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린칭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대필 정리
[밍후이왕] 산둥성 린칭현은 역사가 유구한 천년 고현(古縣)이다. 명나라 청나라 시기 대운하 운송으로 번창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 중에서 말씀하신 수련생이 수건을 공장에 도로 가져다놓은 사례가 바로 사부님께서 린칭에서 공을 전하시고 설법하실 때 발생한 일이다. 지난 80년대 기공이 보급됐을 때, 린칭에 많은 기공 애호가가 있었는데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천만년의 기대, 만고의 기연으로 마침내 사부님께서 직접 린칭에 왕림하셔서 공을 전하시고 설법하셨다. 이것은 이 일대 중생의 기연이었다. 1993년 5월 8일에서 17일까지 10일간 사부님께서 린칭에서 공을 전하시고 설법하셨다. 당시 나는 운이 좋아 파룬궁 학습반에서 일부 일에 협조했다. 그래서 사부님과 함께 먹고 거주한 시간이 좀 길었다. 저녁에는 사부님께서 숙박하시는 방 맞은쪽에 숙박했다. 그 시기는 나의 생명 역사에서 가장 행운이고 영광스러운 시기였다. 인류 언어로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1993년 5월 8일 오전 10시 경, 관현(冠縣)공안국 수련생이 차로 더저우 역까지 가 사부님을 린칭으로 모셔왔는데, 당시는 통신이 불편하였다. 사부님을 초대한 곳에 나와 수련생이 도착했을 때, 사부님은 일행과 함께 이미 초대소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당일 린칭 부시장과 현지 기공협회 직원이 와서 사부님과 만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20여 년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새 것처럼 보관하고 있다. 현지 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방송 기자가 함께 인터뷰하고 녹음 제작한 프로그램은 파룬궁과 사부님을 긍정적으로 선전하는 방송을 했다.
사부님께서 공을 전하시고 설법하신 시간은 저녁 8시에서 10시까지였다. 1시간 반은 설법하시고 반시간 공을 가르치셨다. 사부님께서는 아침에 공원에 가셔서 수련생이 연공하는 것을 보시고 지도하시고 문제 해답도 하셨다. 제일 잊기 어려운 한 가지 일은, 학습반이 끝나기 며칠 전 사부님께서 200여 위안(한화 약 3만4천원)을 내시어 녹음기 한 대를 수련생에게 사주시고 연공장에서 사용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때로 낮에 사부님을 모시고 린칭의 사리보탑, 우양쑹, 세마팅 등을 참관했다. 린칭과 50km 떨어진 인근 현 관현은 사부님께서 1992년 11월에 공을 전하시고 설법하신 곳이다. 하루는 사부님께서 관현 수련생을 보러 가시겠다고 하여 우리는 차량 두 대로 사부님을 모시고 관현 파룬궁 보도소장 집에 갔다. 여기에서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제자를 염려하시는 마음을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큰 뜻을 품으시고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으시어 제자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셨다. 한번은 사부님과 식사를 할 때 밥상에 떨어진 밥알을 사부님께서는 손으로 주워 드셔 나의 부족한 점을 깊이 가르치셨고 그 후 생활에서 나는 자녀를 가르쳐 이 방면을 바로잡았다.
사부님께서는 베이징에서 린칭에 오실 때 4월에 막 출판한 ‘파룬궁’ 제2쪽에 친히 나의 이름을 적으시고 또 사부님의 사인을 하시고 나에게 증정해주셨다. 정말 참으로 크나큰 행운이었다.
사부님의 옆에 있을 때는 뭘 말씀드리면 좋을지 생각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에너지는 그렇게 평온하고 그렇게 편안하고 미묘하다는 것만 느꼈다. 인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느낄 수만 있을 뿐이었고, 언어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학습반이 끝난 이튿날 아침 나와 한 수련생은 차 한 대를 준비하여 사부님을 모시고 베이징으로 갔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베이징 1거주민 구역 2층에 거주하셨다. 사부님 댁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 5시였다. 사부님께서 손수 우리 수련생에게 면 한 그릇씩 끓여주셨고 매 수련생에게 관정을 해주셨다. 그리고 우리를 아래층까지 배웅해주시고 일일이 악수하셨다. 나는 마지막에 선 사람이었고 마지막에 차에 오른 사람이었다. 사부님께서 내 앞에 오셨을 때 나는 사부님의 손을 잡고 “사부님, 린칭 사람은 사부님을 환영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사부님께서는 좋다면서 기회가 있으면 꼭 다시 가실 거라고 대답하셨다.
사부님께서 린칭에 오셔서 공을 전하시고 법을 전하시기 전에 나는 늘 독감에 걸렸는데, 한 번 걸렸다 하면 며칠 주사 맞고 약 먹고 링거를 맞아도 낫지 않았다. 후에 친구 소개로 기공을 연마했는데 감기는 여전히 그다지 낫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린칭에 오셔서 공을 전하시고 법을 전하신 후 나는 대법을 전일하게 수련했다. 줄곧 지금까지 20여 년이 지났는데 약 한 알 먹지 않고 아주 건강하다. 겉보기에도 같은 연령대 사람보다 많이 젊어 보인다. 이것은 확실하다.
20여 년이 지났건만 사부님과 함께 한 나날을 돌이켜보면 어제의 일 같다. 사부님의 자비로움, 온화함, 미소와 위엄은 나의 기억에 생생하며 눈에 선하다. 수련생과 여러 번 교류한 후 사부님을 회고한 이 문장을 쓰게 됐다.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아무리 많은 말로도 사부님의 제자에 대한 자비로움을 표현할 수 없다.
원문발표: 2018년 2월 8일
문장분류: 나의 사부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2/8/3605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