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70세다. 파룬궁을 수련한 지 20년이 되며 몸은 병고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갔다가 불법적으로 수감되어 여러 번 세뇌반에서 박해받았고 비바람을 겪었지만,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하셔서 큰 난에서 걸어 지나왔다. 느낀 바가 너무 많은데, 사부님과 대법에 나는 감격뿐이다.
1. 집착을 내려놓자 우리 집이 대법의 은택을 입다
나는 멍청하게 병의 고통 속에서 반평생 괴롭게 살았다. 1분 사이에도 머리가 끊임없이 아팠다. 앉아있든 서 있든 누워있든 엎드려 있든 허리는 1분 사이에 끊임없이 아팠다. 잠시도 서 있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절망에 빠져있을 때인 1996년 1월 17일, 나는 대법을 얻어 수련하게 됐다. 다년간 나를 괴롭히던 질병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없어져 나는 감개무량했다.
이때 두 아이가 점차 커 대학에 다닐 때가 됐다. 우리 부부는 수입이 적은 데다 나는 해마다 외지에 있는 친정에 연로한 부모님을 보러 가야 했기에 1년에 아껴먹고 아껴 쓰면서 여비를 저금하고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드려야 했다.
큰아들은 성적이 우수했지만, 집에 돈이 없어 결국 외지 전문대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 한 명에게도 돈을 대주기 힘들어 작은아들에게 대학을 다니지 못하게 했다. 작은아들은 성적이 우수했지만, 중등전문학교만 보내고 얼른 일하게 했다. 작은아들은 중등전문학교에서 전문대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탔다. 원래 대학 본과도 다닐 수 있었지만, 학비 2,000위안(한화 약 38만 9천 원)이 없어 그만두었다.
아이들이 컸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한 데다 우리 집의 한 칸 반짜리 작은 방을 보고 근심스러웠다. 내가 매달 1천 위안을 번다고 해도 언제 집을 살 수 있겠는가? 법공부도 마음을 조용히 하고 할 수 없었고 수련생을 찾아 교류하고 싶었지만,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그럼 법공부를 해야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속인의 시끄러움은 곧 속인의 시끄러움일 따름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물체는 변하지 않으나 신의 눈으로 보면 이 일체는 변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괴로워하면 사부 역시 당신들 때문에 괴로운데, 괴로운 것은 당신들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법에서 높게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고,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당신들은 또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1] 마음이 확 트였다. 나는 미혹 속에서 앞길을 보지 못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분명하게 우리 사람은 각자 운명이 있다는 법을 알려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2] 나는 늘 이런 번거로운 일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집착임을 깨달았다. 중히 여기고 집착하면서 추구했고 사부님의 요구와 정반대였다. 사부님께서 세 가지 일을 잘하면 모든 것이 그 속에 있다고 하신 함의를 완전히 알지 못했지만 바로 사부님 말씀이니 세 가지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도 소용없고 생각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자. 나에게 사부님께서 계시는데 근심할 게 뭐가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하셨으니 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 일이고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다.
나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현지에 압송되어 와 방공호에 수감됐다. 작은 아들은 먹을 것을 가지고 나를 보러왔다. 그 후 나는 여러 차례 납치됐는데 경찰은 소식을 봉쇄하여 두 아이는 곳곳에 다니며 나의 행방을 알아보고 경찰 측과 교섭했다. 사당의 하늘을 뒤덮을 듯한 파룬궁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탄압 속에서 나는 박해받아 머리가 아프고 눈이 아파 거의 실명할 뻔했지만 두 아들은 나를 원망하지 않았고 내 수련을 지지했으면 나의 안위를 근심했다.
한번은 내가 납치됐을 때 작은아들이 파출소를 찾아갔다. 이때 작은아들이 외자기업에 채용됐다는 초빙 전화를 받았다. 작은아들은 독학한 유창한 영어로 상대방과 이 대우가 좋은 일자리를 거절했다. 나의 안위가 걱정되어 외지에 갈 생각을 버리고 이 기회를 포기한 것이다. 그때 현장에 있던 감시원은 아주 탄복했다. (감시원은 사실 파출소에서 고용한 조폭이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악행을 하지 않았음)
그 몇 해 나는 심하게 박해받았지만 해마다 친정에 가서 연로한 부모님을 돌봐드렸다. 두 아들이 일자리, 연애, 결혼 일을 나는 다 관계하지 않았다. 그때 생각한 것은 부모님이 연세가 있으니 살면 얼마나 더 살까? 먼저 부모님을 돌보자. 부모님을 돌보면서 세 가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다.
작은아들이 결혼할 때 집을 사고 인테리어까지 했지만 다른 걸 살 돈이 없어 빈 집만 있어 어떻게 할지 모르고 있을 때 신부 측 부모님이 저금통장 하나를 내어 가구를 사주었고 다음에도 통장 하나를 내어 가전제품을 사게 해 원만하게 결혼식을 치렀다. 큰아들이 결혼할 때는 여자 친구가 업무와 연계해 폐백에 쓸 돈을 마련해 원만하게 혼사를 치렀다. 아들이 혼사를 다 치른 후에야 나는 집에 돌아갔고 다 지나간 후에야 그들의 이런 경과를 알게 됐다.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도와주신 것이고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다.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내가 가장 해결할 힘이 없을 때 제일 해결해야 할 일, 가장 고민되는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작년에 고속도로에서 큰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작은아들은 원래 그 시간대에 그 길에서 운행했어야 했는데 당시 그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이튿날에야 그 길에서 큰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을 알았다.
이 모든 것은 은연중에 돕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뭘 할 수 있는가? 나는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임을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것이다.
작은아들은 우리 법공부 소조를 대신해 밍후이왕에 사부님께 올릴 새해 문안을 올렸고 나를 도와 사부님 설법을 다운해주고 인쇄해주었다. 내가 MP4를 보면 눈이 아파할까 봐 태블릿 PC를 사주었고 법공부할 때 눈에 좋지 않을까 봐 접이식 스탠드를 사주었다.
두 아들은 학력은 높지 않았지만 작은아들은 외자기업에서 고위직에 있고 대우도 우월하며 큰아들은 자영업을 한다. 두 며느리는 외자기업에서 관리직을 맡고 있는데 모두 수입이 괜찮다. 그들은 모두 평수가 큰 집에 살고 있다.
요 몇 해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주시고 넘어지면 나를 일으켜주셔서 큰 난에서 걸어 지나왔다. 우리 가족을 보호해 대법의 신기함이 우리 집에 매번 나타났고 우리는 대법의 은택을 입었다!
2. 진상 알리기에서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시비가 일어나는 것을 싫어하고 열등감 있고 자폐증이 있었으며 다른 사람과 교제할 줄 몰랐고 말재주가 없었다. 사람을 상대로 직접 진상 알리기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대법제자에게는 사람을 구하는 사명이 있기에 나는 반드시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열심히 ‘밍후이 주간’을 보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했는지 노트에 적어놓고 늘 보고 기록했다.
한번은 할머니 한 분을 만났는데 자발적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는 집안일을 나에게 하소연했다. 나는 대법 진상을 할머니에게 말하고 탈당을 시켰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여러 번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번은 자발적으로 한 노인에게 말을 걸고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더니 노인은 기뻐하며 내 어깨를 안고 나와 친척처럼 서로 왕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번은 문 앞 도로가에서 학생들이 주택 분양 광고를 배포했다. 내가 다가가 진상을 알리려 할 때 희고 뚱뚱한 젊은이가 휴대폰을 꺼내며 큰소리로 외쳤다. “파룬궁, 당신을 고발할 겁니다!” 그 얼굴이 검은 젊은이가 말했다. “그의 말을 듣지 마세요. 저에게 말하세요.” 나는 다 말하고 그에게 소책자를 두 권을 주고 삼퇴를 시켰다. 그 얼굴이 흰 젊은이도 다가와 말했다. “교과서에서 분신자살을 말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는 알아들었다. 그는 아무것에도 가입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동안 지난 후 또 그 슈퍼에 갔는데 문 앞 도로가에서 한 사람이 불렀다. “파룬따파, 파룬따파” 내가 목소리를 따라서 보니 그 두 젊은이가 나를 부른 것이었다. 나는 다가가 또 그 두 사람과 얘기를 좀 나누었다.
매일 손자를 데리고 나가 놀 때 만나는 사람에게 한담하다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했다. 진상 알릴 때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학력이 어떻게 되나요? 아는 것이 왜 그리 많습니까? 나는 여태껏 이런 걸 들어보지 못했어요.” 사실 나는 지식수준이 없다. 모두 진상 자료에서 배우고 기록한 것이다. 나도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말을 술술 말했는지 놀랐다. 아,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다! 사부님께서 없으면 말재주가 없고 둔한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신 것이다.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 돌아와 남은 밥을 데워먹어도 마음이 편하고 느낌이 아주 좋았지만 나가 진상을 알리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었다.
한번은 할머니 두 사람이 나를 향해 오고 있었는데 그녀들은 아주 평온해 보였다. 내가 그녀들에게 진상을 알리려고 생각했는데 그녀들이 나에게 진상을 알렸다. 들어보니 수련생이어서 나는 바로 그녀들에게 합장했다. 그 후 그녀들은 내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에게 걸어갔다고 말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당시 미소 지었다는 것을 알았다.
과거 나는 웃을 줄 몰랐다. 생활이 어렵고 질병에 시달려 온종일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고 웃음기가 없었다. 지금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기에 사람을 구하는 책임을 지고 있어 사람을 구하는 것이 마음이 가장 상쾌한 일이니 저절로 미소를 지은 것이다. 이것은 내심에서 나온 웃음이다.
3. 장쩌민을 고소하는 것 역시 당신들을 위한 것
2015년 5월 장쩌민을 고소하는 일을 알았을 때 어떤 대법제자는 이미 양고(兩高-최고인민법원, 최고인민검찰원)에 고소장을 부쳤다. 이 소식을 안 후 나도 고소하고 싶었지만 쓸 줄 몰라 정말 조급했다.
나는 박해받았지만, 구체적인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고 도대체 뭘 써야 할지 몰라 머리가 혼란하기만 했다. 나는 걸으면서 생각했고 일하면서도 생각했다. 갑자기 한 가지 일이 생각나면 바로 종이에 적고 사건이 발생한 시간을 돌이켜보면서 기억나는 것이 조금 있으면 조금 적으면서 차츰 다 생각이 났다.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기억을 열어주셔서 생각이 난 것이다.
이렇게 많은 자료를 정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이때 며느리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집에 며칠 가 있었다. 그제야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모든 자료를 시간 순서대로 놓았다. 법을 얻어 수련해서 건강해진 데로부터 베이징에 법을 수호하러 갔다가 불법 수감되고 몇 차례 세뇌반에 납치되어 박해받은 일련의 사건을 다 정리해냈다. 다음 차례차례 보충, 수정하고 베껴 써서야 7월 초에 고소장을 부쳤다. 현지에서 부친 고소장은 성(省)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 가로막았고 공안이 우체국에 잠복해 있다는 말이 들렸다. 다른 현, 진에 가도 보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양고에서 내 고소장을 받지 못하면 그것이 무슨 고소인가? 고소하려 했으니 양고에서 내 고소장을 받아야 한다. 나는 곳곳에 다니며 어디에 가야 보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고소장을 유동 택배차에 보내 우편물 배달에 성공했다.
이튿날 공안국은 계획 있게 통일적으로 새벽에 잠복해 있다가 여러 명의 대법제자를 납치했다. 나도 납치됐고 집을 수색당했으며 고소장 초고도 빼앗겼다. 경찰은 초고를 보고 이것이 당신이 쓴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고소장은 당연히 내가 쓴 것이지요.” 나에게 서명하라고 했다. 내가 보니 출석요구서에는 법률파괴 실시죄 명의로 소환한 것이어서 나는 거절했다. “장쩌민이야말로 가장 심한 법률파괴 실시죄 범죄자입니다!”
경찰은 나를 파출소 지하실에 데리고 가 심문했다. 나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일리가 있으니 여기까지 온 바에 바로 이곳에서 발정념을 할 것이다. 이 역시 그들을 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당신은 왜 장쩌민을 고소했는가?”에 대한 물음에 나는 말했다. “그가 나를 박해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고소하지 않다가 왜 지금 고소하는가?”고 묻는 말에 나는 말했다. “지금 중앙에는 ‘안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건하고 고소가 있으면 반드시 처리해라’는 새 정책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과거 어디에 가 고소하겠습니까? 장쩌민 고소 역시 형사님을 위한 것입니다. 형사님들이 법을 집행하면서 법을 어기는 피동적인 국면을 바꾸기 위한 것입니다.”
경찰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크게 벌리고 ‘아’라고 말했다. 그들은 본인이 법을 집행하면서 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고 있었다. 나는 법을 얻기 전에 병마에 시달려 고통스럽게 살다가 파룬궁을 연마한 후 어떻게 건강해지고 삼륜차에 부딪혀 요추 5개가 압축성 골절이 되어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없는 것을 연공과 법공부를 해서 점차 정상으로 회복된 사실을 알려주었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시시각각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경찰이 나에게 예를 들라고 했다. 나는 며느리와 어떻게 지냈는지를 예를 들어 말했다. 경찰은 아주머니는 정말 선량하다고 말했다.
그들이 다 묻자 나도 다 말했다. 그들은 한쪽에 한담하러 갔고 나는 발정념을 했다. 전체 과정에서 경찰의 태도는 예의가 발랐다. 점심, 저녁에 나에게 빵을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우리 집에 밥과 반찬이 있으니 돌아가 먹겠다고 말하고 먹지 않았다. 경찰이 더운물을 주며 나에게 마시라고 하면서 이곳에 수감된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물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튿날 오전에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파출소 문 앞까지 갔을 때 또 그 경찰을 만나 나는 그에게 삼퇴를 시켰다.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 위대한 법이 나를 만들었다. 사부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없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7/3569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