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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대와 방치로부터 신임을 얻어 원직에 복귀되기까지

글/ 허난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기관 간부다. 1996년 9월에 대법을 얻어 수련하기 시작해 혜택을 많이 받았다. 나는 1978년 군대에 가서 2년 후 제대해 향 정부에서 일했고 1990년에는 현 과국(科局)에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1. 대법을 수련해 혜택을 많이 받다

군대에 간 후 나는 급성 흉막염에 걸려 부대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오랫동안 치료해도 낫지 않아 급성이 만성으로 변했고 이후에 결핵성으로 악화됐다. 입원해 거의 반년 후에야 겨우 퇴원했지만 잘 낫지 않아 흉막이 여전히 답답하고 아팠다. 이때 마침 부대에서 군축을 실시해 나는 제대해 집에 돌아온 후 향진(鄕鎭)의 일을 분배 받아 일했다.

당시 향진의 일 특징은 늘 농촌에 내려가야 했다. 나는 몸이 좋지 않아도 매일 출근해 농촌에 내려가야 했다. 170센티미터 키에 몸은 말라 55킬로그램밖에 되지 않았다. 흉막염 이외에도 위장병, 신장병, 간담도 좋지 않아 매일 약을 한 줌씩 먹었고 탕약도 달여 먹었다. 농촌에 내려갈 때마다 아내는 달여 놓은 탕약을 링거병에 넣어 나에게 가져가라고 했다.

사람들은 내가 몸이 좋지 않아 늘 약을 먹는 것을 보고 나를 ‘약탕기’라고 불렀다. 아내는 늘 나에게 약을 달여 주면서 슬퍼하며 말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나 미쳤나봐, 당신과 같은 약골에게 시집오다니.” 온몸에 병이 있어 시달려 나는 화를 잘 냈고 아내도 힘들어 기분이 나빠 부부는 늘 다투고 싸웠다. 우리에게는 아이 둘까지 네 식구가 살았는데 나 혼자 돈을 번데다 많은 돈을 약 사는데 들였기에 경제가 넉넉하지 않아 식구들의 심정은 모두 즐겁지 않았다.

의사에게 진찰하는 이외에 아내는 늘 나를 따라 무당을 찾아 내 병을 치료해달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큰 신선이 붙었다고 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내가 혼을 잃었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온 후 이 몸을 위해 늘 혼을 부르고 귀신을 보냈으며 향을 피워 큰 신선을 모셨다. 이렇게 쓸데없는 짓을 많이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어떤 때 나는 지금 20여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몸이 이 모양인데 50살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나는 너무 슬펐다. 나는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해 또 각종 기공으로 몸을 단련했다. 태극권, 기공 등을 연마했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

내가 풀이 죽어 막연해 할 때 어떤 사람이 나에게 파룬궁을 소개했다. 이 공법이 좋다며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면 건강에 아주 좋다면서 진심으로 수련하기만 하면 각종 병을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파룬궁 소개를 보고 매우 좋다고 생각하고 연마하려 했다. 이렇게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사람은 왜 인간 세상에 왔고 생명의 진정한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사람은 왜 병이 있고 고난이 있는지 인식했으며 이전에 몰랐던 인생의 참뜻을 알았기에 꼭 잘 수련하리라 결심했다. 한 동안 연마한 후 내 몸은 정말 기적처럼 나아 병이 없이 온몸이 가벼웠으며 기분도 좋았고 밥을 먹어도 맛있었으며 일을 해도 활력이 있었다.

아내는 내가 건강해진 것을 직접 보고 말했다. “이젠 해방됐네. 당신 잘 연마해요. 당신을 지지해요.” 나는 이미 22년 연마를 견지했다.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내 몸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아내와 아들딸의 몸도 모두 좋아져 거의 병이 없다. 어떤 때 병이 있어도 두통, 감기와 같은 작은 병이었고 며칠이면 지나갔고 내 의료카드는 거의 쓸 일이 없었다. 특히 나와 함께 생활하는 아내의 몸은 더 건강했다. 얼굴이 불그레하여 나가면 누구나 다 물었다. “아주머니도 파룬궁을 연마합니까? 몸이 어쩌면 이렇게 좋습니까?” 아내는 말했다. “저는 연마하지 않습니다. 저는 끈기가 없지만 저는 믿습니다. 또 남편의 수련을 아주 지지합니다.”

2. 박해로 냉대와 방치를 당하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 장쩌민 일당이 파룬궁을 모함하고 불법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붙잡았다. 수련을 통해 심신의 혜택을 많이 본 파룬궁 수련생으로서 사람마다 나서서 공정한 말을 했다. 나도 그 중의 일원이었기에 나는 우리나라 ‘헌법’에서 규정한 공민신앙자유, 청원 자유에 따라 현지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파룬궁 수련을 통해 혜택을 직접 받은 사실로 이 공이 바르고 좋다는 것을 실증했다. 그러나 장쩌민 집단은‘헌법’을 무시하고 청원하러 가는 사람을 붙잡아 수감, 노동교양, 징역, 심지어 생체 장기적출까지 했다.

그러나 강제로 사람마음을 개변시키지 못한다. 수년간 나를 노동교양하고 해고로 나를 위협했지만 수련하려는 내 마음을 개변시킬 수 없었다. 2001년 나는 불법적으로 노동교양 2년을 받고 사무실 주임 직무에서 해임되어 사무원으로 떨어졌다.

2003년 직장에 돌아와 출근했을 때 직장 지도자와 동료들은 사당의 거짓 선전을 듣고 우리를 이해하지 못해 나에게 아무것도 간섭하지 못하게 하고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유독 나에게 컴퓨터도 주지 않았다. 사무실에 내가 있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을 남겨두었고 문을 나서면 사람을 파견시켜 따라다니게 했다. 나에게 신문만 받고 배포하게 하고 문서는 접촉하지 못하게 하면서 거의 나를 방치해두었다.

3. 진상을 알고 신뢰가 생기자 날 원직에 복귀시키려 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리 어려워도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그들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들에게 먼저 진상 자료를 주어 점차 진상을 알게 했다. 이렇게 시간이 길어지자 직장 지도자와 동료들은 대법과 연공자에게 새로운 인식이 생겼다. 파룬궁 수련생이 끊임없이 민중에게 진상을 알려 사람들은 속임수에서 깨어났고 파룬궁 수련생은 중국공산당이 조작하고 모함한 사람이 아니라 몸을 건강하게 하고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2016년 4월 직장에서 갑자기 나를 찾아 면담했다. 나에게 기관 직원 식당 관리원을 맡으라고 했다. 원인은 예전에는 기관 식당에서 아침밥만 제공했는데 직원이 1위안을 내고 기관에서 5-6위안을 보조해주었지만 지금은 부정부패 단속이 심해 감히 보조해주지 못해 매일 아침과 점심을 제공하는데 직원 가족도 먹을 수 있지만 기관에서 보조해주지 않고 기관은 돈을 벌지도 않고 음식을 먹은 만큼 직원이 전액을 내야 했다.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이렇게 오래 근무해 이제 2년이면 퇴직하는데 식당 관리가 어렵고 시간도 많이 점유하기에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아 처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도자는 거듭 내가 해야 된다고 요구했다. “이번에 개혁한 후 기관에서 보조하지 않아 하기 어려운 것을 압니다. 밥값이 비싸면 직원이 사려하지 않고 너무 싸면 손해를 봅니다. 당신이 정직하고 탐욕이 없기에 선택한 겁니다.”

하려면 열심히 해야지 얼렁뚱땅해서는 안 된다. 나는 몇 가지 원칙에 따라 했다. (1)밥값을 최저로 낮추어 직원들이 손해 보지 않게 했다. (2)요리사들에게 맛있게 하라고 했다. (3)주식과 부식을 다양하게 준비했다. 복잡한 주식으로는 찐빵, 파이, 물만두, 여우몐, 사오빙, 유탸오를 했고 각종 복잡한 요리도 했다. 또 무료로 짠지, 고추기름, 설탕 등을 제공해 사람들이 집에서 밥을 먹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어느새 2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모두 내가 식당 관리를 잘한다고 칭찬했다. 지금 나는 퇴직할 나이가 됐지만 기관 지도자는 나를 다시 원직에 복귀시킬 생각을 하고 있다. 나에게 봉급도 더 올려주겠다며 내가 퇴직하고 집에 돌아가면 기관에 적합한 사람을 선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경영하면 식당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때 내가 동료에게 한담할 때 나는 곧 퇴직하게 되니 기관에서 다른 사람을 찾으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모두 말한다. “가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처럼 이렇게 잘할 수 없습니다.”

 

원문발표: 2018년 10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0/25/3762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