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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집착을 위해 살면 안 된다

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어릴 때부터 꿈이 있었는데 바로 명문대학에 진학해 출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보통 대학에 진학했고 전공도 보통이었으며 또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늘 남의 아래에서 일하는 기분이었다. 수련 전에는 늘 마음이 내키지 않아 애써 바꾸려 시도해보았다. 나중에는 서로 다투고 싸우다가 몸이 점점 나빠졌고 또 출세하려는 자신의 소원도 이루지 못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정말로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되어 몸과 마음 전체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다. 천천히 승부욕이 강한 마음이 아주 많이 담담해져 친지들은 모두 나의 변화에 감탄했다.

최근 한 가지 일로 ‘명문대학에 가야 한다’는 나의 이 관념이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아직도 아주 완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들이 그해에 미국에 가서 대학 공부를 할 때 주변의 한 아이가 명문학교에 진학한 것을 보고 나도 마음속으로 매우 열망했다. 특히 아들이 명문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랐지만 여러 이유로 그 해 아들은 결국 이상적이지 못한 대학에 진학하고 말았다. 원래는 명예를 추구하는 자신의 마음이 아주 담담하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나는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았다.

올해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취업할 생각이었는데 기회가 있을지 몰랐다. 아들은 먼저 연구생을 신청했다. 결과 여섯 개 명문학교에서 채용됐고 두 학교에서는 그에게 장학금도 제공하기로 했다. 이번에 오랫동안 잠잠해진 것 같은 내 마음이 또 꿈틀대기 시작했다. 마침 아들이 또 좋은 일자리 기회를 찾아서 나중에는 다른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포기했다. 나는 자신이 어디까지나 수련인이라고 의식했다. 말로는 아들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몹시 서운해 밤중에 이유 없이 괴로워 깨어날 때도 있었다.

남편은 내 상태를 보고 “당신은 정말로 당신 자신을 찾아야 해요, 정신을 흐리멍덩하게 하는 그것이 정말로 당신인가요? 더 이상 그 가짜 자신과 집착을 위해 살면 안 돼요”라고 일깨워 주었다.

남편의 말은 정말로 나를 깨닫게 했다. 이 몇 년간 나는 줄곧 이런 두 개의 ‘나’라고 하는 상태에 처해 있었다. 수련상태가 좋을 때에는 ‘진짜 나’가 자신의 사상을 주도하고 정념이 충족해 정행을 할 수 있었다. 수련 상태가 나쁠 때에는, 특히 사람 마음이 많아 개인감정이 되살아나서 자신의 주의식을 포기했고, 이 집착으로 구성된 ‘가짜 나’가 자신을 주재(主宰)하도록 했다. 정속에서의 생활은 뒤죽박죽이 되어 완전히 수련인이 같지 않았고 심지어 이런 관념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도 자신은 모르게 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어떤 관념이 형성되면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데, 사람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의 사상을 좌우지할 수 있다. 이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만약 이 관념이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의 사상 중으로 녹아 들어갈 수 있는데, 정말로 자신의 대뇌 속으로 녹아 들어가, 이 사람의 성격을 형성할 수 있다.”[1]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이어서 “형성된 관념은 당신의 일생을 저애하고 지배할 수 있다. 사람의 관념은 흔히 이기적이고 또 좋지 않기에 사상업력을 생기게 할 수도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또 업력의 통제를 받게 한다. 사람은 主元神(주왠선)에 의해 주재(主宰)되어야 하는데, 主元神(주왠선)이 마비되어 관념으로 대체된다면, 그럼 당신은 무조건적으로 투항한 것이 되어, 생명은 이러한 것들에 의해 좌우지된다.”[1]라고 말씀하셨다.

20년간 걸어온 정법수련의 과정을 돌이켜보고 오늘 다시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을 공부하자 마음속으로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사악이 미친 듯이 박해할 때 감당한 압력은 매우 컸지만 사상적으로 느슨하지 않고 주요 정력을 모두 세 가지 일에 놓았다. 총체적으로 보면 정념이 충족할 때는 많은 상황에서 ‘진짜 나’가 주도했다. 하지만 관념과 집착으로 구성된 ‘가짜 나’에 대해 진지하게 그것을 정시하지 않았고, 엄숙하게 대하지 않았으며, 착실하게 수련하는 중에서 그것을 제거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진’한다는 엄호 하에 매번 넘어갔는데 마치 잔혹한 박해의 형세 하에서 매번 두려워 되돌아간 것 같았다.

정법의 형세가 추진됨에 따라 수련 환경도 갈수록 느슨해져 이전의 그런 큰 압력을 느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 가지 일을 잘하려는 의욕이 오히려 예전처럼 그렇게 충분하지 않았고 수련하는 것도 좀 나태한 것 같았다. 비교적 안일한 환경 속에서 제거해 버리지 못한 집착과 관념이 또 다시 되풀이되기 시작했고, 자신의 사상은 또 늘 이런 관념과 집착에 의해 주재됐다.

수련인으로서 아직도 제거해 버리지 못한 관념과 집착이 있다는 것은 원래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관념으로 구성된 ‘가짜 나’가 늘 자신을 주재해 스스로 그 속에 빠져 걸어 나오기 싫어하고, 헤어 나오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의 수련에 심각하게 교란을 받는다면 이것은 바로 큰 문제로 된다.

그럼 왜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그 뿌리에는 이 ‘가짜 나’가 사람 중에서의 나의 가장 근본적인 집착으로 구성되어 나의 가장 근본적인 추구와 이익을 대표했다. 그것을 놓으면 생사를 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속인은 그것을 위해 존재하며, 그것을 위해 살고 죽으며, 그것을 위해 좋아하고 걱정하며, 그것 때문에 정신이 흐리멍덩해지고, 그것 때문에 마성이 폭발한다. 그러므로 수련과정 중에 그것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의 주의식이 명석하지 못하고, 자신의 수련 결심과 의지가 견고하지 못하면 매번 무의식 중에 그냥 넘어가도록 만든다.

수련에는 과정이 있기에 한꺼번에 모든 집착을 없앨 수는 없고, 한 걸음씩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것을 남겨놓기 위해 중요하지 않는 집착을 찾아 그것의 희생양으로 삼아 그것에게 생존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또 사람을 구하는 일을 더욱 많이 해 마음속의 위안을 구하면서 그것이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기도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신을 속이면서 법을 실증한다는 명의로 그럴듯하게 이 ‘가짜 나’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었다. 예를 들면 나는 이전에 대법제자는 인간사회에서 좋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면 세인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는데 더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법리상에서 말하면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주의식이 정신을 차리고 명백하게 알아야 한다. 잘해야 하는 것은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법을 실증한다는 핑계로 사람 중에서의 자신의 집착을 만족시켜서는 더욱 안 된다.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확실하게 알았고 동시에 나는 주변의 많은 수련생들이 나와 같은 문제가 다소 존재하는 것을 보았다. 또한 일부 수련생들은 이 관념으로 구성된 ‘가짜 나’를 갖고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는데 표면적으로 법을 실증한다고 하지만 본질은 ‘가짜 나’의 느낌을 만족시켜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내 주변에 한 노수련생이 있었는데 ‘7.20’ 이후 사악이 박해하는 기간에 아주 확고했다. 하지만 이 수련생을 놓고 말하면 기세 드높이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으로 많은 항목을 했는데 줄곧 그가 추구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가 일하는 사고방식은 수련생들과 협조할 때 늘 호흡이 맞지 않아 정체 협력방면에서 간격이 생겼다. 사실 그가 추구한 기세 드높은 열정은 당(黨)문화가 그에게 강요한 관념인데 ‘가짜 나’이다. 하지만 그는 줄곧 안고 놓지 않았으며 ‘두렵지 않다’는 것으로 이 ‘가짜 나’를 방패로 삼고 수련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작년에 그는 경찰에 체포됐다가 돌아온 후 수련생들이 그에게 이 점을 지적하자 그도 알아차리고 다른 수련생들처럼 차분하게 세 가지 일을 하려고 생각했다. 이때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힘이 없고 만족스럽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가짜 나’는 그의 법공부를 방해해 그는 이 ‘가짜 나’를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또 ‘가짜 나’를 따라갔다. 이 몇 년간 이 수련생과 협력하기 어렵다는 것을 모두 느꼈다. 그의 관심사는 이 항목이 사람을 구하는 효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효과에 있었다. 사실 이 ‘가짜 나’는 이미 그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을 교란했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의 집착,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교란하는 관념은 모두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신(神)의 길에서 걷고 있는 수련자에 대하여 말하자면 이러한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과 관념을 개변하는 것이 그처럼 어렵단 말인가? 만일 수련하는 사람이 이러한 것마저도 제거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럼 수련인의 체현은 무엇이란 말인가?”[2]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오랜 시련 속에서 외부의 압력과 사악의 탄압은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했고 오히려 우리가 더욱 대법을 굳게 믿도록 했다. 오늘에 이르러 자신의 ‘심마(心魔)’에 대해,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3]에 대해, 생생세세 형성된 관념에 대해, 그런 관념으로 구성된 ‘가짜 나’에 대해, 우리가 타협해야 된단 말인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거나 충분히 중시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런 것을 우리의 사상 중에서 내버려두면 우리의 정념을 교란하고, 우리가 마음속으로부터 대법을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고 우리가 신을 향해 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오늘 이 문장을 쓴 것은 관념이 주재한 ‘가짜 나’(집착)가 더 이상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신과 수련생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어서다. 다시는 그것을 위해 살지 말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진짜 나’가 주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

법에 있지 않는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轉法輪 (전법륜) [제2권]’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고하는 말’

 

원문발표: 2018년 5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5/3649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