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상대방을 위해 걱정하다’에서 생각난 것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이가 비교적 좋거나 가족이 모두 수련생인 상황에서 상대방이 어느 방면의 집착을 장기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속으로 몹시 걱정하고 늘 “당신이 집착을 여전히 제거하지 못하니 내가 더 걱정돼요”라는 등의 말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대부분 효과가 제한적인데비교적 친하거나 가족이기에 말에 쉽게 정이 섞일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 말에는 사람의 정이 많고 보기에는 상대방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 효과는 모두 이상적이지 못한데 순수하지 못하고 완전히 무사(無私)와 자비에서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수련인으로서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모두 자신의 마음과 연관이 있다. 왜 상대방의 부족함을 나에게 보여주는가? 상대방에게 지적해주는 외에 자신에게도 유사한 문제가 있는지 자세히 봐야 하는 것이다. 최소한 우리는 이 문제를 의식해야 한다. 왜 나 자신의 장은 상대방의 부정확하고 법에 있지 않는 언행을 억제할 수 없는가? 더욱이 함께 수련하는 상대에게 집착이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우리 앞에서 나타내거나 드러내게 하는데우리에게 자신의 사람 마음을 의식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상대방의 집착에 특별히 염두에 둘 때 이미 상대방에 대한 집착이 형성된 것이다. 장기간 이렇게 되면 관념이 형성되어 자신을 방해하고 상대방도 방해하게 된다.

가족 혹은 잘 아는 사람에 대해 아주 걱정하는 것은 아주 많은 부분에서 정이 작용한 것이지 완전한 자비에서가 아니다. 또한 수련인은 정을 제거해야 하는데 우리가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에 직면했을 때 우선 자신에게서 찾고 자신에게 그러한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봐야 하며 정의 작용이 아니라 자비상태에서 상대방을 지적해주어야 한다. 상대방의 표현이 어떠하든지 모두 자신은 반드시 자신을 수련해야 하고 원망하는 등 사람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 사람의 수련의 성숙 여부를 가늠하는 것은 늘 자신의 가족, 혹은 잘 아는 사람 앞에서의 표현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흔히 한 사람이 고려하는 마음이 없을 때의 진실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좋은 기회를 이용해 자신을 잘 수련하는가 하는 것은 사람마다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 책임질 수 있는 표현 중 하나로 되었다.

 

원문발표: 2018년 2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2/10/360605.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