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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인(眞善忍) 수련은 나를 환골탈태하게 해줬다

글/ 랴오닝(遼寧)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이전에 무슨 일을 해도 이치를 따지면서 한 번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나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아무 일도 없는데 일단 건드리면 나는 목숨을 걸고 싸웠다. 시어머니라고 해도 조금도 봐주는 게 없었고, 큰시누이가 우리집에서 밥 한 끼 먹으려 하는 것도 어림없었다! 사흘에 한 번씩 다투고 닷새에 한 번씩 큰 싸움을 했기에 가족들과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친정집 생활조건이 시집보다 좋았기에 나는 시댁 식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늘 남편과 이혼하고 싶었고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파룬따파를 만나니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늘 싱글벙글 했다

98년, 1월 어느 날, 어떤 분이 우리집에 와서 파룬궁은 대단하다면서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수련하면 사람을 때리지도 않고 욕하지도 않으며 최후에는 또 부처로 수련 성취될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은 듣고 나서 뜻밖의 기쁨에 어쩔 줄 몰랐다. 이번에는 우리집에 희망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당신, 어서 가서 배워! 어서 가봐!”라고 하면서 나를 대문 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걸어 닫았다.

그래서 나는 가보기로 하고 먼저 연공장에 도착해서 법을 배운 후 연공을 했다. 한 수련생이 ‘전법륜’을 읽을 때 나는 들을수록 마음이 편안하고 가슴이 탁 트이면서 몇 년간 짓눌렸던 가슴이 말끔히 해소됐다. 수련생이 연공하는 것을 보자 나는 즉시 배워 알게 됐는데 그때부터 법 중에 용해되어 이것이 바로 내가 찾는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느꼈다! 내가 대법을 만나 기뻐할 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이미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었다.

99년, 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은 파룬궁을 모함하며 박해하기 시작했다. 7월 21일 저녁, 내가 연공장에 도착하자 동료 수련생이 “우리 보도원 몇 명이 붙잡혔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듣자마자 “뭘 기다릴 게 있나요? 성(省) 정부에 청원해 공정한 처리를 요구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택시를 타고 밤을 새워 십여리 길을 가고 있었는데 얼마가지 않아 뜻밖에 경찰의 저지를 당했다. 남편은 소식을 듣고 달려와 차문을 열자마자 바로 나를 몇 번 걷어찼다. 그리고 또 집에 와서도 때리면서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나는 수련생 집에 갔다. 날이 아직 밝지 않아 나와 동료 수련생은 길을 우회해서 성정부에 도착했다. 저녁에 또 납치돼 현지에 돌아와 집에 도착한 후 남편은 또 나를 때렸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1]는 일념을 굳게 지켰다. 사부님께서는 또 “어떤 일과 마주쳐도 다 마음에 두지 않고, 속인 중의 모든 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으며, 언제나 싱글벙글하면서, 아무리 큰 손해를 보아도 싱글벙글하며 개의치 않는다.”[2]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남편이 어떻게 때리고 욕하던지 싱글벙글했다. 나는 대법을 견정히 수련해 누구도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99년 10월 7일, 나는 사부님과 대법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하여 또 베이징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10월 18일, 천안문 광장에서 납치돼 현지로 압송되어 불법 감금됐다.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딱 100일이란 시간이 걸렸다.

내가 간 후 남편은 매점 장사를 할 마음이 없어 인맥을 이용해 뒷거래를 하다가 2만 위안을 잃은 것을 나는 집에 돌아온 다음에야 알게 됐다. 원래 경제여건이 막 호전되고 있었는데 집에 원래 있던 돈도 잃었고 또 빚까지 지게 됐다. 집도 집 같지 않고 장사도 장사 같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여전히 싱글벙글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대법만 간직하면 바로 가장 행운이고 값진 보물을 얻은 것과 같은데 또 무엇을 구한단 말인가?’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수련하는 사람이 겪는 고험(考驗)은 속인으로서는 감당해 낼 수 없는 것”[3]이다. 이때부터 파출소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를 교란했다. 그들이 한번 우리집에 오면 남편을 나를 한바탕 때렸는데 때로는 그들이 가기도 전에 때리기도 했다. 한번은 향에서 사람이 와서 15일간 세뇌반(강제 전향으로 신앙 포기)을 하는데 가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하자 와서 등록만 하면 안 되냐고 물어 그것도 안 된다고 하자 종이에 서명만 하라고 했다. 그것도 하지 않겠다고 하자 마지막엔 어쩔 수 없이 체면을 좀 봐주면 안 되겠냐고 해서 나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다! 나는 감옥의 소굴에서 나와 가짜 ‘전향’한 것도 이미 대법제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이기에 이번에는 절대로 대법에 먹칠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은 사악에게 빈틈을 주어 나를 박해하는 것이라고 나는 깨달았다.

법을 실증하는 길을 개척하다

진상자료를 처음 배포할 때 남편은 두려움 때문에 온갖 방법으로 날 가로막았다. 그래서 나는 시에 가서 자료를 가져올 때 집으로 감히 가져오지 못했고 저녁에 나가 배포할 때에도 그에게 알리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누구네 집에 간다고 말했는데 당시 그는 그 집에 전화를 걸어 내가 거기에 없는 것을 알고 내가 무엇을 하러 갔는지 알았다. 내가 돌아온 다음 그는 길길이 날뛰면서 나에게 앞으로 또 나갈 거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장 바른 일이기에 누구도 막을 수 없다면서 나갈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다른 사람에게 가라고 하면 안 되냐고 하자 나는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며 안 된다고 하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강한 면을 주셨기에 남편이 완강하게 나와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동시에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다. “참음(忍)은 나약한 것이 아니지만, 온갖 수모를 다 참고 견뎌내는 것은 더욱 아니다.”[4] 이때부터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 대해 그는 가로 막지 않았으며 또 항상 나에게 안전에 주의하라고 일깨워 주었다. 어느 해에 현지 수련생 몇 명이 체포됐다. 남편은 그 중 한 명이 나와 직접 연계가 있는 것을 알고서 내가 돌아오기 전에 대법과 관련 있는 물건을 전부 옮기고 내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았다.

태연하게 버리다

2004년, 매점을 경영하고 싶지 않아서 사는 집마저 다 팔아버렸다. 하지만 이웃은 알고 나서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집의 서쪽 켠은 그들 땅이라면서 문서를 쓰지 못하게 했다. 만약 쓰려면 5천 위안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다.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2] 만약 내 것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이웃집 며느리가 우리집에 와서 돈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떠들어댔다. 남편은 듣자마자 화가 나서 나보고 그녀와 싸우라고 했다. 이때 사부님의 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당신이 속인과 마찬가지로 다투고 싸운다면 당신은 곧 속인이며, 당신이 그보다 더하다면 당신은 그 속인보다도 못하다.”[2] 나는 내가 수련인이기 때문에 그와 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언니, 돈을 꼭 줄 테니 먼저 돌아가요. 문서를 쓸 때 와서 가져가세요!”라고 권해서야 그녀는 돌아갔다.

남편은 내가 싸우지 않고 좋은 말로 권고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삽으로 나를 때리려 했다. 당시 동료 수련생의 며느리가 마침 우리집에 있었는데 놀라서 아이를 안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당시 나는 사부님께서 계시기에 당신은 나를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거기 서서 꼼짝 하지 않자 그는 삽을 내려놓고 “당신은 왜 이렇게 무능하고 나약하게 변했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럼 당신은 예전의 나 같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자 그는 말이 없었다. 나는 이어서 “우리 사부님께서는 ‘우리는 모순 앞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면 더없이 넓은 세상이라고 말하는데, 보증코 다른 광경’[2]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만약 우리가 얼마 되지 않는 돈 때문에 그들과 양보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 모르기에 돈으로 안정을 사는 게 나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듣고 나서 이치가 있다며 바로 동의했다. 정말로 속인에 대해 말하면 매우 어려운 일이다. 5천 위안은 그 시기에 작은 돈이 아니었다. 우리집의 방 네 칸짜리 큰 기와집과 방 세 개 단층집을 4만2천 위안에 팔았는데 그들에게 5천 위안을 주게 된다면 수련하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불만이 가득할 것이다.

나중에 나는 내가 이렇게 담담해질 수 있는 것은 전부 사부님의 가지(加持)이고 대법이 지도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대법서적 ‘정진요지’를 들고 ‘무루(無漏)’를 공부했다. 사부님께서는 “부동한 층차의 수련자에 대해, 법은 그에 대해서도 부동한 층차의 요구가 존재한다. 버림은 속인의 마음에 집착하지 않는 것의 체현이다. 만약 정말로 탄연(坦然)하게 버릴 수 있으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자라면, 실은 이미 그 한 층에 있는 것이다.”[5] 라고 말씀하셨다. 이 관을 넘게 나를 도와준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남편의 외도

내가 집에 있지 않는 그 동안에 우리 집 앞에 살던 여성이 남편과 내연 관계를 맺었다. 어느 날, 나는 남편 주머니에서 편지를 발견했다. 이것은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남편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그는 내가 표정이 태연하면서 화내지 않는 것을 보자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놀라서 아연실색했다.

나는 남편에게 “당신은 두려워 말아요. 나는 예전의 그런 아내가 아니고 대법제자예요. 대법은 어떻게 사람이 되라는 것을 가르쳤어요. 우리 사부님께서는 ‘일을 함에 우선 남을 고려해야 한다’[2]고 말씀하셨어요. 당신은 그녀를 데려와요, 우리 명백하게 말해보죠!”라고 말하자 그는 전화로 그녀를 불러왔다.

나는 남편에게 “만약 당신이 나와 살기 싫으면 우리 이혼하고 나서 나는 당신들을 성사시킬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무슨 말을 해도 이혼하지 않겠다고 하고 그 여성도 나에게 감동해 울었는데 나중에 집에 가서도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이러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매점에 사람이 많이 오면 다른 사람이 알게 되고 또 사람들에게 평판이 아주 안 좋아 그녀는 고개를 들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그에게 “울지 말아요. 다른 사람들이 알면 좋지 않아요. 나는 수련인이기 때문에 앙심을 품거나 원한을 기억하지 않아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칠게요. 당신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하세요!”라고 권했다. 그러자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중에 이웃집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나와 의자매를 맺었다.

사건이 지나갔지만 당시 나의 마음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됐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속에서 내려놓지 못하면, 마음이 번거로워질 것인데, 사람의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2] 당시 내 마음은 자극을 받아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당신 자신이 넘으려 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지, 넘으려 하면 넘을 수 있다.”[2]를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사부님의 법상 앞에 가서 “사부님, 저는 반드시 넘을 것입니다! 이번만 울게 허락해주시고 다음부턴 절대로 울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나는 한바탕 크게 울었다. 그로부터 풍랑이 일지 않고 고요해졌는데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이 관을 넘겨주셨다.

남편의 변화

그 후부터 남편은 대법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다. 2002년 정월 초사흗날, 나는 공안국에 속아서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감금됐다. 남편은 이튿날에 향장 집으로 가서 “아내를 돌아오지 못하게 해서 내가 명절을 제대로 쇠지 못하면 당신도 제대로 쇠지 못할 줄 알아요!”라고 말했다. 그런 후 향장은 나를 직접 꺼내온 동시에 담보로 보증금 1천 위안을 차압했다.(1년 내에 청원하러 가지 않으면 돌려준다고 했음)

이듬해에 우리는 ‘6.10’에 보증금을 찾으러 갔다. 그들은 우리가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서 우리는 작년에 그 보증금 1천 위안을 찾으러 왔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아느냐며 여기는 ‘6.10’(전문 파룬궁을 박해하는 기구)이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여기가 어떤 곳이든 1년이 됐으니깐 반드시 돈을 돌려줘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주지 않겠다고 말하자 남편은 “당신이 주지 않는다면, 나는 현재 돈이 없지만 돈을 빌려서라도 아내와 함께 베이징에 가서 당신을 고발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나오자 그는 향장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에게 돈을 돌려주라고 했고 향장은 우리에게 돈을 줄 테니 가서 떠들지 말라고 말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우리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대법이 좋다고 읊자 인대가 끊어진 남편의 손이 정상으로 회복

10여년 전, 남편은 가족 일로 다른 사람과 칼을 휘두르며 싸우다가 서로 양보하지 않고 칼을 서로 빼앗다가 한쪽손이 마구 난도질을 당하는 바람에 손가락 인대와 근육이 전부 없어지고 손가락의 하얀 뼈만 남았다. 의사는 피부이식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살이 살아날 수 없어 평생 불구가 된다고 했다. 손을 펴지도 잡지도 못하는 상태였고 근육과 인대가 없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사부님께 부탁하면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읊어요”라고 말했다. 이후에 그는 간수소에서 날마다 ‘쩐싼런하오, 파룬따파하오’를 읊고 또 한 감방에 있는 죄수들에게 그가 알고 있는 대법 진상을 말해주었다. 간수소에서 ‘파룬따파 하오’를 읊을 때 손을 펴자 소리가 나면서 손이 펴졌다! 그는 한 감방에 있는 죄수들에게 보이면서 “보세요! 제 손이 펴졌어요. 내 손이 좋아졌어요. 대법 사부님이 나를 도와주셨어요!”라고 말했다. 감방에 있는 수감자들은 대법의 기적을 목격했다.

남편의 손은 이렇게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됐다. 의학적으로는 해석할 방법이 없었으며 더욱이 현대의학으로는 이룰 수 없는 기적이다. 그때부터 어디를 가나 그는 법을 실증했다. 촌에서 선거를 할 때 향파출소 사람들이 다 있어도 그는 직접 서기에게 “당신들 탐관오리는 누구도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보다 못해!”라고 하면서 “파룬따파 하오!”라고 외치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수련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수련하지 않고 장래에 나의 세계에 가서 중생이 되겠다고 했다.

2016년, 그의 경추가 증식해 나는 함께 연공하자고 했다. 그러자 그는 그렇게 하자고 하면서 나와 함께 연공했는데 아주 빨리 배웠다. 연공한 후 아이처럼 펑펑 뛰면서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나도 대법이 좋다는 걸 알아. 나도 파룬따파를 연공했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의 경추도 좋아져서 딸이 그를 데리고 신체검사를 했는데 의사는 그가 폐결핵에 걸린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몰랐으며 자신도 모르게 나았다. 정말로 대법에서 얻은 이익과 기적이 너무나도 많다.

맺음말

20년간의 자신의 수련과정을 돌이켜보면 정말로 감개무량하다. 대법은 나를 환골탈태하게 하여 예전의 내 그림자는 하나도 없다. 때로는 스스로도 놀랐다. 내가 왜 성질이 없어졌을까? 왜 화를 내지 않을까? 시어머니는 우리집에서 말년을 편안하게 보내셨고 임종 전에는 법도 듣고 연공도 하셨다. 큰시누이는 내가 법을 얻기 전에는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는데 지금은 우리집에 오면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지냈다. 그래서 내가 대법이 좋냐고 물으면 그녀는 진심에서 우러나와 “좋아!”라고 말한다. 친척과 친구들도 “널 이렇게 좋은 사람으로 변하게 했으니 대법은 너무 신기해!”라고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가정은 화목해 행복이 가득 넘치고 부부간에 서로 깍듯이 존경한다. 정말로 사부님이 말씀하신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2]를 체현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위치’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더는 참을 수 없다’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무루(無漏)’

 

원문발표: 2017년 1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9/3596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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