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수련생들이 병업 가상에 대한 많은 체험을 나누어 나에게도 매우 큰 계발을 주었다. 나도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써 수련생들과 서로 격려하려 한다. 글에서 법에 대한 인식이 똑똑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우리 공동으로 정진해 마지막 길을 잘 걷길 바란다.
한 번은 내가 ‘전법륜’ 제7강의 ‘병원 치료와 기공 치료’를 볼 때 “조조는 듣자마자 화타가 그의 머리를 자르려 한다고 생각해”를 읽었을 때 갑자기 ‘이것은 그 종양이 말한 것’이라는 일념이 들었다. 나는 놀랐으며 문 하나가 열리는 것 같았고 끝없는 법리의 한 층의 내포를 깨달은 것 같았다. 이 종양은 빚을 받으러 온 음성 영체인 것이다. 그것이 성공적으로 빚을 받기 위해 화타가 그를 위해 두개골을 열고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려고 조조 머리에 일념을 반영한 것이다. ‘그가 너의 머리를 자르려 한다.’ 조조는 속인인지라 이 일념이 진정한 본인의 사상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이 영체에게 통제된 것이다. 그래서 조조는 화타가 그를 죽이려는 줄 알고 화타를 감옥에 가뒀다. 마지막이 이 영체는 목숨을 앗아가는 데 성공했다.
관건 시각에 조조는 왜 주이스(主意識)가 똑똑하지 못하고 영체에게 좌우지됐는가? 사람은 매우 약하다. 사람의 의심, 두려움, 경계심, 잘난 체 하는 등 많은 사람마음은 모두 자신의 주왠선(主元神)을 매몰하는 것이고 아울러 영체에게 생존할 수 있는 업력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 수련인으로 말하면 병은 표면 가상일뿐이다. 실질은 업력과 집착심 등 부정적인 요소가 초래한 것이다. 구세력도 바로 이 점을 이용해 파괴적인 시련을 주기 때문에 이때 구세력의 안배를 승인하지 않고 반드시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을 걸어야 한다. 발정념만 해서는 안 된다. 집착심을 닦아버리고 업력장을 제거하며 법에서 제고해야 한다. 나의 층차에서 병업에 대한 이해를 말해보겠다.
1. 병업 가상을 똑똑히 알고 가상의 교란에 흔들리지 말자
수련자는 우리에게 병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병은 조기 법을 얻을 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다 제거해주셨다. 병이 없는 몸이어야 진정하게 수련할 수 있고 공이 나올 수 있다. 지금 이 병업은 가상이고 실질은 심성 문제다. 빚이 있기에 해결해야 하고 심성을 제고하며 사악을 제거할 때이다. 하지만 이때 이 영체는 구세력의 조종 하에 우리의 관념을 이용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사람마음이 올라오게 하고 갖은 방법으로 우리를 교란하고 두려워하게 하며 의심하고 억울해하고 원망하게 하며 당신에게 정념이 없게 만들고 대법에 대한 마음이 흔들리게 해 마지막에 사람 방법으로 대응하게 한다.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명석해야 한다. 절대 쉽게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 되고 영체가 좌우지하게 해서는 안 되며 구세력이 목적을 이루게 해서는 안 된다.
2. 병업을 가볍게 보고 작게 보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알려주셨다. “여래불(如來佛) 손 안의 그 사발이 이렇게 한번 비추기만 하면, 당신이 볼 때 손오공이 그렇게 크지만 단번에 조그마한 점으로 변해버린다. 이 공능은 이런 한 가지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영체(靈體)가 얼마나 크든지, 영체가 얼마나 작든지, 단번에 쳐서 손에 잡아 쥐면 곧 아주 작게 변해버린다.”[1] 사부님께서 이 법보를 이미 우리에게 하사하셨기에 우리는 사용해야 한다. 속인은 병고 중에 다른 사람의 이해와 안위를 받기 위해 무의식중에 병세를 과장해서 말한다. 속인은 관심과 따뜻함을 추구하지만 우리 수련자는 이런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그것을 중히 보고 그것을 강화하면 그것은 점점 강대해지고 당신은 점점 작아진다.
한 번은 난을 작게 만들려고 내가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외웠는데 이런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큰 사발이 필요한데?” 나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지만 정념이 단번에 올라와 그 난이 많이 작아진 것 같았다. 사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구세력은 이 난을 이용해 우리를 망치려 한다. 우리는 장계취계해 그것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평소 많이 숨어 있는 집착, 관념을 인식하지 못했는데 지금 그것이 교란하러 왔으니 마침 그것을 폭로할 때다! 스스로 열심히 안으로 찾으면 사부님께서도 우리를 점화해주시고 수련생들도 도와서 귀띔해주기에 그것을 잡고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3. 정법 수련의 기점에서 안으로 찾아야 한다
안으로 찾는 것은 사존께서 우리에게 하사한 법보이고 생명이 갱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안으로 찾는 것은 엄숙한 것이다. 고난을 벗어나고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우리는 개인 수련이나 자신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법시기 대법제자이기에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서 생활 속에서, 직장의 여러 가지 면에서 모두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할 요소가 있다. 왜 대법에 확고한 정념이 있어야 하는가? 왜 안으로 찾는 것을 잘해야 하는가? 우주 중의 무수한 생명이 다 대법제자의 일사일념, 일거일동을 주시해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하고 바르게 하면 대법을 똑똑하게 인식하지 않은 생명이 감탄하고 평형을 이룰 것이고, 우리를 지나가게 할 것이며, 그것이 비로소 긍정적으로 대법을 대해 구도받을 수 있다. 때문에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안으로 찾는 것은 대법과 중생 구도의 사명을 실증하는 것이고 더 엄숙하고 신성해 보이는 것이다.
4. 정체 제고, 정체 승화
한 대법제자에게 큰 병업 교란이 나타난 것은 절대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는 정체(整體)이기에 관련된 수련생들도 안으로 찾아야 한다. 수련생을 돕는 것이 바로 자신을 돕는 것이다. 수련생의 병업 문제를 대할 때 본인의 부족함이 폭로되어 나올 수 있다. 본인에게도 수련생의 집착이 많이 있지만 매우 깊게 숨어있을 수 있기에 우리가 수련생을 책임지는 것은 본인을 책임지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의 문을 열고 간격을 제거하며 병업 수련생과 손을 잡고 함께 전진해 하나의 확고한 정체를 이루어야 한다. 악이 파고들 틈이 없으면 마찬가지로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요소가 그 안에 있다.
병업 문제에 아직 많은 알 수 없는 요소가 있고 구세력의 더 은밀한 안배와 교란이 있지만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1]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의 요구에 따라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잘 하고 집착과 원망이 없이 자신을 사부님께 맡기면 결과가 어떠하든지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결정해주실 것이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대법의 내포는 무한하다. 수련생 여러분께서 법을 스승으로 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10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0/1/3751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