다. 일부 수련생은 세인들과 함께 실명으로 문장을 썼고 대법을 수련한 후의 변화와 신기함을 써냈습니다. 세인은 파룬따파가 좋다고 믿으면서 얻은 이득을 써서 사악을 놀라게 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우리 현지에서 법을 실증한 환경이 변했습니다.

이 몇 해 동안 저는 법 공부팀에 참가하지 못했고 처음 시작할 때 기계를 보면서 법을 외웠습니다. 그러나 매일 가장 많이 외워야 한 강이었고 더 외우면 머리가 어지러워서 외울 수 없었으며 아울러 법을 외울 시간이 늘 없었습니다. 작년 겨울 한동안 비교적 한가할 때 저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대량으로 법 공부를 했고 지금은 매일 4강의를 외워도 머리가 어지럽지 않습니다. 지금은 정기간행물을 수작업하고 책갈피를 만들 때 모두 법을 외워 사람을 구하는 매 한부 자료에 모두 법의 힘을 모아 개인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것을 함께 용해시켰습니다. 지금 저는 자신이 대충 일하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참되고 올바르게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대법제자가 매일 수련을 견지(保證)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고,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사명이다. 원만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한 것이 어떠한가가 바로 정진(精進) 여부의 수련상태이다. 사회형식은 변화할 것이나, 수련의 요구는 영원히 개변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주의 표준이며, 대법의 표준이기 때문이다.”[3]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일깨우다’

(밍후이왕 15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18년 11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4/3765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