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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서 자신을 수련하니 신적(神蹟)이 나타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법을 얻기 전에 나는 속인 중에서 자부심이 강하고 남에게 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었다. 후에 대법을 수련한 후 이 강렬한 자아와 공격적인 개성이 드러났다. 특히 수련생과 협조할 때 간혹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의 느낌을 고려하지 않고 또 감지하지도 못한다. 이것은 나의 수련 중에서 하나의 커다란 장애였다. 최근 수련 중에서 나는 몇 차례 관을 넘고 수련생과 함께 법에서 소통하고 정념으로 문제를 인식했다. 그리고 착실히 수련해 이 방면에서 크게 돌파할 수 있었다.

1. 글 쓸 때 자아를 버리다

한번은 수련생이 나를 도와 법회 원고를 썼다. 그것은 공안, 검찰청, 법원, 사법기관에 가서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청한 것이었다. 수련생은 정리를 다 한 후 나에게 다시 보라고 했다. 제목을 봤는데 나는 이 제목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한 번 훑어보다가 문장 마지막에 내가 민감하게 느끼는 날짜가 있는 것을 보자마자 언짢았다. 이 제목은 너무 과장되었고 날짜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말투가 완전히 명확하고 수련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고려하지 않았다. 수련생은 이것은 법의 위대함을 실증하는 것이라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어쩔 도리가 없게 되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알아서 모두 사실대로 쓰세요.”

문장이 발표된 후 나는 마음이 평온하지 못해 다른 수련생에게 말했다. “이 수련생은 한 글자도 고치지 못하게 했어요. 너무 이기적이에요……” 나는 자신을 찾지 않았다. 나중에 자세히 생각해보니 문장이 발표된 것은 수련생이 문장을 쓴 수준이 표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문장에서 표현한 어조와 심태는 장기간 내게 있던 강렬한 과시심, 잘난 체한 진실한 자화상이 아닌가?

다시 깊이 찾아보았다. 무엇 때문에 과시하고 잘난 체하지? 나 스스로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을 높게 생각했고 내가 한 일이라고 인식했다. 얼마나 강한 자아와 무서운 도둑짓인가.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1]를 잊었다. 모순이 나타나면 심성을 제고하고 집착을 제거하는 좋은 기회라고 보지 않았다. 당시 안으로 찾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더욱이 무조건 안으로 찾는다는 것은 말할 수도 없다. 표면의 옳고 그름에 집착하고 늘 시간이 좀 지나야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위사위아(爲私爲我)한 이런 특성, 이런 것은 우주가 오랜 세월 속에서 당신들이 점차 오염됨에 따른 것이다.” [2]

나는 이전에 수련생이 교류할 때 모순이 생긴 두 수련생 중 한 명이 자신을 찾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 것이 생각난다. “왜 수련생이 나에게 눈총을 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지. 심지어 언제 어디서 그랬는지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어요. 늘 머릿속에서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매일 공부한 사부님의 법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셨던가요? 우리가 이러면 사부님께서 기뻐하시겠어요? 구세력이 보면 제일 기뻐하겠지요.” 이 일은 나에게 인상이 깊었고 감명도 매우 컸다.

2. 수련생의 책망을 마주하고 자아를 버리다

한번은 수련생 집에서 수련생이 비교적 평온하게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이 한 그 일(수련생이 어떻게 공안, 검찰청, 법원, 사법기관에서 진상을 알리는지 교류한 것을 가리킨다)은 모두 법을 어지럽히는 것이에요. 우편으로 보낸 진상편지도 법에 부합하지 않아요.……” 그는 말할수록 격해지고 화가 나서 입술도 떨고 얼굴도 일그러졌다. “당신 집에 가본 이래 당신이 법공부하는 것을 한 번도 못 봤어요.…… 앞으로 영원히 우리 집에 오지 마세요.” 이번에 나는 정말 심성을 지키고늘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그럼 앞으로 법공부를 많이 할게요. 보시기에 제가 합격이라고 생각되는 때가 되면 다시 와도 되겠죠?” “그래도 오지 마세요. 당분간은 오지 마세요.” 사실 나는 늘 집에서 하루에 전법륜(轉法輪)을 여러 강을 본다. 이 수련생은 우리 집에 몇 번 와보지 않았다. 몇 개월에 한 번 왔다. 나는 그의 마음이 평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집에 돌아갔다. 가기 전에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웃었고 어떠한 불만도 없었다.

그러나 한동안 지난 후 수련생과 이 일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도리어 불만을 쏟아냈다. 수련생이 돌아간 후 찾아봤다. 왜 당시에는 참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또 참지 못하는 것일까. 내 심리를 분석해봤다. 당시 나는 진정으로 원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수련생이 보라고 그런 표현을 한 것이었다. 보세요. 이 관, 내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행할 수 있고 참을 수 있다. 법에서 진정으로 자아의 체면을 내려놓고 관을 넘은 것이 아니라면, 가짜 나에게 속은 것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또 ‘본 모습이 남김없이 다 드러난다.’

3. 연공할 때 자아를 버리다

남편은 수련생인데, 그는 수차례 내가 연공할 때 동작이 빠르다고 일깨워주었다. 나는 늘 사부님의 설법을 들어 변명했다. “남의 사소한 일을 늘 주시하지 말면 좋겠어요. 어떻게 조금도 차이가 없겠어요?!”

한번은 남편이 또 말했다. “당신 왜 연공할 때 늘 사부님 구령보다 먼저 하오? 사부님 말씀이 끝난 다음 움직이면 안 되오?” 생각해봤다. 그렇다. 왜 나는 듣지 않는 것인가.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이, 왜 나는 자신의 착오를 직시하지 않을까. 사부님께서는 느슨하게 천천히 둥글게 하라고 하시는데 최근 몇 년간 나는 왜 듣지 않지. 이것은 자아에 집착하는 것이다. 사람 마음을 찾고 나서 결심하고 고쳤다.

다음날 동공을 하면서 참장(站樁) 량처빠오룬(兩側抱輪)을 하는데 나는 강대한 에너지 마당에 둘러싸여 몸이 고정되었다. 상반신은 비고 밝고 후련하고 아주 아름답고 수승했다. 1시간을 하고 내려놓았다. 계속했어도 견지할 수 있는 상태였다. 며칠 뒤 이 연공 동작을 또 이러한 상태에서 1시간을 했다. 지금은 시간만 되면 어느 참장 동작이라도 1시간 동안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때부터 매번 연공을 하면 에너지 마당이 아주 크고 손바닥은 전류가 솨아 하고 흐른다.

4. 자아를 버리니 양미간이 펴지다

주변 수련생이 늘 말한다. 누가 문제를 보면 반드시 서로 일깨워주자. 한번은 수련생이 내게 말했다. “당신은 마음이 늘 벌렁벌렁한 것 같아요. 마땅히 가라앉혀야겠어요.” 그러면서 손으로 떡 벌어진 시늉을 해 보였다.

나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마땅히 닫아야겠다 싶었다. 나는 조용히 앉아 닫는 손시늉을 하고 자세히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일을 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무슨 일이든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늘 여러 사람이 나를 찾고 무슨 일이건 알아보며 물어보게 조장했다. 한동안 나는 매우 바쁜 상태였고 바삐 ‘일하고’ ‘일 때문에 다녔다’. 간혹 미간을 찡그려서, 신변의 수련생이 선의로 “미간을 찌푸리지 마세요. 말투에 주의하세요”라고 일깨워준다. 나는 재빨리 조절한다. 그러나 그 때 뿐이고 좀 지나면 또 미간을 찌푸린다.

원래는 여전히 자아가 방해하는 것이다. 나는 양파처럼 층층이 벗겨내 자신을 끊임없이 깨끗하게 했다. 어느 날 오전 법공부를 하는데, 사부님께서는 또 나에게 장시간 강대한 에너지 마당에 둘러싸여 상반신이 완전히 빈 것을 체험하게 해주셨다. 특히 정수리가 매우 미묘하고 언어로 묘사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몸이 고정되었고 사부님께서 강대한 에너지로 가지(加持)해 주시는 것을 느꼈다. 오후와 저녁에도 그때처럼 미묘했고 연속 며칠 동안 이와 유사한 상태였다.

동시에 찌푸렸던 미간이 단번에 펴졌다. 이전에는 늘 뚜껑이 덮인 것 같았는데 지금은 마치 평판 같고 미간을 찌푸리려 해도 되지 않는다. 원래 양미간이 펴지는 것은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지 연마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주위에도 이러한 수련생이 몇 명 있는 것을 보았다. 늘 미간을 찌푸린다. 나는 마땅히 자신의 체득을 그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5. 자아를 버려 한 개 층면을 돌파하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이 매 층마다 이 한 층의 면을 볼 수 있다면, 그래서 한 개의 점이 아니라 분자 한 층의 면, 원자 한 층의 면, 양성자 한 층의 면, 원자핵 한 층의 면을 보았다면, 당신은 곧 부동(不同)한 공간 중에서 존재하는 형식을 본 것이다. 사람의 신체를 포함한 어떤 물체든 모두 우주공간의 공간 층차와 동시에 존재하고 서로 통한다. 우리 현대물리학은 물질의 미립자를 연구함에 다만 미립자 하나를 연구하는데, 그것을 분석하고 분열시켜, 원자핵이 분열한 후 다시 그것의 핵분열 후의 성분을 연구한다. 만약 이런 계측기가 있어 전개(展開)할 수 있고, 이 한 층차 중의 그것을 볼 때에, 모든 원자 성분 또는 분자 성분이 이 한 층 중에서 전반적으로 체현되는,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곧 이 공간을 돌파했고, 다른 공간이 존재하는 진상(眞相)을 본 것이다. 사람의 신체는 바깥공간과 대응하는데, 그것은 모두 이런 존재 형식이 있다.”[1]

최근 늘 안으로 찾고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고, 다각도에서 은폐된 자아와 이기적인 마음을 파내, 결심하고 그것을 제거했다. 나는 한 층면을 돌파한 느낌이 들었고 사람도 불가사의하게 변했다. 며칠 전 수련생이 사악의 박해로 인해 불법으로 개정을 당했다. 나는 가서 법정 주위로 발정념을 했다. 그 과정은 마치 고정된 것처럼 강대한 에너지 마당에 포위되어 있었다. 나는 이것은 최근 정진해 착실히 수련한 결과이며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하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맺음말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말씀하셨다. “사실 당신들은 아직 모르는데, 이 사(私)는 아주 높은 층차에까지 관통되어 있다. 과거, 수련하는 사람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하겠다.’, ‘나는 무엇을 얻겠다.’, ‘나는 수련하고 있다.’, ‘나는 성불하겠다.’, ‘나는 무엇에 도달해야 하겠다.’고 말하는데 사실 모두 그 사(私)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들이 진정으로 순정(純正)하고, 무사(無私)하여, 진정한 정법정각(正法正覺)으로 원만(圓滿)을 이루는 것인데, 그래야만 비로소 영원한 불멸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 준다.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당신들은 우선 다른 사람들을 고려해야 한다.”[3]

최근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고통으로 자아를 버리는 과정에,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매번 조금 버리면 제자에게 속인을 초월하는 신성한 상태를 체험하게 해주셨다. 법에서 나는 사(私)가 매우 높은 층차까지 관통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층층이 모두 부동한 형식의 자아와 이기적인 마음이 각종 방식으로 표현되어 나온다. 오직 그것을 잡고 끊임없이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고 자신을 순수하게 해야만 사부님과 법의 요구에 점차 도달할 수 있다.

여러 해 동안 사부님을 따라 법을 바로잡으며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신적(神迹)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간 세상의 어떤 언어도 제자의 사부님에 대한 은혜와 경앙, 찬미와 축원을 표현하기란 어렵다! 사부님 은혜의 위대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대법의 수승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사존께 머리를 조아(叩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상은 내가 수련한 약간의 체험이다. 사존께 보고드리고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부당한 곳은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미국동부법회설법’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스위스법회설법’

 

원문발표: 2018년 9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9/19/3740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