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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외우는 중에서 관념을 개변하다

글/ 우크라이나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밍후이왕에 올라온 수련생들의 법을 외운 소감을 모두 보았습니다. 법을 외우는 방식에는 한 구절씩 외우기, 한 단락씩 외우기, 혹은 한 장(章節)씩 외우기 등이 있었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모두 마음에 들어와야 하고, 글씨를 빠뜨리거나 추가하거나 틀리게 외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법을 외울 때 외운 법이 마음에 똑똑히 들어오도록 마음을 썼습니다. 그러므로 눈을 감고 있어도 글씨가 마음에 새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자신이 법을 외우고 있고, 법에 용해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법을 끊임없이 외우면서 큰 개변이 있었는데, 바로 마음이 넓어진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소한 일로 가족이나 수련생과 다툴 때 어떤 일은 분명 저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르지 못한 사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늘 투덜거렸습니다.

법을 외운 후부터 작은 일에 문제가 발생해 마음이 움직일 때는 부정적인 생각을 잡고 자신을 닦았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담담해질 때까지 늘 사부님의 말씀을 외웠습니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

법을 외우는 중에 자아(自我)를 내려놓다

매체 항목에서 책임자가 저에게 특집보도를 맡겼습니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꼬박 3개월이 걸렸는데, 완성된 내용을 본 수련생은 “첫 시작에서 주제와 맞지 않고, 줄거리가 분명하지 않고 흐트러져 있으며, 언어에 감화력이 없다.”며 다시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수련생의 요구대로 수정했습니다. 그러나 수정된 걸 검토한 수련생은, 먼저 것 보다는 낫지만,중국어 문법도 맞지 않고 그 외 많은 부분이 미흡하다며 전면적으로 수정하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때 자존심이 많이 상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잘하지 못한다고 해도, 난 7~8년간 보도 업무를 해온 사람인데, 그렇게 타박을 받을 만큼 무능하지 않다. 이건 수련생이 생트집을 잡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사부님 설법을 배울 때 “실제로 모든 기반을 다 잘 다져 놓았으므로, 당신이 정념으로 가서 이 일을 하기만 하면 되는데, 바로 그 정념이 없다.”[2]는 부분을 보았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제가 정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수련생이 말한 대로 열심히 수정했고, 정념을 강화하며 관념을 개변시켰습니다. 그땐 정말 많은 복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저에게 수많은 지적을 하고 수정을 하라고 건의해준 수련생이 참으로 착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달려가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특집보도를 마쳤습니다. 속인이라면 당연히 집필자가 가장 수고했고, 그의 역할이 가장 컸으므로 공로도 가장 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꾸준히 법을 외우는 가운데서 수많은 관념을 개변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집필자가 아무리 고생스러웠다고 해도 펜만 좀 움직였을 뿐이며, 일체는 대법이 부여한 것이고 모두 대법의 자원(資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늘의 공을 탐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끊임없이 법을 외우면서 신(神)이 마땅히 구비해야 할 상태를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신이나 부처님의 경지에서 누가 가장 고생스럽고 위덕이 큰 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심성만 본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법을 외우면서 마음을 넓히다

어느 날 ‘천목(天目)에 관한 문제’[1]를 외울 때, 사부님께서는 “心性(씬씽)이 올라오면 다른 것들도 모두 따라 위로 올라오며, 心性(씬씽)이 올라오지 못하면 천목의 그만한 정화지기도 보충될 수 없다”[1]고 하신 말씀을 보고, 항목 중의 한 가지 상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항목에서 서로 잘잘못을 따지거나 제1책임자의 건의에 따라 멤버들이 문장을 대량으로 수정하게 되면 원고가 전혀 딴 모습으로 변하는 모순과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지만 대법의 지도로 밀레르빠의 한 상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집을 지을 때 그가 잘못 짓든, 제대로 짓든 모두 허물기만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옳고 그름은 신의 눈에는 모두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설사 그가 한 것이 옳더라도 그의 업력을 제거하기 위해 마르파(馬爾巴)는 여전히 그에게 집을 허물고 다시 지으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제7층까지 짓고 아직 완성하지 못했을 때, 그의 사부는 그에게 다시 큰 여관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밀레르빠가 힘들게 7층까지 지은 것은 물론, 예전에도 여러 채의 집을 완성했을 때 사부는 모두 헐어버리고 다시 집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때까지 집을 지었다 헐어버린 시간과 정력의 소모는 수련의 의미를 잃은 것이 아닙니다. 또 그가 집을 지었다 허물었다고 해서 수련의 목표가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정법의 각도에서 볼 때 오히려 수련의 정화지기가 더욱 잘 보존될 수 있었는데, 그건 그가 고생하며 소업하고 심성이 제고되었기에 정화지기 물질은 오히려 다시 보충된 것입니다.

어느 날 아침, 수련생과 함께 진상자료를 만들 때였습니다. 수련생이 그린 그림이 아주 희미해서 마치 안개가 한 층 낀 것 같아 글씨도 똑똑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똑똑히 그려야 인쇄를 해도 선명하게 나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수련생은 “지금 이런 것이 유행이다”라고 했습니다. 순간 화가 치밀었습니다. ‘사부님께서도 법에서 인상파나 추상파 예술이 모두 변이된 것이라고 하셨는데 왜 이런 걸 따라하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생이 언짢아하는 모습을 보고 또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그가 틀렸는데, 그래도 내가 그를 인정하고 포용해줘야 하는가? 그러면 좋고 나쁨, 선과 악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이 생각이 떠오르는 동시에 다른 한 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대각자의 넓은 흉금이었습니다. 그는 사람 중의 일체 잘못에 대해 따지지 않고, 오직 이 사람이 수련하려고만 하면 무조건 가지해줍니다. 이런 생각을 한 후 저의 태도와 말투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확실히 제가 잘못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얼른 태도를 고치고 다시 돌아보니, 그 수련생이 그림을 아주 선명하게 그리고 있었습니다. 법을 외우면서 사유가 넓어졌고, 표면에서 뛰쳐나와 문제의 본질을 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표면의 잘잘못에 집착하지 않자 마음이 차츰 넓어진 것입니다.

자아를 내려놓고 자비를 느끼다

어느 신전(神傳) 문화 항목을 할 때였는데 처음에는 신심이 가득했지만 중도에 싫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싫증의 배후에 뭔가를 찾아보았습니다. 그 뒤에는 사부님의 성스러운 배치에 대한 배척이 있었지만 무의식적이었습니다. 신을 배척하는 요소가 저에게서 이렇게 체현된다는 것을 단번에 깨닫고, 싫증나는 문제는 해결했지만 항목은 여전히 진척이 아주 느렸습니다. 어느 날 ‘어떻게 해결할까?’ 하고 고민하는 중에 갑자기 귀청이 떨어질듯 한 음향기기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진동에 건물도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소음을 듣게 되면 괴롭고 귀찮았는데, 그날은 소음을 들으면서 ‘무엇이 자비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겉보기에 교란을 받았을 때, 다른 사람의 표현이 저의 인식과 크게 차이 날 때 모두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를 이해해주고 관용해주는 것이 자비의 다른 한 층의 함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깨닫자 소음이 즉시 멈추었고 마치 아무 것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당시 진정으로 정(情)에서 뛰쳐나와야 자비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건 더욱 아름답고 미묘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이해하고 특집 보도를 하나 완성했습니다.

‘스승은 수련생에게 어떤 것들을 주었는가’[1]를 외울 때 사부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연마(煉)해 낸 그 공은, 극미시하에서, 그 공의 미립자상에서 당신의 형상과 똑같다. 世間法(쓰젠파)를 벗어났을 때 당신은 곧 불체(佛體) 수련이다. 그 공은 모두 불체 형상으로서 연꽃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매우 아름다운데, 매 작은 미립자상에서 모두 그렇다.”[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을 외울 때 부동한 층차의 ‘자아(自我)’에 대한 집착을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당부했습니다. 이 ‘자아’의 관념에서 내보내는 자신을 실증하려는 일체의 생각을 내려놓아야만, 수련해 낸 공이 비로소 순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녹화를 재생하듯이 자신이 항목을 하는 과정에서의 일부 구체적인 표현들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매번 항목을 하기 전 늘 ‘나는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할 것이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끔 배치는 잘했지만 해내지 못해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으므로 늘 이런 것 때문에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서야 그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건 아직도 뭘 하기 전에 그 후천적인 ‘자아’의 일체를 첫자리에 놓고, ‘자아’의 일체 생각을 중요한 위치에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기점에서 대법 항목을 하면 당연히 결과가 정반대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된 기점 때문에 원점에 머물러 있게 되어, 항목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항목을 하려면 비록 사람 이 한 층의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기는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진정으로 성공한 항목은 수단이 얼마나 좋았고, 누가 얼마나 능력을 발휘했는가가 아니라, 정체수련이 법의 요구에 부합되고 심성이 요구에 도달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예전에 법을 외울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천체회전에 관한 부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공할 때 역시 그런 광경이었는데 마치 별이 회전하고 천체가 회전하는 광경이 아주 방대한 것 같았습니다. 그때 자신을 돌아보니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작디작은 한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이토록 보잘 것 없는 인간이 그렇게 강한 자아와 많은 관념을 갖고 있으니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대조해 보면서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법륜(轉法輪)’을 몇 번 외우면서 여러 가지 함의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잘 닦아야 진정으로 남을 위할 수 있고,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하고, 집착을 버려야 남을 위하는 상태로 개변될 수 있으며, 자아를 내려놓고 남을 포용하는 것 역시 남을 위하는 한 층의 함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원문발표: 2018년 7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7/12/3709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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