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을 아주 잘한’ 그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박해를 당할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박해 전에 우리는 함께 수련하고, 대법을 선양하는 일을 했다. 박해 후에도 우린 함께 세월을 겪었다. 그 중 어느 수련생은 내가 겪은 것 중의 표면적인 행위에 아주 긍정했지만 나는 오히려 세 차례 억울한 감옥 박해를 당했다. 때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나왔다. ‘잘했다’고 하는 그런 수련생이 왜 그렇게 많은 박해를 당했을까? 나는 부정적인 사유가 천천히 뚜렷해지고 의문 속에서 거의 수련을 포기할 지경이 됐으며 아주 큰 범위에서 속인과 섞였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 속 매듭을 풀 수 없어 속으로 괴로움을 느꼈다. 오늘 나는 이 글을 써내 이 방면의 수련생과 일부 견해를 교류하려 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감옥을 떠나기 전, 경찰이 와서 자신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대답해 줄 수 있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말했다.
“첫 번째 문제, 당신은 아주 여러 해를 감옥에 있었고 당신은 연공하지 않았지만 아무런 병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나간 후에도 더는 연공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내가 말했다. “제 병은 파룬궁을 연마해 나은 것이 아닙니다.” 그녀들은 무척 기뻐하면서 나에게 얼른 말하라고 했다. “왜 들어온 모든 사람은 모두 자기 병은 파룬궁을 연마해 나았다고 하는데 당신만은 오히려 아니라고 하나요?” 내가 말했다. “저는 대법 가운데서 수련합니다. 제가 확고히 수련하기로 결정했을 때 사부님께서 제 병을 제거해주셨지 연마해 나은 것이 아닙니다. 제 병을 연마로 낫게 하려면 여러 해가 걸려야 할 것입니다. 지금 연마하지 않는 것은 당신들이 지켜보면서 연마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부님을 배신하지 않고 여전히 수련하고 있으므로 사부님께서는 병을 제게 되돌려 주시지 않을 것이므로 당연히 병이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 당신은 화를 내나요, 안 내나요?” 나는 낸다고 했다. 그녀들이 말했다. “이렇게 여러 해 되도록 당신이 화를 냈다는 말을 못 들어봤는데요.” 내가 말했다. “당신들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내가 당신들과 화를 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두 가지 대답은 경찰들에게 손을 들게 했다. 당시 마음속이 여간 편하지 않았다. 자신은 법인식이 분명하다고 여겼으며 사부님께서 내가 이젠 미워하는 마음을 닦아버렸다고 점화해주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감옥을 떠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다른 수련생에게 화를 냈고 갑자기 당시 그들이 묻던 말이 떠올라 그제야 자신은 미워하는 마음을 전혀 버리지 못했음을 알게 됐다. 그럼 왜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그렇듯 잔혹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나타나지 않았는가? 내 마음은 좀 긴장됐다. 이에 따라 추리하면 내 법리도 아주 똑똑한 건 아니었다.
어떻게든 다시 인식해야 하지 않겠는가? 법공부를 하고 생각한 후 나는 원인 하나를 찾아냈다. 감옥의 그런 환경에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두 번째 원인은 수련 후 경지가 제고됐기에 사람과 선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 다음, 나는 갑자기 세 번째 원인, 박해를 승인했음을 의식하게 됐다. 자식은 부모와 따지지 않고, 학생은 선생님과 따지지 않는 것은 모두 부모를 승인하고 선생님에게는 자신에 대해 교육할 권리가 있음을 승인하기 때문이다. 내가 경찰 및 수감자들과 따지지 않은 것은 나에 대한 그들의 박해를 묵인한 것이며, 또한 과거 구세력이 나에게 잘 배치해 놓은 일사일념, 구세력과 서약 맺은 것을 승인한 것이다.
안으로 찾는 회상 속에서 나는 구세력에 대한 자신의 그런 조심하지 않은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승인을 보았다.
2000년 말 나는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했다. 내가 두 번째로 납치돼 불법적으로 3년 징역형을 받고 감옥에 갔을 때 경찰은 3차례나 나에게 “조금의 신분 의식도 없다” 고 욕했다. 이 말은 감옥 경찰이 입버릇처럼 수감자에게 하는 말이고 나는 이젠 듣는데 습관이 되어 별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주 말하니 나는 속으로 원망했다. 벌로 나에게 서라고 하면 나는 섰고 벌로 법률 서적을 베끼라 하면 베꼈으며 게다가 밤중까지 베꼈다. 일을 하라고 하면 나는 ‘내가 어느 것인들 잘 하지 못했는가? 그래도 나에게 신분 의식이 없다고?’ 하면서 속으로 반발심이 좀 있었다. 이후에 나는 자신을 범죄자 신분으로 여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은 수감자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 같은 이런 사람이 어찌해서 들어왔어요? 경찰이 잘못 붙잡지 않았나요?” 나는 별로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 “당신들은 이 감옥이 당신들을 위해 지은 줄 알아요? 날 위해 지은 거예요. 보세요, 감옥이 막 설립되자 내가 들어왔고, 설립된 그 날은 내 생일인데 마치 날 위해 세운 것 같아요. 나는 또 처음 들어온 파룬궁 수련생이며 지금까지도 아직 다시 들어온 사람이 없죠.” 나는 아주 득의양양해 했고 감옥이 바로 나의 절이라고 여기면서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마음은 즐거웠다. 그건 아주 자각적으로 박해에 협력한 것이었다.
마싼자(馬三家) 수용소에서 전향된 사람이 나와 사흘간 면담했다. 명확하게 말하면 그는 단장취의(斷章取義)해서 대법을 해석했다. 나중에 나도 그들에게 배워 사부님을 불렀고,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사오(邪悟)했으며, 한 번 또 한 번 하는 말은 마치 ‘우주어’ 같았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법공부를 견지했다. 하지만 수련생들은 나를 멀리 피했고 나는 경문을 볼 수 없어 ’610’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말했다. “당신은 전향까지 했는데 또 무슨 경문을 요구하나요?” 내가 말했다. “내가 전향된 것은 당신들이 준 경문을 본 후 비로소 전향된 것입니다. 만약 당신들이 주지 않는다면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세요.” 그들은 나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한 사람이 경문을 들고 나에게 물었다. “이런 말은 무슨 뜻인가요?”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또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지만 이후부터 나는 늘 ‘610’에 가서 경문을 달라고 했다. 그 후 나는 서서히 깨어났고 공개적으로 성명한 다음 다시 수련의 길을 바로 걷게 됐다.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어떻게 미봉할 것인지 늘 생각하게 됐다. 이는 구세력이 억지로 가한 것이며 역시 당시 나의 심태에 부합됐던 것이고 역시 사악에 협력한 것이다. 이는 법공부에 누락이 있어 불러온 박해였다.
2004년 말, 우리는 열 명이나 납치됐고 나는 6년 징역형을 불법적으로 선고받았다. 그야말로 고난이 확대됐지만 내 마음은 ‘뜻대로’ 되어 좀 안정됐다. 구치소에 있던 기간, 표면적으로는 내가 한 것이 과거보다 더 좋아 연공을 견지하고, 보고를 하지 않았으며, 사진을 찍지 않았고, 경계선을 마음대로 넘었으며, 진술하지 않는 등등이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함께 들어온 이 사람들마다 모두 나처럼 진술하지 않길 바란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하는가 보자.’ 이건 아주 분명한 것이다. 나는 우리에 대한 구세력의 수감 박해를 묵인했던 것이다. 나는 첫 번째의 경험으로 전향될까 두려워하는 집착이 생겼고 곳곳에서 잘하려 애썼다. 자신은 죄가 없으므로 속죄할 필요가 없으며 그래서 노동을 하지 않았다. 이후에 환경이 많이 개선됐고 표면적으로 나는 모두 잘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은 어떠했는가? ‘너희들이 어느 때 놓아주면 나는 어느 때 나갈 것이다.’ 한 동안 지난 후 경찰이 또 와서 나에게 언제 나가겠는가고 물었다. 나는 되어가는 대로 따른다고 했다. 또 한 동안 지난 후 또 똑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좀 짜증이 나서 아예 정확히 말했다. “50살(형기가 차면).” 이때 경찰은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은 왜 자신에 대해 조금의 자신감조차 없죠?” 그 때 나는 이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그저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지금의 나는 사악의 징역 박해에 협력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부정할 줄 몰랐는데 그야말로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던 것이다.
제 1차로 납치 박해를 당할 때 내 마음은 아주 순정했다. 그건 1999년 7월20일 밤중이었다. 나는 가택 수색을 당하고 유치장에 납치돼 갔으며 날마다 텔레비전을 봤다. 텔레비전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고 텅 비어있었으며 그 공포적인 화면은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고 잠재의식 가운데는 오직 사부님의 장면만 다시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그때 심정은 아주 좋았고 한 차례 졸업 시험임을 알고 있었다. 경찰이 나에게 텔레비전을 본 감상을 물었다. 나는 말했다. “그 난잡한 화면은 파룬궁과 무관하므로 나는 보지 않아요.” 경찰이 말했다. “당신은 날마다 보고 있지 않았나요?” 내가 말했다. “사부님 화면이 나오면 나는 곧 사부님을 봅니다. 누가 뭐라고 타일러도 나는 그저 내가 파룬궁을 연마할 뿐 개변하지 못합니다.” 불법 구류 15일 후 나는 집에 돌아왔다. 이후에도 모두 당초의 심태였더라면 그렇게 많은 박해를 당할 수 있었겠는가?
법공부와 안으로 찾는 것을 통해 이런 집착과 구세력에 대한 일사일념의 승인, 협력과 의뢰를 닦아버리고 대량의 발정념으로 해체하겠다고 나는 결심했다. 마침내 어느 날 저녁 꿈에서 나는 교장을 찾아가 시험을 보겠다고 요구했다. 교장은 동의하고 나에게 시험지라면서 종이 한 장을 주고는 나에게 이튿날 시험에 참가하라면서 가방에 넣어주었다. 이튿날 나는 시험을 치러 갔고 많은 선생님들이 모두 도착했다. 교장이 말했다. “올해에는 ○○ 선생님도 오셔서 우리와 함께 시험을 치게 됐습니다. 그녀는 비교적 책임감이 강합니다.” 등등을 말했다. 나도 잇따라 말했다. “그래요, 저는 시험을 놓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주 책임감이 있지요.” 이때 교장이 갑자기 안색을 변하더니 나에게 사납게 말했다. “○○, 체포증을 내놓으시오.” 내가 말했다. “체포증이라니요?” 그가 말했다. “어제 당신에게 주었던 그 종이는 체포증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럼 당신들은 나를 유인해 체포하려던 것이었군요.” 나는 그 종이를 가방에서 꺼내면서 보지도 않고 말했다. “무엇을 체포라고 하죠?”라고 중복해 말하는 한 편 그 종잇장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한 장의 종이였지만 놀랍게도 수많은 종잇조각이 떨어졌다. 그 때 나는 자신이 이제 구세력과의 서약을 찢어버렸다는 것을 의식했다. 머리를 들고 보니 교장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이 모두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또 땅 위의 종잇조각을 바라보다가 깨어났다. 그것은 2012년의 일이었다.
박해에 직면해 나는 인식했다. 구세력은 ‘박해’를 구실로 우리에게 고비를 넘는 시험을 만들어주었다. 이건 낡은 시험 문제로서 예수님이 통과했고 석가모니 부처님도 통과하셨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사유 방식이 있으며 일사일념까지 깊이 박혔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험 문제를 주셨는데 다만 낡은 시험문제에 장계취계로 ‘반(反)’을 추가해 반(反) 박해가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보고 구세력의 존재와 박해를 완전히 부정한 후 세 가지 일을 하라고 알려주셨다. 만약 우리가 정말 해낼 수 있다면 사부님께서 내주신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아니면 구세력의 시험문제에 응하게 돼 박해와 많은 굽은 길을 겪게 된다. 내가 바로 후자에 속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고에너지 물리학 연구 중에서 사람들은 에너지는 곧 중성자ㆍ원자 이런 것들이라고 여긴다. 많은 기공사들이 모두 측정을 받았는데, 비교적 명망 있는 기공사들도 측정을 받았다. 나도 측정을 받았는데, 측정할 때 내보낸 감마선과 열중성자는 정상적인 물질 방사량의 80배에서 170배를 초과했다. 이때 측정 계측기의 지침이 최대치를 가리키고 지침이 끝에 도달했기 때문에 최후에는 얼마나 큰지 아직 모른다.”[1] 사람의 첨단과학도 높은 경지의 것들을 측정할 수 없는데 사람의 육안으로 어찌 똑똑히 보아낼 수 있겠는가? 사람마음으로 어찌 똑똑히 분간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인생길은 사부님께서 새롭게 배치해주셨지만 당신은 보아내지 못한다. 우리 신체도 사부님께서 정화해주시고 처리해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보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병이 없이 온 몸이 홀가분한 상태를 느낄 수 있고 수많은 신기함을 느낄 수 있다. 속인은 이런 것조차 느낄 수 없는데 어찌 그들의 말과 행동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의 의문은 사람의 의심이 아닌가? 이런 마음은 모두 닦아버려야 할 것들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고층차로 이끌어주시기에 우리 마음도 고층차에 놓아야 한다. 정면으로 법에서 법을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 사람에서 걸어 나오고 생각이 사람에서 해탈돼야만 진정으로 고층차에서 수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표면에 교란당하는 수련생들은 반드시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지 사람을 스승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주의식을 강화하고, 입체적으로 문제를 보며, 수련생의 표면을 보지 말고, 자신의 이 육안을 믿지 말라. 그는 영원히 진상을 보지 못하고 본다는 것은 흔히 가짜이며 모두 우리가 간파해야 할 가상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 되도록 빨리 수련의 길을 바로 걸으며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
개인의 깨달음이니 적당하지 못한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2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2/27/3619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