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2008년에 대법 수련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저는 모 대형 국영기업의 지급시(地市)계열회사의 책임자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 비친 저는 젊고 유능하며 영화롭고 후하며 앞길이 매우 좋은 전형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2014년 중국공산당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 속에서 저는 납치되었고 불법으로 300일 가까이 수감되었으며 2015년에 불법적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걸어오는 도중에 기율검사위원회, 공안, 검찰원, 법원, 구치소 및 친척과 친구를 막론하고 절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안타깝다’와 ‘이해불가’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일반적인 밥통이 아닌 ‘황금밥통’이었습니다.
동년배와 비교해 볼 때 저는 줄곧 성격이 비교적 평범하고 유순했습니다. 수련하기 전에 저는 늘 ‘모든 것이 가장 좋은 배치이다’고 믿었으므로 비교적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랐습니다. 수련에 걸어 들어오고 나서는 이 이치를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속인들의 눈에는 수감된 것이 개인으로 놓고 말하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이지만 한 수련인으로서 저는 정말 그리 심각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압력은 결국 가서 직면해야 하고 우리는 필경 한 사람으로서 여전히 수련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이 바로 하나의‘실과 득’의 문제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연공인(煉功人)은 실과 득을 어떻게 대하는가? 이는 속인과 다르다.속인이 얻으려 하는 것은 개인의 이익이며, 어떻게 잘살고 편안히 지내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연공인은 오히려 이런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서, 우리는 속인이 얻으려 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얻는 것은 속인이 얻으려고 해도 얻지 못하는 것으로서, 오직 수련으로만 얻을 수 있다.”[1]
여러분들이 주의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에서 이야기하신 것은 ‘실과 득’이지만, 속인들이 입으로 자주 말하는 것은 ‘득실’인데 같아 보이지만 하나는 앞에 있고 하나는 뒤에 있으므로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동시에 이 또한 깨달음의 문제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리키는 진정한 깨달음은 바로 우리가 연공(煉功)과정 중 사부가 말한 법(法), 도가의 사부가 말한 도(道)에서, 수련과정 중 자신이 마주친 마난(魔難)에서 자신을 수련인이라고 깨달을 수 있는가 없는가, 이해할 수 있는가 없는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 수련과정 중에서 이 법에 따라 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1]
저는 집에 돌아온 후부터 저를 만났던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한 가지 체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처럼 큰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여전히 이처럼 좋은 정신상태가 있게 될 줄은 생각지 못한 것이며 이것 역시 그들이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점입니다. 대법 수련을 통해 우리는 이미 인류역사상의 일체가 모두 오늘의 정법을 위해 문화와 기초를 다져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사를 되짚어 얼마나 많은 대중을 위해 몸 바치는 사람들이 도의강상(道義綱常)과 정의 및 양심을 위해 고난을 두루 다 겪으면서 더 나아가서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지 조사해보면 이런 사례는 역사에 끊임없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비교해보면 이 가장 휘황하고 성스러우며 위대한 우주의 정법시기에 우리가 감당하는 그 조그마한 고난과 마난(魔難)은 정말 너무 작고도 작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우연한 기회에 수련생 집에서 다른 한 수련생을 만났고 이것은 우리가 두 번째로 만난 것입니다. 그녀는 저의 일에 대해 한 마디만 했습니다. “보아하니,사부님께서 이건 진심으로 당신을 수련 성취시키려는 거네요!” 물론,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구세력이 어떠한 핑계로도 박해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은 이미 일어났고 사부님께도 ‘장계취계(將計就計)’의 법리가 있습니다. “어떤 구체적인 일들에 부딪혔든지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준 적이 있는데,그것은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무리 큰 마난(魔難)으로,아무리 큰 고통으로 여기든지 간에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마난 중에서 업력을 없애버릴 수 있고, 마난 중에서 사람 마음을 제거할 수 있으며,마난 중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하여 올라오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법리는 저의 이번 난관 속에서 모두 가장 충분하게 펼쳐 보였습니다.
한 방면으로는 명리정(名利情)을 내려놓고 심성을 제고하는 것에서 표현되었습니다. 저는 줄곧‘명’에 대해 매우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책임자였을 때 저는 종래로 부하직원이 저의 가방을 들어주지 못하게 했고 운전기사가 보안요원에게 알려주는 것을 통해 저에게 문을 열어주지 못하게 했습니다. 청소를 하는 종업원에게도 동등한 신분으로 대하며 경어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하여 비록 단번에 ‘모든 후광을 잃어’버렸어도(주심 재판관의 말) 저는 정말 매우 담담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 공개적으로 대법 수련자의 신분이 공개되었어도 오히려 개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익’상에서 매년 몇 억 원의 수입과 지출의 운용 및 각급 간부의 발탁과 임면에 직면하여 저는 모두 조금도 물들지 않고 공평한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오늘날 중국의 현실적인 환경에서 한 기업의 책임자로서 시장경쟁과 기업의 양성 운영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인 교제와 손님을 접대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큰 뜻을 품고서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으며(懷大志而拘小節)”[3] 본인은 이 방면에서 줄곧 충분히 잘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좋아졌으며 한 톨의 쌀알마저 없게 되었으며 이 방면에서 다시 덕(德)을 잃고 업(業)을 짓는 것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의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을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저를 곤란하게 했던 하나의 큰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명(名)이나 이익과 비교하여 이번 난관에서 저는 ‘정(情)’방면에서 저촉된 것이 가장 깊었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항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의(情誼)를 중시하며 누구에게나 모두 선의로 이해하고 교제를 해왔습니다. 한 친척은 저를“이 세상에 나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구나.”고 형용했습니다. 그리하여 수련하기 전과 수련한 이후를 막론하고 저는 모두 적지 않은 사람들을 도와주었고 모두와 매우 잘 어울렸으며 관계가 모두 괜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변고를 겪고 집으로 돌아온 후 저와 소통하는 사람은 손꼽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제가 줄곧 관심을 기울이며 도와주었고 여러모로 애를 써주었던 일부 사람들은 설을 쇨 때 문자 한 통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 번 겪어보고 저는 지금의 사람들이 정말 안 되며 남과 잘 어울려 살아가면서 오직 이익만을 위하고 도의를 따지지 않으며 사람을 구하기가 정말 매우 어렵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동시에 저도 인간의 정은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저는 아무런 상실감과 실망이 없었습니다. 중생은 쓰라린 맛과 환상에 미혹되지만 불쌍히 여길 때에도 초지일관으로 뜻을 세우고 변함이 없었습니다. 똑똑히 보았고 사람들 속의 정을 담담히 보니 오히려 홀가분하고 산뜻하며 즐거운 느낌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 아마도 이런 느낌일 것입니다.
다른 한 방면은 법 공부와 연공에서 표현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업무적인 원인으로 법 공부는 대부분 기본적으로 매일 마다 한 강의씩 혼자서 보거나 또는 법을 읽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두 강의를 공부했고 특히 2016년 5월부터는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시작할 때에 매일 마다 두 세 페이지씩 외우다가 점차 대여섯 페이지에 이르렀고 지금은 매일 마다 열 페이지 정도씩 외울 뿐만 아니라 이미 여섯 번 외웠습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을 읽고 마음을 기울여 법을 외운 그동안의 시간을 통해 자주 새로운 깨달음과 새로운 수확이 나타난 느낌이 있었습니다.
연공에서는 더욱 분명해졌습니다.이렇게 오랜 시간 수련하면서 줄곧 온가부좌를 할 수 없어 매우 괴로웠습니다. 구치소에 있던 그 시간 속에서 두 다리는 온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상태가 좋을 때는 이미 비교적 가볍게 1시간을 돌파할 수 있으며 이는 저에게 있어 거의 상상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 한 차례의 난관을 걸어 지나왔고 몸과 마음의 변화를 얻고 제고함과 동시에 더욱 체득하고 은혜에 감사한 것은 사부님의 홍대하신 자비이며 제자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고르게 일체를 안배해주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실제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저는 이전에 동공(動功)을 할 때에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제외하고 별다른 느낌이 없었습니다. 납치되었던 초기에 저는 168시간 동안 전담자 독립적인 감시에 의해 수감되었습니다. 한 번은 유일한 한 번이기도 한데, 제가 동공을 연마하면서 제4장 공법 ‘파룬쩌우톈파(法輪周天法)’를 연마할 때 매우 분명하게 강렬한 기류가 양손의 동작을 따라 몸 주변에 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상태는 그 이후에 다시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또 한 번은 구치소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사악은 매우 창궐하여 연공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연공은 그 몸이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1] 동작을 못하게 하자 저는 곧 의념으로 다른 공간의 그 몸체가 빠오룬(抱輪)을 하는 것을 상상했습니다. 한 번은 터우첸빠오룬(頭前抱輪)을 생각하자마자 양 손은 자동적으로 들어 올려 졌으며 마치 하나의 바퀴가 밀어 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 느낌은 그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매번 빠오룬(抱輪)을 할 때마다 모두 여전히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가 가장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고 가장 시달리고 있을 때 저를 격려해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확실히 그랬으며 이 두 차례의 신기한 경험은 저에게 크나큰 격려를 주어 저로 하여금 정념정행(正念正行)으로 마굴(魔窟)을 벗어나는 결심을 확고히 하게 했습니다.
또 한 가지 일을 이야기하면 다소 신비한 감이 있습니다. 제가 단독으로 수감되어 있을 때 방 안에는 한 권의 잡지가 있었고 아마도 관리자가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 한 편의 문장 제목이 마침 ‘일체는 모두 가장 좋은 배치이다’였으며 안의 내용은 거의 완전히 저의 경우를 겨냥하여 쓴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를 점화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것이라고 인식했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마굴에서 벗어난 후 한 친구와 그동안에 겪은 일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며칠 후 이 친구는 저에게 이 문장의 작가가 쓴 두 권의 책을 보내주었습니다. 한 권의 책의 제목이 바로 ‘일체는 모두 가장 좋은 배치이다’이고, 두 번째 책의 제목은 ‘시간이 일체를 증명하게 될 것이다’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불법 법정 심문을 받으면서 마지막으로 진술 할 때 말했던 마지막 한마디가 “시간이 최종적으로 일체를 증명하게 될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였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너무 신기합니다! 저는 매 진수(真修)하는 대법제자마다 몸 또는 마음속으로 모두 이런 종류의 ‘신적(神蹟)’을 느꼈을 것이라고 믿으며, 사부님께서는 정말 시시각각 모두 우리의 곁에 계십니다!
시간은 2017년으로 접어들어 사부님께서 정법하신지 25년이 되었으며 대법제자가 반박해를 하며 중생을 구도한 18년이 되는 해입니다. 자신이 줄곧 온가부좌를 하지 못하여 괴로워 할 때 사부님께서 제가 반드시 할 수 있다고 저를 점화해주시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온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되던 그 날, 이 일도 결속되려 합니다.오늘 날 우주 천상이든지 아니면 인간 세상사로 보든지를 막론하고 이 일체는 모두 이미 종결 단계에 가까워졌습니다. 설을 쇤 후 또 체계적으로 사부님의 각지설법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사부님께서 2004년부터 줄곧 최후의 길을 잘 걸으라고 강조하신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장편의 문장을 써내어 정법시간의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원래의 배치대로라면 저는 근본적으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의 이 행렬 속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갑자기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최근에 발표하신 몇 편의 경문에서 모두 법 공부와 연공 이 기본적인 문제를 강조하셨고 사실상 우리 많은 대법제자들이 모두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며 모두 여전히 너무 많은 사람의 마음과 집착을 갖고 있음을 표명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정법의 과정이 재차 연속되는 하나의 주요한 원인일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천지는 정법(正法)의 길을 막지 못하는데 다만 제자들의 사람마음이 가로막고 있네”[5] 우리 매 사람마다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런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사실 간단합니다. 바로 시간에 대한 집착과 자신이 서약을 완성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집착 그리고 자신이 원만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집착을 내려놓고 착실하게 열심히 세 가지 일을 잘 하면 일체가 모두 그 속에 있게 됩니다.
신사신법하고 정념정행하면 일체는 모두 가장 좋은 배치입니다! 우리 함께 공동으로 정진하여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도록 합시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李洪志)사부님 경문: ‘각 지역 설법8-2008년 뉴욕법회설법’
[3]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성자(聖者)’
[4]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5]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시사: ‘번거로움(麻煩)’
원문발표: 2018년 9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9/29/3735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