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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타인을 생각하고 착실하게 사람을 구하다

글/ 쓰촨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시골의 한 대법제자인데 18년 수련했다. 박해 초기 늘 깊은 밤에 나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어떤 때 수련생과 함께 나갔지만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나갈 때가 더욱 많았다. 200여 부의 진상자료를 들고 법을 외우면서 매 진상자료를 세인의 집 문 앞으로 보내줬고 세인이 진상자료를 보게 해달라고 사부님께 청했다. 낮에 나가면 어디에 가면 그곳에서 진상을 알렸다. 그때 부근 몇 십 개 마을, 진(眞)을 다 돌아다녔지만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힘든 줄 전혀 몰랐다.

2003년에 두 아이를 공부시키려고 외지에 가서 청소하는 일을 했다. 처음에 하루에 7위안이었는데 이후에는 하루에 10위안을 주었다. 비록 수입이 적지만 시종 낙관적으로 일했고 사부님 말씀을 듣고 어디서나 좋은 사람으로 살았으며 사람과 다투지 않았고 일이 있으면 앞장서서 했다. 한번은 한 동료의 밥이 덜 익었기에 내 익은 밥을 그녀에게 양보하고 내가 덜 익은 밥을 먹었다. 함께 일하는 청소원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고 그녀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면 아름다운 미래가 있다고 알려줬다. 나의 성실함과 선량함을 본 그녀들은 모두 날 이해했다. 점심 휴식 시간에 그녀들 앞에서 연공하면 그녀들은 내게 지장주지 말자고 했다. 사장은 직원들보고도 날 따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읽으라고 했다. 몇 개월 일한 후 집에 일이 있어 가야하자 그녀들은 모두 아쉬워했다.

이후에 또 잇따라 각종 일을 했는데 사장들은 모두 내가 그만두는 것을 아쉬워했다. 어디에서나 대법의 요구에 따라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들 휴식할 때 언제나 다른 사람을 도와 일했고 이익에서 따지지 않았고 원망하지 않았기에 모두들 날 좋아했다. 2005년에 철도부에서 일했는데 수십 명이 다 외지인이었기 때문에 일을 끝내면 각자 갈 길을 갔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나보고 대법 진상을 알려달라고 했고 진상CD, ‘9평’을 달라고 했으며 서로 앞 다퉈 “한 권만 주세요”라고 했다. 중생이 이렇게 진상을 알려고 하는 것을 보고 감동해 울고 싶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 그들이 구도되게 하셨습니다.

이후에 남편과 짚을 수거하고 곡물 장사를 했다. 짚을 수거하는 사장들은 다 저울을 속인다. 어떤 때는 한 차에 500kg 쯤 속인다. 우리와 함께 짚을 파는 사람은 한 차의 짚이 우리보다 적지만 저울에 달면 우리보다 더 무겁다. 남편은 “남들은 한 차에 그렇게 많은 돈을 버는데 우리는 품삯밖에 벌지 못하네”라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보고 좋은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돼요. 우리 집안이 뭘 하든 순조롭고 두 아들이 말을 잘 듣고 성적도 좋으며 일가족이 무사하고 건강하잖아요. 이것이 바로 큰 행복이 아닌가요?”라고 하자 남편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곡물 장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미곡상들은 다 저울을 속이지만 나는 1kg도 속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떤 때 돈을 더 보태기도 했다. 그래도 장사는 아주 잘됐다. 다른 사람들이 수거하지 못하는 곡식을 수거해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나를 믿었기에 모두 나에게 팔기 좋아했다. 한번은 곡식을 수거하는데 곡식 자루가 바닥에 닿아 몇 kg 적게 계산됐다. 판매자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내가 발견하고 다시 저울을 달아줬다. 나는 다른 사람의 1kg도 더 갖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마을을 오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할 돌다리가 있다. 다리 밑 길 양쪽에는 물길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해 판 도랑이 있었는데 늘 진흙과 모래, 돼지똥이 쌓이는 바람에 비오는 날이거나 농민이 논밭에 물을 주는 계절이면 길에 물이 고여 냄새가 났지만 방치되어 있었다. 60,70세 노인을 포함한 한 무리 여자 파룬궁수련생들만이 도랑을 청소했다. 보통 10여명이 2~3일 해야 다 깨끗이 청소할 수 있었다. 몸이 건장한 속인들은 보지만 돕지 않고 “돈을 안 주면 누가 하겠어!”라고 했다. 올해 길가 양쪽 나무의 잎이 너무 우거져 달리는 차량의 시선을 막자 행인에 대해서도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수련생과 함께 나뭇가지를 꺾어놓았다. 도로가 환해지자 행인들은 길을 건너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어디서든 최선을 다해 사람을 구했다. 손녀가 몇 개월 때부터 추운 겨울이면 손녀를 따뜻하게 싸서 등에 업고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서 대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며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손녀가 좀 자라자 그녀를 삼륜차에 태우고 나가서 진상을 알렸다. 진상달력을 배포하던 어느 해였다. 손녀가 겨우 한 살쯤이고 아직 말할 줄 모르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언제나 작은 손으로 박스에서 달력을 꺼내 옹알옹알 거리며 내게 건네줬다. 지금 손녀는 3살이 넘었는데 늘 도와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외쳤다.

대법을 배우기 전에 인생이 아주 고달프다고 생각했고 하루 종일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아들에 대해서도 욕하지 않으면 때렸고 이지적으로 아이를 교육시킬 줄 몰랐으며 무슨 일을 하든 꽁하게 생각했다. 질병에 걸려 치료가 잘 되지 않아 자살하고 싶었지만 두 아들을 생각해서 비로소 단념했다. 대법을 얻은 후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건강한 몸을 주셨기에 병이 없고 온몸이 가뿐하고 하루에 십 몇 시간 일해도 힘들지 않았다. 아이들에 대해서도 욕하거나 때리지 않았고 아이들도 말을 잘 듣고 성적이 좋아졌다.

장쩌민(江澤民)이 미친 듯이 파룬궁을 이렇게 오랫동안 박해했지만 가족들은 늘 내 편에 서서 대법을 지지했다. 해마다 중국공산당 요원이 우리집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웠기에 가족도 아주 큰 압력을 받았지만 겁먹지 않았다. 가족들의 의로운 행동과 선행은 복을 얻었다. 두 아들은 모두 명문대에 합격했고 대학을 다니고 취직하며 결혼하고 집을 사는 것이 모두 아주 순조로웠다. 우리 부부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용돈을 줬다. 이 모든 것은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서 주신 것이다. 만약 사존께서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어찌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겠는가. 제자는 오로지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으로 사부님께 은혜를 보답할 수밖에 없다.

수련의 길에 없애지 못한 집착심이 아주 많지만 진정한 수련자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을 향해 찾아 그것들을 다 없앨 것이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을 것이며 절대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요구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제자가 허스(合十)하고 은사님께 절을 올립니다.

 

원문발표: 2017년 2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2/7/3428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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