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0년 우리 집에서 오토바이 한 대를 구매했다. 2002년 일을 처리하러 가다가 길에서 돌덩어리를 가득 실은 트랙터와 부딪쳐 머리와 팔이 돌멩이에 맞아 다쳤다. 내가 찌그러진 헬멧을 쓰고 피바다에 누워있을 때 오가는 사람들 중 누구도 가까이 와서 도와주지 않았고 운전사마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승합차를 운전하는 마음씨 고운 젊은이가 차를 내 옆에 세운 후 급히 나를 안아서 차에 태우고는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당시 의사가 내 왼쪽 팔은 절단하고 두 마디가 부러진 오른쪽 팔은 철판으로 고정하고 수혈했다. 보름동안 인사불성이었기에 의사는 결국 나를 영안실에 넣었다. 당시 남편은 외지에 출장 중이었고 아들은 중학교, 딸은 대학에 다녔다. 나를 영안실에 놓은 후 누군가 딸에게 전화를 했고 소식을 들은 딸은 급히 뛰어와 울부짖으며 엄마를 찾았다. 하루 밤낮 영안실에 있다가 나는 딸의 울음소리에 깨어났다. 갑자기 일어나 앉자 딸은 나를 꽉 끌어안았고 나 역시 끊임없이 딸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이렇게 다시 되살아났고 20일 후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껏 뛰어다니던 사람이 이 꼴이 됐으니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다. 또한 체면을 아주 중히 여겼기에 당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싫었고 날마다 눈물로 지새웠다. 몸도 갈수록 수척해져 정말 사는 것이 죽기보다 못했고 온 가족이 고통에 빠져있었다.
1. 대법을 수련해 새롭게 태어나다
2003년의 어느 날, 파룬궁을 수련하는 큰 언니가 외지에서 나를 보러 왔고 나는 언니를 보자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 언니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울지 말거라. 이렇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겨야 해. 재작년 네가 대법제자를 보호해 복을 받아서 그렇지 아니면 오늘 우리는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 얼른 사부님께 감사드리거라.” 나는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언니를 바라보았다. 언니는 계속해 말했다. “진작부터 내 말을 듣고 대법을 수련했으면 절대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야.” 그러면서 언니는 가방에서 ‘전법륜’ 보서(寶書)를 꺼내 나에게 주었다. 사부님 사진을 보자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날부터 나는 확고히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제3강을 읽을 때 사부님께서는 내 신체를 조절해주기 시작하셨다. 마치 독감에 걸린 것처럼 온몸이 춥기 그지없었고 이불을 덮어도 소용없었다. 계속 몸을 부들부들 떨자 남편은 걱정하며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나는 확고하게 “아니에요. 이건 병이 아니기에 이틀이면 나을 거예요. 난 오직 사부님 말씀만 믿겠어요”라고 말했다. 억지로 이틀을 참자 정말 다 나았고 온몸이 홀가분해졌다. 그때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서 한 바퀴 돈 후 나는 소리 질렀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이런 나를 바라보며 언니는 소리 내어 웃었고 저녁에 연공을 가르쳐주었다. 며칠 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하니 오른쪽 팔을 들 수 있었고 손으로 밥 한 공기를 받쳐 들어도 문제없었다. 그때부터 집안 식사, 설거지, 청소 등은 모두 내가 도맡았고 온몸에 힘이 넘쳐나 누구를 만나도 다 웃었다.
떠나기 전 언니는 나를 도와 현지 수련생과 연락해주었다. 이때부터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게 됐고 딸과 아들도 저녁에 돌아온 후 나와 함께 자료를 나눠주고 스티커를 붙이면서 실제 행동으로 대법을 지지해주었다. 나의 큰 변화에 온 가족은 기쁨에 젖었고 연이어 경사가 생겨 모두 복을 받았다. 딸은 출근한 지 반 년도 안 돼 고위 간부 부인의 마음에 들어 그녀의 며느리가 됐고, 아들은 대학 졸업 후 좋은 회사에 배치를 받았다. 그 후 딸과 사위는 우리를 큰 도시로 모셔갔다.
2. 대법의 기적을 직접 목격하다
여러분에게 신기한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 어느 깊은 밤, 남편은 잠에 골아 떨어졌고 나는 자료를 나눠주려고 조용히 가방을 메고 문을 나섰다. 길에서 두려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철도 가까이 갔을 때 양쪽에 온통 철사였다. ‘이걸 어떡하지? 이 가방안의 자료들을 반드시 다 나눠줘야 하는데 인적이 드문 곳에 왔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난처해하고 있을 때 몸을 돌리니 문 너비만한 큰 구멍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래서 자료를 메고 달려갔고 가는 길 내내 순조로워 자료를 매 집 문 앞에 놓을 수 있었다. 이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너무 신기하다.
어느 날, 아들은 방금 두 돌 반이 된 손녀를 데리고 나를 보러 왔다. 집에 들어서자 손녀는 작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할머니, 여기 보세요. 이건 뭐예요?” 개미가 가득했다. 당시 나는 흥분해 자신이 연공인이고 살생하면 안 된다는 걸 잊은 채 개미를 모두 죽였다. 오후에 수련생과 함께 진상을 하러 밖에 나갔을 때 공원 모퉁이에서 크게 넘어졌다. 땅을 짚은 오른손이 부러지고 즉시 부었다. 수련생은 다급히 나를 안고 집에 돌아왔고 그제야 현세현보(現世現報)라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 돌아온 후 수련생은 괜찮으니 연공을 하자고 했다. 동공(動功)을 마친 후 아들이 돌아와 이 모습을 보더니 기어이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했다. 남편도 같이 따라오면서 반드시 병원에 가 검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결과 손목이 부러졌다. 나는 약을 받지 않고 집에 돌아왔고 집에 온 후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했다. 10여 일이 지난 후 붓기가 전부 빠지고 손목도 정상으로 회복됐다. 속인은 근육과 뼈를 다치면 낫는데 백일이 걸린다고 하지만 나는 약 한 알 먹지 않고 손목이 며칠 부러졌다가 저절로 다 나았다. 다시 한 번 가족들에게 대법의 신기함을 실증해주고 대법은 만능으로서 진정으로 믿으면 무슨 일이나 다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3. 모순 속에서 자신을 닦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낡은 집 한 채를 남겨주셨다. 집에 거주하는 사람이 없고 비가 새기에 아들딸은 낡은 집을 허문 후 높고 폼 나는 집을 짓자고 했다. 나와 남편은 집에 돌아온 후 예의상 옆집 이웃들에게 문의했고 다들 의견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낡은 집을 허물자 왼쪽 이웃집은 마음이 바뀌어 짓지 못하게 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에 일에 부딪혔을 때 자신을 속인으로 여기면 안 되고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이웃집의 동생과 의논하려고 그 집에 들어서니 마침 이웃도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형님이 여기에 계시니 더 잘 됐네요.” 그들은 나보고 앉으라고 했다. 내가 “집을 허물었으니 어쨌든 다시 지어야죠”라고 하자 그 동생은 안 된다며 짓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왼쪽 이웃은 말했다. “지어도 됩니다. 그러려면 우리에게 2~3센티미터 땅을 양보해야 합니다.” 듣고 보니 정말 막무가내였지만 나는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기면서 참았다. 2~3센티미터를 양보하라고 하니 그럼 3센티미터를 양보하겠다고 했고 이렇게 순조롭게 집을 지을 수 있었다.
그 후 벽돌을 날라 왔고 오른쪽 이웃이 남긴 칼자루 모양의 안쪽 벽을 직행으로 쌓았다. 우리가 한창 쌓고 있을 대 오른쪽 이웃은 높다란 벽에 올라서서 쌓지 못하게 했다. 남편은 화가 나 벽돌을 들고 오른쪽 이웃을 때리려고 했다. 내가 “얼른 벽돌을 내려놓으세요. 이게 뭐하는 거예요?”라고 말려서야 남편은 멈추었다. 나는 오른쪽 이웃에게 말했다. “우리가 없을 때 당신들은 우리 집 안쪽 벽도 다 허물고 나무도 베어버렸지만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른쪽 이웃은 눈을 부릅뜨며 우리 집 벽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내가 “당신들이 다 허물어버렸잖아요. 묻고 싶으면 당신들한테 물어보세요”라고 하자 이웃은 쑥스러워하며 벽에서 내려와 떠났다.
일하러 온 사람은 우리 파룬궁 수련자들이 너무 온순해서 늘 괴롭힘을 당한다고 말했다. 내가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행동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 합니다”라고 하자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삼퇴(중국 공산당, 공산주의 청년단, 소년선봉대 조직에서 탈퇴)시켰다. 일이 지난 후 이웃들을 만나면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평소처럼 인사했다.
4. 사명을 어기지 않고 분초를 다퉈가며 사람을 구하다
우리는 고향집에서 살기 시작했고 나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으로 홍법하고 사람을 구했다. 이후에 현지 수련생이 우리에게 컴퓨터와 프린터를 사주어 우리 집에도 한 떨기 꽃이 피었다. 나는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고 우리가 배포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수련생들에게도 배포하라고 나눠주었다. 쉽게 자료를 배포하려고 우리 집에서는 전기자동차를 구매했고 남편은 늘 우리를 태우고 시장에 가서 자료를 나눠주고 진상을 알렸다.
나의 생명은 조사정법하기 위해 왔기에 1분1초를 소중히 여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해야 한다. 우리 집에도 우담바라 꽃이 피었는데 이건 사부님의 격려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후에 아들딸 수요에 의해 우리는 집에 있던 기계를 모두 현지 수련생에게 준 후 다시 대도시로 왔다. 그때부터 대면해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고 날마다 70~80명을 탈퇴시키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사부님께서 옆에 계시기에 매번 진상을 아주 순조롭게 알릴 수 있었고 모두 실명으로 탈퇴했다. 내가 구도한 사람들은 진상을 명백히 알았기에 멀리서 나를 보아도 인사하고 아주 존경했다.
이러한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수련하면서 쓰고 싶은 일들이 수없이 많고 신기한 일들도 많이 겪었지만 지식수준의 제한으로 생각나는 대로 썼다. 우리 모두 주인공 역할을 잘 하고 100퍼센트 신사신법(信師信法)하여 신의 길에서 중생을 구도하고 끝까지 사부님을 따라가자. “상사(上士)가 도(道)를 들으면 근면히 행한다.”[1]에 따라 하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4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4/3/3636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