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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을 이겨내고 역류하여 올라가다’를 읽고 생각한 것

글/ 미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미국에서 수련하는 청년대법제자이고 수련생이 쓴 이 교류 글을 읽고 자신의 집에서 겪은 경력이 생각나서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공유하고자 한다.

나의 부모님은 모두 속인이고 집에서 외할머니만 수련생이고 지금은 모두 국내에 계신다. 나의 부모님은 자식은 나하나 뿐이다. 초기에 내가 대법수련을 확고히 하고 해외로 유학한 후 미국에 남아서 대륙에 돌아가지 않자 어머니는 크게 우셨고 부모님은 모두 대법에 아주 불경한 말들을 했다.

후에 어머니는 미국에 와서 나를 만났다. 자유사회의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고 대법에 대한 태도가 180도로 변화가 생겼다. 게다가 그녀가 미국에 왔을 때 나는 세심하게 여러 관광명승지로 모시고 다녔고 쇼핑하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선물을 사드렸다. 그녀가 미국에 있는 동안은 무척 즐거워했다. 귀국해서 그녀는 각종 방식으로 주변사람들에게 대법진상을 알렸고 부모님은 대법을 지지하게 되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기에 어머니는 외할머니께서 연세가 많으시지만 거동할 수 있을 때 외할머니를 모시고 나를 보러 오려고 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비자신청을 하고 혼자서 수고스럽게 연로하신 외할머니를 모시고 미국에 오셨다.

나는 외할머니와 5,6년 만나지 못했고 전화통화를 가끔 했다. 마침내 외할머니를 만나서 마음속으로 아주 기뻤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것은 외할머니를 만났지만 나의 인상속의 아주 자상한 할머니가 아니었다. 예전과 다소 달라졌고 외할머니의 표정과 마음은 다소 마비된 듯 나를 만나도 아주 기분 좋은 기색이 아니었다. 마치 ‘만나면 만나는 것이다’라는 느낌이었다.

나는 외할머니와 며칠 같이 지내면서 마침내 알게 되었다. 매번 전화통화를 할 때 할머니는 조금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나는 머리가 텅 비어있고 매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원래 외할머니는 진짜로 매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매일 그녀의 식사와 주거를 돌봐주고 할머니는 단지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시간을 내어 자료를 배포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았고 기본상 가족과 무슨 교류도 없었다.

할머니는 ‘텅 빈(空)’ 상태가 가장 좋은 상태라고 느끼기에 매일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묻지도 듣지도 않았다. 그녀는 ‘정’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사람에 대해 감정이 없어야 하고 매일 표정이 엄숙하고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내가 외할머니를 만났을 때 왜? 사람을 천리 밖으로 거절하는 느낌이 들었는지!, 자상한 느낌이 없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정진하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겼고 모든 시간을 세 가지 일에 전부 쏟아 부었다.

그들과 며칠 같이 있으면서 어머니는 차츰 마음속의 말을 했다. 사실 가족들은 외할머니한테 원망이 아주 깊게 쌓여 있었다. 외할머니는 자신이 세상과 다툼이 없다고 여겼고, 가족들은 할머니한테 각종 불만스러운 표현을 해도 외할머니는 자신한테 자신의 업을 소멸해준다고 여겼다. 가족이 외할머니를 십년간 돌보았는데 나를 무척 놀랍게 한 것은 외할머니 말씀 중에 ‘어떠한 고마운 마음도 없고, 반대로 가족들은 속인마음이 너무 많아 견식을 같이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각종 모순이 발생한 후 외할머니는 가족과 어떠한 소통과 해석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척 이상하다고 말했는데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부처를 수련하는 사람들인데 기타 불교를 믿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자상하고 선한 얼굴인데 외할머니 몸에서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각도를 바꿔 생각해보면, 가족들은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출근해서 퇴근하면 집에 노인이 계시기에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만약 화목한 집에 돌아오면 그래도 괜찮은데 집에 돌아와 의식주를 같이하는 사람이 무표정하고 기본상 별로 말도 없다면 그것은 어떤 느낌이겠는가? 생각해보라.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이 한 세트 공법의 대부분은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는데, 당신은 자신을 속인사회에서 이탈하게 할 수 없으며, 당신은 명명백백하게 수련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여전히 정상적인 관계여야 하며, 당연히 心性(씬씽)이 아주 높고 심태가 매우 바르며, 자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하고 자신의 층차를 제고하며,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좋은 일을 하는, 다만 이런 표현이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표현이 정신마저도 비정상인 것 같고, 마치 속세를 꿰뚫어 보는 것처럼 하여, 말을 해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사람은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우더니 어찌 이 모양으로 변했는가? 마치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한다. 사실 그런 것이 아닌데, 바로 그가 너무나도 격동되어 이지적이지 못하며, 상식적인 이치에 맞지 않을 뿐이다.”

사부님께서는 ‘미국수도법회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진이란, 그것은 바로 그가 시시각각 자신의 언행에 주의할 수 있고, 자신의 사상반응에 주의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할 수 있고, 늘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하고 있다면 곧 개인수련 중에서 비교적 정진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2018년 워싱턴DC법회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줄곧 이 전반 사회는 사실 바로 우리 대법제자에게 개창한 수련환경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이 종교 중에 있지 않고, 당신이 사회 중에서 수련하는데, 그럼 각 업종이 모두 당신의 수련장소로 된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은 이런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도 모두 이 수련환경 중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역사상 이런 사회가 있었는가?!”

나는 사부님의 이런 설법에 대해 이렇게 이해한다. 생활 속의 한 점, 한 방울이 모두 수련이고 단지 법공부, 연공, 진상알림만이 수련인 것은 아니다. 수련도 예전의 수도인, 스님과 같이 모든 친척을 몰라보고 속인의 모든 물건은 만지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은 속인사회에서 표면상에서는 속인과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각종 일과 상태를 마주했을 때 수련인의 심태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이다.

나는 속인회사에서 일할 때 속인 동료들과 여가시간에 집안일도 말하고 동료들이 기쁜 일을 말하면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공유한다. 동료가 무슨 어려움에 부딪치면 동료를 도와서 해결해주려고 하고 어떤 때는 나도 대법 수련에서의 체험을 이야기한다. 한 동료는 나를 만나면 많은 수확이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회사에서 회식이 있을 때면 ‘이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고 참여할 수 있으면 모두 참여한다. 이때가 동료 간에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다. 동료들과 서로 협동할 수 있고 이해를 증진할 수 있어 업무과정에서 더욱 협조할 수 있고 션윈이 왔을 때 동료를 초대해서 같이 션윈을 관람하면 더욱 자연스럽고 용이해진다.

매년 3주간의 휴가가 있는데 이런 휴가기를 이용해서 일부 홍법과 진상알림 행사에 참가하는 것 외에 나는 또 가족과 같이 미국의 도시 혹은 세계 기타 지역을 돌아본다. 관광기간에 자신의 견식을 넓히고 다른 한 면으로는 회사에 돌아와서 속인들과 교류할 때 관광을 화제로 할 수 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내가 갔던 곳에 가고 싶어 하면 나는 열정적으로 제안을 한다. 나의 고객은 심지어 특별히 나를 찾아와서 내가 추천했던 지명을 물어보기도 한다.

복장에서도 경제적으로 여건이 된다면 가족의 건의를 들어 나는 조금 좋은 옷과 신발을 사는데 나의 동료들은 내가 입고 착용하는 물품들이 아주 정갈한 것을 발견하고 늘 내가 세련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것들의 모든 출발점은 자신의 향수와 허영, 과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속인의 생활을 체험하면서 속인한테 진상을 어떻게 잘 알릴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으며 어떻게 좋은 화제를 기점으로 해서 진상을 알릴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한다. 또한 속인으로 하여금 대법제자의 아름다운 풍모를 보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수련생들과 한 가지 문제를 함께 사유하고자 한다. 우리는 속인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을 구도했는가? 아니면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정진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구도했는가?

수련생은 문장에서 제기하기를, 자녀가 그에게 효도를 하려고 할 때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싶은 것은 이런 방법이 보기에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사람을 구도하는 것을 지체하지 않는 것 같지만 각도를 바꿔 생각해볼 수 있다. 옛사람이 ‘만 가지 책을 읽으면 만 리 길을 걷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조건이 되어 미국에 와서 돌아볼 수 있다면, 왜! 와서 해외 수련환경을 알아보지 않는가? 기회가 있으면 해외 수련생들과 교류할 수도 있고, 자신이 직접 해외환경을 겪으면 평소 대륙환경에서 미처 느낄 수 없는 당문화도 느낄 수 있다.

많은 대륙인들은 미국에 와서 관광할 수 있는 것을 부러워하고, 만약 자신이 미국에 와서 돌아보고 견식이 있으면 귀국한 후 속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남들이 듣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지 않겠는가?

자신의 자녀가 각종 형식으로 효도하려고 하는데 대법제자로서 마치 일종의 자기 수련에 대한 교란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속인을 대립 면으로 놓는 것이고, 자신의 행동이 또 속인에게 이해되지 않는 표현이라면 이는 가족을 밖으로 미는 것이 아닌가?

 

원문발표: 2018년 8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8/9/3721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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