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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제자 활동에 참가하는 복장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글/ 미국 동부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왕 문장 ‘뉴욕 수련생이 대법활동에 참가하는 복장에 대한 건의’에서는 수련생 중 일부가 대법제자의 활동에 참가하는 기간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등의 글이 새긴 복장을 입고 언행, 행동거지가 최저한도의 사회예절을 지키지 않아 대법을 널리 알리는 바른 작용을 일으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구도 받는 것에 장애를 조성하기에 수련생이 단체 활동에 참가한 후 복장을 일반 복장으로 갈아입을 것을 건의했다. 나는 이 중에 수련자가 생각하고 착실히 수련해야 할 것이 있으며 적당히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 등의 홍법 글씨가 들어간 복장을 입는 것은 우리가 활동에 참가하기 위한 것인가?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기 위한 것인가? 활동의 통일성을 위한 것인가? 활동을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는 복장을 입은 그 순간부터 마음으로 무엇 때문에 입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통일성을 나타내기 위한 복장인가? 그것에 담긴 정보는 무엇인가? 우리는 진심으로 수승한 것을 느꼈는가? 만약 우리 내심 깊은 곳에서 우리 행동의 진정한 의의를 명백히 알고 시종 정념을 유지해 활동에 참가하고 엄격히 자신을 단속하면 어찌 추하고 무례하고 사회의 예의 규범에 불합리한 행동이 나올 수 있겠는가?

대법제자의 활동에 참가하면서 우리는 이 활동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달하는지 생각해보았는가? 우리의 활동을 통해 사람들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이런 것이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비로소 더욱 좋고 더욱 효과적으로 대법진상이 사람마음에 이어져 사람들에게 구도 받을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나는 또 한 차례 대법제자의 활동에 참가했다고 생각하겠는가? 잊지 말자, 우리의 정신과 물질은 일성(一性)이며 만약 마음속으로 대법제자의 활동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활동을 원용해야 할 수요에 실질적인 요구를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활동 중에서 또 어떤 작용을 일으키겠는가? 더욱 엄숙한 것은 만약 우리의 언어, 행동거지가 중생이 구원받는 것에 장애를 조성한다면 이 손실을 우리는 어찌 감당을 하겠는가?

수련은 엄숙하다. 문제가 나타나면 반드시 수련을 해야 하며 반드시 안으로 자신을 찾아야 하고 근원을 찾아야 한다. 법에서 착실히 수련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것은 단체 활동이 끝나면 평소 복장으로 갈아입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 복장을 갈아입으면 교양 없는 행동에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단 말인가? 대법제자는 절대로 스스로를 기만하고 남도 속여서는 안 된다. 우리가 대법 수련의 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최저한도로 또 좋은 사람이”[1] 되어야 한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정상사회의 문명에 부합하고 따르고 수호하는 것이 아닌가? 때문에 그런 좋지 않은 행동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문제가 나타나면 우리는 기회를 잡고 착실히 수련을 하고 제고해 올라와야 한다. 착실히 수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개인의 인식이며 틀린 곳은 시정해 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8년 7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7/29/3717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