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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하고 깊은 곳에서 자신을 수련하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신위(新宇)

[밍후이왕] 나는 23년을 수련한 대법제자(大法弟子)이다. 금년에 65세이고 퇴직한 기계공정사이다. 지금까지의 착실한 수련과정에서 스스로 쟁투심, 질투심, 조급한 마음, 불평하는 마음을 닦아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일부 작은 일에서 아직도 매우 강렬하게 표현되는 것을 발견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작은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라. 사악이 틈을 탈 것인데, 많은 수련생은 작은 일 때문에 심지어 가버렸다. 정말로 아주 작은 일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수련은 엄숙한 것이고, 누락이 없는 것인데, 당신이 그런 일을 장기간 닦아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작지만, 당신이 장기간 중시하지 않았기에 곧 문제가 되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때문에 갔다.”[1]

이 단락의 법은 여러 번 배웠지만 중시하지 않았고 생활과 가정 속에서 매우 작은 일은 근본에서부터 진정하게 수련한 적이 없었다.

최근 밍후이왕에서 본 수련생의 문장은 나에게 큰 계발을 주었다. 생각이 나오자마자 그것을 붙잡고 법으로 가늠하여 좋지 않은 것은 제거하고 멸해버린다. 매 하나의 생각, 매 하나의 마음, 일언, 일행, 일거, 일동, 그중에 미세한 일을 포함하여 모두 중시하고 해보았다. 효과가 매우 좋았다. 미세한 일의 배후에 매우 큰 집착이 은폐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작은 일은 생활에서, 가정에서 자주 발생한다. 당시에 알아차리지 못했고, 나중에 알아차렸을 때에도 자신을 반성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그 당시 알아차렸어도 집착을 깊이 찾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 자질구레한 일, 작은 일은 자주 일어난다는 이유였는데,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지나쳐 버렸으며 정말로 중시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어떤 때 딸이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면 내가 바쁘지 않은지 힘들지 않은지 전혀 생각지 않고 바로 샤워를 한다. 내가 한창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는데, 주방과 화장실 모두 태양광에너지로 데운 물을 쓰기에 배관이 통해있었다. 그래서 내가 야채를 씻느라고 물을 틀면 화장실은 찬물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 나는 물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식사 준비가 쉽지 않았다.

나는 밥을 하면서 생각한다. ‘네 자식을 봐주고 밥을 해주고 장을 보고 빨래를 하고 집안일을 해주는데, 너는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니니? 자기만 챙기고 나를 보모로 여기고 있잖아.’ 속으로 화가 났고 불만스러웠다. 사부님의 법이 즉시 머릿속에 들어 왔다.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2]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3]

‘나는 수련인이다. 이 일에 부딪혔는데 좋은 일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내가 마음에서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것을 보시고 딸의 이러한 표현으로 나에게 평형 되지 못한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을 닦아 버리고 제고하게 하신 것이다. 나의 마음은 즉시 조용해졌고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짚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무슨 마음인지 더 깊이 찾지도 않고 지나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3]

내가 방금 볶음 반찬을 두 가지 해놓자 딸이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그 평형 되지 않아하는 마음이 ‘훅’ 치솟았다. 반찬을 볶으면서 생각했다. ‘돌아오자마자 샤워하고 샤워를 다하니까 바로 밥을 먹는데, 어른도 전혀 생각지 않고 자기 아이도 상관하지 않고 자기만 챙기다니.’ 마음속에 분노가 들끓었다. 바꿔 다시 생각하니 수련인은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생명이며 眞(쩐)·善(싼)·忍(런)을 수련한다. 나는 마땅히 딸에게 잘하고 배려해줘야 한다. 즉시 마음이 조용해졌다.

저녁을 먹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 공부를 했다. 우선 ‘정진요지’를 배웠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각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幻)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4] 이 경문으로 자신을 대조하고 깨닫게 됐다. ‘경지(境界)’라는 이 잣대로 자신을 가늠하고 나의 모든 언행을 가늠하고 나는 어떻게 수련한 것인지를 법으로 가늠하였다.

법 공부를 통해 깨달았다. 이기적이고, 화를 내고 스스로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원망하는 마음이고 질투하는 마음이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방면에서는 좀 부족하더라도 조그마한 것은 대업왕생 하여 다시 수련하는, 그것은 될 수 있지만,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고는 절대 안 된다.”[3] 이 질투심은 수련의 길에서 극복이 힘든 장애였다. 나는 그것을 제거해 버리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때 집안일을 할 때도 불평하는 심리가 나타나는데 나는 곧 사부님의 설법을 외운다. “속인의 고락 생각하지 않음이 수련자요 세상득실 집착하지 않음이 나한이로다.”[5]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의 화내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을 청리(清理)했다. 자신의 심성경지도 끊임없이 제고됐다.

이러한 작은 일을 한동안 잘 수련하면 한동안 지나 다시 반복해서 나타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극히 간고(艱苦)하고 매우 엄숙한 것으로서, 당신이 조금이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떨어질 수 있으며 하루아침에 망치게 되므로,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3]

사부님의 법은 나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었다. 수련인은 반드시 수련인의 표준으로 문제를 보아야지 속인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해야지 모호해서는 안 된다. 나는 수련의 엄숙함을 깨달았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을 찾았다. 이는 무슨 마음인가? 이번에는 절대로 그것이 도망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는 안을 향해 찾았다. ‘네가 나를 보모로 생각한다.’ 이것은 원망하는 마음이다. 원망하는 마음 뒤에는 또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또 깊이 생각해 보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밥을 먹고, 장을 보고, 가사를 꾸리는 것 모두 나 혼자 하고 나의 시간을 점용해 나의 수련에 영향 준다. 마음이 평형 되지 않는데, 이는 질투심이다.

계속 찾았다. 일상생활에 속으로 늘 딸이 눈에 거슬렸다. 어떤 때는 딸과 옳고 그름을 따지기도 했다. 한 수련인으로서 속인과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고 우열을 다툴 수 없다. 속인과 혼동해서는 안 되는데 이것은 쟁투심이다.

어떤 때는 딸을 깔보기도 하면서 생각한다. ‘속이 저렇게 좁으니까 누가 조금만 이익을 건드려도 바로 크게 화내는 일이 잦지.’ 그러다 다시 생각해보니 딸은 바로 나의 거울이었다. 사부님께서 딸의 표현을 이용하시어 반대로 나 자신을 수련하게 하신 것인데, 나는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딸을 눈에 거슬려 했다. ‘아! 사부님, 제자의 오성(悟性)이 너무 형편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고 대범하지 못해 다른 사람이 지적하지 못하게 하고 지적만 하면 화를 내고 성질을 부렸던 것이다. 이는 선(善)하지 않은 것으로 악(惡)이며 독선적인 마음인 것이다.

그리고 딸이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고 아이를 상관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는데 이는 원망하는 마음이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증오함 역시 정이요”[3] 정은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으로서 그것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

일상의 수련 중에서 부주의로 놓친 제고의 기회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으로 세월이 쌓여서 형성된 다양한 형식의 원한이다. 불평(抱怨), 원망(怨恨), 불만(不滿), 분함(氣恨), 불공정(不公), 불공평(不平), 깔보고(看不起), 뒷담화 하는 등이 포함된다. 누가 눈에 거슬리고, 어떤 일이 마음에 들지 않고, 투덜거리는 등은 모두 질투심에서 나온 것이다. 까놓고 말하면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으로서 ‘가짜 나’, ‘사적(私的)’인 것이다.

‘사(私)’는 구(舊)우주의 특성으로서 구우주의 법리 속에서 장기간에 형성된 이러한 후천적인 사유와 관념이 형성한 가짜 나(假我)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대법과 대법제자의 정념에 부합되지 않는 일체 것들은 모두 구세력이 참여하여 조성한 것으로, 자신의 바르지 않은 일체 요소를 포함하는데, 이것이 바로 왜 내가 발정념을 대법제자의 세 가지 큰 일 중의 하나로 했는가 하는 이유이다.”[6]

우리는 그것들을 가지지 않는다.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전반(全盤) 부정하고 제거한다. 구세력 자체마저도. 사부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면 우리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이래야만 사부님의 요구에 부합되고 眞(쩐)·善(싼)·忍(런)에 동화되어 신(新)우주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나는 결가부좌를 하고 입장(立掌) 발정념을 하여 깨끗이 청리했다. 구세력의 일체 배치와 고험(考驗, 시험)을 전반적으로 부정하고 미시적(微觀)인 데서 거시적(洪觀)인 것에 이르기까지 층층의 우주, 모든 공간을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빠뜨리는 것이 없이. 法正乾坤,邪惡全滅(Fǎ zhèng qiánkūn, xié’è quánmiè). 정념을 하면서 그러한 구 우주의 관념, 사람마음, 질투, 불평, 원망 등 집착이 자신과 점점 멀어졌다. 이때 나의 신체가 다른 공간에서 끊임없이 확대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공간장에 자비롭고 상화로움이 가득했다. 사심이 없고, 남을 위하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상화로우며 선의의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우주공간은 본래 선량한 것이다.”[3]를 깨달았다. 나는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대법에 감사드린다.

바로 우리가 대법을 수련했기에 감당할 능력이 커지고 흉금이 넓어졌으며 입장을 바꾸어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할 수 있으며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자신이 대법을 수련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대법에 감사드린다!

지금까지 가장 깊게 느낀 것은 사존의 호탕(浩蕩)하신 불은(佛恩)과 자비로운 보호이다. 매 걸음마다 사부님의 심혈과 보호가 있다. 사존을 따라 오늘까지 올 수 있음에, 지고 무상한 사부님께 대한 감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주셨다!

사존께서 거대한 지불로 우리를 위해 연장해 오신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세인들이 모두 대법의 진상을 알 수 있기 바라고 인연 있는 사람은 모두 보서(寶書)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우주의 특성에 동화하여 자신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해 주기 바란다. 더욱 많은 인연 있는 사람들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라는 것을 알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苦其心誌(마음고생)’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지(境界)’
[5]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跳出三界(삼계를 벗어나다)’
[6] 리훙쯔 사부님 경문: ‘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

 

원문발표: 2018년 9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9/16/3738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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