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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수련으로 심신에 이로움을 얻다-고급 지식인 편(3)

글/ 정신(正信)

[밍후이왕] 1992년 5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파룬따파를 세상에 전하신 지 이제 26년이 되어, 세계 100여 개국과 지역에 전해져 1억이 넘는 사람이 수련하고 있다. 파룬따파의 주요 서적 ‘전법륜(轉法輪)’은 39종 언어로 번역돼 세계 각지에서 공식 발행되고 있다.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출판된 서적 중에 가장 많은 어종으로 번역된 중문서적으로 세계 각국과 민족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99년 당시 중국 정부에 따르면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인은 1억 명에 달했고 고급 지식인도 상당수였다. 그들은 풍부한 사회경험에 사회적 지위도 비교적 높은 엘리트였다. 오늘 우리는 이들을 클로즈업해, 이들이 왜 파룬따파에 입문했고 10여 년의 잔혹한 박해에도 견정히 수련해왔는지 알아보자.

하얼빈 공대 교수의 수련 이야기

치수이전(齊秀珍) 씨는 전 하얼빈공업대학 교수이다. 그녀는 1980년대에 중국해방군 신양(信陽)육군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1988년 전군에서 처음으로 부 교직(高職)을 평가받을 때 그녀는 영어부교수로 평가됐다. 육군대학의 최연소 부교직 여교관이었다.

1. 고질병이 사라지다

치 씨는 어려서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아 남자아이들이 ‘마른 원숭이’라고 놀렸다. 성인이 되었어도 줄곧 건강이 좋지 않아, 작은 병은 물론 큰 병도 여럿 있었다. 신경쇠약, 신경관능증, 장염, 장결핵, 변비, 장경색증 등으로 몸이 말라 39kg밖에 되지 않았고 부인병 암 초기였다. 동료와 친구들이 잇따라 문병왔는데 당시 치 씨는 자신이 죽지 않고 몸이 건강해지길 소망했다. 수년간 병치료를 위해 양한방, 각종 민간요법을 수없이 시도했다. 빈혈을 치료하려고 대추를 1000알 이상 먹었고, 건강을 위해 장거리 달리기를 하고 태극권을 배우고 각종 기공을 배웠지만 효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1995년 8월, 치 씨는 운좋게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되었고 얼마 후 고질병이 사라졌다. 굽었던 다리가 곧게 펴진 것은 더욱 신기한 일이었다. 갱년기인데 생리도 다시 왔다. 이후로 치 씨는 심신이 건강해져 활력이 넘쳤다. 그 뒤로 20년간 치 씨는 약 한 첩 먹지 않았다.

2. 인연을 선하게 대하다

치 씨는 리훙쯔 사부님의 ‘전법륜’을 읽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됐다. 우주의 특성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타인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무사무아(無私無我)·선타후아(先他後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후로 치 씨는 직장에서 맡은 바를 더욱 책임감 있게 하고 학생을 어떻게 잘 가르쳐야 하는지 알게 됐다. 치 씨는 학생들에게 독립적인 사고, 독립적인 분석 능력을 길러주고 선악을 구별하고 시비를 가리는 능력을 가르쳤다. 지식을 가르치는 동시에 사람 됨됨이를 가르쳤다. 대인관계에서 치 씨는 우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봤고 늘 타인을 위해 생각했으며, 주변 사람에게 더욱 친절하고 성실하고 관대했다. 가정 관계도 화목하고 원만했고 대인관계에서 우호적이고 평화로웠다. 실로 ‘길러낸 제자가 천하에 가득하고 사방이 친구’ 였다.

3. 친척이 혜택을 받다

사부님께서는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1]라고 하셨다. 파룬궁을 수련하면 자신에게 이로울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이롭다. 치 씨는 남편이 타지에서 세 번 큰일이 날 뻔했는데 세 번 모두 피해갔다. 한 번은 밤길에 높은 데서 발을 헛디뎌 떨어졌지만 무사했고, 또 한 번은 조심하지 않다가 깊게 패인 굴에 떨어졌지만 무사했다. 마지막 한 번은 가장 끔찍했다. 일하다 수천 볼트의 전기톱이 돌다 갑자기 폭발해 파편이 총알처럼 사방으로 튀어 허벅지를 스쳤지만 정작 본인은 무사했다. 치 씨의 남편은 “아주 위험했어요! 리훙쯔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라고 감격스러워했다.

파룬따파는 치 씨와 여동생의 생명도 구했다. 이전에 이 자매는 삶이 너무 힘겨워 죽을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리훙쯔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살은 죄가 있는 것이다.”[2] 이 말씀에 자매의 망상이 깨졌으며 이들은 고비를 넘었다. 이 점에서 ‘톈안먼분신자살 조작 사건’에서 파룬궁수련인이 ‘분신’했다는 설은 근본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허위요 거짓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하얼빈 공대 박사의 수련 이야기

추샹양(鄒向陽) 씨는 하얼빈공업대학 박사로, 창춘공대 교원이다.

1. 하루아침에 법을 얻어 건강이 좋아지다

1963년생인 추 씨는 9남매 중 8째다. 한 살 아래 남동생이 막내다. 아버지가 3세 때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홀로 9남매를 키우셨다. 그 때는 식구 모두가 먹을 것이 부족해 어려서부터 병이 많았다. 감기와 고열은 흔했다. 열이 나 헛소리하거나눈을 크게 뜨고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치며 일어나기 일쑤였다. 때로는 열이 없어도 그런 현상이 있었다. 어머니는 매번 추 씨가 바닥에 떨어져 다칠까봐 고등학교 입학 전날까지도 줄곧 곁에서 재웠다. 추 씨는 그 외에도 신경쇠약, 심한 장염도 앓았고 뇌염으로 몇 시간동안 기절하기도 했다. 첫째 둘째 형이 키에 싣고 현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다. 유전성 심장병은 가장 심각했다. 추 씨의 아버지는 심장병으로 42세에 일찍 세상을 떠났고, 둘째 형도 49세에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추 씨는 1992년 지린(吉林)공업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했지만 건강이 나빠 박사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창춘건축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시작할 때는 담당한 수업이 많고 익숙하지 않아 수업 준비에 많은 시간이 들었다. 자녀가 어려서 압력이 컸다. 때로 심장이 뻐근하고 박동이 느려 분당 50회 뛰었다. 심장이 멈출까봐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고 신경쇠약이 심해서 어떤 때는 수면제를 복용해야 잠이 들었다. 그러나 깨면 고통스러웠다. 이튿날 또 오전 내내 수업이 있었다. 실로 고생을 말로 다 할 수 없었고 건강은 점차 악화됐다. 추 씨는 각종 방식으로 치료하고 몸을 단련하려 했지만 어떤 효과도 없었다.

신체적인 고통 외에 정신적 압력도 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형제자매가 모두 미혼이었다. 어머니는 고생스럽게 9남매를 키워 추 씨와 남동생을 대학원까지 졸업시켰다. 어머니는 많은 고생을 하셨고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러나 추 씨는 아이가 어린데도 건강이 좋지 않으니 어떻게 효를 다하겠는가, 아이는 어떻게 기를 것인가? 추 씨는 건강이 좋기를 갈망했다!

고생 속에 허덕일 때 추 씨의 운명에 갑자기 전환점이 생겼다. 1995년 9월 추 씨는 운 좋게 파룬궁을 배웠는데 1달도 되지 않아 모든 병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20년이 지났어도 심장병은 재발되지 않았고 불면증도 없다.

2. 명예와 이익, 재물을 담담히 보고 업무와 학업을 모두 이루다

건강을 회복한 추 씨는 업무, 학업, 과학연구에서 생활이 보장돼 마음껏 일할 수 있다. 동시에 파룬따파 대법의 법리가 요구하는 바에 따른 수련인으로서 업무를 잘 하고 과학연구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욱 높은 표준으로 스스로를 요구하는 추 씨는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無求而自得).”[2]에 따라 함으로써 큰 성과를 이뤘다.

교사의 임무는 잘 가르치고 좋은 사람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그래서 추 씨는 매 수업을 준비함에 있어 세심하게 임해 수업시간마다 잘 가르쳤으며, 수업 후에는 교실에서 질문에 답해주며 진심으로 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고 잘 대했다. 1995년 기말시험에서 추 씨가 맡은 반은 평균점수가 최고였다.

수련 후 추 씨는 일을 잘 할뿐만 아니라 재물을 담담히 보고 자신의 것이 아니면 욕심내지도 갖지도 않았다. 1996년 어느 겨울, 추 씨의 6세 아들이 밖에서 놀다가 400위안(한화 68000원)을 주웠다. 그는 아들에게 주인이 돌아와 돈을 찾을지 모른다며 주웠던 곳에 그대로 갖다놓으라고 일렀다. 추 씨는 당시 자신이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고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다며, 만약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아들에게 제자리에 갖다놓으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교사로서 끊임없이 실력을 향상해야 하는데 대학에 재직하면 더욱 그렇다. 추 씨는 이전에 건강이 나빠 박사과정을 마치지 못했지만 이제는 건강하니 가능하게 됐다. 추 씨는 1995년 12월 하얼빈건축대학(이후 하얼빈공대와 통합, 졸업증은 하얼빈공대임) 박사과정 입학시험에 합격해 창춘건축대학 교사 중 박사 1호가 됐다. 사실 추 씨는 당시 직장생활을 하며 박사시험을 준비해야 했기에 시간이 부족했고 심적 부담이 컸다. 그러나 파룬따파를 수련해 몸도 정신 상태가 좋았기에 비로소 이러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추 씨는 1996년 9월~2000년 7월 하얼빈공대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는 엄격하게 진∙선∙인(眞∙善∙忍)의 원칙으로 스스로를 요구해, 학업 및 과학연구를 열심히 하고 지도교수가 배정한 연구를 잘 완성했다. 또 자발적으로 다른 연구생들을 도와 실험을 함께 하며 자신을 희생했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실험은 될수록 혼자 완성해 타인에게 번거로움을 끼치지 않았다. 그렇게 늘 타인을 위했다. 박사논문은 쉽지 않아 부담이 컸지만, 진선인의 원칙으로 모든 것을 대하면서 학업을 원만히 마치고 연구 성과도 좋아, 결국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3. 개인의 득실을 담담히 보고 열심히 일하다

2000년 박사 졸업 즈음, 유명대학에 저명한 지도교수 연구실 출신 박사로서 추 씨는 더 좋은 도시, 더 좋은 학교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몸담았던 직장(전문대)이 바로 타 대학과 합쳐져 창춘공대 학부가 되었기에 박사가 필요했다. 동시에 파룬따파 수련자로서 개인의 득실을 담담히 봐야 하고 타인과 학교를 생각해야 한다고 판단했기에, 추 씨는 몸담았던 학교에 돌아와 한결같이 수업을 착실히 준비하고 지도하며 과학연구를 수행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데 있어 추 씨는 적극적으로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자비로 대학원 수험서를 사주는가 하면 학생들에게 학업을 잘 하는 것은 물론 인품의 중요성이 더 크다는 것도 가르쳤다. 2005년 이후 그는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박해당해 십 몇 년 교권이 박탈됐으나, 대학원 응시생이나 전문대에서 학부로 옮기는 학생들 또는 보충고사와 기말고사 등을 앞둔 재학생들에게 여전히 봉사 차원에서 지도를 해주었고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주었다. 전국대학생구조설계대회 참가학생들을 지도하고 전국 저우페이위안대학생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학생이 감사의 뜻으로 식사를 청해도 단 한 번도 얻어먹지 않았고, 감사의 선물을 해와도 그는 전화요금 등의 방식으로 학생에게 돌려줬다.

추 씨는 과학연구 방면에서 성실하고 주도면밀하게 임해 경비를 적게 들여 두 학교의 연구 과제를 완성했으며, 성급 과학연구과제(구조내진 방면)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유관 논문을 발표했다. 추 씨는 사심 없이 동료 교사를 도와 과학연구와 수업, 논문을 완성했고 동료 교사들이 맡은 학생들이 각종 대회와 대학생 혁신 등에 참가하는 것을 지원했다.

파룬궁을 수련한 지 20년이 넘은 추 씨는 각 방면에서 혜택을 받았다. 특히 사고의 경지가 그렇다. 추 씨는 도량이 넓고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으며 늘 진∙선∙인(眞∙善∙忍)원칙에 따라 스스로를 요구해 학생과 동료 교사들, 또 책임자로부터 존중과 신임, 호평, 추앙을 받았다.

미술 조교수, 건강을 되찾고 타인을 돕다

쓰더리(司德利) 씨는 전 허난성 신양시 스허(溮河)구 문화관 미술 조교수다.

쓰 씨는 과거 위장병이 심하고 감기에 잘 걸렸으며, 전립선염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그러나 1996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면서 건강은 기적처럼 좋아졌고 몸이 가벼워졌다. 수년간 약 한 첩 먹지 않았고 나라와 자신에 대해 많은 의료비가 절약됐다.

수련 후 쓰 씨와 가족은 늘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갔고 감동적인 미담을 여럿 남겼다.

한번은 쓰 씨가 병문안을 갔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 한 농촌 어린이가 차에 치어 다리 골절로 병원에 왔는데 가해자는 뺑소니를 쳤고 피해자는 치료비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쓰 씨는 집에 가서 현금 5000위안(한화 85만원)을 가져다 이 어린이에게 주었고, 아이 아버지는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아이 아버지가 쓰 씨의 이름을 묻자 쓰 씨는 ‘나는 연공인이고 사부님께서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 중의 좋은 사람이 되고 선한 사람이 되며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셨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 농민을 위로할 뿐 이름을 남기지 않고 갔다. 이후 이 사건이 현지 방송국에 보도됐다. “그 좋은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적도 있었다. 쓰 씨는 신문에서 암에 걸린 여아에게 4000위안(한화 68만원)의 치료비가 급히 필요하다는 내용을 보고는 가족과 함께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먼길을 가서 그 아이에게 1000위안(한화 17만원)을 주었다.

이 같은 사례가 많다. 지금 물욕이 넘치는 시대, 인심이 현혹된 중국에서 파룬궁수련인은 성실하고 선량한 행위로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다.

맺음말

파룬따파는 불가(佛家)의 상승(上乘) 수련대법이다. 그는 ‘진(眞)ㆍ선(善)ㆍ인(忍)’ 의 표준에 따라 지도하고, 간단하고 배우기 쉬운 다섯 가지 공법이 있다. 수련의 소원이 있는 수련인이 극히 짧은 시간 내에 상당히 높은 층차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파룬따파가 전해진 지 26년이 된다. 파룬따파는 이미 전 세계 100여 개국과 지역에 전해졌으며, 각국 각급 정부의 지지와 함께 3000여 차례 표창장을 받은 바 있다. 각 민족과 국가에서 1억이 넘는 사람이 혜택을 받았다. 소중한 벗이여, 우리는 대법이 널리 전해진 시대에 당신 또한 마음을 조용히 하고 중국공산당이 부어넣은 편견을 버려 이성적으로 파룬따파에 대해 알아보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당신 또한 무한한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2]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8년 3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3/3622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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