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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들과 아이 교육에 대한 몇 가지 문제를 토론 연구하려 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지금 중국대륙의 교육은 혼잡한 현상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공산 악령은 다음 세대를 괴멸하기 위해 학교를 보편적으로 ‘감옥화’하고 있다. 안전을 이유로 학생들의 활동 시간과 공간을 제한하고 있어 아이들은 학교에서 장기간 앉아있어야 하고 움직일 수 없으며 응시 교육으로 학생들의 지혜를 제한하고 있다. 많은 양의 연습 문제로 아이들의 공부 시간을 연장해 보편적으로 심야까지 숙제를 해야 한다. 위챗그룹과 각종 수단으로 아이들의 자존심을 타격하고 학생을 협박해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내준 각종 임무를 완성하게 해 부모자식과의 관계를 긴장시켰다. 아이들은 심신이 피곤해졌고 지혜가 좁아지고 성격이 거칠어졌으며 인격이 왜곡되어 자살 사건이 늘 발생한다.

이런 환경에서 대법제자는 어떻게 아이를 교육할 것인가. 학업을 완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악한 체제에 상처 받지 않도록 아이도 보호해야 한다. 이는 눈앞에 놓인 엄숙한 문제다. 많은 대법제자는 아이 교육을 매우 중시해 “거슬러 올라간다.”[1]를 해내고 있다. 인품과 덕성을 중심으로 아이에게 천진한 본성을 더 많이 보존하게 하고 이 사회에 덜 오염되게 하여 사부님과 대법을 매우 존중하는 품행과 학업이 다 우수한 대법제자가 되게 했다. 물론 필자는 일부 대법제자 학부모를 괴롭히는 문제를 관찰했다. 어떤 학부모 수련생은 본인의 일에 바삐 보내 아이가 인터넷 게임에 빠져 매우 큰 손실을 빚었다.

아이들이 더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나는 관찰한 몇 가지 문제를 써내 수련생들과 연구 토론하려 한다. 남의 고귀한 의견을 받아 내기 위해 먼저 자신의 미숙한 의견을 내놓아 더 많은 수련생이 아이를 교육하는 과정 중의 심득 체험을 나누어 공동으로 우리 길을 잘 걷길 바란다.

문제1. 학부모는 아이에게 법을 읽는 것만 중시해 아이가 법리를 운용해 수련할 줄 모른다.

대법제자 학부모는 아이에게 법을 읽으라고 독촉한다. 학부모가 이 문제를 중시할 때 흔히 다른 한 가지 문제를 홀시할 수 있다. 아이가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를 운용할 줄 몰라 본인의 공부와 생활에 결합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이 방면에서 학부모는 심혈을 기울여 아이를 지도해야 한다.

어린이 메이메이의 어머니는 수련하지 않지만 외할머니가 수련인이다. 외할머니의 인도로 메이메이는 ‘전법륜’을 익숙하게 읽고 ‘홍음’의 많은 시를 외울 수 있어 정말 매우 기특했다. 하지만 메이메이는 화를 내기 좋아했다. 화를 내면 본인을 통제하지 못했다. 외할머니가 타일러도 효과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머리를 흔들었다.

유치원에서 일하는 수련생 A는 아이가 고치려 하지만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는 것을 관찰했다. 기연이 적당할 때 A는 친구처럼 메이메이와 얘기를 나누면서 인내심 있게 그 아이에게 본인이 왜 화를 내는지 아냐고 물었다. A를 놀라게 한 것은 메이메이가 단번에 화를 낸 5, 6개 원인을 말한 것이다. 환경적 요소가 있었고 본인의 원인도 말했다. 이는 아이들에게 모두 명백한 일면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A는 이런 상황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한 건 한 건씩 어린이와 분석했다. 예를 들면 어머니 성격이 좀 조급해 아이가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럼 아이에게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돈을 버느라 매우 힘들게 일하고 있기에 메이메이에게 어머니를 사랑해야지 어머니처럼 화를 내 어머니에게 번거로움을 더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알려준다. 또 예를 들면 아이는 뜻대로 되지 않은 일에 부딪혀 표현할 수 없으면 조급한 김에 화를 낸다. 그럼 아이에게 일에 부딪혔을 때 해결할 수 없으면 먼저 믿을 만한 어른을 찾아 도움을 청해야지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아이가 화가 낼 때, 어떻게 자신을 억제할지 모를 때 A는 아이와 화를 낸 상황을 시연하면서 아이와 공동으로 ‘화를 억제하는’ 비결을 찾았다. 메이메이 스스로 비결을 찾았다. 화가 나면 본인에게 “나는 귀여운 메이메이야, 그 작은 마녀 메이메이는 빨리 떠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안으로 찾는 일종 형식이 아닌가? 어른이 안으로 찾는 것을 배우는데도 노력이 필요한데 하물며 어린이임에랴? 어른은 인내심 있게 인도해야 한다. 매 관건 시각에 아이와 함께 걸어 지나와야 한다. 이것은 세심한 과정이다. 과연 몇 주후 메이메이에게 큰 변화가 발생했다. 친구들이 다 메이메이가 좋게 변했다고 놀라워했다.

중국대륙의 이런 악랄한 교육 환경 하에서 아이들은 하루 8시간 혼자 모든 것을 직면해야 한다. 아이가 법리를 운용할 줄 모르면 스스로 학교 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 어른도 아이의 미세한 변화를 쉽게 이해하지 못해 결국 관건 시각에 아이를 도울 수 없다.

대법은 우리 수련의 근본을 지도하는 큰법이다. 같지 않은 층차에는 모두 같지 않은 내포가 있다. 아이가 법을 읽을 줄 아는 데만 그쳐서는 턱도 없다. 조금씩 배운 법리를 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아이를 인도해 심원한 대법을 인식하게 할 것인지는 어른 수련의 중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아이의 법 읽기, 법 외우기에만 치중하고 아이에게 법리를 응용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 혼자 깨닫기 매우 어렵다.

문제2. 학부모는 아이의 법 읽기, 법 외우기에만 중시하면서 ‘법을 잘 배우기만 하면 모든 것을 사부님께서 관계하실 것이다’고 여긴다.

수련생 학부모가 “법을 잘 배우기만 하면 모든 것을 사부님께서 관계하실 것이다”라고 늘 말한다. 이 말은 일정한 일리가 있긴 하다. 많은 대법제자 아이 근원은 다 보통이 아니다. 어떤 아이는 천목도 열렸고 심지어 어떤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늘 아이 입을 빌려 본인의 문제를 지적해준다고 여기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 법을 배우고 많은 사리, 법리를 깨닫는데 사부님께서 당연히 관계하신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어떤 것이든 너무나 절대적이면 옳지 않다고 말한다.”[2] 어떤 수련생은 아이를 너무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법공부를 독촉하기만 하면(‘전법륜’을 위주로 배움) 다른 것은 다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라’ 관계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다. 이렇게 하면 한 가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아이는 보기에만 ‘말을 들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는 지식 측면이 협애할 뿐만 아니라 ‘사람’ 이 측면의 많은 상식도 구비하지 못해 사람을 대하고 일에 부딪히거나 진퇴 예의, 자유로운 응답,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등을 다 모른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통으로 돌아가면 길이 하늘로 통하리니”[3]라고 말씀하셨다. 전통 교육 본보기인 ‘제자규(弟子規)’에서 대범하고 겸손하며 예의 있는 아이를 배양하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요구라고 했다. 생활과 사교 상식을 구비한 아이여야 더 복잡한 사물을 이해할 수 있고 손을 움직이고 머리를 써 자기 생활을 풍부하게 할 수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는 방법을 알게 되고 높고 심오한 대도를 이해할 수 있다.

진정한 신전(神傳) 문화 지식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 역시 대법제자 학부모의 책임이다. 특히 중국 전통문화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은 사람이라는 이 생명 물종(生命物種)의 사유 구조를 만들어 주는 위대한 공정(工程)이었다. 이것은 아득히 먼 세월 속에서 인류가 직접적인 체험을 통하여 비로소 각종 사물과 문화 내포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정이었다.”[4] 학부모가 아이를 이끌어 창세주의 위대함을 인식하게 하면 아이 지혜를 상승시킬 수 있다. 아이를 도와 대법의 내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반대로 수련생이 ‘모든 것을 사부님께서 관계하실 것이다’라고 여기면 일정한 정도에서 자신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포기한 이 부분을 사당(邪黨) 교육 체제가 받아서 하루에 적어도 8시간을 그것이 아이를 통제하게 된다. 사당 학교에서 배운 모든 지식은 다 왜곡된 것이고 사당이 일부러 아이에게 부어넣은 것이다. 사당은 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왜곡된 사유 방식을 만들어 위협과 유혹에 굴복하고 독립 사고를 할 수 없게 하고 맹목적이고 경솔하게 결정하는 사당의 이용하기 좋은 ‘바보’로 만든다. 우리 아이들이 일정하게 진상을 알지만 부모의 필요한 관심을 잃게 된다. 단순한 아이가 어찌 사당의 끊임없는 세뇌를 막아낼 수 있겠는가?

어떤 수련생은 사당의 응시교육 체제의 위해를 피하려고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 한번 고생으로 평생 편안해지려 한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은 ‘악마가 우리 세계를 통치하고 있다’에서 이미 우리에게 분석해주었듯이 전 인류사회는 모두 공산 악령의 지휘 통제 하에 급속하게 부패해지고 있다. 서방 교육 체제도 벌써 공산 악령이 침투되어 줄곧 학생의 ‘개성 해방’을 부추기고 있다. 전통을 거역하는 이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많은 학생은 자아 중심 의식이 끊임없이 부풀어 본인이 당하지 않는 데만 치중한다. 그들은 어떻게 독립적으로 사고하는지 모르고 개인의 책임을 모른다. 중국대륙의 국제학교에서는 오히려 공산 악령이 동서양에서 악행을 실시하는 이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학부모로서 본인의 책임을 마찬가지로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

수련인은 본인의 책임을 사부님께 미루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한마디 말이 있는데, 나는 대법이 있기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대법 책이 있으니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이해했다. 초기에 심지어 어떤 사람은, 대법 책을 들고 큰길을 걸으면서, 빠른 차선을 역행해 가면서 ‘나는 대법제자다. 누구도 나를 들이받을 수 없다.’ 거기에는 어떤 구별이 있는가? 대법이 있다는 것은, 당신이 진정으로 그 대법을 배워 들어가야만, 비로소 진짜로 있음이다. 진정으로 수련해 들어가야 하고 진정으로 한 진수제자가 되어야만, 그제야 대법이 있어 아무것도 두렵지 않음이다.”[1]

문제3. 어릴 때 말을 듣던 아이가 커서 말을 듣지 않는다.

이것은 일부 학부모 대법제자가 곤혹스러워하는 문제이고 법회에서도 사존께서 제기하신 문제다.

“제자: 일부 대법제자의 아이는 어릴 때 따라서 법공부하고 연공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그때는 어린 제자를 어떻게 잘 이끌지 인식이 부족하고 또 법 실증 항목에 바빴기 때문에 아이가 진정으로 수련을 알게 잘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아이는 성장해서 사회에 들어갔는데, 수련에서 아주 크게 이탈했습니다. 그들은 대법과 연분이 있기에 비로소 대법제자의 집에서 태어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 정법이 마무리에 접어들었는데, 부모로서 지금, 이전에 놓친 교육을 만회할 기회가 있습니까?

사부: 참, 말하자면 아주 어렵다. 당신은 그에게, 남에게 하는 것처럼 진상을 말해야 한다. 당신은 그를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지 말고, 당신의 아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하는데, 그는 듣지 않는다. 당신은 각도를 바꿔서 그에게 진상을 알려야 하는데, 바로 이러하다.

이는 나에게도 깊은 체득이 있다. 션윈 초창기에 모두 션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이 아이가 무용을 한다는데, 끝나고 나면 뭘 하나? 라고 했다. 그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사부가 사람을 씀에 쓰고 나서 그만이면 안 되며, 나는 이 아이의 앞날을 고려해야 한다. 나는 중,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만들었다. 이 어린이를, 그 부모는 당초 보내고 싶지 않았고, 품고 놓고 싶지 않아 했다. 놓고 싶지 않았지만, 그 12,3세 때는 바로 재능이 나올 때로 유연성 또한 좋은데, 놓고 싶지 않았다. 14,5세에 이르러, 보니, 이 아이는 15세로 통제할 수 없게 됐는바, 그는 당신에게 말대꾸하고 당신에게 대든다. 보니 안 되겠기에, 다급히 산에 보냈다. (모두 웃음) 그러나 이 아이는 이미 굳어져 산에서도 아주 애를 먹었다. 나는 이렇게 깊은 체득이 있다.”[1]

사존께서 말씀하신 이 ‘14,5세’는 사람 이 층에서는 ‘사춘기, 반항기’다. 바로 아이가 자아 사상이 형성되는 시기다.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이 시기 아이는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럼 어른은 반드시 자신의 예전 교육 방식을 반성해야 할 시기다.

한 가지 정경을 예를 들겠다. 샤오샤오는 움직이기를 특별히 좋아했다. 수련인으로서 어머니는 많은 방법을 생각했다. 아이에게 연공을 많이 하게 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의 어투는 점점 강경해졌다. “너 봐, 한 시각도 가만있질 않니!” 아이도 좋아하지 않아했다. “나는 조용히 할 수 없어요.” 이후에 어머니는 안으로 찾으면서 마침내 아이가 조용해지지 않는 원인을 알았다. 어른이 조용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조용히 할 수 있으면 아이는 본보기가 있어 배우기 때문에 많이 말할 필요 없이 개선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이를 책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더 엄격하게 요구했고 적당한 시기에 아이에게 차근차근 타일렀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샤오샤오가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른이 아이를 가르칠 때 늘 요구하고 질책하는 태도로 아이를 대하는지? 본인에 대한 요구를 낮춘 것은 아닌지? 몸으로 가르치는 것이 ‘언어로 가르친 것’보다 적은 것은 아닌지?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줄곧 상대방을 질책하면서 요구하는 것은 불교 중의 ‘계율’과 유사하다. 우리는 이렇게 가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지시하셨다. “이 환경 자체가, 인류사회가 바로 대법제자를 위해 제공한 수련장이 아닌가? 그것은 당신에게 당신의 집착심을 표현하게 하는 각종 환경과 요소를 제공해 줄 수 있고, 그것은 당신에게 어떠한 제고의 기회도 제공해 줄 수 있다. 이 일이 크기 때문에, 인류사회가 모두 그의 절(廟)이 됐다.”[5]

대법의 요구에 따르면 우리는 아이를 교육할 때 부딪힌 모든 문제를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사고하고, 해결할 방법을 사고할 필요가 있다. 어른이 줄곧 아이에게 요구하고 법리로 아이를 억압하고 질책하는 방법은 딱딱하고 지혜가 부족한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 말을 잘 들을수록 자발적으로 사고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고집스러운 본성을 양성하게 된다. 14,5살이 되면 학부모 의견과 같지 않으면 쉽게 과거의 ‘말을 듣던 패턴’을 간단하게 부정하고 본인의 길을 고집하고 말을 듣지 않고 대든다. 엄중하게 불량한 습관에 물들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대법제자 가정 중의 아이는 미래 인류사회의 엘리트이고 중요한 사명을 지니고 있다. 우리 어른은 정말 진정하게 중시해야 한다. 자신을 잘 수련하고 어린 제자를 잘 이끌어 사존의 자비로운 고심한 제도에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

이상 층차가 제한되어 있어 적당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께서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8년 워싱턴DC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다시 만들다(再造)’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세계 法輪大法의 날 설법’

 

원문발표: 2018년 9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9/14/3732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