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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수련 24년과 심신 건강

글/ 중국 대법제자 수핑(舒平)

[밍후이왕] 속담에 ‘큰 재난을 겪고도 살아남으면 훗날 반드시 복이 따른다’라는 말이 있다. 90여세 아버지께 들었는데 내가 2살 때 큰병에 걸렸는데 우연히 한 할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도술을 좀 알고 만나려 해도 만나기 어려운 분이었다. 내가 죽어가고 있을 때 이 할머니가 마침 우리집에 왔는데 많은 사람이 무엇을 의논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날 살려보겠다며 바늘을 찾아와 연속 내 몸에 200번 찔렀다. 그러자 나는 갑자기 깨어났고 죽음을 면했다. 10살 때 또 비장비대에 걸렸는데 집안에 형제자매들이 많고 어려워 치료할 돈이 없어 억지로 견뎌냈다. 1957년 봄에 전염병이 돌았는데 중학교를 다니는 나는 또 전염병에 걸렸고 일주일간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어떤 동창은 죽음의 신에게 생명을 빼앗겼지만 나는 또 살아남았다.

지금 70여세인데 주불(主佛)의 은혜를 받아 대법을 얻었고 건강을 얻었고 정신이 맑다. 이것은 훗날의 복이 아닌가?

1. 신기한 효과

1942년에 태어났고 1950년에 학교를 다녔다. 12년간 학교생활 중 공산당 문화를 많이 주입받았기 때문에 신이나 부처를 일률로 믿지 않았다. 그러나 좋은 일을 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신신당부를 깊이 기억하고 있었다. 35년간 교육계에 종사한 후 ‘명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 밤낮없이 일을 해 몸을 망가뜨렸다. 5개의 심장건강지표가 다 불합격이고 위장병, 신경성두통, 인두염, 관절염 등 질병이 있어 사무실 책상 위에 약이 한가득이었다. 언제나 하루 살면 하루가 적어지는 것 같았다.

1994년 3월 2일에 개학 연설문을 쓰고 있는데 옆 테이블의 한 교사가 “매일 머리가 아프고 또 좋은 기공을 찾지 못했다고 했잖아요. 우리 시에 유명한 기공대사가 오셨다고 들었어요. 아랫배에 파룬을 심어주셔서 24시간 계속 돌고 연공할 시간이 없으면 파룬이 당신을 연공시키는 ‘상승공법(上乘功法)’이라고 해요”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듣자 마음이 확 트였다. 10년 전에 들었던 ‘상승공법’을 드디어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중의 일을 놔두고 자전거를 타고 신청 장소로 달려갔는데 뜻밖에 신청하는 기공이 여러 개 있었다. 내가 조급한 것을 본 한 사람이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다. 나는 기공을 배우려고 신청하러 왔다고 했다. “무슨 기공이요?” “파룬궁을 배우려고요.” 나는 이렇게 순조롭게 신청했다. 이튿날(3월 3일) 8시에 지역 군사 예당에 가서 사부님의 설법을 들어야 했다. 평소 자전거로 가면 30분 걸리는데 그날은 어떻게 된 일인지 자전거가 감히 타지 못할 정도로 가벼웠고 한쪽 머리도 아프지 않았으며 주변 환경도 아주 똑똑히 보였기에 20분도 안 되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부님께서 강단에 오르시고 하신 첫 말씀은 “강연을 듣기 위해 수련생이 5위안을 냈다고 들었는데 저는 한 푼도 받지 않습니다. 오늘은 무료로 여러분에게 공(功)을 갖고 강연을 하려 합니다”였다.

사부님의 모든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발을 구르라고 하셨고 사부님께서 몸을 조절해주시자 온몸에서 열이 나고 아주 편안했으며 한쪽 머리도 아프지 않게 됐다. 나는 이것이 진작 내가 찾으려 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수업을 듣는데 자꾸 졸렸다. 이렇게 좋은 법인데 왜 자꾸 졸리냐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부님께서 “그의 머리 안에 병이 있어 그에게 조정(調整)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조정하면, 그는 전혀 견뎌내지 못한다. 그래서 반드시 그를 마취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데,”[1] “그는 잠을 달콤히 자지만 도리어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듣는다.”[1]라는 설법을 듣고 원인을 알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처럼 몇 년간 내게 고통을 가져다준 두통이 단번에 나았고 24년간 약 한 알도 먹어본 적이 없다. 이것은 기적이 아닌가?

속인 중의 명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너무 강했기에 잘 먹지 못하고 잠을 잘 잘 수 없어 위장병이 심해졌던 것이다. 보통 아침에는 밥을 먹지 못했다. 조금 먹어도 속이 쓰렸고 어떤 때 물을 마셔도 시원해지지 않았다. 중의학과 서양의학을 다 해봤는데 위와 입에 다 문제가 있다고 했다. 스스로도 좋지 않다고 느꼈다. 그런데 사부님의 수업을 두 번 듣고 나니 위장이 괴롭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나의 연공하는 신심을 증가시켜 주시기 위해 나흘째 아침 6시 20분에 깨어나려 할 때 내 가슴에서 핏덩이를 꺼내 가시는 것을 보여주셨다. 자신의 눈이 믿어지지 않아 연속 3번이나 눕고 또 일어났지만 사부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내 침대 옆에 앉아계신 것이 보였다. 꺼낸 핏덩이를 물이 있는 대야에 넣으셨고 동시에 바로 이 핏덩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부님께 ‘이거 하나입니까?”라고 반복적으로 여쭈었다. 사부님께서는 웃으시며 “이 한 덩이 뿐이다”라고 하셨다. 분명히 깨어있었기에 이건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시 어떻게 표현해야 할 줄 몰랐고 다만 남편에게(남편도 함께 사부님의 강연을 들었음) 이건 정말로 대단한 기적이라고 말했다.

당시 속이 텅 빈 것 같아 아침에 찐빵 하나에 밥 한 사발, 찰떡 하나, 계란 하나를 먹어서야 배가 부른 것 같았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24년이 됐지만 위장이 괴로운 적이 없다.

3월 10일은 우리 지역에서 사부님 설법이 끝나는 날이고 8일에 10강 수업을 하셨다. 끝나기 이틀 전에 수련생은 사부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했다. 현지 기공협회에서는 사진을 1인당 8위안 받겠다고 했는데 사부님께서 아신 후 외지 수련생의 경제 문제를 배려해 수련생 중에 이 방면의 기술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수련생들은 재료비만 내고 되도록 적은 돈을 쓰자고 하셨다. 마지막에 수련생들은 1위안만 내고 소중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아주 힘든 일이지만 사부님께서는 사진을 찍겠다는 10팀 수련생을 모두 만족시켜 주셨다. 사부님께서 차를 타고 타지로 법을 전하시러 떠나시려고 할 때 한 수련생이 사부님의 차를 가로막고 그의 일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자원봉사 수련생은 만약 모두 이렇게 한다면 사부님께서 너무 힘드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사부님께서는 웃으시며 차에 내려 일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으셨다. 사소한 일에서 나는 사부님의 너그러운 흉금과 위대한 인격을 볼 수 있었다.

불법(佛法)은 끝이 없고 기적은 끊이지 않는다. 1996년 겨울 3개월 시간을 이용해 ‘전법륜’을 한번 베껴 썼다. 제9강 마지막 2페이지까지 베껴 썼을 때 갑자기 700도의 안경을 껴도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의 피로라고 생각하고 세수하고 다시 꼈지만 여전히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안경을 벗고 책을 봤더니 원래보다 더 잘 보였다. 그날부터 도수가 높은 안경을 벗어버렸고 지금까지 소판 ‘전법륜’을 보는데 아주 잘 보인다.

원래 몸무게가 50kg도 안됐는데 지금은 60kg이 됐다. 이런 기적은 과학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 사부님의 은혜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오로지 정진하고 또 정진하는 수밖에 없다. 내 몸에서 일어난 기적은 아주 많지만 한 가지 실례만 들고 일일이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겠다.

2, 도덕의 승화

우리는 세를 내고 학교 공공주택에서 살았는데 법을 얻고 수련 후, 두 번 집을 분배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더욱 어려운 동료에게 양보했다. 마지막 분배할 때 배우자가 외지에 있어 집을 분배받을 기회가 없는 동료에게 양보했다. 솔직히 나도 아들과 딸이 있고 네 식구가 비좁게 살고 있어 집이 필요했다. 집을 분배받을 수 있는 정원수는 상급에서 일부러 날 위해 마련한 것이고 몇 번 양보했었기 때문에 분배받아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부님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다.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1] 그리하여 원망도 후회도 없이 무슨 일을 해도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동료는 내게 몹시 감사했다. 나는 대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언행으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했고 경지도 승화됐다.

90년대 학교 최고 책임자였는데 당시 악마 장쩌민은 사람들에게 남몰래 부자가 되는 것을 제창했다. 간행물, 학생시험지, 교복 등을 팔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동료도 많이 주문하고 수수료를 많이 받아 많은 이득을 챙기라고 했다. 사부님께서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 난잡한 환경 속에서 반드시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오로지 이 정토(淨土)-학교를 지켜내야만 학생을 잘 교육시킬 수 있고 학생과 학부모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으며 사회가 이 정토-학교를 인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담당자에게 간행물, 시험지 종류를 최대한 적게 주문하고 직업복, 교복의 가격을 최대한 낮추며 절대 수수료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그래서 동료에게서 ‘경직 노인’이라는 별명을 들었지만 나쁜 기풍을 막아내고 불법요금 문제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호평과 존중을 받았다. 이후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데도 좋은 기초를 닦아놓았다. 대법의 호소력, 사부님께서 하사한 은혜 덕분에 비로소 정확한 결정을 했고 도덕이 승화됐다.

99년 ‘7.20’ 장마귀는 공산악당을 이용해 대법제자에 대해 전면적인 박해를 하기 시작했고 7월 20일 새벽에 우리 시 20여명 수련생을 체포했다. 많은 수련생이 성 정부 앞에 서 있었지만 접대하는 사람이 없었고 오후에야 비로소 성 민원실에서 5,6명 수련생을 접대했다. 우리는 사법부의 위법 행위를 지적했고 사부님께서는 위대하시고 결백하시다는 것을 말했으며, 우리가 혜택을 받아 사회의 불량한 기풍을 개선하는데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당시 접대하는 몇 명 공무원은 사실을 부정할 수 없어 좋다는 것을 알지만 내일 오후에 다시 와서는 안 되고 또 오면 이렇게 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한 차례 천지를 뒤엎는 듯한 불법 탄압이 시작됐다.

이 혹독한 탄압 하에 대법제자는 각종 방식으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했다. 나는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각급 정부에 편지를 썼고 공검법, 구치소, 감옥에 진상자료를 보냈고 일했던 직장 동료, 가르쳤던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삼퇴를 권했으며 버스와 택시를 타는 등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한번은 결혼식장에 가는 도중에 버스 기사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아주 상쾌하게 당, 단, 대에서 탈퇴했다. 그는 탈퇴한 후 누나도 파룬궁을 수련해 몇 번이나 권했는데도 탈퇴하지 않았지만 오늘 당신 말에 탈퇴했다고 했다.

이번 일을 통해 삼퇴는 형식만 갖춰서는 안 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대면 진상을 알리며 상대방의 태도가 어떻든 열심히 알려야 한다. 최소한 생명이 구도받을 수 있는 기초를 닦아놓은 것이기에 진상을 들었던 생명이 일단 마음속으로부터 진상을 알게 되면, 기회를 또 얻게 되면 자연적으로 구도된다.

법을 얻은 24년을 돌이켜봤다. 말하고 싶은 일이 너무너무 많지만 시간과 편폭의 제한으로 일일이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겠다. 정확하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사부님께 절을 올리고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6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6/4/3683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