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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제자 “나는 안으로 찾는 것을 배웠다”

[밍후이왕]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법 속에서 12년을 수련했다. 오늘 정법(正法) 수련 중에서 체험한 약간의 것을 말해보려 한다.

최근 갑 수련인이 나와 이런 일을 교류했다. 갑이 참가하는 법공부 팀에서 을이 장기간 기침을 했는데 병은 심기가 좀 불편했다. 병은 을이 기침을 하니 그의 마당이 좋지 않다고 여겨 법공부 팀에서 함께 법공부 하려 하지 않고 을을 멀리하려 했다. 이후 병은 법공부 팀에 오지 않았다. 1달 뒤 병은 다른 수련인들이 모르는 상황에서 구세력이 조성한 병업의 형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병이 세상을 떠난 후 을은 지금까지 기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일을 듣고 우리는 병의 사망에 가슴아파하는 동시에 타인의 문제를 보면 정말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련인에게 나타난 문제가 자신의 사람 마음을 겨냥한 것이 아닌지 봐야 한다. 내가 다른 수련인의 비정상적 상태에 집착할수록 그는 갈수록 그런 모습을 보인다. 얼마 전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우리 법공부 팀의 한 수련자는 목소리가 커서 그가 말하면 우레가 치는 것 같았다. 말할 때 흥분하기 때문에 위아래층에서 다 들릴 정도였다. 우리는 밤에 법공부를 하기 때문에 그에게 소리를 좀 낮추라고 일깨워줬다. 이웃이 쉬는데 방해하면 안 되고, 안전도 생각해야 하며, 고성방가하는 당문화 요소 측면에서 그와 교류했다. 그는 매번 머리를 끄덕이며 주의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절제하지 못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마음속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러지? 너무 이기적이야. 기본적으로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보지 않잖아.’ 나는 그와 말하는 태도가 나빠졌고 마음속에 반감이 생겼다.

어느 날 사부님의 법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 말하는 태도마저 다르다. 자신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하는 이것은 바로 불교 중에서도 아주 꺼리는 것이다.”[1] 나는 내가 태도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안을 향해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남을 변화시키려 하고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남을 얕보는 질투심이 작용했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다. 어떻게 남을 자기 기준에 맞추려 하고 남을 수련시키려 하고 자신을 닦지 않을 수 있는가. 그 수련인이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은 혹시 나의 질투심을 겨냥한 것이 아닐까? 이 점을 생각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다음에 법공부 팀에 가면 그가 어떻게 하는지를 보지 말고 나의 심성을 지키고 수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공부 팀에 갔는데 신기했다. 그가 목소리가 큰데도 거슬리는 느낌이 없었고, 그도 될수록 자기 목소리를 조절하려 하면서 다른 수련인에게도 작은 소리로 말하도록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정말로 내가 마음을 바로잡으니 다른 수련자도 변했다. 나는 대법 수련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체험했다.

실제로 수련하면서 이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안으로 찾으면서 환경이 곧 변하는 사례가 많은데 나는 한 가지 예를 든 것이다. 표면적인 시비를 따지지 말고 그때 나오는 사람 마음을 닦아버리면 끊임없이 자아를 내려놓는 과정에 있게 된다. 타인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하게 되고, 남을 이해하고 남의 좋은 점을 보면서 갈수록 남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이것은 일종 자비가 표현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법공부 팀에 참가하는 외에 나와 어머니(수련인)는 끊임없이 마음을 닦아, 처음에 모순과 마찰이 끊이지 않던 데에서 점차적으로 수시로 원용하고 서로 부족한 점을 메워주면서 하나가 됐다.

어느 날 어머니가 밖에서 진상을 알리고 귀가하셨는데, 당신이 준 진상자료와 호신부를 누가 버리는 것을 보고 주워왔다는 말을 하셨다. 어머니는 세인이 자료를 버리는 것을 처음 봤다며 마음이 괴로우셨다고 했다. 진상자료를 주기 전에 세인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가 3퇴(중국공산당의 3대 조직에서 탈퇴를 성명하는 것)도 했으며 그가 자료를 가져가겠다고 동의해서 준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다음에 그와 마주치면 다시 진상을 알려서 그가 죄를 짓지 않게 해야겠다고 하셨다. 자료는 어머니가 배포한 것이지만 만든 사람은 나다.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나도 안으로 찾아야 한다. 내게 무슨 문제가 없는지 찾아봐야 한다.

한동안 내가 인쇄한 자료 중에 몇 번 인쇄가 잘못된 것을 봤었다. 우선 이것은 수련에서 느슨한 것이다. 자료를 성심성의껏 만들지 않고 대충 한 것이다. 하지만 일단 만들었는데 버리면 낭비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머니는 세인에게 진상을 알린 후 자료를 준 것이니 그들이 진상을 받아들이는 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편 발송의 경우는 수신인에게 좋은 인상을 줘야 한다. 세인이 자료를 읽기도 전에 펼치기도 싫게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잘 인쇄된 자료를 썼고 조금 흠집이 있거나 고친 것은 어머니께 드렸다. 나는 이기심과 고르는 마음(분별심)을 찾아 제거했다. 우리가 쓰는 종이 한 장에도 생명이 있고 함부로 쓰면 안 된다. 내 마음가짐이 똑발라야 잘 할 수 있다. 진상 자료를 만드는 것은 얼핏 간단해보이지만 단지 사람의 기술로 하는 것이 아니다. 법을 실증하는 수련 과정이고 수련인의 정념으로 대해야 한다.

때로 나도 어머니 수련생과 함께 나가서 대면해 진상을 알린다. 내가 어려보이다 보니, 어떤 사람은 진상을 듣고는 노인들만 수련하는 줄 알았다면서 이런 젊은 사람도 수련하냐고 묻는다. 나는 “대학생, 박사, 교수 중에도 수련하는 사람이 많고 어린이도 파룬궁을 수련한답니다.”라고 말한다. 한번은 중년 남성이 어머니에게 진상을 듣고는 “청년도 믿어요?”라고 하기에 나도 수련한다고 하니 그는 “당신이 믿는다면 저도 믿죠. 젊고 생각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 당신이 믿는다면 진짜일 거에요.”라고 했다. 나와 어머니는 감동스러웠다. 청년 수련인의 존재는 대법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을 타파하고 대법을 실증한다. 나는 자주 밖에 나가 대면해서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면해서 진상을 알리는 일이 많아지면서 내 문제가 하나 돌출됐다.

나는 1980년대에 태어났는데 대법을 수련하면서 나이보다 더 어려 보인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내 실제 나이를 잘 맞추지 못하고 대부분 스물 또는 더 어리게도 본다. 그래서 때로는 세인이 내 나이가 몇 살인지 묻는데, 다른 수련인의 교류 문장에서 자신이 실제 나이로 정정당당하게 대법을 실증하는 사례를 봤음에도, 나 자신은 마음속에 일종 장애가 있어서 타인이 나이를 물으면 싫어하고 장기간 돌파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안전을 생각해서 개인적인 정보를 노출하지 않으려 한 것인데 나중에는 다른 생각이 생겼다. 한번은 결혼한 동료에게 진상을 알리는데 그녀도 내 나이를 물었다. 한순간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동료니까 괜찮겠지 싶어 알려줬다. 그녀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라면서 내 개인 문제를 물었다. 내가 사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더니 그녀는 이상해하며 “아무 문제도 없는데 왜 남자친구가 없어요?”라고 했다. 당시 나는 나이를 알려준 것을 후회했고,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며 넘어갔다. 이 일이 있은 뒤로 누가 또 나이를 물으면 나는 웃으며 대답하지 않거나 “보이는 게 나이에요.”라고 답했다. 이런 답변이 지혜롭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은 반면 교훈을 받아들인 것이고 교활해진 것이다. 나는 거기서 두려움, 자신을 감추려는 마음,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등을 의식했다. 하지만 한동안 회피하거나 부연 설명하는 것 외에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호기심으로 묻거나 색마(色魔)의 교란으로 다른 속셈이 있는 사람과 마주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서 프라이버시를 지켜야한다는 관념이 더 완고해졌다. 나는 남이 물어보는 것을 싫어하던 데에서 남이 묻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이르렀다. 진상을 알릴 때도 경계심, 타인의 마음을 유추하려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정념으로 대해야 할지 몰랐다.

최근 한동안 법공부하는 과정에서 다른 수련자의 교류 문장을 보다가, 나는 문득 자신이 변이된 사유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냐하면 ‘두려운’ 마음에서 시시각각 타인을 경계하고 타인의 의중을 짐작하고 자신을 과잉보호하면서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 내지는 성실한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黨)문화의 변이된 심리가 아닌가. 왜 남이 내 나이를 묻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대법을 수련하니까 나이보다 어려보이는데 왜 대법에 대한 정념이 나오지 않고 반대로 이것을 고려하고 저것을 고려하는가 말이다. 색마의 교란이 있더라도 정념으로 그것을 해체하고 정념으로 100가지 사악한 요소를 제압할 수 있는데. 왜 사람의 바르지 않은 생각을 중하게 보고 속인의 생각에 휩쓸리는가. 대법제자가 주도적인 작용을 해야지 않겠는가. 이는 나 자신과 대법, 중생의 관계를 바로 놓지 못한 것이었다. 내 문제를 인식한 뒤 나는 태도를 바꾸려 노력했고, 더 이상 나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다. 며칠 전 택시기사에게 진상을 알리는데 그도 내 나이를 물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비밀이라고 했다가 다시, 이건 옳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80년대생이라고 알려줬다. 택시기사는 듣더니 “정말 그 나이가 아닌 것 같아요.”라고 했다. 나는 팔선(八仙)이 바다를 건넌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파룬궁도 성명쌍수(性命雙修) 공법이라 젊어 보여요. 역사 속에서 봐도 수도인은 머리카락이 희어도 얼굴이 동안인데, 나이가 많아도 늙지를 않아 보기에 젊어보였지요.”라고 했다. 택시기사는 인정하고 이해했다.

이후 진상을 알리면서 나는 마음가짐을 바르게 했다. 몇 사람은 우리가 말한 진상을 듣고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이고 정말로 여명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 한순간에 사람이 심신 상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기쁘고 가벼워 보였다. 이런 경우는 내가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여태 만난 적이 없었다. 나와 어머니 수련생은 이 생명이 진정으로 진상을 알게 된 것에 기뻤다.

이전에 어느 수련인이 세인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봤는데 그는 수련인의 말을 듣고는 믿는다고 했다. 이유인즉, 그녀가 진상을 알리는데 장엄하고 신성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 그런 장엄하고 신성한 느낌이 없었다. 지금은 깨달았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진정으로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과 숭경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진심으로 마음속에서 대법에 대한 정념이 일어나고 단지 말과 형식에 머물지 않을 때, 진상을 알리면 자연히 대법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중생에게 가져다준다. 이것도 ‘진(眞)’의 한 층 내포라고 인식한다.

개인 층차의 한계로 법에 있지 않은 인식이 있다면 수련인들께서 자비로 시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18년 3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26/3633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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