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 파룬따파 제자 춘연(春缘)
[밍후이왕] 유년시절 중국공산당의 ‘대약진(大躍進)’운동이 만들어 낸 대기근(大饑荒)과 극도의 빈곤함 그리고 소년 시절에 겪었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의 우매함과 황당무계함은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끊임없는 정치 운동은 저의 정신세계에 지울 수 없는 고통과 낙인을 남겼습니다. 그해, 공산당 문화의 독해를 깊이 받아 저는 열정을 가득 안고 ‘진리를 위해 투쟁’했으며, 공산주의를 위해 ‘평생을 분투’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이 허위와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저는 단지 사기를 당한 피해자에 불과했습니다.
저와 같은 젊은 청년은 생산라인에서 어떻게 일하든지를 막론하고 하루에 노동점수 10점밖에 벌어들일 수 없었기에 1년을 고생해도 겨우 100위안밖에 벌어들일 수 없었습니다. 옷이 부족하여 제대로 입지 못하는 걸 말하지 않더라도 밥을 먹는 것마저 문제가 되어 스스로 자신을 부양하기에도 벅찼습니다. 막막하고 어찌할 방법이 없었던 저는 가까스로 집안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로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게 왜 이리 어려울까? 사람은 도대체 왜 사는 걸까?
삶의 중요한 전환점
1997년 3월은 제 삶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저는 고향의 한 아주머니를 따라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5월 13일, 도시에 사는 친구가 제게 두 권의 책 ‘전법륜(轉法輪)’과 ‘전법륜 2[轉法輪(卷2)]’를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면서 이틀 만에 ‘전법륜’을 다 읽었습니다. 책 속의 법리는 제게 엄청난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이 책을 평생 읽으려 하는데 남은 후반생에 볼 책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그해 저는 만 45세였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전 저는 신체가 아주 좋았으므로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 파룬따파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친다는 것을 보고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전법륜’ 책을 처음으로 읽은 후 제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일념(一念)은 ‘나는 이 사부님을 따라 좋은 사람이 되겠다.’였습니다.
수련하게 되었으니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저는 목공입니다. 시장에서 인테리어 일을 하므로 여러 집을 두루 돌아다니며 식사를 했습니다. 술과 담배를 다했으며 특히 술에 인(癮)이 깊이 박혔습니다. 아내는 제가 술을 끊는다는 말을 듣자 놀라워하며 말했습니다. “당신도 술을 끊을 수 있다고요? 당신이 정말로 술을 끊는다면 저는 밥을 끊을 거예요!” 저는 아내와 내기를 하고 싶지 않았고, 제가 수련을 하려면 술과 담배를 모두 끊어야 했습니다. 불과 그렇게 며칠 동안만 괴롭다가 담배와 술을 모두 끊게 되자 아내는 제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보아하니 당신은 정말로 수련을 하겠군요!”
파룬따파는 우리에게 명예와 이익을 담담하게 내려놓고, ‘진(眞), 선(善), 인(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하고”[1], “해내어야 수련이로다”[2]
수수료를 받지 않음
저는 목공이므로 자주 시내에서 가구제작, 집짓기, 인테리어 등 일을 했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이전에는 사회도덕이 아래로 미끄러짐에 따라 저도 일정한 견해나 주장 없이 시대 조류에 휩쓸려 회사의 물건을 자주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안 가지면 공짜를 안 갖는 것인데, 공짜를 갖는데 누가 안 갖겠는가.”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집 네 칸짜리 단층집을 지을 때 사용했던 철물은 모두 공사 팀으로부터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이후에 저는 선을 수련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이치를 알게 되어 이러한 행위를 고쳤을 뿐만 아니라 명예와 이익을 담담히 내려놓고 수수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당시 10%의 수수료를 받는 관례에 따르면 저의 매년 인테리어와 재료 구매 수수료는 약 몇천 위안에서 만 위안 이상에 달했습니다. 가정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 저에게 이는 아주 유혹적인 액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줄곧 한 푼도 갖지 않음을 견지했습니다. 많은 제조업체와 상가업체는 저와 불문계약을 맺고 합작하려고 했으나 저는 모두 명확하게 태도 표명을 했습니다. “합작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저는 수수료를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해주고 있는 이 집 사람들에게 재료를 구매해주는 것은 ‘한 손으로 두 가지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매자와 판매자를 동시에 배려해줘야 했습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물건도 신뢰할 만한 진짜이고, 값도 공정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상대방에게 기어이 제게 수수료를 주려 한다면 그 돈을 제가 일해주고 있는 집 주인의 재료 구매 비용으로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부터 진, 선, 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했습니다. 일을 꼼꼼하게 하고 열심히 했으며 대충대충 하지 않았습니다. 재료를 낭비하지 않았고 음식을 이것저것 가리지 않았습니다. 설령 어떤 사람들은 점심 식사로 찐빵 몇 개를 주고 끓인 물 한 주전자를 주더라도 저는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번은 한 집의 일을 다 마치고 난 후, 주인인 그녀가 무의식중에 제게 천 위안의 노임을 더 많이 줬습니다. 저는 발견한 후 즉시 되돌려 줬습니다. 그녀의 온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은 모두 매우 감동하며 말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좋군요!”
다년간, 제가 일해 준 집과 재료를 판매한 제조업체는 모두 제가 파룬따파 수련자임을 알며 저의 인품이 좋고 작업의 질이 높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친한 친구에게 저를 추천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제가 시장에 나가서 일을 직접 찾지 않고 집에서 걸려오는 전화만 받으면 되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버스를 타며 티켓을 살 때와 오토바이 주유할 때 거스름돈을 더 많이 받게 되면 저는 즉시 되돌려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길을 잘못 들어서 제 오토바이와 부딪혀 고장을 내더라도 저는 그 사람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저의 집에서 옥수수를 팔았는데 계산할 때 구매자가 제게 160여 위안을 더 주었습니다. 저는 이상함을 알아차리고 다시 계산해본 후 더 많이 받은 돈을 구매자에게 되돌려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매우 감동하며 ‘삼퇴(三退-중국 공산당,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소년선봉대)’까지 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촌장 선거에서 몇몇 입후보자들은 촌장이 되기 위해 돈을 써서 표를 사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의 집에는 네다섯 장의 표가 있었고 몇몇 입후보자들이 몇 년 동안 제게 주었던 푯값만 해도 몇천 위안이 됩니다. 이는 저처럼 교도소에서 박해당해 노동 능력을 상실하게 된 사람에게는 정말 엄청난 수입입니다. 그러나 저는 파룬따파 제자로서 결코 이 거액의 돈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그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매번 그들이 제게 돈을 가져다줄 때 잠시 보류해두었다가 선거가 끝나면 당선 여부를 막론하고 저는 돈을 모두 그들에게 되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그들에게 촌민 위원회에 당선되면 대법을 선하게 대하고 대법제자들을 선하게 대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 사람도 중국 공산당,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소년선봉대 조직에서 탈퇴했습니다.
이웃에게 절반의 배상금을 양보
어느 해 설날, 앞뜰 맞은편에 사는 이웃들이 폭죽을 터뜨리다가 우리 집 입구의 땔감 짚더미에 불이 붙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우리 집 왼편에 살고 있던 이웃집 담장도 약간 검게 그을린 흔적이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리어 이 집 사람들이 가장 먼저 촌에 가서 해당 사건을 보고하며, 말하기를 자기 집 땔감 짚더미에도 불이 붙었다는 겁니다.
지역 주민 사무소 관계자가 마을에 내려와 조사할 때에도 그 집 사람들은 자기 집에 불이 붙은 사연의 자초지종을 앞질러 호소하며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지역주민 관계자는 보자마자 두 집이 아닌 한 집에만 불이 붙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자료 기록을 남겨두기 위해 화재 현장을 녹화해야 했으므로 그들은 두 집을 동시에 배상해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웃집 사람들의 강력한 요구에 관계자들도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에 배상해주어야 할 200위안의 배상금을 그들 집에 100위안을 나누어 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웃집과 따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웃집도 몹시 어렵고 아내가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는데 100위안을 갖고 그들과 따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리 분쟁을 자비로 평정
어느 해, 우리 집은 20여 마리의 오리를 키웠습니다. 왼쪽에 살고 있던 이웃도 아주 많은 오리를 키웠습니다. 낮이면 오리들은 문 앞 개울가에 나가 헤엄치며 놀았습니다. 어느 날 오후 3시가 조금 넘자 우리 집 오리들은 모두 집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갑자기 이웃집에 사는 여자아이가 우리 집으로 와서 집오리 한 마리가 사라졌다며 자기 집 오리를 찾았습니다. 이 여자아이는 우리 집 오리를 자세히 관찰한 뒤 갑작스레 한 오리의 목을 덥석 잡고 말했습니다. “이 오리는 우리 집 오리에요.” 말을 마치자마자 오리를 안아 들고 가려고 했습니다.
제 아내가 그녀의 길을 가로막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집 오리를 저는 다 식별할 수 있어요. 이 오리는 전혀 당신 집, 오리가 아니에요. 이건 우리 집 오리에요. 당신이 가져가면 안 돼요!” 그러나 그 여자아이는 이 오리가 자기 집 오리라고 딱 잡아떼며 한사코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양보 안 했고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져 가며 논쟁을 하다 보니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제 아내의 인품으로 봐서는 그녀가 절대로 남의 오리를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제 아내는 확실히 우리 집의 닭과 오리를 모두 알고 있어 식별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한창 화가 나 있어서 제가 다시 ‘참전’하여 아내를 위해 말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선념(善念)을 지키면서 갈등을 해결해야 할뿐만 아니라 모순을 격화시켜서는 안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급한 가운데 저는 별안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고 모두가 받아들일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시죠. 아가씨도 아시다시피 지금 해가 아주 높게 떠 있어서 날이 아직 이른 편이지요. 우리 두 집 모두 오리를 지금 개울가로 되돌려 보냅시다. 일반적으로 오리는 자기 집을 알고 있으니 잠시 후에 스스로 자기 집을 찾아 되돌아오게 해봐요. 아가씨가 보기에 어떤가요?” 여자아이는 듣자마자 즉시 오리를 품에서 내려놓고 말했습니다. “좋아요, 이건 좋은 방법이에요, 그렇게 하죠!” 그녀는 오리를 놓아주었습니다.
우리 두 집은 모두 자기 집 오리를 개울가로 내보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오리에 대해 신경 쓰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서 밥해요.” 대략 1시간이 지났을 무렵 그 여자아이는 얼굴이 빨개져 우리 집으로 찾아와 사과했습니다. “우리 집 오리가 이웃집에 있었어요. 지금 집으로 돌아왔어요. 방금 제가 언니를 많이 화나게 했죠?” 그녀는 거듭 사과했습니다.
교란자를 선하게 대하다
십여 년 동안 장쩌민(江澤民)이 비밀리에 설립한 전문적인 파룬궁 박해 불법조직인 현지의 ‘610‘관계자와 정부 관계자, 경찰, 촌민 위원회 관계자 등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저에 대해 감시와 통제 및 교란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그들 중 수많은 사람이 장쩌민의 거짓말에 속아 독해(毒害) 받았으며 또 일부의 사람들은 금전에 유혹되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파룬따파의 법리가 우리에게 파룬따파 제자는 적이 없으며 오직 자비와 선념 뿐임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든지를 막론하고 저는 모두 그들을 선하게 대했습니다.
저는 경찰관을 찾아 집으로 데려와 제가 쓴 편지를 그들에게 직접 앞에서 전해주며 장쩌민 고소안, 공산당 조직 탈퇴의 큰 흐름, 세계에 널리 전해지는 대법,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 생체장기적출 등등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아울러 그들에게 대법과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면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이치도 알려주었습니다. 특히, 전국 대법제자들이 장쩌민을 고소한 이래에 저는 장쩌민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의 증거와 파룬따파의 좋음을 증명하는 총 20여 가지 항목의 증거를 각각 법원, 지역 주민 사무소 관계자, 경찰, 촌민 위원회 관계자, 마을 사람 등 사람들에게 직접 대면하여 전달해주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 사람들은 진상을 알기에 우리 집에 와서 ‘관례에 따라 처리하는 공무’를 형식적으로만 했으며 실질적인 교란을 하지 않았습니다.
공안국에서 진상을 알리다
한번은 제가 오토바이를 타고 공원에 가서 도료를 입혀 진상표어를 칠하려다가 경찰관에게 발견되어 쫓기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갔지만 결국 그들은 제 차량 번호를 적어놓았습니다.
며칠 후, 그들은 저를 붙잡아 공안국으로 데려갔습니다. 연행되어 가던 길에 저는 끊임없이 ‘홍음-위덕(威德)’을 외웠습니다. ‘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으니 마음에 쩐싼런(眞善忍) 있네. 세간의 대나한(大羅漢) 신도 귀신도 몹시 두려워하네’[3] 공안국에서 이(李) 씨인 한 경찰관이 몇 번 저를 불러 ‘실사구시(實事求是)’적으로 문제를 설명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실사구시’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야. 즉, 유물론을 공부한 사람이지. 이런 것을 당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해. 나는 파룬궁을 몰라. 당신이 나와 파룬궁을 이야기한다 해도 나는 아무것도 몰라. 당신은 그저 실사구시로 문제를 설명하게.”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파룬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파룬궁을 관리하나요? 무엇이 ‘실사구시’인지 이 문제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야기가 통할 수 있겠어요? 만약 당신이 이야기하고 싶다면 반드시 이 문제들을 제가 똑똑히 설명하는 것을 먼저 들으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한마디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는 말했습니다. “안 돼!” 제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다시 말하지 않을 거예요” 몇 분간 서로 양보 없이 대치하다가 그는 마침내 물러서며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당신에게 말하게 하면 당신은 뭐든지 다 말할 수 있어?” 제가 답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제는 당신이 도중에 끼어들어 말을 끊지 말아야 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좋아, 그럼 당신이 말해봐.” 저는 자신을 위해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시간을 벌었고, 아울러 그가 제 사고의 방향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의 전해짐, 수억 명 사람들의 수련, 대법이 병을 제거하여 신체를 건강하게 해주는 신기한 효과, 도덕의 향상, 국내외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형세, 파룬궁 탄압의 잘못, 수련자들이 상급 기관에 상황을 알리고 해결을 요구하는 원인 등등 각 방면에서 모두 개괄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다시 되돌아와 ‘실사구시’, 이 명사를 해석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실사구시’라는 이 명사를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실사(實事)이고 두 번째는 구(求)이며 세 번째는 시(是)입니다. 우선, ‘실사’를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우주 중에 존재하는 일체의 사물을 모두 ‘실사’라고 합니다. 세상에 이미 있는 일과 사물은 모두 ‘실사’입니다. 방금 제가 이야기한 파룬궁이 널리 전해지고 발전하며 수련을 하여 사람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등등은 모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사’입니다.”
구(求)는 바로 사람들이 가서 조사하고 탐색하며 연구하는 것입니다. 차오스(喬石) 상무위원장이 퇴직 후, 그의 오랜 부하와 옛 전우들을 조직하여 깊이 있고 착실하게 파룬궁에 대해 반년 동안의 조사를 진행하여 결과를 중앙에 보고했습니다.
시(是)는 바로 결론과 결과로 바로 도(道)와 이치(理)입니다. 차오스 상무위원장은 보고 중에 “파룬궁은 국가와 백성에게 백 가지 이로움은 있을지언정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고 말했으며, 이것이 바로 차오스 상무위원장이 진행한 ‘실사(實事)’, ‘구(求)’, ‘시(是)‘의 전 과정입니다.
저는 두 시간 가까이 설명했고 그 경찰관은 과연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했습니다. 저의 설명이 일단락되자 그는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문화를 가진 사람인가?” 저는 답했습니다. “저는 문화대혁명 혼란을 겪던 시대에 공부한 사람이기 때문에 별다른 문화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파룬따파를 수련하면 지혜가 열리게 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위법 활동을 한 적이 있는가?” 저는 답했습니다. “저는 아무런 위법 활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 말에는 제가 속인의 법을 위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법도 위반하지 않았다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그만 돌아가시오.”
이 일을 통해, 저는 나중에 또 ‘실사구시에 관한 얕은 분석(淺析 實事求是)’이라는 한 편의 문장을 썼고 밍후이왕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착실한 수련(實修)’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위덕(威德)’
원문발표: 2018년 4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언행으로 대법을 실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4/7/3633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