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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는 것은 구호가 아니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문제에 봉착하면 안으로 찾으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오랫동안 나는 이것을 구호로 삼고 입으로만 안으로 찾는다고 외치면서 문제에 봉착하면 여전히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았다. 다른 사람을 수련시키고, 다른 사람의 수련을 도와주면서도 정작 자신의 문제만은 진정으로 직시하지 못했다. 최근 한 시기 전환의 기미가 보이고 나서야 비로소 안으로 찾는 오묘함을 체험했다.

1. 수련생의 오해로 인해 안으로 찾게 됐다

두 장의 삼퇴 명단에 똑같은 글씨체로 여러 개의 이름이 중복됐는데 그중에 작은 종이에 적혀있는 이름이 원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또 감히 단정할 수 없어(만약 원고를 다시 베꼈다면 보통 주지 않음) 정규적인 종이 위에 적혀있는 이름만 발송하고 이 두 장의 명단은 남겨놓았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명단을 제공한 수련생을 찾아 어찌된 일인지를 물어보려 했지만 모두 모른다고 했다.

한번은 A수련생이 나에게 왔기에 그에게 그 두 장의 명단을 주면서 그들 법공부 팀의 B수련생이 보낸 것이 아니냐고 물어봐달라고 했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B수련생이 이전에 나에게 보내온 한 장의 명단이 글씨가 매우 예뻤고 또 이 두 장 명단의 글씨체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A수련생이 나에게 와서 명단을 B수련생에게 보였는데 그가 화를 내면서 그가 보낸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흥분해서 “그가(나를 가리킴) 왜 나를 찾아요? 나는 그에게 무엇을 준 것도 없고, 연락한 적도 없는데 찾지 못하겠으니 나를 찾네요!”라고 말하고 또 전에 배포한 자료가 버려진 것도 자기를 찾아와 묻는 수련생이 있었다는 등 말을 했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이 움직였다. A수련생 앞에서 원망하는 B수련생이 정말로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아닌데 화를 내다니, 그가 보낸 것이 아니더라도 그를 찾아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A수련생이 떠난 후 나는 가슴이 몹시 답답했는데 갑자기 생각이 바뀌면서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수련인이다. 사부님께서 일찍이 우리에게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으라는 법을 알려주었는데 내가 왜 자신에게서 찾는 법을 잊었을까? 이런 일에 부딪힌 것은 틀림없이 내가 닦을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1) 표면적으로는 B수련생이 나를 오해했지만 내 첫 일념은 정념으로 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원망하고 듣기 싫어하는 사람의 이치로 가늠했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사람이 내게 한 나쁜 말은 들어오지 않았다. 수련의 이치를 잊어버린 나의 이런 표현은 자신이 수련을 착실하게 하지 못했고 경지가 아직도 사람 여기에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정말로 부끄럽다!

(2) 그에게 물어본 것이 그를 탓한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B수련생은 부정적인 사유로 이 일을 이해했다. 왜 수련생의 이런 반응을 나에게 보여주게 했을까? 나는 그의 부정적인 사유가 바로 나의 부정적인 사유를 겨냥한 것이 아닌지 생각했다. 나는 항상 무엇이든 먼저 상대방의 결점을 보는 성향이 있다. 이번에 그가 나를 오해했지만 나도 다른 수련생을 오해한 적이 있었고 또 속인도 오해한 적이 있었다. 또 이전에 나쁜 마음으로 수련생과 타인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상대방은 그런 뜻이 아닌데도 남들처럼 복잡하게 많이 생각했다. 출발점은 자신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었다. 중생에게 정념을 보태주지 않았고 대법제자가 있어야 할 선념이 부족했다. 이때 다른 사람이 부정적인 사유로 나를 생각할 때 나는 반드시 부정적인 사유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의식했다. 그것은 진짜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법제자는 에너지가 있는데 부정적인 사유로 남을 생각하고 일을 생각하면 자신을 해치게 된다. 부정적인 사유는 수련에서 걸림돌이다. 그것이 다시 나를 통제하려 망상할 때 그것을 붙잡아 해체시키고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마음속에 광명과 정념이 가득할 수 있고 그것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

(3) B수련생이 흥분한 배후에는 수련생 내부로부터 받은 상처를 아마 그가 느꼈을 것이다. 배포할 자료를 버리고 대법자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말하면 어느 대법제자라도 이러한 오명을 등에 짊어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거나 혹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그렇게 했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그에게 물어본다면 그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일처럼 B수련생과 관계가 없는데도 다시 의심을 받으니 그가 흥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경 수련 중의 사람이고 또 아직도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못했기에 신의 표준으로 그를 요구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높은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사부님은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할 것을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B수련생이 ‘상처를 입은 후’ 나를 만나도록 했는데 내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이전에 몰래 뒤에서 다른 수련생을 의논하거나 또 B수련생에 대해 나쁜 말을 에둘러서 한 적이 있다. 뒤에서 다른 수련생을 의논하면 수련생 사이의 간격을 쉽게 조성하게 되고 비난을 늘어놓으면 더욱 예리한 상처가 될 수 있다. 여태껏 자신이 뒤에서 함부로 혀를 놀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정말로 다시금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 일언일행(一言一行)을 자세히 살펴보고 어떻게 해야 진정한 대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할 것인지 생각했다.

이번 일을 돌이켜 보니 수련생 사이에 함께 지내면서 서로 상대방을 많이 고려하고 반드시 선량해야 하며 따뜻하게 대해야지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중임을 짊어진 대법제자는 조사정법의 중요한 이 시기에 수련생 내부에서 손실을 조성해서는 안 되며, 수련생간에 사이가 벌어지도록 하려는 구세력의 음모가 실현되게 해서는 더욱 안 된다.

(4) 수련생이 나에게 삼퇴 명단을 넘겨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잘 확인하지 않았다. 명단에 이상이 없는지, 누가 주었는지 물어보지 않아 수련생들에게 번거로움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은 자신이 무책임한 마음과 일을 대충하는 등 마음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런 것을 찾았을 때 불쾌했던 내 마음은 말끔히 사라지고 더 이상 답답해지지 않았다. 모두 내 잘못인데 B수련생이 화를 낸다고 탓하면 되겠는가. 나를 도와 제고시키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는 약간의 원망도 없었고 오히려 B수련생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는 그렇게 경건하게 사부님과 대법을 믿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가 어찌 함부로 사부님 제자의 결점을 들춰낼 수 있는가? 명백해지니 모든 곳이 갑자기 확 트이면서 안으로 찾는 오묘함을 느끼게 됐다. 제자에게 안으로 찾을 수 있는 기회와 인연을 주신 사부님께 감사를 드린다. 당시 나는 이런 글을 적었다. “내 삶의 하루하루는 모두 수련하는 하루이고, 내 삶의 일분일초는 모두 타인을 위한 것이다.”

영원히 수련생과 타인을 선하게 대하고 가장 성실한 마음으로 타인을 대해야 한다고 나는 깨달았다.

2. D수련생과 말다툼을 한 후 안으로 찾게 되다

C수련생이 불법 재판을 받게 되자 D수련생은 가족과 협상해 무죄변호를 할 변호사를 현지에서 처음으로 선임했다. 변호사를 늦게 선임하는 바람에 아주 짧은 시간에 법정에서 변호할 서류를 준비해야 하고, 또 법정에서 수련생이 자기변호를 하거나 가족이 변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D수련생이 이 일을 처리하기에 나는 그와 상의해 내가 무죄변호 답변서를 쓰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쓰겠다면서 나는 여러 일에 협조하라고 했다. 예를 들면 스티커를 붙이고. 진상편지를 쓰고, 자료를 배포하고, 발정념을 하는 등이다. 나중에 나는 또 그를 찾아가 내가 쓰면 안 되겠는지 묻자 자기가 지금 쓰고 있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엎치락뒤치락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에게 참고로 써줄려고 하다가 또 압력이 너무 클 것 같아 쓰지 않았다. 그가 다 쓴 다음 C가족과 우리들에게 읽어주었는데 너무 길고 설득력이 없어 다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C의 가족들은 원고대로 읽지 말고 상황에 따라 말하면 된다고 했다.

이후에 변호사는 가족들이 가서 말하는 것은 좋지 않기에 자기가 변호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D수련생에게 C를 대신해 내가 무죄변호 답변서를 쓰겠다고 하자 D는 갖고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변호사는 재판 전에 D수련생이 C를 대신해 써준 무죄변호 답변서를 갖고 구치소에 가서 수련생을 만나보았다. 그런 후 법정에서 C는 자신의 무죄변호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포기했다. 현지에서 처음으로 정의로운 변호사가 법정에서 변호해 사악을 겁먹게 했지만 C수련생은 자신을 대신해 무죄변호를 하지 않아서 유감스러웠다.

법공부 팀에서 나와 D수련생은 답변서 일 때문에 서로 흥분해 다투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이유를 말했지만 나는 내가 그보다 글을 더 잘 쓰는데 답변서를 쓰지 못하게 했다며 그를 원망했다.

집에 돌아온 후 사부님의 법상 앞에 서서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수련인이 말다툼 하는 것은 분명히 틀린 것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답안을 주셨다는 것을 느꼈다. 전체 과정 중에서 나는 자아에 너무 집착했다. 내가 그보다 글을 더 잘 쓴다고 생각했고, 내가 잘 쓴다는 것을 실증하고 싶었기에 답변서에만 치중했다. 내가 기어코 쓰려고 하는 출발점은 수련생을 구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또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사람과 모든 방청객들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자신이 잘 쓴다는 것을 증명하고, 자아를 증명하며, 인정을 받으려 했다. 나에게서 제거하지 못한 과시심이 자꾸 튀어나와 쓰지 못하게 하면 원망했는데 오히려 집착을 더 불러일으켰다. 사실 나는 수련생에게 써줄 수 있었지만 강렬한 사람 마음으로 인해 집에서도 쓰지 못했다. 수련생이 만약 내가 쓴 것을 보고 더욱 적절하게 내 것을 사용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구세력의 장애를 돌파할 수 없었고 또 다른 요소들까지 더해져 결과는 뜻대로 되지 못했다.

사실 자신이 기어코 뭔가를 하려 할 때는 이미 문제가 생겨 깨달아야 하는데 당시 집착 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나는 늘 D수련생의 잘못을 생각했다. 늘 고집을 부려 마음속으로 평온하지 못했는데 수련인의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내 일체 능력이 사부님과 대법에서 온다는 것을 잊었다. 자기의 공로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만약 사부님께서 주신 내 능력으로 자신을 실증하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그러지 못하니 나는 곳곳에서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찾고 사부님 법상 앞에서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과시하지 말아야 하는데 너무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드시 수련생과의 관계를 잘 처리하고 묵묵히 원융하고 자아를 내려놓겠습니다. 사부님 말씀을 듣고 사부님의 편에 서서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부정하겠습니다. 저는 모든 수련생들이 모두 자신을 성취하고 질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튿날 법공부 팀에서 나는 D수련생에게 사과하고 진심으로 그에게 내가 잘못했고 내가 너무 자아에 사로잡혔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간격은 사라졌다.

3. 수련생의 의혹을 받고 난 후 안으로 찾게 되다

오랫동안 함께 있던 M수련생이 수련 중에서 큰 난에 부딪혔다. 난을 돌파하는 중에서 매우 힘들어 나와 다른 두 수련생에게 그를 도와 발정념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대답했지만 대답이 시원스럽지 못했다. 이후에 M수련생은 몇 번이나 나에게 내가 그를 도와 발정념을 해주었는지 물었다. 그러면서 다른 수련생이 그를 도와 해준 발정념이 작용을 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둘의 관계는 가장 좋은데 무슨 이유로 그가 나에게 의심을 품었을까? 나는 그가 나의 수련상태에서 느낀 것이라고 의식했다.

안에서 자신을 찾아도 많은 일들에서 심혈을 기울이지 않아 현재의 수련상태에 처했다. 내가 수련을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분초를 다투어 사람을 구하고 자신을 수련하는데 나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해서 무슨 일을 하나 좋은 상태가 없었다.

예를 들면 수련생과 함께 지퍼 백에 진상 소책자를 넣을 때 나는 행동이 너무 느려 수련생은 내가 억지로 일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수련생과 함께 농촌에 갈 때도 내가 너무 늦게 걸어 수련생은 가다가 잠깐 멈춰 나를 기다리기도 했다. 집에는 사람이 적어 집안일을 쌓아놓기도 하고 법공부를 오래해도 실속 없이 했다. 무슨 일에나 무관심하고 무감각하여 반응이 느렸다. 기운이 없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는데 왜 이러는지 몰랐다. 나는 막연했고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은 대법제자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의 장애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개변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먼저 생각한 것은 여기에서 구세력이 나를 박해하고 있는데 나는 박해를 부정하는 것에 주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으르고 발정념을 하기 싫어하기에 마를 키운 것이다.

지난 몇 해 동안 비록 사악의 감옥에서 박해받지 않았지만 많은 ‘함정’에 걸려들어 줄곧 좋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무감각해졌다.

법공부를 잘하지 못해 줄곧 강렬한 집착을 가지고 법공부를 한다는 것을 최근에야 발견했다. 법 중에서 고층법리를 깨달으려 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 자신이 진정으로 대법을 얻는데 방해가 됐다.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삼았다. 현지에는 수련생이 적은데다가 나올 수 있는 수련생이 더욱 적어 자신만이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일하려는 마음, 과시심이 더 커졌다. 사람 마음은 구세력이 박해하는 구실을 더욱 찾게 된다. 나는 현재 내 수련이 구세력과 관계가 없으며 오로지 사부님만이 관여하시고, 나의 부족한 점은 착실하게 수련하는 과정에서 법에 따라 바로 잡을 수 있고, 다른 생명이 배치하거나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했다.

나는 내 행위 배후에 있는 이기심, 자기만 관심하고 자비가 부족한 것을 보았다.

자신의 문제를 의식하고 나는 그날 M수련생의 집에 가서 함께 법공부하고 발정념을 하려 했다. 일을 끝마치고 바로 그를 찾아가려고 할 때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그 이기심을 버리려면 그와 함께 법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자신을 고려하지 않고 비에 흠뻑 젖으면서 갔는데 별로 불편한 느낌이 없었고 큰 비는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듯했다. 나는 사심이 없는 아름다움을 체험했다.

내가 소책자를 만들 때 행동이 느려 수련생은 내 사상이 너무 복잡한 게 아닌지 일깨워 주었다. 정말로 나는 표면적으로는 책자를 만들고 있었지만 쉴 새 없이 무엇이나 생각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 잡생각을 억제하자 책자 만들기에 전념하게 됐고 또 허심탄회하게 수련생이 일하는 절차를 보고 정말로 아주 빨리 하게 됐다. 그러자 수련생은 내가 느리지 않다고 말했는데 정말로 느리지 않게 됐다.

마을에서 자료를 배포할 때 협력한 수련생은 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지 말게 좀 빨리 하자고 당부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빨리 하자고 생각하자 정말로 아주 빨리하게 됐다. 항상 수련생이 먼저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것이 바뀌어 내가 오히려 앞에서 그를 기다리게 됐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빨리 걸을 수 있느냐고 놀라서 말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빨리 걷게 해 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바르게 가기만 한다면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다 제자에게 주신다는 것을 나는 지금 알았다.

4. 꿈에서 우리 팀의 수련생이 너무 극단적인 것이 나타나자 안으로 찾게 되다

잘 아는 수련생이 꿈에서 우리 팀의 수련생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너무 과격하게 통곡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수련생의 말에 놀란 나는 자신의 수련의 길이 잘못됐다는 것을 의식했다. 속인사회를 조금 벗어났어도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 수련에는 지름길이 없는데 나는 늘 작은 길로 가려고 했다. 사부님이 배치하신 하늘과 통하는 큰길로 가야야만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우리 몇 사람은 각자 극단적인 곳이 있다. 표면적으로 수련과 생활이 분리되어 있어 속인사회와 별로 접촉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정진’하는 것 같지만 바로 잘 닦지 못한 면이 표현되어 속인사회에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대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대법에 먹칠을 하게 되고 진상을 알리는데 장애가 된다. 동창 친구들과 모두 왕래가 없고, 사회상의 어떤 일도 모르고, 외모도 꾸미지 않고 있는데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수련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그런데 나는 늘 자신의 행위를 핑계 삼아 속인사회와 벗어나는데 어찌 주역으로 될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역이 되라고 하셨는데 나는 오히려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다.

자신이 사회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속인사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초월하는 것이라고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는데 앞으로 나는 정말 이 방면에서 많이 보완할 것이다.

이전의 수련에서는 밖으로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안으로 찾는 것이 구호가 아니라는 것을 방금 알게 됐지만 자신에게 쌓인 문제가 아직도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법을 얻은 초기에는 대면하고 해결해야 할 것을 계속 숨겨오면서 집착심을 키웠다.

집착을 찾는 데만 그치지 말고 중요한 것은 반드시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다. 한 수련생은 나에게 “너무 늦어요!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제자의 상태를 보시고 몹시 우려해 수련생의 말을 이용해 제자를 재촉하시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수련의 길에서 용맹 정진해야 한다!

원문발표: 2018년 6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6/12/3687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