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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본귀진의 길에서 분발하여 계속 따라잡다

글/ 헤이룽장성 신 수련생

[밍후이왕] 저는 중국의 신 수련생이며, 36살 되던 2014년에 대법으로 들어 왔습니다. 이에 앞서 파룬궁에 대한 인식은 사당(邪黨)의 부정적인 선전이 다였습니다. 2013년 공사 현장에서 일하면서 무술을 할 줄 아는 파룬궁수련생(이하 수련생이라 칭함)을 알게 되어 대법을 접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말이 잘 통했고, 그를 통해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으며, 사당이 무엇 때문에 파룬궁을 박해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법을 얻은 경과

저는 처음에는 수련할 생각이 없었고, 다만 그에게 무술을 배워 신체를 건강하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수련생은 “당신 이렇게 나이 들어서 무술을 연마하면 이런 고생을 일반인은 견디지 못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9살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할머니와 철없는 우리를 데리고 생활하셨습니다. 이런 환경은 저를 매우 강인하게 변화시켰고, 17살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장일을 배워 지금까지 일을 하고있습니다. 결혼한 후 건강이 점점 안 좋아져 기침에 천식, 요추 간판 돌출증도 생겨 심할 때는 물 두 양동이도 들지 못했습니다. 기침한지는 십여 년이 됐으며,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고 겨울에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수련생은 저에게 무술을 가르쳐 주겠다고 답하고, 저를 도와 공산주의 청년단도 탈퇴시켜 주었습니다. 저는 자주 수련생에게가서 무술을 배웠습니다. 수련생이 저에게 무술보다는 파룬궁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저는 파룬궁 보다는 그저 무술만을 배우고 싶어 그에게 장계취계(將計就計-상대의 계교를 미리 알아채고 그것을 역이용 하는)하여 저에게 무술을 가르쳐 주기만 한다면 ‘전법륜(轉法輪)’을 가져다주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저는 ‘전법륜’을 보고 곧 빠져 들어 소파에 앉아 단숨에 2강을 읽었습니다. 수련생은 저에게 무엇을 알아 차렸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수련하여 정과(正果)를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수련생은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할래요?” 저는 말했습니다. “나는 기침 때문에 입도 못 다물어요. 연공해서 기침을 하지 않는다면 연마하겠습니다.” 수련생은 사부님께 향을 올리고 저에게 연공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두 세트 연공하자 과연 신기하게 기침이 멎었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마지막의 량처빠오룬(兩側抱輪)입니다. 눈앞이 환해지더니 천목으로 다른 공간을 보았고, 신체가 하얗고 양 손에 매우 밝은 빛의 광구(光球) 2개를 안고 있었으며, 그 당시에는 그것이 파룬(法輪)이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나오는 말이 사실이고 너무 신기하다고 생각했으며, 기침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무술 동작은 사흘에 하나를 익힐 수 있었지만, 파룬궁 5장공법은 이틀 만에 모두 배웠습니다. 수련생은 사부님의 설법과 연공음악을 다운받아 주었고 ‘9평(九評)’, ‘신전문화(神傳文化)’ 등도 다운받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무술만 가르쳐준다면 당신과 같이 파룬궁을 연마하겠다는 두 가지를 다 병행할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그때의 오성(悟性)은 매우 차(差)했습니다. 여름에 일이 바빠지자 연공을 까맣게 잊어 버렸습니다. 매일 일찍 일어나 무술을 연습하고 가끔 공법을 2세트 연마하여 무술 보조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매일 일을 할 때 속으로 끊임없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제가 하는 일이 빠르고 좋아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1년이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2014년 신정에 다시 수련생에게 갔습니다. 우리는 반 년 동안 보지 못하여 제가 온 것을 보고 수련생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본래는 무술을 가르쳐 달라고 왔지만 말을 꺼낼 틈이 없었습니다. 수련생은 쉴 새 없이 수련이야기를 말해주었고, 저는 조용히 듣다가 나중에는 그만 매료되어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말을 했습니다. 아침부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이야기를 했고,마침내 파룬궁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되었고, 왜 삼퇴(중국 공산당, 공산주의 청년단, 소년선봉대 탈퇴)를 해야 하는지 알게 됐으며, 잘 몰랐던 것들을 이날 모두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련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결가부좌를 10여분 동안 할 수 있었습니다. 한 달 동안에 결가부좌 1시간을 돌파했고, 그 과정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알지만, 결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다리가 아파서 감각을 잃었고 6, 7분이 지나야 움직일 수 있었으며, 다리가 떨어지면 끈으로 묶었습니다.

저는 천목이 현저하게 열려 수련했습니다. 아파서 견디기 어려울 때 사부님의 법신은 늘 저를 보고 웃으셨고, 저에게 다른 공간의 아름다운 경치를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2개월쯤 되었을 때 사부님께서 저의 숙명통(宿命通)공능을 열어 주셨고, 저는 천국세계에서 조사정법하러 온 것임을 알게 해 주셨으며, 저의 여러 생의 윤회(輪回)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용족(龍族)으로 전생(轉生)했었고, 도를 닦았으며, 날짐승과 길짐승으로 전생한 적도 있었으며, 출가하여 승려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에게 과시하라는 것이 아닌 용맹정진하라고 격려해 주신 것임을 알았으며, 환희심이 나와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끊임없는 법 공부와 연공을 통해 저의 씬씽(心性)은 끊임없이 제고됐고, 사상경지도 날듯이 위로 올랐습니다.

정념으로 병업관을 돌파하다

저의 첫 번째 병업(病業)은 독감에 걸린 것과 같았습니다. 이틀은 얼음 창고에 떨어진 것처럼 추웠고, 온 몸이 아파서 견디기 어려웠으며, 어지러워서 서있지도 못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또 열이 뜨겁게 불처럼 타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와 어머니가 한 번 또 한 번 약을 가져 왔지만 모두 정념으로 거절했습니다.

두 번째는 시골의 한 가정집을 리모델링할 때 타일을 붙이는 일을 했는데 왼쪽 무릎이 갑자기 붓고 아파서 구부릴 수 없었고, 다만 한쪽 다리만 구부리고 통증을 참아가며 일을 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알리지 않았습니다. 사흘 째 되는 날에 이를 발견한 가족들이 너무 놀라 병원에 가라고 독촉했지만 이는 병이 아니라 소업(消業)이라고 가족들에게 확고하게 말했습니다. 내일이면 낫는다고 했지만 그녀들은 믿지 않아 저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흘 째 되는 날에 저의 다리는 기적처럼 붓기가 가라앉았고, 그녀들은 모두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습니다.

이때부터 아내도 약을 잘 먹지 않았고 참는 것도 배웠습니다.

세 번째는 2016년 8월로 저의 생일 전날, 저녁 9시가 넘어 법 공부 하는 곳에서 집으로 돌아오자 설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내와 별거 중이었고,저는 서쪽 창고 방에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20여 분에 한번 씩 화장실을 갔고,밤새 잠을 별로 자지도 못하고 낮에는 정상적으로 타일을 붙이는 일을 했습니다. 타일을 한 곳 붙이고 나면 화장실을 한 번 갔으며, 오전에만 20번 넘게 화장실을 가야 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와 집주인은 끊임없이 약을 먹으라고 권했고, 저의 체질에 한 알이면 효과가 있다고 설득하여 저는 “이것은 제가 소업(肖業)하는 것이라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연공인은 바로 이러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점심에 입맛이 없어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데 안 먹으면 어떻게 하지, 먹고 싶지 않은 것은 가상이다. 먹고 싶지 않을수록 더 먹어야 해.’ 억지로나마 평소와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오후에도 오전처럼 끊임없이 화장실에 갔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기진맥진했습니다. 이날은 저의 생일이기에 누나와 형의 가족이 모두 와서 크게 한 상 차려 주었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웃으며 이야기 했고, 가족들은 저에게 이상이 있는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저녁에는 설사가 많이 미약해 져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 다시 저는 정상적으로 일을 하러 갔습니다. 그들은 제가 일하러 온 것을 보고 불가사의하다고 여겼고, 더 이상 약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설사는 어제의 패턴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위 속에서 진한 약 냄새가 올라 왔고, 저는 단번에 알았습니다. 근 20년 간 위장이 좋지 않아 해마다 대량의 유산균 유의 약으로 설사를 치료했는데 이번에 한꺼번에 올라온 것입니다.

이틀 후 같이 일하던 동료와 집주인은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신들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군요.” 사흘 째 되는 날에도 설사를 했고, 하루 종일 복통을 참을 수 없었지만 신사신법 하는 마음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그렇게 큰 업력을 감당해 주셨는데 요만한 감당은 분명히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설사로 인해 안색이 사색이 되어 보기에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나흘째 날에는 설사가 거의 멎었고, 닷새째가 되자 저는 완전히 환골탈태하여 다시 태어났고, 얼굴이 불그레하고 원기왕성 해졌으며, 먼 친척집 딸의 결혼식에 참석했더니 주인집에서 저의 손을 잡고 못 알아볼 뻔 했다고 말했습니다.

가족의 정에 대한 관문을 넘다

2014년 4월 저는 러시아로 일을 하러 갔고, 6개월 동안 동료의 무시, 비웃음을 받았으며, 사람들 앞에서 욕설을 당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저의 잘못을 사과하고,수련인의 진실성과 선량함, 너그러움으로 그들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렸습니다. 제가 처음 러시아에 도착했을 때, 일이 적어서 20일간 쉬었습니다. 우리는 월급제여서 이치대로라면 우리와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저는 늘 남의 월급을 가진 것 같고, 남의 이익을 챙긴 듯이 느껴져 저는 사장이 와서 보내도 두 배로 열심히 일을 했고, 어떤 날은 한밤중까지 일을 했습니다.한 달간 계속된 고강도의 노동으로 저는 공사 현장에서 쓰러졌고, 사장이 저를 병원에 데려가려 할 때 제가 깨어나 괜찮으니 얼른 나를 일으켜 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저의 몸에서 대법의 좋음과 아름다움을 보았고, 저는 그들 모두의 존중을 받았습니다.

10월에 귀국하여 집에 돌아온 이튿날 아내는 저의 수련을 저지했으며, 천지가 뒤집힐 듯 소란을 피웠습니다. 그날 누나와 매형도 모두 집에 있었고, 아침에 침대 위에서 발정념을 하려는데 아내는 조급하게 저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며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부르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마침 어머니가 밖에서 들어 오셨고, 제가 아무 말이 없자 아내는 약이 올라 빗자루를 들고 저의 머리를 마구 내리쳤습니다. 어머니도 저에게 화가 나서 대성통곡하셨고, 누나도 따라 울었습니다. 아내는 양손으로 크게 저의 뺨을 때렸고, 저는 그녀들에게 파룬따파하오(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알려 주었습니다. 어머니도 양손으로 저를 때렸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파룬따파는좋고, 진선인이 좋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렇게 저를 때리고 욕하고를 이틀 동안 계속했고, 저는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마음으로 이것은 수련인이 제거해야 할 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 했고,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앉아 제 앞에서 무릎 꿇은 채로 죽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이혼하고 싶지 않지만 수련을 못하게 하면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잘못이 없다고 말하며, 꿇으시려면 저의 사부님께 꿇고 계시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녀들은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저는 2년 반의 시간을 들여 가정의 관계를 돌파하고 당당하게 사부님의 법상(法像)을 거실에 모셨습니다. 아내도 변하여 대법이 사람의 정신을 정화하고, 병을 제거하며, 신체를 건강하게 할 수 있고,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사람을 때리거나 욕하지도 않았습니다.

전면적으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다

2015년부터 다각도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봄철의 어느 날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커다란 교실에 학생들이 가득 했고, 선생님은 저에게 숙제 책을 한 더미 가져다주시면서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부님의 가르침으로 제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책임이 중대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잘 아는 지인들에게 알렸고, 나중에는 직장에서 알렸습니다. 업무의 특성상 매번 한 세대에 가게 되면 먼저 일을 잘해놓고, 다시 고용주와 그의 가족, 친척, 이웃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제 곁에 오는 모든 이에게 진상을 알렸고, 일을시골에서 할 때가 많았습니다. 길가에서 주운 진상 전시판을 새로 만들어서 저의 오토바이에 걸고 고용주 문 앞에 세워 놓으면 지나가는 행인들은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지만 일을 잘 못하면 대법에 먹칠이라도 하게 될까 우려해 더욱 꼼꼼하고 섬세하게 하여 빠르게 주변 마을에서도 모두 알게 됐습니다. 파룬궁을 배우는 아저씨 한 분이 있는데 사람이 진실하고 일을 잘 한다고 하여 할 수 없는 일들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겨울에 일이 없을 때는 집에서 멀지 않은 법 공부하는 장소에 가서 법 공부를 했습니다. 이곳 법공부하는 장소는 ‘7.20’ 전에 법을 얻은 연세 있는 아주머니 댁이었습니다. 저는 법 공부할 때 결가부좌하고 신체를 바르고 곧게 하여, 두 손으로 책을 들고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노 수련생들은 신 수련생인 제가 이렇게 오래 결가부좌할 수 있는 것을 보고 모두 놀라워하며, 연세 있는 아주머니가 “자네를 보고 우리는 수련을 처음 할 때와 같은 느낌이었어. 우리도 정진해야겠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노 수련생 분들과 협력하여 거리, 백화점, 마트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탁상 달력과 진상 소책자를 배포했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이어서 어떤 사람도 다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웃는 사람, 욕하는 사람,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 하지만 진상을 알고 감사를 전하는 사람이 더욱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오토바이에 노 수련생을 태우고 장터에 진상을 알리러 갑니다. 주변 몇 십 리 내에 마을과 진의 큰 장이 적지 않습니다. 저녁에 수련생과 현수막을 걸고 노 수련생과 집집마다 진상을 알렸고, CT필름에 모형(模板)을 새겨서 일하러 다닐 때 가는 곳 마다 전봇대, 담장 등에 분사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주신 지혜로 80센티미터 되는 타일 포장피로 “法輪大法好, 眞善忍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 아홉 글자의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보기에도 전문적이고 아름다웠으며, 또한 돈도 들지않습니다. 글자 분사(噴字)하는 일을 교류하면서 수련생은 저와 협동하기를 원했었지만, 결과는 당시에 수련생이 저와 협력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논쟁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안으로 자신을 찾아보았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과시심이 있는 것을 발견했고, 두려운 마음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즉시 발정념하여 이러한 사람 마음을 닦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녁 12시 발정념을 끝내고 새겨놓은 글자를 가지고 혼자 분사를 하러 갔습니다. 우리 집 부근에는 두 곳에 학교가 있고, 그 사이에 폐기된 공장이 하나 있어, 매일 많은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여기를 지나갑니다. 저는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보호 하에 10여 분 동안 순조롭게 글자를 공장의 담장에 분사하여 새겼습니다. 반듯한 글자는 햇빛 아래 장관이었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일이 매우 많기에 모두 저녁 12시 발정념을 하고 나서 진상 표어를 분사하러 나갔으며, 진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고 시골은 오토바이를 타고 갔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저의 자전거에 우담바라가 피어난 것을 보고 기뻐하며, 저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오토바이에도 피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 36송이였고, 사부님께서 격려해 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처음 대면하여 진상을 알릴 때는 서투르고,사람을 골라서 알렸지만, 나중에는 점점 말을 잘하게 되어 어떠한 사람에게나 모두 대담하게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에서부터 시골마을의 장(集)이나 논과 밭, 시내와 정거장,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대법과 사부님께서 저에게 부여해 주신 지혜임을 똑똑히 알고 있으며,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고,제자는 단지 다리를 움직여 뛰어다니고, 입을 움직여 말할 뿐입니다.

2017년 아들이 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아내가 보살펴 주러 갔고, 저도 가을에 일을 모두 끝내고 그 곳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철로 동쪽에 거주했고,기차역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시내에 가서 진상을 알리며 일거리를 찾았고, 둘째 달에 취직을 했습니다. 근무시간이 아침 7시 20분부터 저녁 6시까지로 시간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 사람을 구하려면 기차역 안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연공을 마치면 아이에게 아침을 먹이고, 6시 발정념을 합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7층에서 1층까지 달음박질하여 내려와 골목을 지나 육교를 건넙니다.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요청하고 뭇 신에게 호법을 요청하여 중생이 구도되는 것을 교란하는 기차역 내의 사악한 생명을 깨끗이 제거하고 들어갑니다. 제한된 30분 안에 빨리 말할 수밖에 없지만 매일 3~5명을 탈퇴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차역을 나와서 또 골목 4개를 달려 7시 버스를 타고 출근합니다. 버스 안도 제가 진상을 알리는 장소이며, 승객과 기사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이 노선의 운전기사들은 모두 저를 압니다. 이렇게 연말에 공장에서 휴가가 나올 때까지 꼬박 두 달을 달렸습니다.

어느 날 기차역 대합실에서 오전 진상을 알렸습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둘러싸고 들었습니다. 저는 삼 반(三反), 오 반(五板), 대약진(大躍進), 문화혁명, 6.4에 파룬궁박해와 역사상 단명한 왕조의 폭정(暴政)과 소위 “항미원조(抗美援朝)”를 말했습니다. 한 할아버지는 저를 도와 다른 사람이 말참견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한 노인이 마오(毛)가 좋다고 말하자 할아버지가 얼른 말하셨습니다. “당신 얼른 입을 다물게. 당신 말이 틀려. 이 젊은이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좋은 말을 하네.” 저는 이야기로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그들은 제가 이야기꾼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 말하면서 한편으로 그들을 삼퇴 시켜주었습니다.

이 몇 년 동안 일하는 것 외에 매일 몇 명을 탈퇴시키다가 후에는 몇 십 명씩 탈퇴를 시켰으며, 2017년 연말까지 약 4천 명을 탈퇴 시켰습니다. 정진하는 수련생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반드시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당하게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 수련 성취하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겠습니다.

개인의 체험으로 부족한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시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18년 10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0/27/3722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