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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 대한 집착이 내 수련을 저애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현재 사회에서 스마트폰은 사람들에 의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매우 편리하고 빠른 소통과 교류의 도구이자 학습 생활에서도 훌륭한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사람들의 수련 중에 있는 대법제자도 생활에서 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한다. 오늘 나는 우리 생활에서 스마트폰의 위치 및 내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부딪힌 일들에 대해 말하려 한다.

1. 스마트폰이 우리의 생활공간을 이미 차지

스마트폰 기능이 급속히 발전했는데 특히 최근 몇 년간 스마트폰의 개발로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은 커져만 가고 있다. 스마트폰은 전화 기능을 넘어 사진, 채팅, 게임, 화상통화, 작업, 지갑 등으로 사용된다. 현재 사람들은 외출할 때 현금을 소지하지 않고 스마트폰만 갖고 나가면 일체 소비를 QR코드로 할 수 있다. 거리에서 걸어가는 사람, 버스에 서있는 사람, 회사 출근 시 앉아있는 사람들은 성인, 미성년자를 막론하고 거의 모두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데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출근하면 게시판을 도배하고 위챗을 하는데 스마트폰이 없으면 많은 일들을 할 수 없다. 적어도 회사 업무, 아이 학교에서 일어난 일, 친구 연락에 관한 일들은 당신이 ‘위챗’을 주의하지 않으면 아무런 것도 모른다. 생활요금 납부, 쇼핑, 택시 탑승에서 당신이 ‘쯔푸바오’를 사용할 줄 모르면 많은 불편함을 겪는다. 사람과 사람은 만나면 대부분 위챗 친구 추가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친한 사이가 아니다. 친척 친구, 동창, 동료들은 몇 개 채팅방을 만들고 누가 채팅방에서 뭐라고 말했는지 다 들으려 한다. 어디든지 막론하고 곳곳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 심지어 3,4세 아이도 어른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려 한다.

이 사회는 사람에게 만약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세계에서 버림받은 느낌을 준다. 스마트폰의 정보는 매우 다양한데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터치만 하면 교류할 수 있다. 스마트폰은 당신을 웃게도 울게도 하는데 그것은 사람 생활에서 생활필수품으로서 없어서는 안 된다. 스마트폰이 있으면 당신은 외롭지 않지만 스마트폰이 없으면 당신은 어찌 해야 할지를 모른다. 사람들은 현대 과학의 발전에 따르는데 이것을 사회의 진보로 생각한다.

예전에 당신이 책을 보려면 서점에 가서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 가서 열람해야 했다. 더욱이 수련하면 불이법문(不二法門)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조잡한 책들은 보지 않는다. 그러기에 책에서 얻는 정보는 제한되어 있었고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스마트폰의 정보는 너무 많아 당신이 찾지 않아도 스마트폰이 당신 앞에 펼쳐주는데 매일 갱신하고 내용도 옛날부터 지금까지 없는 것이 없다. 사람들은 모두 지식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기에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자꾸 보고 싶어 한다. 많이 볼수록 천문지리, 건강, 음식, 오락, 가십, 뉴스 등등 정보가 모두 사람의 눈길을 끈다. 오늘 보면 내일은 더 보고 싶은데 계속해 보고 봐도 어떠한가? 당신이 보지 않으려 해도 스마트폰만 켜면 보인다! 친구들의 현재 상태를 살피다 보면 자신도 속이 간질거려 몇 마디 올리고 싶다. 올려서 존재감을 한번 추구하는데 이는 과시심이다. 올리고 나면 타인의 평론에 대해 주의하고 기대하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두근거린다. 이는 ‘주식 투자’할 때의 심정과 같다. 가끔은 자신이 수련인이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스로 단속할 수 없다.

2. 스마트폰 정보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다

2014년 전후, 나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위챗을 사용할 줄 모르던 데로부터 능숙히 사용하게 됐는데 매일 밥 먹듯이 위챗을 빠뜨리지 않고 봤다. 어떠한 내용이든 막론하고 다 봤는데 자신의 견문이 넓어지고 시야가 넓어졌다고 생각했다.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서 나는 어찌 이 플랫폼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스마트폰에 들이는 시간과 정력은 많아졌다. 대법 책을 읽을 때는 졸립고, 스마트폰 볼 때는 졸지 않는다. 가끔 나는 오늘 연공하고 책도 봤는데 스마트폰을 조금만 보자, 혹은 가부좌하고 나니 너무 힘든데 스마트폰 보면서 잠깐 쉬자, 저녁 12시 발정념을 하고 자신의 임무를 완성했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잠깐보고 친구들의 소식이나 직장 움직임에 대해 확인하려 생각했다.

최근 몇 년간 나는 계속 이러한 것들을 봤으며 심지어 위챗에서 사람들과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인터넷 정보들은 마치 지저분한 쓰레기장처럼 더럽고 구린내가 진동했지만 나는 흥미진진하게 수시로 스마트폰을 보았는데 이미 중독됐다. 나는 현대사회 과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스마트폰을 보지 않으면 현대사회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왜냐하면, 이 과학은, 내가 이미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지만, 그것 자체가 비과학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외계인이 사람에게 강요한 것이며 이미 사회 전반에 관통되어 있고 여러 면이 모두 이것에 관통되어 있다. 그러면 당신은 그중에 있기에 당신은 필연코 그것이 어찌 된 일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그러면 나는 왜 현대 과학에 결부해 설법하는가? 왜냐하면, 현대과학이 사람의 관념과 행동양식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생존조건이 바뀜에 따라 사람의 행위에 변화가 생기고, 인류의 모든 문화에도 변화가 생겼다.”[1]라고 말씀하셨다.

3. 교란이 심해 휴식에 영향주다

스마트폰에 빠지면서 내 수련은 심하게 교란 받았다. 연공하는 것 같지만 머리는 쉴 새 없었는데 신체의 개변은 느렸으며, 한동안 저녁에 잠자는 것도 교란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문제의 엄중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생활의 한 가지 상태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게 다른 것을 받아들이게 됐으며 연공할 때도 늘 스마트폰에서 봤던 사람, 물건, 그림을 생각했는데 가부좌도 할수록 잘 못했다.

2017년 5월 이후 오른쪽 무릎 중간 부분에 통증이 생겼다. 걸을 때 영향은 없었지만 가부좌할 때 다리를 굽히지 못했으며 힘들게 올려야 올릴 수 있었고 이불 같은 물건을 다리 밑에 받쳐야 했다. 나는 안으로 찾지 않고 이것을 소업이라 생각하고 아플 테면 아파라, 조금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스마트폰을 틈만 나면 봤는데 많이 보면 눈이 불편하고 눈앞이 왠지 뿌옇게 보였는데 그래도 깨우치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다.

2017년 9월 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나는 외지에서 친상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급이 돌아갔다. 책을 읽고 연공하고 발정념을 하는 환경이 없었고 귀에는 전부 속인들이 말하는 귀신이야기가 들렸으며 친척들의 강요에 의해 통곡해야 했다. 며칠이 지나니 너무 울어서 머리가 아프고 눈이 침침했으며 온몸이 찌뿌둥했다(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속인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하라고 강요당하지 않았음). 어머니 장례식을 마치고 나는 오빠가 있지만 아버지가 걱정되고 고향의 사소한 일을 걱정하며 좀 더 고향에 있다가 가려고 했다. 고향집은 3층 되는 주택인데 방이 많았다. 평소 오빠와 형수는 부모님과 함께 있지 않았기에 나는 가정부가 일을 깔끔하게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방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물건을 정리하는데 여념이 없었는데 결국 지칠 때로 지쳤다.

이와 같이 대법을 떠나 속인 일만 하다 보니 바로 신체에 불편함을 느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무기력 하며, 허리가 시큰거리고 등이 아팠으며 얼굴에 붓기가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가지해 주셨는데 나는 갑자기 ‘나는 수련인이기에 정을 버려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수련의 길을 다 배치하셨기에 나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지. 어느 때나 어떠한 일이든지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지체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이 일념을 내보내자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셨다. 집안 친척들은 내가 가는 것을 막지 않았으며 나를 도와 청소를 다 해서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향에 있던 그때 수련은 따라가지 못했지만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빠뜨리지 않았다. 연공을 할 수 없었기에 줄곧 스마트폰만 보게 됐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기에 내가 보지 않아도 다른 일을 할 수 없었으므로 그럼 계속 보자고 생각했다. 이러한 상황 하에 그 부정적인 요소는 끊임없이 내 공간장에 누적됐다. 집에 돌아왔지만 머리는 복잡하고 법공부와 연공하는데 정력을 집중할 수 없었으며 늘 고향집 일들을 생각했다. 연속 며칠 밤 12시 정념을 마치고 누워서 휴식할 때 잠을 푹 잘 수 없었다.

어느 날 정신이 흐리멍덩할 때 나는 신체를 움직일 수 없음을 느꼈고 뭔가 내 목을 조이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는 의식이 똑똑해 바로 “사부님 살려주세요.” 라고 소리쳤지만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래도 계속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 라고 외쳤다. 점차 목에서는 웅얼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계속 외쳤다. 드디어 깨어날 수 있었고 몸도 움직일 수 있었는데 즉시 일어나 발정념을 했다.

또 한 번은 흐리멍덩하게 자고 있을 때 꿈에서 영체들이 내 손가락을 아래로 잡아당기는 것을 봤는데 정념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바로 일어나 발정념을 했다.

또 다른 한번은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금방 잠들려 할 때 흐릿하고 검은 그림자가 내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즉시 ‘사부님’하고 부르면서 발정념 구결을 외쳤다.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발정념을 했다.

이 일이 있고 한 보름이 지났지만 두려워서 감히 잠을 자지 못했고 잠이 들지도 않았는데 낮에 출근할 때 어지러움으로 상태가 너무 나빴다.

4. 수련생에게 도움을 청해 문제점을 찾다

수련생의 도움을 받으려고 그의 집에 갔는데 그도 관을 넘고 있었으며 큰 난이었다. 수련생의 그 난은 나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나는 더욱 초조하고 불안했으며 늘 수련생의 그 난을 생각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그 수련생의 확고한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아 마음속으로 많이 확고해졌다. 수련생은 저녁 12시 정념을 하고 자면 공간장이 반드시 깨끗할 것인데 만약 교란이 심하면 자신이 어떠한 잘못이 있는지 안으로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온 다음 나는 곰곰이 생각했는데 이 몇 년간 나는 TV를 보지 않았지만 스마트폰은 쓸수록 그것에 의존했다. 특히 매일 저녁 12시 발정념을 마친 다음 꼭 스마트폰을 봤었다. 그날 저녁에도 무서운 그림을 보고 잤는데 그 검은 그림자를 느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스마트폰을 몇 년간 봤고 위챗에는 각종 난잡한 것들이 있으며 여러 종파가 있는데 더욱이 전문적으로 대법을 공격하는 언론도 있었다.(학교에서는 초중학생 학부모에게 반드시 ‘중국반사교’와 ‘학생안전교육 플랫폼’ 등 이러한 위챗공공 플랫폼을 관심 갖고 보라고 요구함) 나는 이러한 언론 뒤에 있는 사악을 발정념으로 제거하지 않고 이러한 것들을 필수 과목으로 생각하고 많은 시간을 낭비했을 뿐만 아니라 생각이 바르지 못하고 수련에 전일하지 못해 다른 것을 받아들여 섞어서 수련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다시 우리 집 환경을 보면 아이들이 문과 벽에 붙인 작은 스티커 그림들은 스마트폰에 있는 괴상한 그림과 비슷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화보에 있는 많은 그림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등골이 오싹하게 한다. 지금 깨달은 바로는 내가 정진하지 못하고 떨어질 때에는 이러한 사악한 물건들을 내 공간장에 넣게 되는데 자신의 휴식을 교란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도 못하게 했다.

5. 환경을 청리하고 스마트폰을 보는 나쁜 습관을 고치니 일신이 홀가분해지다

우선 먼저 가정환경부터 청리했다. 청리하는 과정에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도 바로잡았다. 그 후로 한동안은 스마트폰을 보면 불쾌했고 버리려니 계속 써야했고 버리지 않자니 하마터면 자신을 망칠 뻔했던 것이 생각났다.

스마트폰의 위해성을 알고 난 후로 내가 줄곧 관을 넘는다고 생각했던 오른쪽 다리 무릎 통증은 없어졌는데 가부좌할 때도 정상적으로 다리를 올릴 수 있었다. 바로 이어서 나는 사부님의 설법을 통독하면서 발정념을 더 했는데 우리 집 환경이 조용해진 것을 느꼈고 책을 읽고 법공부를 할 때 전념할 수 있었으며 신체는 현저히 개운해졌으며 잠도 잘 잘 수 있었다. 더욱 몇 년간 검고 누렇던 안색이 점차 혈색이 좋아졌다. 이 일이 있은 다음 나는 마음속으로 보기에는 작은 스마트폰에 관한 일이지만 하마터면 나를 망칠 뻔했다고 자신을 원망했다.

오늘 나는 이러한 것들을 수련생들과 교류하려고 말한다. 희망컨대 수련생 모두 정확히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바라는데 특히 젊은 수련생들은 회사 생활에서 스마트폰을 떠날 수 없지만 스마트폰에 의지하는 습관을 들여서는 안 되며 중독되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이런 것을 제외하고도 스마트폰의 안전문제에 대해서 주의해야 하는데 스마트폰은 위치추적 기능이 있기에 수련생들이 서로 왕래할 때에는 가능한 스마트폰을 갖고 가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사람은 혹시 전화가 올지 걱정된다고 하는데 무슨 일이 대법보다 중요하겠는가? 한 통의 전화를 적게 받으면 또 어떠한가?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 대법 수련자로서 자신의 생활을 잘 배치하고 자신과 수련생의 안전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이다.

마지막으로 사부님 법의 한 단락 말씀으로 수련생과 서로 격려하려 한다. “당신의 수련은 자신을 책임져야 하며 당신은 진정하게 자신을 개변하고 당신의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당신이 집착하는 좋지 못한 것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정말로 내려놓은 것이다. 당신이 표면상으로는 그럴듯하게 하지만, 당신 심령의 깊은 곳에는, 당신이 아직도 자신이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지키고 있고, 고수(固守)하고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안 된다.”[1]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미국 서부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8년 2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2/5/3604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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