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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귀한 회상(3)

글/ 중국 대법제자 후이롄(慧蓮)

[밍후이왕] 글쓴이의 말: 더욱 많은 노 제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상을 써내길 건의한다.

회상5

99년 7·20이 시작된 후 정말로 하루가 일 년과 같았고 날마다 해가 뜰 날을 바라던 것에서 정정당당하게 걸어 나와 법을 실증했다. TV의 터무니없는 요언날조와 모함에서 나는 갈수록 사악을 똑똑히 인식했으며 대법을 확고히 믿었고 3년간 박해가 심할수록 더욱 확고해졌다. 어느 날 가도위원회 주임과 서기가 집에 찾아와 수련(修煉)을 포기하라고 핍박했다. 나는 TV를 가리키며 그들에게 알려줬다. “이 뉴스를 날마다 보는 것 같은데 저기에서 말하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 ‘전법륜(轉法輪)’을 보고 있는데 TV내용과 완전히 다릅니다.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무엇이 적혀있는지 우리가 가장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연공하고 마음을 닦고 있으며 날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우리가 가장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날마다 배를 먹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맛인지 물어야 할까요? 아니면 배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말하라고 할까요? 먹어보지 못한 사람이 배가 무슨 맛이라고 하면 내가 믿을 수 있겠어요? 그 말을 그대로 들을 수 있겠어요?” 그들은 삽시에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또 그들에게 엄숙하게 알렸다. 하지만 태도는 상화로웠다. “이후에라도 만약 대법과 수련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하지만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면……, 그런 것에 시간을 소모하지 말기 바랍니다.” 이후에 그들은 더는 찾아오지 않았다.

TV에서 사부님에 대한 요언과 모함이 방송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대법이 세간에서 홍전(洪傳)되면서 나는 여러 가지 일을 경험했고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면서 겪은 고생을 목격해왔는데 저런 악의적인 요언이 어찌 대법제자의 마음을 아프고도 깊이 찌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92년 동방건강박람회는 국제무역청사에서 개최됐다. 나도 그때 참가했었다.홀에 들어서니 갖가지 공파들로 요란한 가운데 ‘파룬궁’의 줄이 가장 길었고 사람도 가장 많아 나도 모르게 다가갔고 어쩌다보니 밀려서 앞으로 갔다. 웬일인지 나도 모르게 마음이 격동됐다. 첫눈에 키가 훤칠하고 얼굴에 상화로움으로 가득한 ‘젊은이’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함께 간 친구에게 말했다. “저분이 이 공파의 장문인(掌門人,책임자)일 것입니다.” 그는 어찌 그렇게 확정지어 말하느냐고 물어서 직감이라고 말했다. 그 당시는 매우 이상하게 그분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눈앞의 이 분은(사부님) 어디에서 뵌 적이 있는 것 같고 혹은 함께 무슨 일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았으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나지 않았다. 정말로 익숙한 분이셨다! 나는 자세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여겨보았다. 그 분은 매우 평범한 겉옷을 입으셨고 안에는 담황색의 낡은 털옷을 입으셨다.(손으로 뜬 것 같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 털옷에 기운 자리가 있었다) 바지와 구두도 낡은 것이었으나 모두 아주 깨끗했다. 사람에게 주는 이미지는 그렇게 꾸밈이 없고 단정했으며 대범하면서 또한 그렇게 겸손하고 온화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회상6

톈진 설법반에 참가할 때 사부님께서 머무른 여관은 저렴한 곳이었고 매일 바쁘셨으며 설법이 끝난 후에도 많은 일을 처리하셨고 여관에 돌아오시면 9~10시였으며 저녁식사는 라면이었는데 매일 이러했다. 어느 한번 우리는 사부님 신변에서 일하는 수련생과 교류하다가 점심 식사시간이 돼 뭘 사오려고 하는데 무엇을 먹을지 물었더니 즉시 이렇게 말했다. “라면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라면이란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나서 라면이란 글자를 떠올리기도 두렵습니다.” 위대한 사부님께서 중생구도를 위한 생활은 이렇게 간고했다.

사부님 설법반에 여러 차례 참석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부님께서 매우 드물게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용모에 매우 주의하셨고 간소한 차림이셨으며 날씨의 변화가 없는 한 입은 옷은 언제나 똑같았다. 한번은 사부님의 정황을 알고 있는 수련생에게 물어서야 사부님은 손수 밤에 옷을 씻어서 이튿날 또 입으셨으며 새로운 옷은 거의 사 입지 않으심을 알게 됐다. 옷도 매우 적었으며 톈진 설법반에서 사부님의 낡은 구두가 해졌으나(몇 년이나 신으셨음) 아무리해도 새로운 구두로 바꾸지 않으셔서 몇 명의 제자가 억지로 사부님을 모시고 상점에 가서 새로운 구두로 바꿔드렸다.

매번 몇 명의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수련생이 모이면 자연스레 사부님을 떠올린다. 어느 한번 톈진 학습반에서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사부님 신변에서 일하는 수련생들에 대해 왜 사부님을 잘 돌보지 않아 날마다 사부님께서 라면을 드시게 하느냐고 원망했다. 그랬더니 한 수련생이 말을 받았다. “톈진에서만이 아닙니다. 사부님은 늘 라면을 드십니다.” 그는 이어서 사부님께서 공을 전하기 시작할 때 매우 간고했던 이야기를 했다. 그때 학습반에서 수금한 입장료로는 일부 경우에 장소 대관 비용마저 모자랐으며(대관 비용은 참가 숫자로 정하지 않았다) 각종 경비가 매우 부족했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부님께서는 여태 당신이 얼마나 높은지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사부님의 모범적인 행동과 자상함, 상화로움으로 일반적인 기공사가 아님을 느꼈습니다. 저의 마음속에서 사부님은 큰 신선입니다. 사부님께서 저희 지역에서 설법하실 때 저의 집에서 식사하실 것을 거듭 요청 드렸습니다.(그때 사부님께서 머무른 곳은 설법 강당에서 몇 시간 걸리는 거리로 매우 멀었음) 사부님께서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으셨으며 야채를 드셨습니다. 식사를 준비할 때 사부님께 무엇을 드시고 싶은지 여쭈면 단지 ‘여러분이 무엇을 드시면 그걸로 먹으면 됩니다. 번거롭게 하지 마세요, 간단하게 하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한번 사부님께서 웃으시며 ‘저는 당신이 빚은 산둥 큰 찐빵을 좋아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늘 제자를 생각하고 계셨는데 하나는 번거로움을 피하려 했고 둘째는 돈을 쓰지 않게 하려 했습니다.” 이어서 또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 날 점심 식사 후 조금의 요리와 야채스프가 남았습니다. 저녁에 설법반이 끝나서 사부님께서 돌아오셔서 말씀드렸습니다. ‘채소로 요리하는 건 매우 쉽습니다.’ 그러자 사부님께서 ‘남은 것으로 먹으면 됩니다.’라고 말씀하셔서 저는 쉽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저희들이 평소에도 이 정도로 간단하게는 먹지 않는다고 말씀드리면서 속으로 ‘어찌 사부님께 남은 야채스프를 드릴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의 표정은 엄숙하셨고 손가락으로 탁자위에 놓인 남은 밥과 남은 요리(실제로는 야채스프였음)를 가리키며 ‘남은 것으로 먹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조가 매우 긍정적이고 그때는 마치 일종 항명할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날은 사부님의 말씀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께서는 야채스프를 밥에 부어서 여유롭게 드셨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한자리에 앉았던 수련생들은 마음이 시큼했고 나의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사부님!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제자는 천만마디 말로도 사부님에 대한 숭경의 뜻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부님의 일언일행,일거일동은 그렇게 깊은 감동을 주셨고 만약 잘하지 못하면 정말로 사부님의 말씀으로 전하고 몸으로 가르침에 죄송한 일이다.

회상7

CCTV(중국 중앙TV)와 610에서 요언을 날조하기를 사부님은 고등학교 졸업이어서 ‘전법륜(轉法輪)’을 쓸 수 없으며,…… 해서 쓴 것이라고 했다. 이 요언을 듣는 순간 중국 정부가 정말로 망신을 자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CCTV에서 어찌하여 건달같이 거짓말을 하는가! 내가 바로 증인이다! 나는 비할 바 없는 행운으로 ‘전법륜’ 원시적인 초기 녹음테이프 받아쓰기 팀에 참가했다. ‘전법륜’은 우리가 사부님의 창춘(제8회), 지난, 정저우, 다롄 등 학습반의 설법 녹음을 한 글자 한 글자씩 새겨 쓴 것으로 5, 6일의 시간을 들였다. 94년 여름 이 신성한 임무를 받고 나는 조금의 태만함도 없었다. 나는 교육수준이 높지 않아 사부님의 녹음된 설법에서 많은 글자를 쓸 줄 몰랐다. 그리하여 나는 녹음을 틀어놓고 자전(字典)을 펼쳐가며(반복재생기가 없는 상황임) 한 구절 한 구절 중지시키고 한 글자도 빠뜨림 없이 받아썼다. 밤을 새가며 십여 명이 몇 십 시간 만에 마침내 제때에 받아쓰기를 완성했다. 원고는 다시 타자를 하는 수련생에게로 넘어갔고 완성된 후 다시 사부님께 전달됐다. 그때의 격동된 심정, 일의 무게감을 알고 바닥에 꿇어앉거나 혹은 소파에서 받아쓰던 정경을 생각하고(밤에 가족들이 잠들어 나는 작은 현관방 소파에서 작업했다) 다시 TV에서의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보게 되니 이러한 깡패정치집단이 ‘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이 어찌 될 말이겠는가!

원래 나는 글을 쓸 줄 모른다. 하지만 대법제자로서 나는 사부님과 대법의 훌륭함을 적어내야 하는 책임감을 강렬하게 느꼈다. 또한 더욱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고 그런 가소롭고 사람을 속이는 허튼소리를 꿰뚫어보게 해야 한다.그리하여 몇 번이고 결심을 내려 관념의 장애를 제거하고 드디어 문장을 써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계속하여 투고할 것이다. 아울러 내가 알기로는(현재 판결을 받고 자유가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 현재 많은 ‘무사하고 난이 없는’ 대륙 노 수련생들에게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한 사적들이 있는데 매우 감동적이다. 하지만 늘 사람 관념의 장애로, 혹은 사악에게 붙잡힐 수 있는 증거를 남긴다는 생각에 두려워하는 등의 원인으로 감히 전 세계를 향해 사악의 거짓말을 폭로해 대법을 실증하고 사부님의 결백과 위대함을 실증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너무나 깊이 느끼고 있다. 만약 사부님의 그 숭고한 말씀으로 전하고 몸으로 가르치신 것이 나의 뇌리에 깊이 박히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이같이 정념이 강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원인에서라도 진실하고 위대함을 천하에 밝혀 수련생들이 더욱 정진하고 세상 사람들이 더욱 청성해질 수 있게 더욱 많은 노 제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상을 써내기를 건의한다!

 

원문발표: 2003년 2월 13일
문장분류: 온고명금(溫故明今)>견증(1992.5.13.-1999.7.20.)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3/2/13/44494.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3/2/28/326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