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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협력하면서 마음을 닦아 자료점이 갈수록 꽃길을 걷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존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올해 70세입니다. 수련(修煉) 전 사람의 명, 리, 정, 원한 속에서 고통스레 허덕이며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생명은 저도 모르게 아래로 미끄러졌고 패괴되었습니다. 행운으로 저는 대법에 들어섰고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됐으며 이는 생명의 최대 영광이고 최대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0년이 흘렀습니다. 제고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분리할 수 없으며 또 주변에 많은 좋은 수련생이 있어서 그들이 나를 이끌고 앞으로 걸어갔으며 저는 수련생의 정체(整體)에서 떠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지역 초기의 자료점은 큰 자료점 하나였습니다. 월세였고 조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우리 지역은 교훈을 받아들여 자료점을 점차 사부님의 요구대로 가정 자료점 방향으로 발전시켰으며 더는 돈을 들여 월세를 내며 자료점을 건립하지 않았습니다. 자료점은 반드시 도처에 꽃을 피우는 이 길로 가야 했습니다. A수련생은 자비로 컴퓨터 몇 대를 구입한 후 저를 찾아와 몇 명의 수련생에게 컴퓨터 작동방법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저도 인터넷에 접속하고 다운로드 등 몇 가지만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A수련생의 격려와 그녀의 요청으로 오전에 한 명, 오후에 한 명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큰 자료점에서 철거한 프린터를 그 몇 명의 컴퓨터를 배우는 수련생에게 배분했습니다. 한 떨기 한 떨기의 작은 꽃이 이렇게 활짝 피어났습니다.

자료점의 증가로 저는 바빠졌으며 각종 사람 마음이 반영돼 나왔습니다. 환희심, 과시심, 쟁투심, 사심, 질투심, 원망과 원한의 마음,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심지어는 수련생과 말할 때 말투도 변했습니다.

1. 협력하는 수련생의 정념정행에서 격려를 받다

2012년 87세의 어머니가 넘어져 엉덩이뼈를 다쳤습니다. 수술 후 침대에 누워 생활을 자립할 수 없었으며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습니다. 노인을 보살펴드리는 일만으로도 매우 힘들어 하루가 끝나면 피로가 쌓여 법공부와 연공마저 보증할 수 없었으며 심성도 차해졌습니다.

그날 수련생이 집에 찾아와 호신부 카드 제작을 부탁했습니다. 디자인하여 인쇄해주기를 바랬습니다. 저의 태도는 매우 냉담해졌고 몸을 돌려 주방으로 식사 준비하러 갔습니다. 수련생은 주방까지 따라왔습니다. 제가 식사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저의 옆에 서있었습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듣지 않았고 마음으로 들리지도 않았으며 전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려는 생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련생이 돌아간 후 어머니가 “그 사람은 정말 선량하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수련생은 저의 태도에 마음을 상하지 않고 한 차례 또 한 차례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의 정신에 감동했고 자신이 옳지 않음을 인식했습니다. 낮에 시장을 보고, 식사준비하고 설거지를 해야 하기에 마음이 전혀 조용해지질 않아 밤에 디자인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컴퓨터 키보드의 기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호신부 카드는 정면과 뒷면에 사진이 들어가야 하며 채택한 사진은 뒷면 사진이었습니다. 디자인하기 전에 이런 세부적인 부분은 알지 못했고 디자인이 끝나서야 잘못된 것을 발견해 다시 디자인해야 했습니다. 정면 사진을 회전해서 넣었어야 하는데 저는 사진을 돌릴 줄 몰랐고 그래서 디자인 도구를 하나씩 클릭해가며 찾아야 했습니다. ‘수평으로 돌리기’ 버튼을 결국 찾아냈습니다. 이 하나의 작업을 하는데 매우 많은 시간을 들여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디자인한 파일을 인쇄했더니 정면과 뒷면의 사진이 일치하지 않아 폐지 한 박스가 나왔습니다. 이는 수련생의 작업에 적잖은 난도(難度)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수련생은 한 마디 원망의 말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것도 다 해낼 수 있어요.” 앞뒷면 사진의 일치한 대칭을 위해 수련생은 정면과 뒷면 2장의 사진을 햇빛을 향해 들어서 대칭시킨 후 바늘로 고정시키고 두 장 사진 가운데에 앞뒷면이 서로 비치지 않는 종이를 끼웠습니다. 어떤 사진은 전체가 일치하지 않아 사진을 작게 오린 후 빛을 향하여 바늘로 고정시켰습니다. 수련생들은 매우 세심하고 참답게 하여 한 장도 손실이 없이 호신부를 매우 잘 만들어냈습니다. 수련생들은 진상 알리기에서 진상을 들으려 하는 사람에게 이 호신부를 선물해주기를 좋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수련생의 아름다운 면을 보았고 또 정체의 힘을 충분히 체현해냈습니다. A수련생의 여든에 가까운 어머님은 바닥에 앉아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여서 정성들여 카드의 테두리를 원형으로 잘랐습니다. 노인은 그렇게 상화로웠고 선량했으며 저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감동으로 남았습니다! 얼마나 좋은 노 수련생인가! 처음에 수련생이 거듭 저를 찾아와 호신부 카드 제작을 부탁할 때 저는 늘 거절했습니다. 수련생이 저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여겼으며 심지어는 저를 핍박하는 것으로 여겨 마음속으로 매우 언짢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바로 수련생이 저를 이끌고 있었으며 저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갔던 것입니다. 바로 사부님께서 저의 신변에 이렇게 좋은 수련생을 배치하셨고 사부님께서 줄곧 저를 보호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만약 저의 심성이 일찍 제고됐더라면 2년 전에 완성해야 할 것을 지금까지 미루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에 파묻혀 법공부와 연공이 따라가지 못했으며 일에서 조금만 이뤄내도 환희에 찼고 또 과시했습니다. 수련생들이 호신부 카드를 잘 만들었다고 말하면 자신이 어떻게 어려운 정황에서 겨우 디자인했다고 거침없이 자랑삼아 말했습니다. 사실은 그러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컴퓨터 키보드기능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사진과 사진 거리를 조절하더라도 저는 실제 종이로 재어 거리를 조절한 후 마우스로 사진을 한 장씩 옮겼습니다. 또 그 당시 심성이 매우 낮아 치통도 있었습니다.

수련생은 저의 상태를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집에 법공부하러 오라고 했습니다. 몇 번의 요청에 더는 거절할 수 없어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멀리까지 나와서 저를 마중했습니다. 방에는 또 여러 명의 수련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부님 광저우 설법 비디오를 틀었습니다. 들으면서 저는 잠이 왔습니다. 수련생은 조용히 저를 흔들어 깨운 후 아이스크림을 가져와 정신을 차리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사전에 이미 저를 위해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수련생의 백 마디 말보다 훨씬 나은 무언의 행동은 저를 감동시켰고 부끄럽게 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모순도 있었습니다. 물론 문제는 저였습니다. 저는 그녀들에게 화를 냈었고 또 깊이 그녀들 마음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저의 이지적이지 못한 행위에 그녀들은 저와 따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련인이고 기분 나쁜 일은 매우 빨리 법에서 귀정(歸正)되기 때문이며 갈수록 더욱 잘 협력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료점은 점차 ‘만능’점으로 거듭났습니다. CD 굽기, CD 표지 만들기, 션윈 CD 굽기, 작은 인터넷 봉쇄 돌파프로그램 굽기, 진상 CD, 진상 책갈피 등 무엇이 필요하면 그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책갈피는 매우 예뻐 학생들이 너나없이 달라고 했으며 우리지역 법 실증에서 매우 큰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자료점은 우리 지역에 하나만 있지 않으며 각 자료점은 조사정법(助師正法)에서 적잖은 작용을 발휘했습니다.

션윈 CD 표지 종이 질감이 좋아 잘라낸 조각은 버리지 않고 넓은 것에 진상 구절과 사진을 붙여 인쇄 후 진상자료 봉투나 CD 봉투에 한 장씩 넣었습니다. 봉투에 넣은 진상자료의 내용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진상 문구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더 좁은 종이는 책갈피로 만들어 수련생에게 나눠줬는데 매우 좋아했습니다. 이 일체는 모두 제가 한 것이 아니며 모두 다른 수련생이 한 것이고, 저는 한 장의 카드도 잘라본 적이 없고, 책갈피 하나를 만든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단지 그녀들에게 어떻게 인터넷에 접속해 다운받고, 표지를 만들며, CD를 굽고, 인쇄하며, 디자인이 필요한 부분은 제가 만든 후 그녀들에게 USB로 건네주면 나머지는 모두 그녀들이 했습니다.

밍후이왕은 매년 탁상달력 인쇄판을 발표합니다. 제가 “탁상달력을 제작합시다.”라고 알리면 탁상달력 케이스를 구입하는 이, 종이를 구입하는 이, 제작 도구를 준비하는 이 등 업무가 진행되고 몇 개 자료점이 나누어서 인쇄하는데 속도가 매우 빠르며 첫해에 우리는 7천개의 탁상달력을 만들었습니다. 각 법공부장으로 달력을 배송하는 일도 여성 수련생이 책임졌습니다. 달력을 한 박스씩 층계를 내려 자전거로 아파트에 도착해 층계를 올라 집까지 배송했습니다. 그럼에도 고생과 힘듦을 몰랐습니다. 모두들 정체라는 이 항목에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을 소중히 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에게 말했습니다. “하늘의 신(神)들도 우리를 부러워합니다. 우리는 잘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달력이 완성되면 우리는 충분한 양의 진상자료(소책자, 진상 CD, 인터넷 봉쇄 돌파 프로그램 CD, 아름다운 달력, ‘9평공산당’ 책)를 몇 개의 큰 자루에 담아 편벽한 농촌에 가서 두 사람이 한 팀으로 구성해 배포하는데 매번 3팀이 갔습니다. 농촌에서 집집마다 진상을 알리는데 ‘삼퇴’ 효과가 매우 좋습니다. 한번 가면 하루가 지나는데 비록 하루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지만 갈증과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진상을 알게 된 촌민은 우리에게 매우 감격해하며 어떤 사람은 함께 식사를 권하며, 어떤 사람은 날씨가 저물었으니 하루 밤 묵어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그 진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정황에 봉착하여 우리는 모두 매우 감격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린 후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법제자입니다.

그중 가장 감동받은 일은 큰 산 삼림지역에서 자료를 배포할 때였습니다. 북방의 겨울은 매우 추우며 해가 빨리 떨어져 오후 4시면 점차 어두워집니다. 하지만 큰 산은 오후 4시여도 흰 눈이 덮여 아직 밝았습니다. 우리는 삼림의 눈 속에서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산에 눈이 두텁게 쌓여 도랑, 바퀴 자국, 구덩이, 두렁이 어딘지 몰라서 잘못 발을 디디면 눈 속으로 깊이 빠져 넘어졌고 그러면 수련생이 부축해 계속하여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눈이 바짓가랑이로 들어가 체온으로 녹았고 솜바지가 젖었으며 다시 얼어붙어 발목이 마비되고 저렸습니다. 손과 얼굴도 얼었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했는데 잠시 후면 머리에 흰 서리가 끼었습니다. 어떤 때 앞에서 사람이 걸어오면 안전을 위해 손으로 머리에 서리를 녹여 우리가 타 지역에서 온 사람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얼어서 마비되고 잘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끊임없이 눈썹과 머리의 서리를 녹이려하지만 어찌 녹여낼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이 마스크를 벗어야 했으며 한기가 마음대로 몸을 엄습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했습니다…….

한기가 폐부로 흘러들었는데 그것은 그토록 신선했습니다. 머릿속에 자연히 사존의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생사에 집착이 없나니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1]

삽시간에 가슴이 호탕했고 정말로 하늘을 떠이고 땅위에 선 기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고생을 몰랐고 힘듦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점심에 이곳으로 출발하면서 점심과 저녁을 먹지 못했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으나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직 최고의 영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부님의 법도(法徒)이며 이곳의 중생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삼림지역이라 주민들이 떨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한 집이라도 빼놓지 않으려고 우리는 먼 길이나, 좋지 않은 길이면 남성 수련생이 다녀왔습니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이라면 빼놓지 않았습니다. 불빛은 보기에 가까우나 정작 가보면 매우 멀었고 길을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남성 수련생들은 눈 속을 빠져가며 불빛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수련생이 눈 속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노라면 마음속에 경의가 솟아났습니다. 저에게는 이렇게 좋은 동수(同修)가 있기에 그들과 함께 협력하여 이곳 큰 산까지 와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결심을 내렸습니다. ‘꼭 동수라는 이 연분을 아껴 반드시 그들과 잘 협력해 함께 사명을 완성하리라.’

2. 봉착한 좌절은 모두 고험이다

우리 지역 기술 수련생은 또 저에게 컴퓨터 시스템 설치, 프린터 초기화 및 부속품을 뜯어내 간단히 정비하는 기술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제가 컴퓨터 시스템 설치를 익혀 기술 수련생이 집에 있지 않을 때 문제가 있으면 저를 찾아왔습니다. 처음으로 정비할 때였습니다. 엡손 프린터에 무한잉크충전기를 갈아야 했는데 잉크 카트리지를 이송장치에 연결해도 프린터가 계속 빨간 불이 켜졌고 컴퓨터에서 잉크 카트리지가 설치되지 않았다고 표시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설치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리가 저려 일어날 때 뒤뚱거리다가 손으로 프린터 잉크 카트리지를 짚었는데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프린터가 정상으로 작동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잉크 카트리지 설치를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기쁨과 격동의 마음에 벅찼고 사부님의 도와주심에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잘 수련하자! 사명을 완성하자!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자.”

B수련생이 또 작은 꽃을 피웠습니다. B는 지식수준이 낮아 글씨도 한 필 한 필 씩 정자로 써야 알아봤고, 인터넷 접속과 프린터 작동방법을 가르칠 때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몇 번 가르쳐도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참지 못했고 말투도 선(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생의 용량은 매우 커서 제가 그녀에게 어떤 태도로 대하든지 언제나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사실 제가 그에게 가르침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며 자신을 수련하는 것으로 제가 그에게 가르친다고 해서 제가 그보다 나은 것으로 생각하면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B의 배움이 늦기에 저는 더 마음을 써야 했고 그 자신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중에 프린터 한 대로 공급이 부족해 한 대 더 구입했습니다. 그는 프린터 2대로 그녀들의 학습 팀에 필요한 진상 자료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저는 또 농촌 수련생의 프린터 고장을 해결해야했습니다. 농촌 수련생의 컴퓨터나 프린터가 고장 나면 G수련생을 통해 저를 찾아왔습니다. G수련생은 매우 많은 수련생들의 존경을 받는 노 수련생으로서 줄곧 협조 일을 담당했습니다. 매번 농촌에 갈 때 노 수련생은 차를 마련해 저와 함께 동행 했습니다. 차를 마련하지 못하면 택시로 움직였고 늘 노 수련생이 먼저 택시비를 냈습니다.

최근 노 수련생이 매우 바빠 농촌에 갈 때면 혼자서 가야 했는데 누구도 저에게 차를 마련해주는 일이 없었고, 기술에 정통한 수련생이 타 지역에 가고나면 봉착한 문제에 대해 물을 곳도 없어 마음속으로 자신이 없었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저에게 자신의 길을 걸으라는 사부님의 뜻으로 늘 지팡이를 짚고 갈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농촌에 갈 때면 택시로 움직였고 수련생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다녔고 일단 좋지 않은 마음이 나오면 재빨리 그것을 제거했습니다.

우리 이곳은 농촌 인구가 많으며 농민들은 세화, ‘복’글자가 들어간 종이를 좋아합니다. 수련생은 곧 세화, ‘복’자를 선물하는 방식으로 ‘삼퇴’를 권했습니다.

2017년 연말, 아직 세화 일부를 프린트하지 못했는데 프린터가 고장 났습니다. AS센터에 가져가려니 엄동설한에 기계가 크고, 또 방한 포장을 해야 했습니다. 일반적인 차량에는 실을 수 없어 수련생이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저는 그러면 ‘천지행논단’에 물어보자고 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차를 타고 농촌에 내려가 프린터의 상태를 기록한 후 돌아와 저녁에 논단에 올렸습니다. 아침에 첫 번째 일은 논단의 회신을 열어보는 것이었는데 그곳의 답장을 USB에 담아 다시 농촌에 내려가서 논단의 가르침에 따라 실행해보고 다시 그 결과를 논단에 반영했습니다. 저는 연속 며칠 농촌에 다니며 이 작업을 하여 마침내 문제를 해결했고 세화도 기간 내에 완성했습니다.

이번의 기계고장을 처리하는 문제에서 비록 며칠의 시간이었으나 사람 마음을 매우 괴롭혔으며 저의 그 조급해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택시기사는 차를 타면 즉시 출발하지 않고 길가에서 외치며 손님을 더 태운 후 출발하는데 정말 사람을 조급하게 합니다! 집에 90여세의 어머님이 계셔서 제가 빨리 돌아가 점심밥을 차려 드려야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오전 10시 경 수련생 집에서 나와 택시를 탔습니다. 기사는 “출발합시다.”하면서 차를 몰았습니다. 또 매우 속도를 내서 저는 은근히 즐거웠습니다. 그때 기사는 다시 방향을 돌려 왔던 방향으로 달렸습니다. 이렇게 몇 번이나 오가며 사람이 타기를 기다렸는데 저는 그야말로 조급했습니다. 기사는 자신의 일을 지체할 수 없다면 다른 택시를 타라고 했습니다. 이 택시기사도 그 기사와 마찬가지로 차를 몰고 길에서 사람을 더 태우려 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곧 11시가 되었으나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어서 출발하자고 재촉하자 한 사람만 태우고 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돈을 더 지불할거라고 말하자 한사람을 태우고 돈을 더 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택시기사는 먼저 번 택시기사와 마찬가지로 저의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면 자신의 친척 택시기사에게 타라고 하여 또 옮겨 탔습니다. 그의 친척 택시기사의 차를 탔으나 여전히 오가며 손님을 더 실으려 했습니다. 재촉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그 차에서 내리지 말았어야 했어요, 여러 명이 타려고 했으나 다 태울 수 없어서 당신을 저의 차로 쫓아낸 것입니다.” 이 기사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사람이 차지 않았을 때 출발했습니다. 도중에 차를 타는 사람이 있어서 정원을 실어 그의 수입에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저는 이는 사부님께서 제자가 심성을 닦도록 도와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또한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점심밥을 차려드리는데 지체되지 않았습니다.

이 몇 년간 수련생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기계가 고장 난 것을 알아채고 도구를 챙겨 출발했습니다. 수련생이 조급해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저는 그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C수련생 자료점은 우리 3명이 돈을 모아 최초로 건립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 문제가 있어서 사람을 찾아도 오래도록 방문해주지 않아 매우 조급했었습니다. 이 면에서 저는 깊은 체험이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좋은 날씨든 궂은 날씨든 가리지 않고 부르는 대로 달려갔습니다.

어떤 때 출발하는데 큰 비가 내린다고 아이가 말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정법수련의 길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 없어!” 큰 비를 꿰뚫고 수련생 집으로 가면서 빗물에 바짓가랑이가 다 젖고 신발이 다 젖는데 저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비바람은 대법제자의 가는 길을 막지 못하지.” 이런 호탕한 심정으로 수련생 집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으나 사람이 없었고 그때 마음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비를 무릅쓰고 왔는데 집에서 기다리지 않다니, 신용을 지키지 않는구나……. 돌아가는 길에서 비바람도 가는 길을 막지 못한다는 호탕한 심정은 온데간데없고 마음 가득 원망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수련생은 큰 비가 내려서 제가 오지 않는 줄로 여기고 다른 곳에 갔었습니다. 다시 시간을 정하고 시간에 맞춰 도착했더니 그녀는 또 없었습니다. 또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저는 곧 수련생 E에게 전화했습니다. 전화에서 저는 화를 누르지 못하고 “어쩔 수 없네요, 다시는 오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E는 즉시 차를 타고 달려와 그 수련생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저의 편을 들어 화를 냈습니다. 이때 그 수련생이 돌아왔습니다. E는 “어찌 사람을 오라고 해놓고 집에서 기다리지 않았어요?”라고 하자 그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잠깐 밖에 나갔다 왔어요.” E는 그래도 사람이 오는 것을 기다려서 볼일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의 태도는 좋지 않았고 그가 저의 시간을 낭비했다고 말했습니다…….

수련 중에서 나타난 일은 모두 고험이며 모두 닦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표면에서 볼 때 수련생이 약속을 어겼으나 사실 이 일을 통해 저의 심성이 제자리에 있지 않음을 폭로한 것으로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점에서 문제를 보고 있었습니다. 수련을 잘한 수련생의 언어에는 선(善)이 묻어나나, 제가 뱉어낸 말은 수련생을 울게 했습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수련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늘 이런 한마디 말을 했다. 당신이 만약 선한 마음으로 일체 자신의 사(私)적인 것이 없이, 자신을 조금도 고려함이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한다면, 당신이 그에게 한 말은, 그로 하여금 당신에게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이라고.”[2] 저는 정말로 사존의 가르침에서 어긋나 있었습니다.

나중에 또 비슷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농촌에 가는 날이었는데 비가 내렸습니다. 큰 비에 우박까지 쏟아져 도착하니 길은 진흙탕이었으며 우리가 물을 밟고 수련생 집에 찾아갔으나 집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음은 조급했으나 매우 빨리 평정을 찾을 수 있어 수련생을 책망하지 않았고 수련생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련이고, 이것이 바로 제고였습니다.

3. 수련생이 사심 없이 기술을 제공하고 지지해줌에 감사드린다

‘천지행논단’은 제가 기술을 배우는 좋은 곳입니다. 그 당시 저는 문제가 있으면 글을 올려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논단의 페이지마다 넘겨가며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을 읽으면서 제가 해결하려는 문제를 찾았습니다. 비록 시간이 적잖게 들었으나 저의 적잖은 난제를 해결해줬습니다. 나중에 저는 이 사이트 계정을 갖고 문제가 있으면 직접 논단의 수련생과 소통해 적잖은 기계 방면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수련에서도 저의 심성 제고를 촉진했습니다.

2016년 ‘5·13’ 뉴욕 대형 퍼레이드 미러링(Mirroring)을 할 수 없어 논단에 ‘완성된 미러링을 구합니다.’라고 글을 올렸습니다. 회신에서 완성된 미러링을 전해줄 방법이 없으니 자신을 믿고 여러 번 시도해보면 알 수 있으니 시도해보라고 했습니다. 논단의 수련생의 회신을 받고 저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어에 선(善)이 묻어있었고 저에게 신심과 격려를 주었습니다. 저는 다시 정신차리고 반드시 배움을 견지해내리라 결심했습니다. 정념이 족할 때 저는 매우 빨리 미러링을 하는 방법을 익혔고 다른 수련생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아마 2015년 정월 대보름날이었을 것입니다. 프린터가 고장 나 밤 11시가 다 돼서 기술 편지함에 글을 보냈습니다. 반시간 후 회신이 도착했습니다. 저는 특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늦게까지 그들은 휴식하지 않았고 여전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에서 저는 태만해서는 안 된다는 격려를 받았습니다!

이런 기술 수련생은 수고를 많이 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논단의 수련생에게 감사드립니다! 대륙의 한 떨기 한 떨기 작은 꽃은 당신들의 노고가 한 몫을 합니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기술적으로 지도를 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수련에서 함께 제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당신들이 저에게 회신할 때 ‘갈수록 꽃길만 걷기를’ 축원했습니다. 우리 함께 갈수록 꽃길만 걷도록 합시다.

저의 능력이 매우 작으나 저에게는 정체가 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주신 능력을 더욱 잘 발휘해야 하며, 오직 정체의 협력 속에서 비로소 사명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주변에 이런 수련생의 협력과 지지가 없었더라면 제가 또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한 길로 걸어오면서 사부님의 보호가 계셨으며, 수련생의 지지와 고무격려가 있었습니다.

사존님 감사합니다!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 2-정념정행(正念正行)’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창춘(長春)보도원법회설법’

(밍후이왕 제15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18년 11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밍후이대륙법회>제15회(2018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7/376573.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8/11/10/1731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