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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환경 속에서 수련하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09년에야 정식으로 대법수련에 들어왔다. 작년 신정 후 시아버지가 과로(오토바이가 고장 나서 밀었는데 무리하셨음)와 당뇨로 거동이 불편해 우리집에 오셨다. 건강할 때는 혼자 계셨는데 설 때나 온 가족이 며칠 모이곤 했다. 이번에 함께 오랫동안 생활하니 갈등이 곧 나타났다.

시아버지를 편히 모시기 위해 남향 쪽 큰 침실을 시아버지께 양보하고 작은 침실은 아이가 사용했다. 아이는 방학을 해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남편은 객실 침대, 나는 바닥에서 자기로 했다. 우리는 연공인이기에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시아버지가 입원하셨을 때 번거로워하지 않고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드렸다. 마침 설 연휴 때라 출근하지 않아도 됐다.

시아버지는 열 몇 살에 입대해 몇 십 년 군 생활을 하셨다. 머릿속에 주입된 사당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 “너희는 마음대로 연마해. 난 상관하지 않아. 단 나에게 이러한 것을 얘기하지 마라. 감정을 상하고 싶지 않구나.” 그리고 매일 식사가 끝나면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 평서(評書: 한 사람이 모든 역할을 맡는 민간 예술)를 들으신다. 어떤 때 우리가 거실에서 법공부를 하다가 소리가 커져도 싫어하신다. 우리는 곧 작은 침실에 가서 가능한 한 작은 소리로 법을 읽었다. 나날이 쇠약하고 말라가는 노인을 보면서 나는 시아버지도 대법을 배우고 크나큰 불은(佛恩) 속에서 혜택을 받고 병이 없이 온 몸이 가벼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6월에 시아버지는 또 입원하셨다. 이번에는 그래도 혼자 일상생활을 돌볼 수 있어서 우리가 매일 모시지 않아도 되었고 출근에 지장이 없었다. 나는 매일 전화하고 안부를 물었다. 틈이 나면 시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먹거리를 사서 문병을 갔다. 그날은 점심에 비가 내렸다. 나는 또 음식을 갖고 병원에 갔다. 시아버지는 말로는 오지 말라고 하지만 나를 보고는 매우 기뻐하셨다. 한 병실에 있는 다른 두 환자의 얘기도 하셨다. “남쪽 병상의 환자는 자네 현 사람인데 내일 베이징에 치료하러 가네.” 이 역시 얻기 힘든 기회인지라 나는 얼른 다가가서 진상을 알리고 속으로 성심껏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眞)ㆍ선(善)ㆍ인(忍)은 좋습니다.”를 염하면 병이 빨리 낫는다고 알려드렸다.

이때 시아버지는 극력 날 말리셨지만 난 조급해하지 않고 해석해드렸다. “아버님, 화내지 마세요. 화내시면 건강에 안 좋아요. 저도 사람을 구하는 거예요. 좋은 일을 하는 거예요.” “무슨 사람을 구한다고, 누가 믿는다고! 얼른 가봐라, 안 가면 나 밖에 가서 비를 맞을 거야.” 나는 가급적 평온하게 말씀드렸다. “아버님, 화내지 마시고요. 밖에 나가서 비 맞으시면 더구나 안 되세요. 건강에 안 좋으세요. 그럼 저 먼저 갈게요. 또 보러 올게요.” “가서 오지 마라. 보기 싫으니!” 시아버지는 화가 나서 말씀하셨다.

저녁에 법공부팀에서 이 일을 꺼내자 수련생은 내 잘못이라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진상을 알리는 것도 이지적이고 지혜롭게 알려야 한다면서 이튿날 다시 병원에 가서 노인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다. 이는 분명히 사부님께서 수련생 입을 통해 나를 나무라시는 것이다. 이튿날 시아버지의 모진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은 여전히 좀 언짢았다. 자신을 잘 찾아봐야겠다. 다른 사람이 나를 좋지 않게 대하면 머릿속에 온통 그 사람의 좋지 않은 것으로 가득 차 속인과 다투는데 이건 쟁투심이 아닌가? 시아버지는 진상을 모르시고 당문화의 피해자인데 어떻게 내가 화를 낼 수 있지? 나는 참지도 못한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노인에게 잘 대하는 것은 모두 표면적인 것으로 내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말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는데 이는 명을 구하는 마음이 아닌가? 찾았으면 이런 부패한 물질을 철저히 제거하고 해체해야 한다. 문제의 근원을 제거하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시아버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시면서 나를 대해 주셨다.

얼마 전에 ‘밍후이주간’ 교류문장을 한 편 읽었는데 대략적인 뜻은 이러했다. 수련생이 진상을 모르는 세인의 신고로 경찰에게 파출소로 납치됐다. 수련생은 경찰에 대해 어떤 생각도 없고 오로지 선(善)만 남았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는 어떠한 흉금인가. 일체 나쁜 마음, 나쁜 행위를 녹여낼 수 있는데, 나에게는 바로 이런 선(善)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시아버지를 대하는 문제에서 나도 이런 마음으로 대해야겠다. 나중에 시아버지가 어떤 말씀을 하시든, 무엇을 하시든 나는 더 이상 어떠한 생각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시아버지에게 좋게 대하고 선하게 대했다. 무슨 일을 해도 시아버지의 각도에서 생각했다. 우리 가족은 점점 화목해졌다. 나에게 선을 가르쳐주신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린다.

법을 늦게 얻었기에 무슨 일을 하든지 늘 노수련생과 비교하기 좋아했고 뒤처져서 원만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다. 재빨리 집에 자료점을 설립했다. 자료를 만들고, CD를 굽고, 진상지폐를 인쇄하고 진상스티커를 만들었다. 나가서 대면해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며, 현수막을 걸고, 음성전화를 걸며, MMS를 보내고, 아무튼 수련생들이 하는 건 나도 다 할 수 있었고 남보다 뒤처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이를 우쭐거리며 뽐냈다. 일하는 마음, 질투심, 쟁투심, 과시심, 환희심, 명리심 등 사람 마음이 머릿속에 가득했지만 스스로 몰랐고 자신을 수련할 줄 몰랐다. 일하는 것을 수련이라 생각하고 자신은 매우 정진하며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여겼다.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꿈속에서 점화해 주셨다. 길을 잘못 갔다고, 온통 자갈이고 험난한 여울이며 길이 없었다. 시험을 보면 답안을 베꼈고 스스로는 할 줄 몰랐다. 가족 수련생도 여러 차례 나를 설득했다. 그때는 어찌된 영문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두 번이나 사악에게 박해를 당했다. 큰 굽은 길을 걸었다.

이렇게 강한 일하려는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내가 어렸을 때 집안 성분이 좋지 않아 마을에서 괄시를 당했다. 어려서부터 기형적이고 열등적인 성격을 형성해 곳곳에서 무시당하고 여러 방면에서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속으로는 매우 거부했다. 그리하여 기를 쓰고 공부를 했다. 공부로 운명을 개변하고 남보다 뛰어나려 했다. 이후에 뜻대로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한 후 직장을 분배 받아 소위 ‘철밥통’이 생겼지만 기형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생활에 의욕이 없고 자신이 여전히 곳곳에서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며 온종일 마음이 당황스럽고 불안했다. 나중에 드디어 대법을 얻었다. 그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매일 기뻐서 입을 다물 줄 몰랐고 사람만 봐도 웃었다. 너무 행복했다.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내가 대법을 얻었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 알리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그 상태는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환희심이 나온 그런 사람이었다.

그 때 비록 매일 법공부를 하지만 대법에 대조해 자신을 수련할 줄 모르고 그저 기를 쓰고 일을 했다.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간주했다. 지금 뿌리를 파 보니 그 마음은 매우 불순했다.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키려 했고 수련생들의 인정을 얻으려 했으며 자신을 과시하고 속인 중에서 얻지 못하는 명리(名利)를 얻으려 했는데 모두 과시심, 명리심, 질투심이었다. 이것도 대법을 이용해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집착심은 대법은 병을 제거할 수 있고 젊은 방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여겼다. 수련을 통해 동창들 중에서 자신을 과시하려 했다. 그리하여 일을 함으로써 사부님의 인정을 받고 대법의 좋은 점을 얻으려 했다. 이렇게 많은 더러운 사람의 마음을 갖고 어떻게 수련인이라 할 수 있는가?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부끄럽다.

일하려는 마음의 뿌리를 찾아냈으니 그것들을 해체하고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앞으로 수련을 잘해서 순수한 수련제자가 되어 속인 중의 가상에 미혹되지 않고 사람을 많이 구해 사전의 큰 염원을 완성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들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18년 7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7/3/3705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