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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만 물러서면 더없이 넓은 세상’을 깨닫고 가정 갈등을 선하게 해결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지 20여 년이 됐습니다. 수련 전 저는 쟁투심이 매우 강하고 다른 사람이 말을 하지 못하게 했으며 사리에 맞지 않아도 변명을 하곤 했습니다. 남편과 아이는 전혀 저와 달랐으며 늘 저에게 양보했으므로 저는 마음속으로 기뻤고 위안을 느꼈습니다. 저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이러해야 하고 타인이 날 괴롭히도록 할 수 없으며 이것은 사람으로서의 권리’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1996년 저는 운이 좋게도 대법을 얻었습니다. 법을 배운 후 저는 승부욕이 강해 항상 남을 이기려고 하는 것은 매우 나쁜 집착심이며 공산당 문화의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제 사람 됨됨이의 관념을 바꾸기 시작했고 우주 특성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으며 20여 년 동안 비록 심성관을 삐걱거리며 넘어왔지만 모두 넘어올 수 있었으며 사부님께서는 가능한 빨리 제 심성을 제고시키기 위해 시련도 크게 주셨습니다. 아래에 제가 걸어온 한 가지 심성관을 글로 써내려 합니다.

(1) 정념으로 문제를 보면 어떠한 난관도 막을 수 없다

저는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집안에서 뜻대로 안 되는 일은 외부인과 이야기하지 않았고 좋은 것만 알리고 근심과 걱정은 알리지 않았으며 고통과 뜻대로 안 되는 일은 마음속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니와 여동생 그리고 기타 친척들은 모두 우리 가정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는데 남편은 저를 아껴주고 자상하게 대했으며 깔끔하고 일도 잘해 모두들 저를 매우 부러워했습니다.

재작년 5월에 아들이 결혼했습니다. 제가 유치원을 경영하게 되어 매우 바빴으므로 아침저녁 시간을 이용해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면서 아들의 혼사를 준비했습니다. 아들이 결혼할 거라고 생각하니 저는 아무리 고생스럽고 힘들어도 마음은 기뻤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안사돈과 며느리에 대한 인상도 너무 좋아 그들에게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연회석상에서 안사돈이 갑자기 결혼 연회장을 떠나면서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 갑작스런 행동에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재빨리 안사돈을 뒤쫓아 나갔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설득 아래 안사돈은 그때서야 연회석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날 결혼식에 참석하러 온 매우 많은 하객들 앞에 체면이 너무 많이 깎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사돈은 외지에서 왔고 저녁 기차표를 예매해 놓아 결혼식 연회가 다 끝난 후 저는 안사돈을 모시고 제 딸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안사돈이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저는 오늘 온 손님들이 너무 많아 안사돈을 잘 챙겨드리지 못해 그녀가 불만을 갖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안사돈에게 수박과 차를 대접하며 예를 갖춰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안사돈은 여전히 일부 듣기 싫은 말을 하면서 트집을 잡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아들은 저에게 호텔에 가서 일을 마무리하라며 저를 떠나도록 했습니다. 저는 아들이 저에게 자리를 피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들끼리 할 말이 있을 거라 생각되어 바로 나갔습니다. 저는 6층에서 5층으로 내려가면서 창밖 나뭇가지가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어디로 가야할까요? 생각해보면 아들의 결혼은 큰 경사인데 저는 안팎으로 바쁘게 오가며 이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으나 지금은 오히려 문밖으로 쫓겨나 마음이 쓰라려 눈물마저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이때 저는 자신이 대법제자이고 심성관이 왔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리하여 종이 한 장을 꺼내 계단에 깔고 앉아서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갖가지 사람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2] 저는 한 번씩 한 번씩 외웠고 마음도 탁 트이고 밝아졌습니다. 이 때 저는 아래층에서 딸과 남편이 모두 돌아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방을 메고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저를 만나자 말했습니다. “어디 가세요?” 저는 말했습니다. “일이 다 마무리 되었는지 보려고 가는 중인데 돌아왔구나.” 우리가 위층에 이르자 사돈댁은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딸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그들이 왜 트집을 잡았는지 아세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처가 가족들이 식사를 하지도 못했는데 내가 먼저 먹었다고 하더구나. 그들에게는 접시와 젓가락도 없었다면서 내가 존중하지 않았다고 했어.” 이때 아들이 위층으로 올라와 저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어요? 엄마가 먼저 식사하신건가요?” 저는 너무 억울해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단지 손님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인사를 건넸을 뿐이야. 밥 먹을 시간이 어디 있었겠니?” 그러나 며느리는 제 말을 믿지 않았고 이 일 때문에 아들과 며느리는 논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에 사돈댁이 기차를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저는 또 한 상 가득 풍성하게 음식을 준비해 그들을 접대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그들을 보낸 후 저는 마음속으로 계속 납득이 안 됐습니다. 그들이 호텔에 머물 때 우리 집에 초대해 성찬을 대접하고 오가는 차편도 제공했는데 왜 갑자기 트집을 잡기 시작했을까? 뿐만 아니라 저를 중상모략까지 하고 없는 일을 사실처럼 말해 그녀들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매우 커지게 됐습니다.

저는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안사돈은 트집을 잡으면서 아들에게 저를 대신해 잘못을 사과하라고 해 아들은 “저는 어머니를 잘 알아요. 저도 어머니께 여쭤봤어요. 어머니는 잘못이 없습니다. 어머니를 오해하셨습니다.” 안사돈은 화가 나서 한 마디 말을 내뱉었습니다. “이혼해!” 며느리는 안사돈의 말을 듣고 제가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들을 존중하지 않았다며 이혼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안사돈과 며느리가 이혼하라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듣고서 마음속으로 놀랐는데 나중에 다시 침착해졌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혼 이 일은 나에게서 생긴 파문이야. 이것은 엄마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야. 나와 네 아버지는 매일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아껴먹고 아껴 쓰면서 모은 돈으로 너를 학교에 보내고 집을 사주고 너와 며느리가 대학원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는데 이런 터무니없이 날조된 일에 대해 나는 어머니로서 마음속으로 부끄러움이 없단다. 정말 이혼하려면 그것은 너희들이 감정이 서로 맞지 않은 것이므로 나는 끼어들고 싶지 않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후 저는 ‘이런 일련의 일이 발생한 것은 내 어떤 마음이 불러온 것일까?’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을 찾아보니 친지와 친구들 앞에서 아직 시집오지 않은 며느리가 얼마나 좋고 안사돈이 얼마나 좋다며 늘 칭찬했는데 이것은 허영심이고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이며 과시심이 불러온 난관이었습니다. 누락이 있고 사람 마음이 있는 것을 구세력이 보고 저를 아래로 끌어내리려고 한 것이며 아들의 정으로 제 수련하는 마음을 끌어가 저로 하여금 수련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때 사부님 말씀이 귓가에 울렸습니다. “육친정(親情)에 집착함은, 기필코 그로 인해 지치고 얽매이며 마에 사로잡히게 됨이라, 그 정사(情絲)를 잡아 쥐어 일생토록 방해받으니, 나이가 들면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3]

제가 자식 정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면 곧 수련할 수 없으므로 절대 구세력의 속임수에 빠질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앉아서 발정념을 했고 마음은 매우 고요했으며 정념에 더욱 박차를 가해 사악을 해체했습니다.

두 시간 후 아들이 전화를 걸어와 그들이 다시 사이가 좋아져 이혼을 하지 않기로 하고 지금 식당으로 가는 길인데 식사를 마치면 바로 사돈댁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도 수련인이므로 저는 또 아들에게 발정념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구세력이 속인을 조종해 우리에 대해 교란과 박해를 하지 못하도록 다시 계속 박차를 가해 발정념을 했습니다.

밤 10시 무렵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저에게 마음을 놓으라고 말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수련이란 엄숙한 것으로 수련인이 시시각각 모두 정념으로 문제를 본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수련인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2) ‘한 걸음만 물러서면 더없이 넓은 세상’을 해내다

저는 아들 일이 지나가면 괜찮아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가끔 제 사상 중에서 안사돈 모녀의 표정이 기억 속에서 가시지 않고 남아있었습니다. 그녀들에 대한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구세력은 제 이 마음이 깨끗하게 제거되지 않은 것을 보고 저에게 이어서 두 번째 관을 건너게 했습니다.

결혼한 첫 해에 아들이 말했습니다. “겨울 방학을 하면 대만에 가서 공부할 거예요. 돌아오면 바로 설을 쇠는데 제 아내의 여동생 일가족이 모두 친정댁에 가서 설을 쇤다고 하네요. 저희들도 가서 설을 쇠게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딸과 사위는 우리 노부부가 설을 외롭게 쇠게 될까봐 안후이(安徽)에 가서 설을 쇠게 해 우리는 안후이로 갔습니다. 설을 쇠고 돌아오는 김에 또 아들 집에 들렀고 며느리를 보고 저는 그녀에게 세뱃돈 2천 위안(한화 약 32만원)을 줬습니다. 이듬해에 며느리는 그녀의 어머니를 모시고 설을 쇠야 한다며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며느리에게 수천 위안 어치의 옷을 사주었고 돼지 뒷다리 살, 족발, 당면, 좁쌀, 콩소를 넣은 찐빵과 함께 보내줬습니다.

하지만 일은 제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으며 안사돈은 여전히 결혼식장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사소한 일 때문에 갈등이 생겼고 며느리는 또 유산을 하게 되어 저를 원망했고 기어코 이혼을 해야겠다며 우리에게 그녀 집에 가서 사건의 진상을 밝히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전화를 걸어와 며느리가 이혼하려 한다고 말하자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억지를 쓰다니, 없는 일도 이치에 맞게 날조해내니 정말 생트집을 잡는구나. 내가 속인이었다면 누가 옳고 그른지 끝까지 시비를 가렸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무슨 일이든 모두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아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틀린 사람이 나 자신이라고 사과를 승인하라고 하면 되지 않는가. 그녀들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되는 것이고 나는 오직 진선인(眞善忍)만 갖겠다.’

저와 남편은 며느리 집으로 갔습니다. 안사돈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와 남편은 안사돈을 보자마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두 모녀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안사돈이 그곳에 앉아 계속 화를 내는 모습을 보니 마치 곧 싸울 기세였습니다. 저는 먼저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사과하며 말했습니다. “아들이 결혼하던 날 손님이 너무 많아서 저는 손님들을 접대하느라 바빠서 안사돈을 소홀히 대했고 잘 챙겨드리지 못했습니다. 모녀 두 분께 정신적으로 그렇게 큰 고통을 감당하게 해서 오늘 특별히 사과를 드리러 온 것입니다.”

이때 며느리가 노기등등하게 두 가지 일을 언급한 다음 안사돈이 또 그날 그들이 식사를 못했는데 제가 먼저 밥을 먹기 시작했고 그들에게는 접시와 젓가락이 없었다며 제가 그들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일들은 마치 이야기를 꾸며낸 것처럼 말했는데 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었으며 그녀들이 말한 것은 정말인 것 같았는데 그야말로 중상모략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도 이런 인격적인 모욕은 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들이 말하는 이 생소한 일들을 들으면서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그들과 같지 않다. 당신이 어떻게 말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말하도록 내버려두겠다. 당신들이 다 말하고 나면 화도 사라지겠지. 참! 당신들은 말하라! 나는 듣고 있겠다!’ 생각해보면 한신은 사타구니 밑을 기어나가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한신은 속인이고 저는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그보다도 훨씬 나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목표는 속인의 층차를 벗어남에 도달하는 것이며 더욱 높은 층차를 향해 매진하는 것입니다.

저는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모녀는 한마디씩 번갈아가며 말했는데 몹시 흥분했습니다. 저는 갑자기 그녀 두 사람이 매우 불쌍하면서도 우스웠습니다. 속인은 바로 이 체면을 위해 살고 있으며 사리에 안 맞아도 변명하는 기세로 늘 다른 사람을 압도해 자신을 높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부딪히게 됐으니 그들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이라고 일깨우며 마음속으로 한 번씩 한 번씩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했습니다. 또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부러워하고 있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그를 부러워하지 말라. 당신은 그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는 잘 먹지 못하고 잘 자지 못하며, 꿈을 꾸어도 그의 이익이 손실될까 봐 두려워한다. 개인 이익에서 그는 쇠뿔 끝으로 파고든다. 당신이 말해 보라. 그가 사는 것이 힘든가 힘들지 않은가. 그는 일생 동안 바로 이것을 위해 살고 있다. 우리는 모순 앞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면 더없이 넓은 세상이라고 말하는데, 보증코 다른 광경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이런 사람은 물러서지 않는데, 그가 산다는 것은 가장 힘든 것으로서, 당신은 그를 따라 배우지 말라.”[1] 반드시 참는 것을 닦고 인(忍)을 수련해내며 자비를 수련해내고자 저는 사부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

모녀는 모든 억울한 일들을 전부 한 번씩 이야기했습니다. 저와 남편이 그녀들과 논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온화하고 자상한 표정은 그녀들의 원망하는 마음과 미움을 불식시켰습니다. 이어서 안사돈은 기뻐하며 직접 주방에 가서 볶음 요리와 닭고기 찜 요리를 만들었고 며느리는 또 우리에게 케이크를 구워주었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는 마치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한 바탕의 이혼 소동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수련 중에 갈등에 부딪힐 때 우선 먼저 자신은 수련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심성을 지키고 속인과 똑같이 쟁투하지 말아야 하며 일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갈등 앞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면 더없이 넓은 세상이며 저로 하여금 ‘인(忍), 선(善), 심성 지키기(守心性)’의 일부 함의를 알게 했습니다.

(3)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1]을 맞이하다

작년에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할 때 가끔 사돈댁 모녀의 이전 여러 가지 흔적들이 자주 머릿속에 반영되어 나와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사상이 고요하지 않았고 이전에 일에 부딪히면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는데 지금 2년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남의 잘못을 따지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어떤 마음이 촉성시킨 걸까요? 저는 자신의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야 했습니다. 이렇게 한 번 찾아보니 제 마음속에 매우 깊은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과 억울해하는 마음, 그리고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과 쟁투심 및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 등등 이러한 마음들이 숨겨져 있어 깨끗하게 제거되지 못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공산당 문화의 것들이 혼란을 일으켜 나쁜 물질이 대뇌 상으로 반영된 것인데 저는 여전히 자신이 행한 것이 옳고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러한 집착심을 내려놓지 않은 부패 물질, 그것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돌아온 것이므로 저는 반드시 자신을 진수(眞修)해야 하고 자아와 거짓자아를 똑똑히 가려내야 하며 구세력의 속임수에 걸려들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수련해야 합니다.

저는 고요해지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찾았는데 여전히 이기심이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나쁜 마음을 뿌리에서부터 뽑아내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뽑아내며 깨끗하게 뽑아낼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자비심이 없었고 선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드시 선(善)을 잘 수련하고 자비와 선의 힘으로 그들을 감화시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며느리는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고 저는 계속 학비를 내주고 있습니다. 3년 동안의 학비는 모두 제가 유치원을 경영하면서 아껴 먹고 아껴 쓴 돈으로 지원해준 것입니다. 작년에 아들은 박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10만 위안(한화 약 1600만원)도 우리 노부부가 지원해준 돈입니다. 한 번은 며느리가 전화를 걸어와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도 박사 시험을 보고 싶어요. 돈을 지원해주실 건가요?” 저는 즉시 승낙했습니다. “올바른 일이라면 우리는 너희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줄 거야.” 저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일을 할 때 모두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여주며 그녀로 하여금 대법제자의 선량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1년 동안의 노력을 거쳐 우리의 자비와 선량함은 며느리를 감동시켰습니다. 올해 아들과 며느리는 돌아와 설을 쇠며 우리에게 직접 구운 케이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또 우리를 데리고 시내에 나가 옷과 신발을 사주었습니다. 며느리가 기뻐하는 모습은 유난히 즐거워 보였습니다. 매일 앞 다투어 주방으로 와서 요리를 만들며 이야기하고 웃으며 성격이 명랑해 온 가족이 모두 싱글벙글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세뱃돈 2천 위안을 줬는데 그녀는 아이처럼 저에게 고마워했으며 정말 온 가족이 즐거웠습니다.

어느덧 3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속인과 마찬가지로 일에 부딪히면 다투고 싸우면서 서로 양보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 이런 결과가 있게 됐을까요?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저는 대법제자이고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에게 오늘의 성과가 있게 된 것은 모두 사부님의 간곡한 가르침을 떠날 수 없으며 수많은 말로도 사부님 은혜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아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하겠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수련자 금기’

 

원문발표: 2018년 8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언행으로 대법을 실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8/20/3726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