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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 엘리트가 구사일생한 이야기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지금은 과학기술, 의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복지도 좋으며 운동법도 다양하지만 많은 질병 앞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어찌할 방법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병마의 고통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특히 빈곤 때문에 치료하지 못해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여전히 매우 많다.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는 각자의 운명이 있고 현실사회에서 속인도 백세까지 살거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일이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명산대천에서 수련하는 사람도 수백 살, 심지어 수천 살까지 사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확실히 사실이지만 손꼽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적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이라고도 함)는 질병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보통 기공이 아니다. 파룬따파는 진정한 성명쌍수의 불가(佛家) 수련 대법이다. 우주 특성 ‘진선인(眞善忍)’ 법리를 지도로 하고 간단하고 우아한 5가지 연공동작이 있다. 수련자는 건강해지고 도덕성이 향상되며 지혜가 열리고 인생과 우주의 오묘한 비밀을 통찰할 수 있는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파룬따파는 신주(神州) 대지에 널리 전해졌다. ‘진선인(眞善忍)’ 법리는 1억 명의 수련자를 심신의 정화, 도덕성이 향상되게 했다. 1995년 3월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은 초청을 받고 프랑스에 가셔서 공을 전하고 설법하셔서 파룬따파는 해외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지금 파룬따파는 이미 세계 1백여 개 나라와 지역에 널리 전해졌다.

파룬궁은 질병을 제거하고 몸이 건강해지는 방면에서 보편적으로 신기한 효과가 있다. 일찍이 1998년 중국대륙 의학계는 이 때문에 5차례 의학조사를 했다. 그 후 북미 및 대만의학 종사자도 관련된 건강 조사를 했다. 결국 파룬궁수련자의 질병을 제거하고 몸이 건강해진 총 유효율이 98%에 달했다.

밍후이왕 등 매체 보도의 무수한 사례도 이 점을 실증했다. 파룬따파는 질병을 제거하고 건강해지는 특효가 있을 뿐만 아니라 속인이 볼 때 불가사의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국내외 1억의 수련자 단체에 수두룩하다.

그 중에는 수많은 스타, 유명인이 고질병이나 난치병에 걸렸지만 각종 인연으로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심신의 건강을 얻은 사실이 있다. 지면 관계로 여기에서 이 부류 전형적인 이야기를 일부 선택해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증명하겠다.

1. 수영계 올림픽 스타 황샤오민이 겪은 인생의 거대한 변화

황샤오민은 1970년 4월에 둥베이 허청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0살 되던 해 그녀는 체육 수업을 받을 때 코치 선택으로 수영을 배우게 됐고 12살 때 국가 합동 훈련 팀에 뽑혔다. 그 후 그녀는 매일 물에서 7,8시간 수영을 하여 1만5천 미터 혹은 더 많은 수영 훈련을 했다. 매일 과부하 기계식 훈련이 그녀 생활의 전부였다.

1986년 17살밖에 되지 않은 황샤오민은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100미터 평영에서 금메달을 따 아시아 여자 평영 제1인자가 됐다. 그 후 그녀는 또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2개를 따고 서울 올림픽에서 중국 팀에 은메달 한 개를 보탰다. 1986년에서 1990년까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11개를 땄고 1987년에 ‘아시아 10명의 우수 선수’ 칭호를 받아 중국 수영계의 ‘다섯 떨기 금화(金花)’ 중의 한 떨기로 됐으며 ‘평영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많은 사람은 황샤오민이 세계 수영계에서 이룬 찬란한 성적만 보았다. 그러나 그 찬란한 성적은 그녀에게 끝없는 슬픔과 고난을 가져다주었다. 메달을 받기 전 8년 동안 그녀는 이렇게 지내왔다.

인생은 덧없고 희로애락과 만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누구나 예외가 아니다. 중국 전 국가대표팀 수영선수, 수영계 스타이며 광범위하게 주목 받던 ‘여성 평영왕’도 그 속에 있다.

1994년 장기간 훈련을 강화해 훈련 중에서 늘 관절과 근육이 부상을 입고 근육 또는 근섬유가 급격히 수축돼 끊어짐이나 관절 어긋남이 나타났다. 그녀는 평영 선수다. 이 때문에 그녀에게는 심한 허리디스크 증상이 나타났고 과로가 제때에 회복되기 어려워 심장에 늘 문제가 발생해 심계 항진이 나타났다. 하지만 큰 시합이 있으면 그녀는 약물로 강제로 치료하면서 시합에 참가했다.

그녀에게 류머티즘, 부정맥 등 질병이 나타났고 반신불수 위험에 처했다. 이름 있는 병원 여러 곳에 찾아가 보았지만 모든 명의와 명약은 그녀의 부상을 치료할 수 없었다. 류머티즘에 시달려 그녀 무릎 이하는 반응이 없었고 신체적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본인이 반신불수 위험에 처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 그녀는 23세에 일찍이 선수에서 은퇴했다.

스포츠 계에서 물러난 후에도 그녀의 건강은 점점 나빠졌다. 매번 허리 통증이 발작하면 침대에 보름 좌우 누워있어야 했다. 반듯하게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힘들어졌으며 몸을 뒤집어 옆으로 누울 힘이 없어 부모가 머리와 발을 움직여주면서 도와주었다. 늘 7,8시에 일어난 후 8,9시에는 목을 곧바로 들 수 없었다. 그것은 전신마비의 조짐이었다. 장기간 미열이 있었고 심박동이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 심계 항진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목을 움직일 수 없어 늘어뜨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 때문에 그녀를 안고 울면서 말했다. “얘, 너 고작 20살밖에 안 되는데 50,60살 되는 사람 같구나.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거니! 너에게 뜻하지 않은 변고가 있으면 나도 살지 않을 거다.” 그녀와 어머니는 고통에 시달렸다. 황샤오민은 절망해 죽을 생각도 했다.

치료를 위해 곳곳에 다니면서 진찰을 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허리, 심장 기능을 검사했는데 모든 것이 정상이어서 현대 의학은 그녀 병에 속수무책이었다.

어떤 방법도 없을 때 그녀는 운 좋게 파룬궁 수련에 들어서 인생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1999년 어느 날 이웃 아주머니가 황샤오민의 몸이 줄곧 낫지 않은 것을 보고 그녀에게 말했다. “샤오민, 얼른 파룬궁을 연마해. 파룬궁만이 너를 살릴 수 있어!” 그때 황샤오민은 “이제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해.” 아주머니 말을 듣고 마치 목숨을 구하는 열쇠를 찾기라도 하듯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 후 황샤오민은 이웃 아주머니를 따라 파룬궁 동작을 배웠다. 7일째 배울 때 푸첸빠오룬을 배울 때 그녀는 손에서 냉기가 훅훅 빠지는 것을 느꼈다. 연공을 다한 후 그녀 신체는 상당히 홀가분해졌고 편안했다. 그녀는 매우 놀랐다. 당시 중국에 많은 기공이 있었지만 믿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녀는 정말 기공이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해지게 하는 신기함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황샤오민은 1년 365일 매일 물에 있어 1년 내내 그렇게 지냈기에 체내에 한기, 습기가 차 있었다는 것을 안다. 손에서 냉기가 나오는 것은 이런 기를 체외로 배출해 신체가 정상으로 되게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황샤오민은 매일 연공하고 파룬궁의 주요 저서 ‘전법륜’을 보았다. 수련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그녀를 괴롭히던 고질병이 전부 사라졌다.

황샤오민은 그녀를 인터뷰한 기자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 겁니다.” “파룬궁이 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고 파룬따파의 신기함을 직접 보았습니다. 인류 모든 언어를 다 써도 대법 사부님에 대한 감격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황샤오민은 한국에 정착한 후 몇 개 대학에서 강사를 전임하고 있다. 수영 지식을 가르치고 일부 아이에게 수영도 가르친다. 그녀는 ‘진선인(眞善忍)’으로 아이들을 교육하여 학생들의 성적이 매우 좋다. 매번 시합에 참가하면 모두 앞 3자리를 차지하고 늘 우승을 한다.

2. 음악 창작 ‘예술가’ 리지밍이 죽음의 위기에서 새 생명을 얻다

리지밍은 우주 항공 본사 310소 녹음 녹화센터에서 음악 창작에 종사했다. 1997년 3월 이전 그는 ‘베이징 가곡 창작 시합’에서 1,2등상을 3번이나 탔다. 또 늘 대형시스템 문예공연 감독을 맡았다. 천성이 낙천적이고 유머가 있어 사회에서나 직장에서 인간관계가 괜찮았고 광범위하게 교제해 집안에 늘 손님과 친구들이 자리에 가득하고 노랫소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모든 사물에는 예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사람의 일은 예측하기 어렵다. 그의 모든 일이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순조로울 때 거대한 재난이 조용히 그를 습격해왔다.

그것은 1997년 봄 어느 아침이었다. 그의 오른손에 모래알만한 물집이 생겼다. 아프지도 않고 가렵지도 않았는데 일주일 후 왼손에도 몇 개 나타났고 며칠 지나 몸의 각 골격이 아프기 시작했으며 두 손으로 물건을 잡기 힘들었다. 또 며칠 지나 손발에 모두 물집이 가득 났고 터지면서 물이 나왔다. 그는 한방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 3개월 동안의 한약을 먹었지만 낫지 않았다. 두 손 손톱, 두 발 발톱이 변형되어 쳐들렸다. 이어서 온몸 골격도 극심하게 아프기 시작했고 손발을 물에 댈 수 없었으며 걸을 수 없었고 스스로 생활할 수도 없었다.

그는 더럭 겁이 났다. 그때 그는 매일 각 큰 병원을 드나들었다. 베이징 셰허, 유이, 톈탄, 해군, 공군 종합병원 전문 명의를 다 찾아 치료받았지만 진단 결론이 없었다.

8월 어느 날 아침, 그가 병원에 갈 때 가장 근심했던 일이 발생했다. 극심한 통증으로 그는 일어설 수 없어 유이 병원에 입원했다. 며칠 사이에 체중이 15kg 이상 줄어들었다. 병의 원인을 찾지 못해 대량의 항생물질과 진통제 등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무엇이 아픔이 뼛속까지 사무친 것인지를 체험했다. 그때 아픔은 마치 칼날 속에서 구르는 것 같았고 온몸 상하 어디나 다 건드릴 수 없었다. 밤이면 대량의 수면제, 진통제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친척 친구들이 그가 아파서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의식이 똑똑하지 않은 것을 보고 심지어 그에게 마약이라도 주어 그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다. 참기 어려운 고통 때문에 그는 죽고 싶었다. 그는 산소 호흡기를 뽑은 적이 있었고 형사경찰대대의 친구의 총을 빌려달라고 간청한 적도 있다. 하지만 죽지 못했다.

이 기간 각 큰 병원의 검사 보고서에 전신 골격 여러 곳에 괴사가 나타났고 병변이 신속해 위험이 조석에 달렸다고 나타났다. 병인을 판명하기 위해 병원 측은 잇따라 두 번 그의 흉골의 어두운 부분에 구멍을 뚫어 천자했다. 세 번째는 끌, 망치로 일부분 흉골을 떼어 내어 생체조직 검사를 했다.

선고를 기다리는 그 때의 40분이 그에게는 백년처럼 길고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결과는 여전히 확진할 수 없었다. 당시 정형외과 모든 의료인을 총동원해 각지에서 자료를 찾고 지원을 구했다. 또 지수이탄병원 원장과 중국에 척추학 학술회의에 참가하러 온 미국 전문가에게도 부탁해 병인을 진찰했다. 마지막에 미국 전문가는 “이런 병을 본 적이 없다.”는 한 마디 말을 했다.

의사들이 아무리 애써도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 그는 75일 입원한 후 ‘다발성 골 괴사’라는 진단서 한 장을 갖고 병원에서 그가 향후 굽은 척추로 골절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유리 가슴보호대를 차고 집으로 돌아갔다. 병원 측의 뜻에 따라 한방병원, 기공, 민간요법, 잡술로 계속 노력했다. 그의 아내는 심지어 난징에 가 3천 위안(한화 48만원)을 들여 작은 병에 들어있는 소위 ‘영단 묘약’을 구해왔다. 이렇게 3개월 견딘 후 돈을 다 쓰고 무슨 방법이든 다 써도 여전히 전혀 낫지 않았다. 모든 생활의 작은 일, 예를 들면 밥을 먹고, 옷 입는 등도 모두 가정부가 돌봐주었다. 폐인이 된 것이다. 철저하게 절망한 그는 무엇이 ‘치명적인 재난’인지 알았다. 그때 장래, 사업, 양부모, 처자, 예전에 그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모든 것이 그에게 생사 사이에서 선택을 할 때 괴로움으로 됐다. 그때 상태는 정말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했고 그날그날 되는대로 살아갔다.

생사존망에 처해 있을 때 파룬따파가 그를 구했다. 1998년 3월 그는 천만다행으로 ‘전법륜’ 책을 얻었다. 책을 들자 한 가닥 난류가 머리에서 발까지 부어 넣어진 것 같았다. 온몸이 따뜻했고 매우 편안했다. 이런 느낌과 책에서 말씀하신 모든 것은 그에게는 그렇게 신기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사색하고 있을 때 이웃 아주머니 일가도 대법을 수련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소개를 듣고 그는 처음으로 ‘갑옷’을 벗었고 사람이 부축하지 않아도 4층에서 걸어 내려와 연공장에 갔다. 놀랍게도 이전에 소파에 기대어 겨우 15분 앉아 있던 그가 첫날 30분 빠오룬을 견지한 것이다. 그는 내심으로부터 매우 격동했고 구사일생한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그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질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매일 열심히 책을 보고 법공부, 연공을 했다. 독학한 기초에서 두 개 법공부 팀에 참가했다. 그가 법공부 할 때 신체 통증도 사라졌다. 심성이 점점 좋아짐과 동시에 신체도 불가사의한 변화가 발생했다. 한 달 넘게 연공했을 때 창백하고 푸르죽죽하던 얼굴색이 희고도 불그레해졌으며 빛이 났다. 잠도 더 달콤하게 잤고 식욕도 크게 늘어 체중이 신속하게 증가했으며 아주 빨리 이전 상태로 회복됐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수련하기 전과 정말 다른 사람 같다고 말했다. 2달 후 그는 가정부를 돌려보내고 본인이 집안일을 했다. 이런 반가운 변화를 보고 친척 친구들의 얼굴에 다시 즐거운 웃음이 피었다. 이전에 피아노를 가르쳤던 학생이 다시 찾아와 집에는 다시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도 흘러나왔다.

수련한 반년 중에 그는 ‘예술가’의 상징이었던 긴 머리를 자르고 술, 담배 등 불량한 습관을 끊어버렸으며 집에 아직 먹지 않은 두 개의 큰 한약과 그 ‘단약’을 버렸다. 그의 신체가 호전되자 아내가 화를 내며 그를 도와 심성을 제고시켰다. 그는 깨닫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던 데에서 속인 이치를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안으로 찾고 전혀 화내고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검토하면서 진정하게 수련인의 참음을 해냈다. 이 모든 변화가 가져다 준 결과는 어머니, 아내와 8살 딸도 모두 잇따라 수련 행렬에 들어선 것이다.

3. 국가 간부 샤오징이 병마의 고해에서 걸어 나와 새 생명을 얻다

샤오징은 학교에서 공부할 때 ‘좋은 학생’이었다. 직장에 다닌 후 국가 간부였고 권력 기관의 지도자 직무에서 일하면서 700여개 업체를 관리했다.

그때 그녀도 세파에 따라 늘 고급 호텔을 드나들고 매일 산해진미를 먹으면서 무절제하게 먹고 마시면서 마음껏 즐겼다. 명절 때 선물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그녀는 권력이 크고 업무 능력이 뛰어나 스스로 공로가 있다고 여기며 교만했고 오만한 기세로 남들을 깔보았다. 목소리가 컸고 입을 열기만 하면 다른 사람을 훈계했다. 다른 사람의 느낌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전부 그녀에게 빚진 것 같았다. 그녀에게 업무상 찾아온 동료를 바른 눈으로 보지 않았고 내키지 않으면 쫓아냈다. 부하 직원이 업무로 찾아오면 문에 들어서기 전에 먼저 문 앞에서 한참 떨다가 들어갈 때가 많았다.

그때 그녀는 목숨을 걸고 일해 성과는 있었지만 어머니로서 그녀는 집안과 아이를 상관하지 않아 남편은 외도를 했다. 그녀는 남편과 손찌검하며 맞서 싸워 가정은 유명무실했고 결국 그녀의 가정과 심신이 다 엉망이 됐다.

1998년 겨울, 그녀는 갑자기 중병에 걸렸다. 그해 그녀는 38살밖에 되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 그녀의 위와 장이 갑자기 썩어 65k였던 체중이 갑자기 45kg밖에 되지 않았다. 무슨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고 의사가 그녀에게 수술을 하려 해도 어디서부터 수술 칼을 대야 할지 몰랐다. 베이징의과대학 3병원은 그녀에게 위궤양, 결장염이라고 진단했다. 입원 기간 그녀는 또 이상한 병에 걸렸다. 증상은 침을 끊임없이 흘리는 것이었는데 주치의는 그들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면서 아마 머리에 병이 생긴 것 같다며 이상한 병이라고 했다.

그녀는 완전히 막연했다. 이것은 그의 가족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퇴원했다. 의사의 각도에서 볼 때 이 사람은 구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후 그녀는 갑자기 길을 걷지 못했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자가 그녀의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재는 것 같았다. 예전에 대단했던 사람이 이 짧은 생을 마치게 될 판이었다. 이런 것을 생각하니 전례 없는 슬픔이 저절로 올라왔다. 그녀는 자신이 인생 중에서 갖고 있던 것을 잃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어머니를 잃게 되고 부모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직장 동료는 남편에게 그녀의 후사를 준비하라고 했다.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유언을 남겼다. 그때 그녀의 아이는 7살밖에 되지 않았다.

죽을 날이 가까운 사람인데도 백발인 시어머니는 그녀를 싫어하지 않고 손에 ‘전법륜’ 책을 들고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자네는 아직 구원 받을 수 있네. 파룬불법(佛法)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임을 자네가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어. 수련해.”

그녀는 중국공산당 체제하에서 교육 받은 소위 ‘좋은 학생’이고 국가 간부이기에 자신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의 모든 사상 기초는 그녀에게 이미 신과 부처님을 멀리하게 했다. 중국공산당 교육은 무신론이다. 천국과 지옥이 없고 인과응보도 없다. 하지만 보응이 그녀 몸에 나타났고 그녀의 짧은 인생에 나타났다. 본인의 이런 안정되지 못한 상황 앞에서 복잡한 심정과 굳어진 관념이 ‘신과 부처님’이라는 글자에 뒤집혔다.

병이 있으니 아무 치료나 시험해보자. 그녀는 파룬궁의 5가지 동작을 배우는 과정에서 신체에 열이 나고 에너지에 둘러싸인 것을 느꼈고 매우 편안했다. 몇 십 년의 무신론 사상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책을 보고 파룬따파를 수련하면서 그녀는 좋은 사람의 진정한 개념을 완전히 알았다. 그것이 바로 도덕성을 향상하는 것이고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처사하는 것이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녀의 모든 병이 다 나았다. 예전의 심장병, 류머티즘 관절염, 췌장염을 포함한 병이 전부 나았다.

당시 그녀가 한 첫 번째 일이 바로 돈을 갚는 것이었다. 빚진 검은 돈을 다 갚았고 모든 기업의 부실채권으로 될 돈을 다 갚았다. 그녀는 예전의 모든 결점을 다 고쳤다. 다시는 화를 내지 않았고 다른 사람과 쟁투하지 않았으며 선물을 받지 않았고 노래방, 술집을 드나들지 않았다. 엄격하게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처사했고 고객을 육친으로 여기고 그들을 위해 근심을 해소하고 어려움을 해결해주니 기뻐한 고객들이 갖은 방법을 다해 각양각색 명목으로 사례금을 주었지만 그녀는 전부 거절했다.

그녀의 변화를 보고 동료들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것 같았다. 어떤 고객은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예전의 샤오징을 찾지 못했다. 어떤 고객은 이때부터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섰다.

샤오징은 중국공산당 체제하의 그런 많은 탐관오리들이 목숨을 걸고 돈을 긁어모으고 먹고 마시며 계집질하고 도박하며 질탕하게 즐기면서 본인을 망가뜨리는 것을 보면서 본인이 얼마나 행운인지 깊이 느꼈다. 그녀는 파룬따파를 수련했기에 파룬따파 사부님께서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고 그녀를 그런 고해에서 구해준 것이다. ‘진선인(眞善忍)’ 고덕 대법이 그녀 예전의 모든 죄악을 씻어주어 그녀는 심신이 건강해지고 이 사회의 진정한 좋은 사람으로 되어 항상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더 좋은 사람으로 된 것이다.

4. 베트남의 최고 심장병 전문가 롼칭타이가 기적처럼 다시 살아나다

롼칭타이는 베트남 호치민시 초라이(Cho Ray) 병원의 심장과 주임이고 베트남의 최고 심장병 전문가다.

롼칭타이는 10살 때 류머티스성 열에 걸렸다. 이런 병은 보기 드물고 열이 났다하면 치명적이다. 이 비밀을 그녀는 60년 간 숨겼다.

그해 베테랑 의사들이 마음을 다해 치료해 그녀의 병을 완치했다고 여겨 가족에게 이후에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증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롼칭타이는 또 폐렴에 감염돼 호흡 곤란으로 계속 약물을 복용해야 했다. 병고의 시달림으로 그녀 얼굴에는 때때로 피곤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온화하고 선량한 성품을 유지했다.

그녀의 생애에서 그녀도 베테랑 의사가 됐고 베트남의 최고 심장병 전문가로 됐다. 칭타이는 그녀 심장병 전문가 동료나 친구에게 본인이 폐렴에 걸린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 번은 갑자기 폐렴이 다시 습격했다. 의사는 그녀에게 다른 선택이 없다면서 반드시 대수술을 하여 심장 판막을 바꾸어야 한다고 했고 이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겉보기에 그녀는 임종할 환자 같지 않았다. 친구들도 이렇게 말했지만 의사는 그녀에게 살려면 반드시 빨리 수술을 준비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수술 후에도 나는 돌아가 출근하길 원해.” 롼칭타이는 속으로 본인이 병고를 견뎌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길 바랐다.

2014년 7월 5일, 말레이시아 국가심장연구소(IJN)에서 베트남에서 온 칭타이가 수술대에 누웠고 주위에는 최고 전문가와 의료진이 있었다. 다년간 칭타이는 아태 심장병학회(APSC) 회원이었다. 수술을 맡은 의사 중에 몇몇은 그녀의 친구였다.

수술 후 이틀이 지나 칭타이는 갑자기 호흡이 어려워졌고 심장이 갑자기 멈췄다. 간호사들은 급히 둘러싸고 그녀 호흡을 회복시키려 노력했다. 이 시각이 진실한 것 같지 않았다. 왜 그녀의 심장이 갑자기 멈춘 거지? 수술한 의사들은 답안이 없었다.

그럴 수 없다! 의사들의 수술은 오차 없이 정확했다. 지금 그들은 심장박동기로 그녀의 심장 박동을 유지했다. 그들은 그녀가 깨어날 수 있길 바랐고 악몽이 끝나길 바랐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

마지막에 의사는 칭타이 가족에게 병실에 들어가게 했다. 그들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수술 전문가들도 전부 다가왔고 간호사들은 자세한 검사와 생명 징후를 검사했다. 딸은 어머니 상황을 보고 목 놓아 통곡하며 “가지 마세요.”라고 외쳤다.

칭타이의 심장은 이미 박동을 멈췄고 맥박도 없었다.

병실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이미 사망했다고 확정했는데 이때 그녀가 갑자기 깨어났다!

깨어났을 때 칭타이는 자신이 딸의 품에 안겨 있고 딸은 울면서 외치는 것을 보았다. “왜? 왜 이러세요? 왜 절 떠나세요?”

그녀는 대답했다. “근심하지 마라. 울긴 왜 울어? 난 별 일 없어.” 그녀는 이미 몇 시간 전에 죽어 친척과 친구들이 비통에 빠진 걸 전혀 몰랐다. 지금 그녀는 또 기적처럼 부활한 것이다. 이후에 빈사 경험을 회고하면서 그녀는 말했다. “저는 선녀 같은 생명을 보았습니다. 흰색 도포를 입고 제 눈앞에서 날아다녔습니다. 정말 불가사의했습니다.”

깨어난 후 이틀 뒤 그녀는 열이 나기 시작했고 연속 4개월 열이 내리지 않았다.

한 친구가 그녀가 이렇게 시달림을 받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중국에서 전해진 공법인 파룬궁을 배워보라고 건의했다. 이 친구는 말했다. “난 2달 연마하고 지금 온몸에 병이 없이 홀가분해. 매우 신기해!”

칭타이가 친구가 그녀에게 준 자료를 펼쳐볼 때 갑자기 12년 전에 타이라는 성을 가진 여박사가 그녀에게 파룬궁을 소개했던 기억이 났다. 당시 타이박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함께 연마해요. 나는 몇 달밖에 연마하지 않았는데 혈소판 감소증, 사지 경상출혈, 월경불순과 비염이 전부 나았습니다.”

그때 칭타이는 배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심장과 의사이기에 전통 수련법보다는 양의학 치료법을 좋아했다.

12년이 지났다. 병에 걸려 침대에 누운 그녀는 수면제 2,3알을 먹어야 잠들 수 있었기에 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칭타이는 매일 4시에 문을 나서 파룬궁 5가지 공법을 연마하러 갔다. 친구도 그녀에게 ‘전법륜’ 책 한 권을 주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전법륜’을 읽기 시작했다. 읽을수록 느낌이 달랐고 심신이 확 트였다.

어느새 그녀는 조금씩 건강을 회복했다. 열이 나고 피로한 증상이 사라졌고 고혈압 병도 나았으며 심장도 건강을 회복해 매일 달고 살던 약물과 작별했다. 파룬궁을 배운 지 2달 후 그녀는 출근하러 나갔다.

사무실에 돌아가던 날 모든 동료는 롼의사에게 무슨 비결이 있는지 알려고 했다. 여성 의사와 환자들은 다 그녀의 기색이 좋다고 부러워했다. 그녀는 더 젊어졌고 더 예뻐졌다. 그녀는 본인의 비결이 바로 파룬궁이라고 말했다.

 

원문발표: 2018년 8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8/26/3729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