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8년 6월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이다. 사부님을 따라 오늘날에 오기까지 매 한 걸음 사부님께서는 심혈을 기울이셨다. 아래에 내가 문장을 쓰면서 법을 실증하고 험난한 환경에서 사악을 폭로하며,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하고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당(黨)문화를 제거하고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하게 된 수련 과정을 보고하려 한다.
1. 교도소에서 문장을 써서 법을 실증하다
2000년 정월 15일 나는 경찰에 납치돼 불법 노동교양 1년을 받았는데 악명이 높은 성(省) 여자교도소에서 박해를 받게 됐다. ‘전향’하지 않자 불법적으로 1년형이 추가됐다. 당시 박해는 매우 사악했는데 파룬궁수련인들은 말할 권리도 없었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매주 꼭 소위 ‘사상 보고서’를 한 부씩 써야했는데 이는 전향을 강요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내 신앙을 개변하지 못하며 나는 확고하게 계속 걸어갈 것이다!’라고 썼다.
나는 매번의 ‘사상 보고서’를 진상을 알리는 기회로 생각하고 마침 문장을 써서 법을 실증한다고 생각해 경찰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에서 진상 편지를 쓰고 자신이 대법을 수련하면서 몸소 겪은 일들을 썼다. 내가 겪은 일로 장쩌민이 파룬궁에 대해 모함하고 날조한 거짓말을 폭로하고 진상을 밝혔으며 파룬따파는 정법이라고 썼다. 끊임없이 진상을 알리고 글을 쓰자 내가 있는 감방 경찰은 한 번 나에게 찾아와 말했다. 그녀는 나를 정중하게 대했다. “우리 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고 동년배인데 당신에게 나는 호감을 갖고 있지만 당신과 같은 경지가 없어 그렇게 할 수 없고 자신의 이런 이익을 내려놓을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진상을 알고 대법에 대해 인정하고 있지만 착잡한 마음으로 미래의 생명을 선택하는 사거리에서 허덕이는 것을 보고 마음에서 자비가 나오는 동시에 파룬궁 박해는 전 중국인들에 대한 소멸성 박해임을 똑똑히 알려줬다. 심지어 전 인류도 모두 그 속에 말려들었는데 사람은 참으로 불쌍했다! 이 이치를 깨닫고 나는 바로 장쩌민을 고소하는 편지를 써서 대대와 교도소에 보냈다.
2000년 10월에 들어서 전향 압력이 더욱 거세졌다. 교도소 소장은 전향률이 100%에 달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먹구름이 뒤덮였다. 교도소에서는 비밀 강화반을 운영했고 문명적으로 관리하겠다면서 2%밖에 되지 않는 비전향 파룬궁 수련인을 한 명씩 체로 치듯 괴롭혔다. 그들은 우리에게 글도 쓰지 못하게 펜을 모두 걷어갔다. 전향하지 않는 두 수련인이 처음으로 끌려갔는데 그 중 한 명은 나와 한 대대에 있던 사람이었다. 끌려간 지 한참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 후 교도소는 전향을 책임진 사람들을 데려왔고 내가 있는 대대에 전향되지 않은 두 사람을 또 데려가 세뇌를 시켰다. 이들은 당일 대대로 돌아왔다. 이 두 수련인은 강화반의 일부 상황을 알게 됐고 연행된 두 수련인이 무서운 처지에 처해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마침 이때 대대에서는 우리 몇 명의 비전향 사람들을 한 감방에 집중시켰다. 어느 날 경찰은 우리 사람마다 펜을 나눠주면서 글을 쓰라고 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신필(神笔)을 주셨다고 깨달았다. 이는 신의 배치이고 사부님께서는 우리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가셨다. 우리는 교도소, 노동교양국, 검찰원에 편지를 썼는데 직접 경찰과 교도소에 전했다. 교도소와 강화반의 악행을 폭로한 한 통 또 한 통의 편지는 강화반을 해체시켰다.
2. 사악은 폭로를 가장 두려워한다
2000년 설날, 교도소 경찰들은 쉬게 됐다. 대대에서는 몇 명의 비전향 수련인을 단독 감금했다. 강화반에서 박해 받은 그 수련인은 내가 있는 감방에 배치됐다. 휴가로 조금 느슨했다. 어느 날 내가 그녀 옆에 갔는데 그녀는 옷을 들어 올려 몸에 남겨진 각종 상처를 나에게 보여줬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나는 멍하니 그곳에 서있었다. 그녀는 괴로워하면서 사부님께 너무 죄송하다고 말했다. 당시 박해 수단이 너무 잔혹해 그녀는 참지 못하고 4서(각종 수련 포기 각서: 역주)를 썼지만 제5서는 사부님을 모욕하는 거라 죽어도 못쓴다고 했다. 그녀가 죽음을 각오하자 그들은 그제야 풀어줬다. 구체적으로 박해받은 과정은 나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박해 정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때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나는 그들의 악행을 폭로하려고 결심했다. 그 수련인은 놀라서 바로 “제발 쓰지 말아요, 내가 나가서 쓸 테니 여기서 쓰면 안 돼요. 나 때문에……,”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법을 실증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했다(현재 이 수련인은 박해로 정신이상이 됐다). 나는 바로 교도소의 악행을 편지로 써서 폭로했다. 교도소장과 성 노동교양국에 각각 한 부씩 보내 교도소에서 파룬궁 수련인들의 신앙을 포기하게 하려고 상급에서 지시하고 하급에서 파견하면서 박해하고 1년간 각종 잔인한 고문과 비인간적인 체벌로 학대했다는 것과 알려지지 않은 강화반 등등을 다 써 넣었다. 나는 내가 박해받은 경과와 내가 알고 있는 심하게 박해받은 수련인들을 전부 썼으며 이 전신에 상처투성인 수련인의 현재 상태도 모두 폭로했다. 박해한 사람과 박해 받은 사람은 모두 실명을 썼다. 헌법 형벌 관련 조항에 따르면 박해한 사람이 법률 집행인으로서 범법 행위를 했기에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교도소에 수감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중국 법률상식 책 한 권을 전해줘 나는 보게 됐다. 나는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대법제자가 쓴 글과 걸은 길은 파괴할 수 없는 역사의 기록이라고 적었다.
다 쓴 다음 경찰에 줬더니 경찰은 받지 않으면서 “나는 노동교양을 하는 사람을 관리하는데 당신은 대법제자이기에 내 소관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어느 날 마침 세뇌를 담당하는 교도소장이 대대로 왔기에 나는 두 통의 편지를 직접 소장에게 전했다.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나를 위해 마음을 조였다. 이틀 뒤 경찰은 감방에 와서 20여 명이 있는 자리에서 나에게 편지를 누구에게 전했냐고 물었다. 나는 모 소장에 전했다고 말하면서 당신에게 주니 받지 않았는데 마침 그 편지는 소장에게 쓴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당신은 참 대단하군요. 그 편지를 우리 모두 다 봤는데 형기를 연장한 것은 법에 부합되지 않으니 여기에 쓸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 나는 당신을 한 번도 안 건드리지 않았나요?”라고 말했다. 감방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나에 대한 태도에 다 놀랐다.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 2001년 새해가 됐다. 1월 23일 중국공산당은 치밀하게 기획하고 ‘천안문 분신자살’이라는 사건을 조작했는데 교도소에도 보도하면서 교도소에 있는 모든 사람을 조직해 보게 했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속았다. 교도소에서는 분신자살을 곳곳에서 선전하면서 파룬궁을 모함하고 욕했다. 그리하여 당시 전향됐던 사람들은 더욱 자신들이 맞게 했다고 생각했고 경찰은 파룬궁을 더욱 증오하면서 수련인에 대한 박해를 더 심하게 했다. 나는 당시 문장을 써서 이 사악하기 그지없는 자작극을 폭로하고 사악을 제거했다. 나는 똑똑히 천안문 분신자살에 대해 그들이 말한 ‘1분’만에 경찰들은 ‘소화기’, ‘진화 매트’로 제지했고, 왕진둥이 ‘책상 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것과 파룬궁에 대해 모함하고 날조한 구실 및 삽입한 이상한 영상들을 써서 폭로했다. 터무니없이 몰염치하게 파룬궁에 대해 날조한 것임을 폭로했다. 다 써서 대대에 제출했지만 그들은 최종적으로 국가는 날조하지 않는다고 변명했다. 박해가 심해졌지만 그들은 나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다.
나는 법을 보호하고 확고한 마음에서 썼다. 나와서 생각하니 사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폭로였다. 수련 과정에서 일에 부딪히면 신의 정념으로 해야지 사람 마음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3. 사악을 폭로하고 구세력의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다
2001년 12월 나는 정념으로 마귀 소굴에서 나왔고 2003년부터 자료점을 운영하게 됐다. 나는 문장을 써서 박해를 폭로했는데 내가 알게 된 모든 진실한 상황을 써서 폭로했다. 2004년 나는 실명으로 시 검찰원, 시 인민대표대회에 성 교도소에서 나를 박해한 것을 고소했다. 밍후이왕에 발표된 후 몇 부를 베껴서 각 부서에 우편으로 보냈다.
대륙의 사악한 환경에서 진실한 1차 박해 정보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렵다. 2007년 우리 시에서 한 명의 파룬궁 수련인이 박해로 사망했지만 소식이 봉쇄되어 그녀가 심한 박해를 받았다는 것만 알았지 진실한 상황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나는 그녀와 익숙한 수련인을 찾아 나를 협조해 이 일을 조사해 줄 것을 바랐다. 그녀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른 아침 우리가 문을 나서자 교란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오후 3,4시경 그녀의 언니 집을 찾아오게 된 경위를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언니는 매우 두려워하면서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느끼고 저녁에 머무르면서 천천히 소통했다. 교류를 하고 진상을 알리자 그녀의 태도는 변했다. 교류가 잘 이루어지자 그녀는 울면서 여동생이 박해받아 사망한지 1달이 넘었고 시체를 화장한지 보름이 지났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와 수련인은 몹시 괴로워했다. 왜 이 소식을 이렇게 심하게 봉쇄했는지 묻자 그녀는 시 공안국과 협의를 체결했는데 가족에게 보조수당 2만 위안(한화 약 340만원)을 지불하는 것으로 이 일을 무마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가족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협의문에는 질병으로 자연 사망했다고 썼으며 2만 위안은 보조수당을 지급한 것이라 명시했다. 가족에게 계속 떠들면 한 푼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했다. 시신을 보관하는 동안 시 공안국에서 직접 박해에 참여한 경찰은 가족에게 압력을 계속 가하고 감시했으며 시신을 빨리 화장하도록 강요했는데 시체를 소각해 흔적을 없앴다.
그녀가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펜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이때 사부님께서는 나의 지혜를 열어주셔서 머릿속에 똑똑히 펜으로 적은 것처럼 내가 필요한 1차 정보를 기억했다. 다음날 오후에 집에 와 컴퓨터를 켜고 기록하려 하자 갑자기 배가 칼로 에이는 듯 아파 고통을 참기 어려웠으며 견지할 수 없었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 속으로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하면서 구세력의 사악한 요소와 박해 교란을 정념으로 청리했다. 상생상극의 이치는 이미 개변됐고 도태를 선택한 생명은 존재하지 못하고 즉시 해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분도 안 돼 고통은 차츰 사라졌지만 나는 너무 아파 식은땀을 흘렸다. 다시 쓰려고 하자 너무 졸려 눈을 뜰 수 없었고 바로 자고 싶었다. 나는 즉시 정신을 차렸다. 오늘 꼭 완성해야 한다는 정념이 나오자 바로 명석해졌다. 기억을 더듬어 폭로하는 문장을 다 작성해 그날 저녁 바로 밍후이왕에 보냈고 즉시 전 세계에 폭로했다.
4.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진(眞)을 수련하고 당문화를 제거하다
중국 대륙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가짜(假)·악(惡)·투쟁(鬪)’의 당문화에 침투되어 스스로도 느끼기 어렵다. 10여 년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사부님의 점화를 통해 많은 당문화가 주입되어 형성된 나쁜 생각을 찾을 수 있었다. 법공부를 하고 착실히 수련하면서 이러한 당문화의 독소를 제거하고 자신을 바로잡았다. 2004년, 아랫동네의 사악을 폭로하는 문장을 쓰게 됐다. 그들은 박해받은 수련인 몇 명의 실제 사례를 제공했다. 그 중 한 수련인이 박해받은 과정을 수정하면서 나는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찼다는 단어를 사용하게 됐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있었던 수련인에게 물었을 때 수련인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면서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찬 것보다 더 심하다고 했다. 다 작성해 밍후이왕에 보내 현지 주간으로 나와 출력해 배포하려 할 때 박해받은 이 수련인을 다시 만났다. 그녀는 다른 박해는 다 맞는데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찬 것은 없다고 했다. ‘아, 이를 어쩌지? 이렇게 많이 출력했는데 낭비하면 안 되는데.’ 마지막 나는 칼로 한 부 한 부 다 잘라내 수정하면서 많은 시간을 들였다. 완벽했던 주보에는 한 줄 공백이 생겼다. 이것은 당문화가 형성한 위해다. 일을 꼼꼼히 하지 않고 형식에만 치우치며 대충대충 하는데 대법의 특성을 어기고 일을 하면 극히 엄중한 결과가 생기는데 어찌 중생을 구도한다고 말하겠는가? 이번 일은 내 수련에 심각한 교훈을 남겼다.
그 후 문장을 쓸 때 사부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 점화해주셨다. 한번은 대륙법회 교류를 쓰면서 나는 택시에서 사복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적었고 이 젊은 경찰은 마침내 당원에서 탈퇴했다고 적었다. 그 중에는 진실하지 않고 과장된 언어가 있었지만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고 계속 쓰다가 ‘언’자를 쓸 때 컴퓨터에는 ‘언무허사(言無虛詞: 말에는 허황한 단어가 없어야 한다)’ 4자가 나타났다. 나는 즉시 깨닫고 자세히 사실에 어긋난 구절과 단어를 찾아 삭제했다. 바로 점오해주셔서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이 교류 문장은 발표됐다. 교류 문장 한 편이 발표되면 다른 공간에 많은 사악이 청리된다. 진실하지 못한 부분으로 인해 발표되지 못하면 손실은 매우 크다. 대법제자가 쓰는 문장은 반드시 진실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는 물질불멸(物質不滅)을 말하지 않는가? 어떤 특정한 공간 중에서, 사람들이 이 일을 마치면, 즉 사람이 손을 한번 휘둘러 어떤 일을 하면 모두 물질로 존재하며,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영상과 정보가 남을 것이다. 다른 공간에서 그것은 불멸하는 것으로서 영원히 그곳에 존재할 것이며, 공능이 있는 사람은 과거에 존재했던 광경을 보기만 하면 곧 알 수 있다.”[1]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로 문장을 밍후이왕에 발표할 때 나는 진을 특히 중시했다. 자신의 이런 고질적으로 형성된 당문화의 독소를 부단히 제거하는 동시에 밍후이왕의 명성을 위했는데 그 속에는 법을 수호하는 한 층의 의미가 있다.
최근 몇 년부터 나는 지역 박해 총론을 쓰고 있다. 먼저 총론을 쓰면서 묵묵히 나에게 협조해준 수련생들에게 크게 감사드린다.
이 작업은 양이 많고 번잡하다. 숫자가 누적되고 표가 반드시 정확해야 하며, 서술 구조가 명확해 가독성이 좋아야 하는데 이는 심성 제고를 빨리 해야 잘할 수 있다. 문장을 쓸 때 매우 많은 집착심이 나온다. 예를 들면 두려움, 안일함, 조급함, 과시심, 환희심, 명을 구하는 마음 등등이다. 매번 어려움에 봉착하면 나는 사부님께 빈다. 예를 들면 내가 한 편의 총론 서문을 쓸 때 대체적인 맥락이 있어 완벽하게 해달라고 사부님께 빌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바로 거침없이 써나갈 수 있었다. 다 쓰고 읽어보니 내가 고심 끝에 써낸 것이 아니었다. 이 몇 년간 나는 문장을 쓰는 것은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닦고 집착을 제거하며 마음을 정화하면서 법리에서 승화하는 과정임을 깊이 깨달았다. 18년간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겪었다. 대법제자는 모두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법제자 모두가 자신을 잘 수련하고 중생을 구도해 진정으로 조사정법하기를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인에게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5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2/3647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