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남편이 외도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남편과 외도한 대상은 나와 친구이기도 했기에 이 이중의 배신으로 인해 모욕을 당한 것 같고 분노하고 구역질이 났지만 야단치지는 않았다. 첫째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둘째는 수련인이므로 참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마음이 뒤죽박죽됐지만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참았고 아무런 일이 없는 척했다.
사부님께서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이렇다. 며칠 안 되어 그 두 사람의 채팅 기록을 발견했다. 그 오글거리는 말들을 보자 분노를 더는 참을 수 없어 남편과 한바탕 싸웠고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살려고 결정했다(즉 이혼).
이후에 그는 그녀와 관계를 끊고 왕래하지 않겠으니 아이를 봐서라도 한 번 용서해달라고 했다. 당시 법공부를 깊이 하지 못했기에 안으로 찾을 줄 몰랐다. 그가 잘못했다고만 생각했기에 남편을 보기만 하면 눈에 거슬렸고 화가 났다. 이후로 집은 초연 없는 전쟁터가 됐고 갈등이 끊이지 않았으며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어떤 때 냉전하면 몇 주나 말을 하지 않아 아주 고통스러웠다. 이후에 법공부를 깊이 함에 따라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 중에서 실제로 모순을 대할 때,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지 않게 대할 때, 아마 이 두 가지 정황이 존재할 것이다. 하나는, 당신이 전생에 남을 잘 대해 주지 않은 적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말한다.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왜 이전에 남을 그렇게 대했는가? 당신이 당신의 그때 일을 모르고, 이 한평생에 그 한평생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안 된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모순 중에서 업력의 전화 문제가 연관되기 때문에, 실제로 대할 때 우리는 마땅히 높은 자태여야 하며 속인과 같아서는 안 된다.”[1]라는 법을 깨닫게 됐다. 남편과 내가 어느 상황이든 빚을 갚는 것도 좋고 소업하는 것도 좋으며 수련하는 나에 대해서는 모두 좋은 일인데 화가 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높은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깨닫자 마음의 화도 사라졌고 남편도 많이 관심함에 따라 가정도 점차 화목해졌다.
그러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에 대한 정이 갈수록 깊어졌다. 집착심이 생기자 바로 번거로운 일이 발생했다. 어느 날 무심결에 남편의 위챗을 봤는데 내연녀와 또 연락하고 있었고 말투가 애매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 마음은 깊은 상처를 받았고 억울함과 분노, 원망이 또 몽땅 나왔고 한바탕 크게 울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 중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1]라는 것을 봤다. 속으로 이런 일이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들이 왜 또 연락하는가? 내가 부부의 정에 너무 빠져있어 이런 집착심을 없애려고 하는 것일 것이다. 사부님께서 “세간의 어떠한 하나의 마음과 어떠한 하나의 걱정하는 요소도 모두 사람을 떠나지 못하게 잠가두는 자물쇠로 된다.”[2]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이런 감정에 꽁꽁 묶여 있는데 어떻게 수련 성공할 수 있겠는가? 수련인의 몸은 속세에 있지만, 속인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 세상에서 자신의 역할만 잘하면 되는데 극에 빠져 원래의 집을 잊어서는 어떻게 되겠는가!
세 번째로 그들이 연락하는 것을 봤을 때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고 그들이 가련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사당 통치하의 중국은 도덕성이 일일천리로 타락하고 있고 관리들에게 내연녀가 있는 것은 흔한 일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것이다. 자신의 그깟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예의와 염치를 전부 버렸다. 남편과 한번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모든 죄악 중 음란함이 으뜸이고 그런 남녀 간의 정당하지 못한 짓을 하면 어떻게 도덕의 손해를 보고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바로 예의 염치를 알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스스로 잘 말했다고 생각했으나 이튿날 남편은 한마디도 없이 나갔다. 내 마음은 또 따라 움직였고 ‘그 여자를 찾아간 것이겠지. 앞으로 집으로 오지 마’라고 했고 남편의 전화번호, 위챗을 차단 리스트에 넣어버렸다. 속으로 ‘당신이 잘못한 거야. 호의로 몇 마디 했다고 화를 내다니, 정말로 좋고 나쁨을 가릴 줄 모르는구나. 내게 연락하고 싶어도 연락하지 못하게 할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은근히 그가 연락하길 바랐기에 남편의 전화번호를 차단 리스트에서 삭제시켰다. 그러나 또 그가 날 연락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에게 교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 또 그를 차단 리스트에 넣었다. 좀 지나 수련인이므로 그와 같이 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또 차단 리스트에서 삭제시켰다. 이렇게 반복하면서 온종일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다.
이튿날 수련생 집에 법공부를 하러 갔다. 법공부를 다 하고 수련생과 이 일에 대해 교류했다. 수련생은 “그들이 연락하는 것을 자꾸 보게 하는 원인을 생각해봤어요? 무슨 마음을 없애야 하는지 안으로 찾아보세요.”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안으로 찾아봤다. 왜 보기만 하면 이런 일을 보게 될까? 그들의 일에 대해 마음을 정말로 내려놓았는가? 답안은 아니다. 그래서 자꾸 의심하고 그의 핸드폰을 뒤져보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이다. 그와 말을 할 때 자신이 도덕의 높은 곳에서 있는 것 같고 마음속으로부터 그를 깔보고 멸시했다. 전혀 선하지 않고 자비심이 없었기에 대화는 아무런 좋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 작용을 했다. 생활에서 남편을 알뜰히 보살폈는데 여전히 날 이렇게 대한다고 원망했다. 표면으로만 원망하는 마음을 없앴지 깊은 마음속으로 여전히 있고 이따금 튀어나왔다. 당신이 틀렸고 내가 옳다는 쟁투심도 있었다. 그리고 또 그가 한 일은 내 체면을 손상했고 또 그 여자에 대한 질투심이 있었으며 그녀가 남편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질투했다. 다시 깊이 뿌리를 파봤더니 여전히 남편에 대한 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를 구도할 중생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남편과 알콩달콩 사는 데 집착하고 있었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없애지 못한 것을 보시고 사람의 마음을 없애고 제고하게 배치해주셨지만, 이 못난 제자는 전부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정말로 사부님의 고심에 부끄러웠다.
안으로 이런 것들을 찾은 후 가부좌하고 발정념했고 남편에 대한 정과 이 집착심들을 없애게 가지해달라고 사부님께 요청했다. 발정념한 후 마음이 비고 아주 조용해졌다.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이 자신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속인 속의 아무런 일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게 됐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이었고 자신이 마치 위에 높은 곳에서 가련한 인간 세상 속의 중생을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이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 같았다.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았다. “명리정(名利情) 닦아버리고 원만하여 창궁에 오르네 자비로 세계를 보나니 그제야 미혹 속에서 깨어나네”[3].
철저히 내려놓고 자신을 바로잡자 이튿날 남편도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남편은 내게 사과했고 그 여자와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또 한 번 맹세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거울같이 분명해졌다. 사부님께서 제자가 정말로 안으로 찾은 것을 보시고 좋지 않은 물건을 없애주시자 그 좋지 않은 집착심들이 없어졌고 사부님께서도 이 일을 해결해주셨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됐다. 나는 진정으로 안으로 찾는 특별함을 체득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4] 한 층의 내포를 깨닫게 됐다.
무슨 일을 당하든 우선 자신이 수련인임을 생각해야 하고 정념이 있고 마음이 반듯하기만 하면 주변 환경도 바로잡힐 것이다.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바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으로, 잘못을 스스로 찾고 바로잡으면 모든 일도 쉽게 해결될 것이다. 꼭 안으로 찾아야 한다. 일이 있으면 안으로 찾는 것은 정말로 수련의 보물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5-2005년 맨해튼 국제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원만공성 (圓滿功成)’
[4]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원문발표: 2018년 3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16/3602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