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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외운 체험을 말하다

글/ 간쑤(甘肅)대법제자

[밍후이왕] 법을 외우는 것을 말하자면, 사부님의 ‘창춘보도원 법회설법’을 본 후, 나는 곧 법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때 법을 외울 때는 단장취의(斷章取義)로 외우고 기억하기 쉬운 것만 외웠다. 또 억지로 기억하고 외웠고 체계적으로 외우지 못했다. 진정으로 체계적으로 법을 외우는 것은 2003년부터였다.

10여 년 동안 외우는 것을 견지하고 반복해 외워 현재는 ‘전법륜’, ‘전법륜 2’, ‘대원만법’, ‘정진요지’, ‘정진요지 2’, ‘정진요지 3’, ‘홍음’, ‘홍음 2’ , ‘홍음 3’, ‘홍음 4’ 등 10부의 대법 경서와 신경문 중 법회설법 외의 모든 신경문을 이미 익숙하게 외운다. 여기서 말하는 익숙하다는 것은 바로 법을 외울 때 대법 서적의 매 글자가 모두 눈앞에 나타나고, 기본적으로 책을 보고 통독하는 것과 얼마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왜 법을 외우는가? 법을 외우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 점에 대하여 우리 매 대법제자는 모두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은 법을 외우려고 생각하지만, 또 법 외우는 것을 견지하지 못하는가? 내가 보기에는 주로 곤란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서인데, 이런 마음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사실 법을 외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어려움은 사람 마음이 가로막고 있다. 오직 결심이 있고 꾸준한 마음이 있고 신심이 있으면 곧 어렵지 않다. 내가 법 외울 때는 두 가지 기점이 있다. 하나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행하는 것인데, 제자로서 곧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해야 한다. 두 번째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왜 나는 당신들에게 ‘전법륜’을 배우고, 읽으며, 기억하라고 하는가? 목적은 당신들의 수련을 지도하려는 것이다!”[1] 법을 외우는 진정한 목적은 곧 자신의 일언일행, 일사일념, 일거일동을 지도하기 위해서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법으로 가늠하고 매번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법으로 대조하고 시시각각 일마다 곳곳에서 법으로 자신을 요구한다. 기점을 바로잡으면, 사실 법을 외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떻게 해야 비로소 법을 익숙하게 외울 수 있는가? 나의 깨달음과 체험은:

1. 조용한 마음으로 외운다. 법 외울 때 마음을 쓰고 꾸준한 마음이 있어야 하며, 더욱 마음이 조용해야 한다. 마음이 조용하지 않으면 법을 외우지 못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법 외우는 시간을 아침 연공과 발정념을 한 후 6시 반에서 10시 이 시간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이 시간에는 막 연공과 발정념을 하여 사상이 비교적 청정하고 두뇌가 명석하여 잡념이 적고 쉽게 기억할 수가 있다. 법 실증,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도하는 일은 모두 12시 발정념 후에 시작한다. 마음이 조용한지 안 한지는 당연히 표면이고, 관건은 수련의 심성을 보아야 하는데, 각종 욕망, 집착심을 깨끗이 제거했는지 못했는지 혹은 많고 적은지에 달렸다. 많이 제거하면 마음은 비교적 조용하고 반대면 곧 조용하기가 힘들다.

2. 이해하면서 외운다. 이해한 기초에서 외우면 비교적 빠르다. 외우는 것이 빠르고 느린 것은 당연히 관계가 없는데, 오직 외우는 것을 견지하면 되는 것이다. 단지 법을 외우기 위하여 외우면 안 되고, 법의 내포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한 것이고, 문제에 부딪히면 법으로 가늠하기 위한 것이며, 본인의 착실한 수련을 지도하기 위해서다. 만약 법 표면의 의미를 이해 못 하면 외우기가 더욱 곤란하다. “인류는 과학을 발전시켜 진보한다고 느끼지만”[2] 이 구절 법을 예를 들어 보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어떤 구절은 길고 중복해서 무겁게 깊이 있는 어투로 말씀하시는데, 이해가 깊지 못하거나 부정확하면 외우기가 힘들어진다.

3. 반복해서 외운다. 법은 부동한 층차가 있기에, 이 층차에서는 외웠던 것이 한동안 지나고 제고된 후 다른 한 층에서 꼭 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반복해서 외운다. 지금까지 나는 ‘전법륜’을 거의 30번 외웠다. 사실은 열 번째 외울 때 곧 기본적으로 전문을 외울 수 있었다. 왜냐하면, 수련은 곧 제고하기 위한 것이고, 매 한 층은 모두 부동한 표준이 있고 높은 층은 높은 층의 표준이 있으므로 ‘전법륜’을 계속 외웠다. 기타 대법 경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나는 매일 법을 외우는 시간을 3시간 이상 보장한다. 매달 20일 내외로 이 10권과 신경문을 한 번씩 외우고 10일 전후 시간으로 기타 대법 경서를 통독한다.

4. 착실한 수련 중에서 외운다. 수련이 착실할수록 심성도 제고되고 기억도 견고하다. 예를 들면, 나는 ‘업력(業力)의 전화(轉化)’[2], ‘살생 문제(殺生問題)’[3]와 ‘육식 문제’[2] 등에 대해 비교적 잘 인식하고 있고, 내포에 대한 이해도 비교적 깊고 수련도 비교적 착실하므로 외우기도 비교적 쉬웠다. 수련이 깊어짐에 따라 심성의 제고, 지혜의 개시, 법을 외우는 방법 방식도 다양해졌고 또 수시로 법이 행동을 지도하였다. 예를 들면, ‘홍음’을 외울 때, 순서를 기억하지 못하고 쉽게 제목과 내용이 바뀌었다. 나는 곧 내가 기억하기 좋은 규칙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5. 외우는 것을 쉬지 않고 견지한다. 법을 외우려면 견강한 의지가 필요하고 꾸준한 마음, 인내심이 있어야 하며, 곤란을 두려워하는 정서가 없어야 한다. 특히 초기 법을 외울 때는 항상 곤란에 부딪혀 돌파하지 못하고, 심지어 한두 시간에 한 단락의 법도 외우지 못하므로 곧 외우고 싶어 하지 않는데, 이런 정황에서 스스로 강제로 외우고 추호도 느슨해서는 안 된다. 일단 돌파하면 유암화명(柳暗花明)을 느낄 것이고 포기하지 못하게 된다. 나는 현재 법공부는 외우면서 공부하는데, 당연히 이미 외울 수 있는 이 10부 경서를 가리키는 것이고, 기타 서적은 아직도 통독한다.

6. 점차 전진하면서 외운다. 한 번에 전문을 모두 외우는 것은, 소수는 아마 가능할 수 있으나 일반인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전법륜’을 외울 때, 내가 처음 외울 때는 곧 한 단락 한 단락씩 외웠고, 앞의 한 단락을 외울 수 있으면 뒤의 한 단락을 외웠다. 뒤의 단락을 외울 때 앞의 단락이 생각나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고, 곧 한 단락 한 단락 외워 갔다. 두 번째 외울 때는 두 단락씩 외웠는데, 외운 다음 또 두 단락을 외웠다. 세 번째 외울 때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외웠다. 그 뒤에는 제목 하나하나씩 외웠다. 내용이 너무 길면 곧 몇 개의 작은 단락으로 나누어 외웠다. 이렇게 외운 다음에 또 한 번 외울 때는 이 제목의 내용이 얼마나 되던지 모두 한번에 다 외웠다. 마지막에는 한 강의 한 강의씩 외웠는데, 매 한 강의를 익숙히 외운 다음에 ‘전법륜’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법을 외우는 과정은 곧 “경(經)은 마음을 닦고”[4]의 과정이고, 심성 제고의 과정이다. 법을 외우는 시간이 길어지면 곧 자각적으로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여 잘못을 찾고, 안으로 찾기를 원하는 것이 형성되는데, 곧 자기의 언행이 법에 부합하는지를 가늠하고, 잘했는지 못했는지 맞는지 틀리는지를 가늠하고, 이 문제에서 철저하게 수련했는지 곧 즉시 자신을 바로잡고, 다음에는 잘하고 제고해 올라온다. 심성이 제고된 후 또 법을 외울 때면 또 법리가 나타나므로 또 즉시 자신을 돌아보고 좋지 않은 것은 바로잡는다.

법을 외우는 과정은 법에 동화되는 과정이고 법에 용해되는 과정이다. 육신 표면 이 층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체내의 분자, 원자, 양성자, 전자, 무한히 작고 무한히 작은 지극히 작은 미립자로 구성된 신체 모두가 외운다. 마음이 청정하고 염이 아주 순정할 때, 곧 자신의 신체 내의 무량무계의 생명이 모두 법을 외우고 있음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법을 외우는 이 시간 내에, 어떤 때는 법을 외우기 시작하기 전부터 한눈에 변두리까지 보이지 않는 나의 신체 내의 부동한 층차 생명이 조용히 법을 외우기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고,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되니 사람의 일면뿐만 아니라, 층층의 입자, 부동한 층차 입자로 구성된 나의 형상을 가진 생명이 모두 법에 동화하고 법에 용해되고 있다. 곧 이렇게 정체가 승화하고 정체가 제고한다. 곧 자신 사상중의 좋지 못한 것들과 법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언행을 억제하고, 대법의 무변한 내포가 자신의 대뇌 중에 용해되고, 또 부동한 층차 입자로 구성된 자신의 신체 중에 용해되어 이때부터 법에 동화되는 것이다.

법을 외우는 과정은 또 업력을 제거하고 신체를 정화하고 경지를 승화하는 과정이다. 법을 외우면 마음을 닦을 뿐만 아니라 또 소업을 해준다. 왜냐하면, 법을 외울 때 층층층층, 무량무계한 불도신이 모두 법 중에서 나타나 곧 수련자를 도와 신체를 정화하고 업력을 제거해 주기 때문인데, 이는 상보상성하는 것이다. 법에 따라 마음을 닦으면 곧 제고하고, 법으로 대조하면 곧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있는데, 곧 차이점을 보아낼 수 있고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며 심성이 재빨리 제고된다. 심성이 제고되면 업력은 곧 사라지고 신체는 재빨리 정화되어 세간에서 금강불괴의 신체로 수련되는 것이 실현된다.

법을 외우면 또 하나의 아주 크고 큰 좋은 점이 있는데, 곧 어떠한 상황이나 특정한 환경에서도 모두 법공부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억울하게 3년 동안의 감옥에 있을 때, 주로 이전에 외운 법에따라 걸어 나왔다. 또한, ‘정진요지’, ‘홍음’, ‘홍음 2’와 ‘전법륜’의 부분적인 내용을 매일 외우고 법공부 했다. ‘전법륜’과 ‘정진요지’는 곧 외워 나가지 못했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홍음’과 ‘홍음 2’는 매일 한 번씩, 출옥할 때까지 외웠다. 당연히 감옥은 특히 사악한 곳이었지만, 수련생들은 역시 우리 자신의 특수한 교류방식이 있었고, 역시 신경문을 볼 수 있었다. ‘홍음 3’은 후에 박해로 들어온 수련생에게서 한 수 한 수씩 듣거나 요구했고,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기록한 다음 한 번 또 한 번씩 외웠는데, 순서가 뒤바뀌고 또 부정확 곳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대법 서적과 대조하여 바로잡았다. 현재 대륙 백성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통제는 아주 사악한데, 무엇이든 모두 실명제를 하고 무엇을 하든 모두 신분증이 있어야 하는데, 특히 파룬궁 수련생은 더욱 이렇다. 만약 우리가 법을 모두 마음에 외워둔다면, 멀리 차를 타고 가든지 여관에서 쉬든지 책이 없어도 똑같이 법공부를 할 수 있고 곧 더욱 많은 교란과 박해를 피할 수 있다.

이 체험을 쓰는 이유는 교류하고 서로 촉진하며 공동으로 제고하여, 수련생들이 더욱 빨리, 적은 시간을 더 잘 이용하여 더욱 많은 법을 외우고 법에 동화하고 법에 용해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당연히 법을 외우는 것은 마음을 닦는 것을 지도하기 위해서인데, 심성 수련이 제일위다. 심성이 바르지 못하면 법 실증, 진상 알리기, 사람을 구하는 큰일을 곧 잘하지 못하고 혹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오직 정체적인 승화, 정체 제고해야만 법을 외우는 것이 비로소 좋은 효과에 도달할 수 있고 비로소 사반공배(事半功倍) 하여 비로소 더 빨리 더 잘 더 많이 법을 외울 수 있고, 익숙하게 외우고 법을 견고하게 기억하게 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수련인가(何爲修煉)’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동화(同化)’

 

원문발표: 2018년 3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4/3624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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