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쑤 대법제자 메이칭(梅清)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사람에게는 정이 있기 때문인데, 화를 냄도 정이요, 기뻐함도 정이요, 사랑함도 정이요, 증오함 역시 정이요, 일하기 좋아함도 정이요, 일하기 싫어함 역시 정이며, 누가 좋고 누가 나쁘게 보이며, 무엇을 하기 좋아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일체가 다 정이라,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1]
저는 원망하는 마음 또한 정의 산물이며 이기적인 데서 내원했다고 깨달았습니다. 생명은 층층이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과 각기 다른 경지에서 발생한 각자의 교차된 인연 때문에 다른 생명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나타나는 것인데, 표면적인 것은 정이지만, 본질은 위사위아(爲私爲我)인 것입니다. 법에서 우리의 이기적인 것은 구 우주 생명의 특성으로 생명의 성주괴멸(成住壞滅)의 전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수련자로 말하자면 원망하는 마음은 생명의 깊은 곳에 잠겨있으므로 완전히 제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오직 대법이 육성한 무사무아(無私無我)한 생명만이 집착을 다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수련 중에서 원망하는 마음의 표현은 간혹 깊이 감추어져 있어서 수련인에게 끼치는 영향이비교적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불평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괴롭거나 심지어 질투하거나 기뻐하거나 좋아하거나 등등이 있지만, 원망하는 마음은 모든 것에 숨겨져 있습니다. 간혹 한 사건에서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수련이 부족하거나 포용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의 심층은 오히려 원망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수련생 A는, 마난 중에 있는 수련생 B와 협조해서 사악의 경제적인 교란을 잘 타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수련생으로부터 오해를 여러 차례 받았고. 심지어 수련생 B의 가족(수련생)으로부터도 오해도 받았습니다. 그러자 A 수련생은 다른 수련생의 오해를 풀고, 또 안전 등을 고려해 수련생 B와 공공장소에서 협조하는 문제를 될 수 있는 한 피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마음도 부담이 컸습니다. 그런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A 수련생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 깊이 B 수련생에 대한 원망이 쌓여갔습니다. 그런 원망의 마음은 주위의 일체 정황을 순조롭지 못하게 했으므로 피동적으로 변한 자신도 몹시 부담스러웠습니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수련생 A가 수련생 B에게 어느 문제를 늘 지적하기는 해도, 실제는 모두 원망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수련과정에서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인가?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수련 중에서 원망하는 마음이 돌출되는 표현은 바로 자아중심으로 인해 사소한 일에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진정한 수련은 무조건 안으로 찾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해도 웃어넘기면 근본적으로 부면적인 물질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은 바로 밖으로 찾고, 안으로 수련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로 구 우주의 생명처럼 오직 다른 사람을 개변하려고 할 뿐, 자신은 개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수련인은 선(善)을 수련하는 것이고, 자비를 수련하는 것입니다. 선을 수련하는 것은 바로 타인을 위하는 것이며, 타인의 좋지 않은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구세력이 억지로 가한 대로, 다른 수련생의 여의치 않은 상태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수련자는 생명에 대해 모두 자비로워야하는 것인데, 어찌 타인을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원망은 바로 선하지 않은 것이며 참지 못한 것이고, 다른 생명을 포용하지 못한 것입니다. 설령 수련생이 정말 부족하다고 해도 우리는 자비로 대해야 하며, 포용하며 선의로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방법은 상대방이 접수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해야 하는 적당함을 유지하며 완전히 상대방을 위해야 합니다.
우리 대법제자는 모두 법에서,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내려와 정법하는 각 우주대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위대한 신이 광환을 던져버리고 오직 중생구도의 큰 뜻을 품고 층층이 아래로 내려오는 중에 무수한 고생을 겪었는데, 심지어 그의 전 우주 중의 모든 과정의 고생을 겪은 것입니다. 현재 그가 비록 사람 중에서 헤매고 있다거나 또는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우리가 어찌 이 분자 층면의 제일 저능한 물질로 그들에게 물으며 그들을 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대법제자는 중생구도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까? 그들의 중생을 어찌할 것입니까? 그가 전생하는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그 생명들은 어찌 하겠습니까? 우리가 그들을 자비로 일깨워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원망과 질책으로 수련생을 대립국면으로 밀어버리려 합니까? 어찌 구세력이 수련생을 박해하게 하는 구실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단 말입니까? 뿐만 아니라 수련생의 어떤 좋지 않은 상태는 바로 구세력의 사악한 배치일 뿐, 수련생의 진실한 본성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아를 내려놓고, 각기 다른 경지의 생명을 포용하며, 서로 부축하며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원망하는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고 정법, 정각의 위대한 각자의 용량을 수련성취하여 더욱 큰 범위의 생명을 포용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수련성취를 하였다 해도 어느 한 생명에게 불만이 있다면, 그래서 그 생명이 당신에 의해 소멸된다면 당신의 중생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8년 7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7/27/3715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