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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병원 전설: 10년 간 다섯 번 위독, 시 정부 간부 연공해 완치

글/ 중국 대법제자 링위(淩宇)

[밍후이왕] 나는 시정부 기관에서 일하다가36세에 부과장이 되었다. 한창 잘나가려 할 때 온몸에 힘이 빠지며 얼굴색이 파래졌다.

어느 날, 조카가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응급실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피를 토했다. 의사는 간경화라고 했다. 수혈을 2800ml 하고 계속 피를 토하니 의사는 위중 통지서를 내리고 가족에게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다.

아내는 의사여서 이런 병은 피가 멎지 않으면 언제든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1986년에 나는 큰 병에도 죽지 않고 다시 인생의 희망을 보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나 두 번째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증상은 여전히 피를 토하는 것이었다. 응급실에서 의사는 간경화가 지난번보다 위중해졌다고 했다. 간 문정맥 혈관이 좁아져 피가 위 혈관으로만 흐를 수 있어 위 혈관이 굵어졌다. 의사는 아내에게“이런 증상은 단단한 음식을 먹으면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위벽 혈관을 긁어 대출혈이 발생할겁니다.”라고 말했다. 아내는 내게 음식을 해줄 때 늘 조심해야 했다. 배추요리를 하면 배추 안에 있는 실을 뽑아내고 잘게 다졌다. 그 기간에 나는 간 복수 현상까지 나타나 배가 임산부처럼 커졌다. 혈액을 분류시키기 위해 의사는 수술해 나의 비장을 잘라냈다. 하지만 수술 후 상처가 아물지 않고 복부에 물이 심하게 차, 눕지 못하고 다리를 펴고 반쯤 누워있었다. 그래도 숨 쉬기가 힘들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수술 자국이 계속 아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이면 반드시 죽는다고 봐야 한다. 의사는 두 번째 위중 통지서를 내렸다. 의사는 아내를 옆에 부르고 “선생님도 알다시피 이런 상황은 나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장례를 준비하시지요.”라고 말했다.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죽어도 집에 가지 않는다며 병원에서 치료받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월급이 높은 편에 속했다. 매월 3백 위안이 넘었다. 아내는 의사에게 단백질을 주사해 달라고 했는데 한 병에 4백20위안이었다. 직장에서 처리해주지 않아 스스로 내야 했다. 아내는 나의 병을 고치려고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려 빚도 적지 않게 졌다. 이렇게 나는 다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세 번째 입원할 때도 역시 간경화로 위 대출혈이었다. 극도로 허약해진 나는 일어나지 못해 화장실을 가지 못했고 체중이 69kg에서 45kg도 되지 않게 빠져 막대기처럼 야위었다. 병원에서 주사 맞고 약 먹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효과가 없으니 의사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런 환자는 예전에도 몇 명 있었는데 모두 돌아가셨으니 장례 치를 준비를 하세요.”

나는 아내의 부축을 받고 비틀거리며 퇴원했다. 병원 문 앞까지 가니 작은 바람이 불어왔는데 나는 단번에 넘어져 주저앉았다.

네 번째 입원했을 때 나는 헛소리를 했고 복수가 심하게 차, 입원하자마자 의사가 또 위중 통지서를 내려 가족에게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다.

다섯 번째 입원은 1996년 1월이다. 온몸이 부어 스스로 생활이 불가능했다. 의사는 “간 급성괴사, 뇌 급성괴사,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라고 진단했다. 나는 응급실에서 3일을 치료 받았다. 4일째 직장 상사가 와서 보더니 내가 숨은 붙어있지만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부인에게 “장례를 준비합시다.”라고 말했다.

아내는 매번 의사의 위중 통지서를 받고 슬프게 울었다. 이번에 아내는 가망이 없는 것을 보고 의사에게 “깨워주세요. 어떻게든 저 사람과 말을 몇 마디 해야겠습니다.”라고 부탁했다. 의사는“깨어나도 말하지 못합니다. 심장은 피 공급 부족이고 뇌는 이미 괴사해 말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하느님이시여, 제 목숨을 저 사람에게 10년 주십시오. 제 운명은 왜 이리도 고달픈 건가요.”라며 엉엉 울면서 말했다.

내 병 때문에 집에서 빚을 많이 지은 데다 직장 상사까지 “자네가 계속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직장에서도 더는 돈을 내 줄 수가 없네. 위에서 받은 의료비를 거의 자네 혼자 다 썼네. 총 10여만 위안(한화 약 1680만원)이네.”라고 말했다.

다섯 번째 입원할 때 나는 숨만 거두면 되었다. 수의도 다 준비해 놓았다. 직장과 친척들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어느 날 오후 누이와 생질녀가 농촌에서 나를 보러 왔다. 질녀가 말했다. “외삼촌, 가망이 없다 해서 보러 왔습니다. 저는 원래 약 상자였으나 파룬궁을 수련하고 다 나아서 이제는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외삼촌도 수련하면 반드시 살아나실 겁니다. 이 파룬궁은 부처를 수련하는 것입니다. 위력이 있습니다.” 나는 눈을 뜨지는 못했으나 알아들었다. 질녀가 파룬궁 창시자가 리훙쯔(李洪志)라고 할 때 나는 마음에 진동이 오며 눈을 번쩍 떴다.

어떻게 된 일인가? 두 번째 퇴원할 때 나는 몸이 약해 공원에 가서 기공을 찾아 연마해보려고 했다. 공원에는 기공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각종 공법이 다 있었다. 기공에는 오묘하고 박대정심(博大精深)한 것이 있을 것 같았다. 기공을 찾아가려 할 때 머리에 리훙쯔 세 글자가 나타났다. 무슨 뜻이지?리훙쯔는 누구지? 질녀 말을 들어보니 리훙쯔는 파룬궁 창시자였다. 어디에서 온 힘인지 갑자기 정신이 나고 눈을 떠 질녀를 보게 되었으며 말만 하지 못했다.

질녀는 리 선생님의 설법녹음을 틀어주고 나에게 ‘파룬궁’책도 주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었다. 나는 사부님의 설법녹음을 계속 들으며 마음속이 뜨거워졌다. 책을 펼칠 수 있을 때 나는 사부님의 법상을 보았다. 흰색 빛을 뿌렸다.나는 잘못 본 줄 알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지만 여전히 빛을 뿌리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내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앉지 못해 침대에 누워서 연공동작을 따라 하고 다섯 세트 공법의 구결을 외웠다. 속으로 외우면서 이 공법의 구결은 위력 있는 주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진귀한 보물을 얻은 것 같았다. 기적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설법을 듣고 책을 보니 앉을 수 있게 되었고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으며, 밥을 먹을 수 있고 단단한 음식도 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의사들은 내가 하루하루 변해가는 것을 보며 믿기 어려워했다. 죽을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회복될 수 있는가? 의사는 나의 건강이 신속하게 좋아지고 말도 할 수 있는 것을 보고, 응급실에 있지 말고 일반병실로 옮기라고 했다. 나는 일반병실로 옮겨갔다.

일반 병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파룬궁 책을 보고 있는데 다른 환자 가족이 “무슨 책입니까?”라고 물었다. “파룬궁 책입니다.”라고 말하니 그는“아이고, 이것이야말로 좋은 것입니다. 좋은 것이에요.”라고 했다. “본 적 있으십니까?”라고 물으니 그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직장에서 발생한 일을 들려주었다.그는 광산에서 일했다.어느 날 갱구 한 운반공이 광석 나르는 차를 끌다가2백 미터 되는 수갱에 떨어졌다. 즉시 구조대원들이 구조하러 내려갔다.모두가 시신이 되어 올라올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구조대원들이 내려가니 떨어진 광부가 벽에 기대고 서 있었다.이름을 부르고 그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대답했다.젊은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왜 아무 일도 없냐고 묻자 젊은이는 마치 솥뚜껑에 앉은 것처럼 살포시 내려왔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 젊은이는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었다. 그가 솥뚜껑에 앉은 것처럼 이라고 한 것은 떨어지는 과정에서 사부님이 큰 파룬으로 그를 받쳐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전체 탄광에 소문이 났고 모두 파룬궁이 신기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크게 고무되었다. 병원에 입원한지 열흘도 안 되어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집에 갑시다. 집에 가서 파룬궁을 수련합시다.” 의사는 정부 간부가 이렇게 퇴원했다가 일이 생기면 병원에서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죽어도 당신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온 후 별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죽음의 문턱에서다섯 번을 지나왔는데 파룬궁이 나의 병을 없애줄 수 있을까?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화장터로 보내버리고, 절대 파룬궁을 해서 죽었다고 하지 마세요. 이 목숨은 벌써 없어져야 했는데 파룬궁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집에 간 후 나는 매일 연공해 건강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원래 손이 차가웠지만 점차 따뜻해지고 검은색을 띄던 얼굴도 붉어졌다. 복수도 없어지고 길을 걸어도 힘이 넘쳤다.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했는데 지금은 무엇이나 다 먹을 수 있다.

대법 서적을 한 번도 채 보지 못했는데 대주천이 통했다. 가부좌하면 위로 심하게 흔들리며 책에서 말한 것처럼 위로 솟구치고 길을 걸으면 몸이 가벼웠다.

대법이 나의 목숨을 구했다. 리훙쯔 사부님께서 나의 목숨을 구해주셨다. 나는 집 근처에서 넓은 공간을 찾아 연공장을 만들었다. 많을 때는 50여명이 왔다. 우리 집은 법공부하는 장소가 되었다. 나는 대법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 그들이 덕을 보게 하려 했다.

한번은 병원에 갔는데 그 해 나를 치료해주던 의사를 보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에워싸고 “정말 불가사의합니다. 우리가 고치지 못한 병입니다. 보세요, 보세요, 연공해서 나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한 간호사가 소식을 듣고 뛰어와서 “정말 파룬궁을 연마해서 나은 그 사람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간호사는 “당사자를 만나봤네요.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작년에 한 농촌 여성이 온몸에 종기가 나서 고름이 흘렀는데, 역시 병원에서 고치지 못했습니다. 집에 가서 파룬궁을 연마하고 7일 만에 고름이 나오지 않고 표피가 한 층 벗겨진 후 다 나았습니다. 선생님과 그 여성은 제가 직접 본 두 가지 기적입니다.”라고 말하고 또 “아세요? 선생님 같은 환자들이 우리 병원에 입원해서 다 죽었습니다. 선생님을 치료해주던 의사도 한 명 죽었습니다. 선생님이 멀쩡하게 살아계시다니 정말 신기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사실 파룬궁 수련생들은 모두 많은 초상적인 일을 겪었다. 무신론 독해를 받은 사람들이 현대과학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일은 이해하지 못해서 믿지 않는 것뿐이다. 1986년부터 1996년까지 10년간 나는 병원에다섯 번 입원했다. 지금 회상해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나는 수많은 소란과 박해를 당해 정신적 압력이 매우 컸다. 새벽에 연공하는데 경찰이 창문을 두드리며 들어와 조사하겠다고 하고, 매년 소위 ‘민감일’에 국가보안경찰, 파출소, 정법위, 가두, 판사처, 610에서 주마등처럼 와서 소란을 피운다. 나는 탄압 중점 대상이 되고 전향하지 않는 완고한 자가 되었다.

중공이 어떻게 탄압하든 우리 이 정부 기관과 친척들은 나와 파룬궁에 호감을 가졌다. 그들은 내가 병원에서 다섯 번이나 사망할 것이라 했지만, 파룬궁을 연마해서 나았고 아직도 살아있다며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살아있는 광고가 되었다.

한번은 610주임이 찾아와 엄숙하게 말했다. “당신은 국가간부입니다. 연마하지 말라면 하지 마세요.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그는 계급투쟁 정신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나는 말했다. “제가 건강해진 것이 누구의 심기를 건드렸단 말입니까?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입니까?” 그가 말했다. “다른 것을 배우면 되지 않습니까.” 나는 “달리기하면 몸을 단련하지요, 공놀이 하면 몸을 단련하지요. 내가 파룬궁을 해도 몸을 단련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하면 되고 나는 왜 안 됩니까? 나는 의사가 아내에게 다섯 번이나 장례 치를 준비를 하라고 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라고 표명했다.

610주임은 내가 대법에 대한 태도가 이토록 확고한 것을 보고 즉시 부드러워졌다. “그럼 약을 먹습니까?” “병이 있어야 약을 먹지요. 병도 없는데 무슨 약을 먹습니까? 모든 약에는 30% 독이 있습니다. 병이 없는데 그런 걸 먹어서 뭐 합니까? 예전에 직장의 의료비를 저 혼자 다 썼습니다. 연공하고 20년간 약을 먹지 않았으니 나라에 의료비를 얼마나 많이 절약해 준 것입니까?”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는 가면서 말했다. “좋아요. 집에서 하세요. 나가서 홍보하지 마세요.”

나는 아들에게 자주 말한다. “아버지의 이 목숨은 대법이 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완전한 가족이 어디 있겠느냐?” 아들, 며느리와 손자는 모두 대법을 믿는다. 매년 설 때 오면 아들 가족은 사부님 법상에 절을 올린다. 어린 손자는 절을 올리면서 큰 소리로 말한다. “사부님께 설 인사 올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생신이 곧 다가올 무렵 이 이야기를 적어 사부님께 감사드리는 동시에, 감개무량하고 쓰린 마음에 나와 아내는 모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내도 대법제자이다. 그때 이야기를 하니 아내는 몇 번이나 눈물을 보이려고 한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가 없었다면 나의 오늘이 없었을 것이다. 이 박대하고 신기한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화목한 가정이 없었을 것이다. 나의 목숨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한 이 일은 사부님의 위대함을 충분히 증명할 만하다!

(밍후이왕 2018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원고모집)

 

원문발표: 2018년 5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8/5/16/3651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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