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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심을 내려놓은 후의 홀가분함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지 거의 10년이 되어 가는데, 최근 한동안 수련상태가 전과 같지 않았다. 비록 매일 세 가지 일을 모두 하고 있고 바삐 보내며 아주 수고스러워 매일 겨우 3,4시간 휴식시간을 가지지만 일을 하면서 정신이 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늘 말할 수 없는 아주 괴로운 느낌이었고 영문을 몰라서 아주 곤혹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상태가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무슨 집착이 나의 정진하는 발걸음을 가로 막는지 며칠간 깊이 생각했다. 오늘 연공하면서 문뜩 문제의 근원을 알게 되어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나는 청년대법제자이고 직장인이다. 매일 새벽 3시50분에 연공하고 법공부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 출퇴근길에는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보내며 진상자료를 인쇄하고 배포한다. 확실히 아주 바쁘다. 그러나 일종의 순정한 심태로 세 가지 일을 할 수 없었는데, 자신에게 압력을 주어 매일 모두 초조했고 자신이 잘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가족이나 수련생들과 접촉하고 협조할 때 수시로 심성을 지킬 수 없었다. 역시 자신의 잘못임을 알지만 늘 잘하지 못했고 질투심, 쟁투심, 색욕심, 과시심, 안일심, 각종 사람 마음이 모두 있었다.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사상 속에서는 아주 강력한 좋지 못한 염두가 생겼다.

처음에는 자신의 주의식이 강하지 않아 사상업력이 크다고 여겨서 즉시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발정념 시간과 발정념 횟수를 증가시켜 이런 좋지 못한 사상업을 제거했지만 한동안 좋아졌다가 또 안 되었다. 갑자기 사상업의 교란이 이렇게 큰 것은 사실 자신의 후천관념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갑자기 인식하게 됐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관념이 바뀌고 부패된 물체 없애니”[1] 오로지 사상관념을 바꿔야 좋지 못한 물질은 비로소 제거되고 자신의 공간장이 비로소 청정해진다. 그렇게 많은 사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것은, 사실 여전히 한 개의 ‘사(私)’라는 글자가 정념의 발휘를 가로막는 것이었다.

아침에 아이를 깨워서 씻기고 밥 먹이고 학교에 보내는데 마음이 매우 긴장하고 시간이 빠듯했다. 하지만 아이가 시간을 끌기에 나는 다그쳤는데 아이는 기어코 나와 반대로 행동해 더욱 늦어지곤 했다. 이후에 나는 자신이 너무 강하고 아주 자아가 강하며 늘 아이에게 나의 생각에 맞춰서 행하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아주 불편했고 아이가 너무 느리게 행동하는 것이 싫었는데, 이러면 시간을 지체해 늘 몇 분씩 늦어서 길에서 빨리 걸어야 하거나 거의 달려가듯 학교로 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각했고, 지각하면 선생님은 단체 메신저 방에서 아이와 나를 비평했다. 게다가 나 역시 출근도 아주 바쁘고 피곤하며 체면이 서지 않을까 봐 두려웠는데 모두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는 매일 숙제하는 것이 특별히 느렸고 늘 먼저 놀거나 다른 재미있는 놀이를 한 후에야 비로소 숙제를 했다. 내 생각으로는 집에 돌아오면 먼저 숙제를 하고 다시 놀거나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이는 나의 여러 해 동안 습관이 된 생각이다. 학교 선생님이 주입한 것이 바로 이런 학습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와 숙제로 인해 충돌이 생길 때 나는 가르치려고 들었고 아이는 반감을 표출하며 울고불고 난리법석이었는데 집안 분위기가 아주 좋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사고하지 않았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생각은 아이가 숙제를 늦게 마치면 내가 검사하거나 받아쓰기, 사인 등이 늦어지는데 이렇게 되면 내 법공부도 늦어지고 자료를 만드는 시간이 늦어진다고 생각했다.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도 늘 시어머니가 일을 너무 느리게 한다고 생각했다. 매번 많은 사람들이 시어머니 한 사람을 기다렸다. 게다가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도 잘하지 못했는데 이따금 늘 착오가 생겼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나는 마음이 불안했다. 시어머니가 이렇게 하면 내 업무 시간 배치에 영향주고, 더 나아가 내가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에 영향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고려하지 못했다.

시아버지는 집에서 아주 강한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그의 배치에 따라야 했다. 예를 들어, 시아버지는 나가서 놀고 싶고 여행하고 싶으면 우리가 운전해 곁에서 도와드려야 했는데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아주 많은 시간을 지체하고 자신의 세 가지 일에 영향 준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렇게 연세가 많으신 시부모님을 모시고 놀러 다니면 그분들에게는 아주 즐거운 일일 것이다.

남편은 업무가 아주 바빴다. 거의 매일 연장근무를 했는데 집에 돌아오면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했는데, 이래서 나는 집안일을 많이 해야 했고 나의 세 가지 일에 영향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원망 역시 ‘사(私)’의 표현이다.

회사에서 동료들이 모두 어느 한 뉴스 혹은 재밌는 사건에 주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참 같이 보게 되고 가끔은 파악하지 못했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해 자신이 마땅히 해야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사실 역시 사심이고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킬 때 낭비한 시간을 생각하지 못하고 마땅히 진상을 듣고서 구도되어야 할 생명이 기연을 잃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 배후의 생명군은 나의 수련 누락으로 얼마나 큰 손실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사회, 가정, 업무, 수련생과의 협조에서 위에서 열거한 일들이 아주 많았는데 총체적으로는 자신이 마음속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어떠어떠하다고 생각하고 기점은 모두 자신을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번 세 가지 일에 영향 준다는 이유로 이 ‘사(私)’의 물질이 은폐되었고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서 이런 좋지 못한 물질을 제거하지 못했다. 자신을 순정하게 하지 못했고, 층차를 제고하지 못했으며, 승화하지 못했다.

사(私)는 구우주의 이치이고 이 사심을 제거해야만 비로소 사람의 이 한 층의 껍데기를 제거할 수 있으며 비로소 진정으로 제고해 올라갈 수 있다. 사실 사심을 내려놓아야 모든 일은 사부님께서 무척 잘 배치해주실 수 있고 모두 아주 순조로운데, 절대로 우리의 세 가지 일에 영향주지 않는다. 반대로 사심을 내려놓지 못하면 모든 사람들이 당신과 어긋나고 마음이 괴롭다. 심성이 제고되지 않으면 업력을 제거할 수 없고 일을 더 많이 해도 모두 제고할 수 없다. 법리가 명백해지면 마음속이 밝아지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공법을 수련하는 그 자체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며, 층차를 제고하는 자체도 무슨 어려울 것이 없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여 그는 비로소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현실 이익 중에서 그것을 내려놓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2]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시 ‘홍음-신생’
[2] 리훙쯔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 2018년 5월 10일
문장분류 : 수련교류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10/3656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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