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린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천목이 열려서 수련하는데 역병의 신이 물, 우박, 질병, 음풍(陰風) 등 형식으로 세상에 내려와 모든 생명에게 덮치는 것을 보았고 인류와 일체 생명이 도태될 때의 충격적인 장면을 하나하나 보았다.
나는 1998년에 법을 얻었다. 비록 거의 20년이 지난 일이지만 매번 회상할 때마다 마치 오늘이나 어제 발생한 일 같다. 아래 일들은 내가 몸소 경험한 것이다. 이 삼악도(三惡道-지옥도·아귀도·축생도)에서 내려와 오늘까지도 근기가 낮은 나에게 사부님께서는 진작 색심(色心), 질투심 등 각종 속인의 마음을 제거해주셨으며, 마지막에 대법을 얻게 해주셨고 마음을 고요히 하고 수련하게 해주셨으며 아주 많은 난관을 넘게 해주셨다.
법을 얻은 후 목격한 기적
1998년 12월 15일에 나는 산책하면서 처형 집에 갔는데 우리 촌의 취(曲)씨 부인이 처형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라고 권하고 있었다. 취씨 부인은 오십견이 수련하고 다 나았다고 했다. 처형도 병이 있었지만 본인이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시며 또 늘 사람을 욕하는데다가 성격도 나쁘고 다리가 굳어서 가부좌도 안 되기에 수련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들과 불가(佛家)의 일에 대해 한참 이야기 했고 또 가부좌를 어떻게 하는지 보았으며 취씨 부인에게 책이 있냐고 물었다. 그녀가 있다고 하자 내가 보게 먼저 빌려달라고 했다. 그녀는 책 몇 권을 나에게 빌려주었다.
내가 집에 와서 펼쳐보니 5권이었는데 속으로 아주 감동했다. 나는 먼저 두꺼운 책을 골라 보려고 바로 ‘전법륜’을 골랐고 불을 켜고 단숨에 8강까지 읽었다. 그 때 방안의 네 벽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고 번개가 치듯이 사면 벽에서 모두 번개가 치고 있었다. 나는 마치 번개에 포위된 것 같았으며 앞이마와 정수리가 볼록볼록 했으며 눈을 감으면 방안이 온통 붉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깨어나 나에게 한밤중에 불을 켜고 뭘 하냐고 하시면서 나에게 빨리 자라고 재촉해서 나는 바로 잤다. 이어서 나는 꿈을 꾸었는데 아주 또렷했다. 파란 하늘에서 한 부처님이 오셨는데 마치 백옥으로 조각된 것 같았으며 가부좌하고 두 손은 결인을 하고 우리 집 처마 끝에 와서 꼼짝도 하지 않으셨다. 부처님은 방안을 보면서 입술을 미세하게 움직이면서 마치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 같았으며 눈에는 눈물을 머금고 계셨다. 나는 방에 누워서 위로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후에 나는 두 손을 들어 부처님을 방에 들어오시라고 외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부처님은 내가 일어난 것을 보고 바로 뒤로 물러섰고 재빨리 푸른 하늘로 사라지셨다.
그 때 어머니는 벽을 두드리며 “샤오샤오(小小: 나의 아명)야, 너 자면서 가위에 눌렸니? 왜 뭐라고 소리 지르는 거야? 빨리 깨”라고 하셔서 나는 즉시 깼고 나는 꿈을 꿨지 뭐라고 외친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당시 날이 밝지 않았기에 나는 일어나서 책을 보지 않았다.
다음 날에 취씨 부인이 와서 책을 달라면서 매일 법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마지못해 돌려주었다. 셋째 날에 나는 연공장에 갔는데 모두들 내가 온 것을 환영했다. 나는 그렇게 마침내 법을 얻었다.
대법수련에 들어선 후에야 무엇이 진정한 불법(佛法)인지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10일도 안 지나서 내 몸을 정화시켜주셨다. 연공할 때 나는 크고 작은 파룬(法輪)들이 내 주변에서 도는 것을 보았고 공이 아주 빨리 나왔으며 천목도 열려서 다른 공간의 생명을 보고 접촉했다. 무슨 일을 할 때 생각만 하면 즉시 발생했는데 그 위력이 아주 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영(元嬰)도 두 자 높이만큼 자랐다. 당시에 나는 청동으로 만든 한 사원에서 주지를 맡고 있었다. 그 후에 나는 3살 아이 모습을 하고 앞치마만 입고 하늘을 통과해 세상에 내려와서 리(李)씨 집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다. 기타의 것은 하나하나 열거하지 않겠다.
시련 중에 목격한 기적
대법을 얻은 후 나에게는 6차례 죽음의 시련이 있었는데 사부님의 보살핌으로 모두 지나왔다. 첫 번째는 당시 금방 법을 얻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 그곳에서는 겨울에 옥수수를 팔 때 탈곡기를 가진 기계주인이 돈을 버는 외에 다른 집은 옥수수를 탈곡할 때 모두 품앗이를 하면서 도와줬기에 돈은 벌지 못했다. 이웃에서 옥수수를 탈곡하려고 나를 찾아와 광주리를 쏟아 붓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당시 법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힘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겼다. 속으로 ‘바구니를 쏟아 붓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인데 한번 서면 계속해야 하며 교체해줄 사람이 없기에 누가 광주리를 쏟아 붓는 일을 먼저 맡으면 나는 다른 쉬운 일을 맡을 수 있다.’ 고 생각해 좀 늦게 갔다. 내가 갔을 때 거기에는 기계가 돌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미 각자 위치에 서있었으며 비록 광주리를 쏟아 붓는 일은 다른 사람이 맡고 있었지만 쓰레받기로 마대에 옥수수를 담는 일이 남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철로 된 큰 쓰레받기가 땅에 놓여있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여전히 힘든 일을 피하지 못했구나. 그의 집에서 오전에 밭 절반인 3만 근이 넘는 옥수수를 내가 쓰레받기로 마대에 담아야 하고 한번 하면 교체해줄 사람이 없는데 쓰레받기로 얼마나 많이 담아야 하는가?’ 나는 마지못해 쓰레받기를 들었다. 그러나 즉시 자신이 수련인이고 반드시 어디서나 수련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며 고생을 두려워할 수 없다고 생각하자 그런 불만이 곧 사라졌다.
당시 나는 보름정도 수련했고 모습이 아주 많이 변했으며 머리카락은 윤기가 흘러서 나도 자르기 아까울 정도였다. 내가 허리를 굽혀 옥수수를 담을 때 조심하지 않아 머리가 벨트바퀴에 부딪혔는데 나는 금속끼리 부딪히는 딸그랑 소리를 들었고 느낌은 벨트바퀴가 내 머리를 한 바퀴 긁는 것 같았다. 그들 몇 명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허리를 펴면서 머리를 위로 비스듬하게 기울였는데 무의식중에 맷돌만한 채색 파룬이 내 머리가 기계 쇠바퀴에 스친 곳에서 돌다가 재빨리 방향을 틀어 푸른 하늘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파룬 도형을 나는 아주 똑똑히 보았다. 나는 격동했다.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주신 것이었다. 보호해주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처참했을 것이다. 벨트바퀴는 강철로 고정되어 있었는데 강철이 5센티미터나 드러나 있었다. 그 강철이 내 정수리를 한 바퀴 긁었고 내가 들은 금속끼리 부딪히는 소리는 바로 그 강철이 내 정수리를 긁을 때 나는 소리였다. 모두들 기계를 멈췄고 나를 둘러싸고 놀라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한사람이 “형, 정말 운이 좋았어요. 내가 불렀는데 형은 못 들었어요? 얼마나 위험했어요, 머리카락이 감겨들어가지 않았으니 말이지 감겨들어갔더라면 두피가 다 벗겨졌을 걸요, 놀라서 죽는 줄 알았어요! 먼저 좀 쉬고 좀 있다가 합시다.” 라고 말했다. 일을 마치고 나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 사부님께서 나를 보살펴주시고 나를 위해 난을 막아주신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
여섯 번째는 창춘(長春) 사탕공장에 가서 일을 하는 동안에 만난 난이다. 그것은 1999년 ‘7.20’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의 일이다. 박해가 발생한 후에 우리 촌의 연공장은 해산됐다. 2003년 다른 사람의 소개로 창춘 사탕공장에 가서 일하게 됐고 매월 월급이 2천 위안(한화 33만원)이었으며 숙식을 제공해주었다. 당시 함께 간 일행은 4명이었다. 사장은 우리에게 새 공장에 가서 일을 인수받고 일 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셋째 날 밤에 우리가 잘 때 알루미늄 문틀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아마 도둑이 와서 절도하는 소리 같았다. 나는 그들 셋을 불러서 보라고 했다. 그들은 나보고 양사장은 집도 크고 큰 사업을 하고 있으니 물건을 잃어버리면 다시 사면 그만이니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지 말라면서 칠흑 같이 어두운데 누가 칼로 찌르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그들 셋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무서워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숨을 죽이고 나를 당기면서 일어서지 못하게 했다. 나는 사부님의 설법이 생각났다. 그 때 창틀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고 유리에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우리 건물 동북쪽 코너에 있는 물류센터 사장의 체구가 크다는 것을 생각하고 순식간에 담이 커졌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모든 등을 켜고 각목을 들고 밖으로 나가면서 “도둑이야, 빨리 도둑 잡아라!”라고 외쳤다.
밤이 깊고 인적이 드물었고 외치는 소리도 컸기에 그 도둑은 한손으로 창틀을 당기면서 한손으로는 드라이버로 나를 찔렀다. 나는 재빨리 몸을 피하면서 창틀을 잡고 놓지 않았다. 그 도둑이 당기는 힘을 이용해 밀자 그는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 때 동북쪽 코너에 위치한 물류센터 사장도 불을 켜고 팬티 바람으로 손에 식칼을 높이 쳐들고 뛰어나오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마누라, 빨리 110에 신고해!” 그 도둑은 상황을 보더니 담장 밑에 가서 자전거를 끌어내 타고 후다닥 사라졌다. 물류센터 사장은 “어린 동생이 정말 대단하군! 사실 나는 진작 들었어. 나는 그래도 자네들이 공장 물건을 훔쳐 사장에게 피해를 주는 줄로 알았어. 나중에 자네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그제야 자네들이 아니고 정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을 알고 뛰어나왔네.”라고 말했다. 나는 칼을 들고 나와 도와줘서 고맙다며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어떤 피해를 보았을지 모른다고 했다. 그 때 그 세 사람들도 나왔다. 사장은 “오늘부터 우리는 이웃이니 저녁에는 서로 돌보고 서로 도우세”라고 말했다.
다음날 양사장이 왔고 우리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양사장은 우리가 온지 며칠밖에 안 되어 월급을 줄 수 없기에 그 몇 장의 창틀을 팔아 식대로 쓰라고 하면서 월급에서 공제하지 않을 것이고 보너스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 세 사람은 신나서 그 창틀을 들고 가서 350위안(한화 5만8천원)에 팔았다. 돌아와서 그들은 그 돈을 나눠 뭘 사먹고 싶으면 각자 사먹자고 했지만 나는 절대 받지 않았다. 내가 받지 않으면 나에게 밥을 사주고 나머지는 그들 셋이 담배를 사서 피우겠다고 했다. 내가 밥도 먹지 않겠다고 하자 그들은 미안해하면서 내가 빼앗은 창틀을 팔았는데 내가 돈도 받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면 그들의 체면이 너무 깎인다고 했다. 그들은 밥 먹기로 이미 예약했다면서 길 건너편 음식점이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하다가 이 며칠 라면만 먹었으니 먹으러 가자고 생각하고 바로 그들을 따라갔다. 그들 셋은 성큼성큼 길을 건너갔고 나는 몇 걸음 가다가 또 가고 싶지 않았다. 속으로 수련인이 무슨 맛있는 것을 추구하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들 셋은 돌아보고 내가 가지 않자 음식점 입구에서 나를 불렀다. “리형, 빨리 와, 살건 다 샀으니 오늘 우리 한 끼 제대로 먹어보자.” 나는 길에 차가 적어지자 건너가려 했다. 바로 내가 맞은편으로 건너갈 때 서쪽에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오면서 펑 하고 나를 쳐서 날렸고 그 다음 머리가 아래로 향한 채 떨어졌으며 머리가 땅에 닿을 때 왼쪽 얼굴이 땅에 닿은 채 앞으로 몇 미터 더 끌려갔으며 얼굴에 먼지를 뒤집어썼다. 길턱에 부딪히기 몇 센티미터 전이었다. 그 차는 몇 미터 더 가서야 멈춰 섰고 차 안에서 잘 갖춰 입은 한 남자가 팔에 가방을 끼고 내려와 걸어왔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멍해 있었는데 누군가 “교통사고가 났어요! 사람이 치어 죽었어요!” 라고 외쳤다. 나는 엎드려서 또렷하게 들었다. 나는 천천히 땅에서 기어 일어나서 신발을 주워 신었다. 길 양옆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고 있었고 그 세 동료도 나를 보고 있었는데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내가 신발을 신고 차 주인과 말할 때서야 그들은 다가와서 내가 그들을 정말 놀라게 했다면서 다친 데는 없는지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말하고 있는데 북쪽 길에서 대여섯 명의 아주머니들이 다가와서 바로 차주를 둘러쌌다. 한 누나가 차주에게 눈이 멀었냐며 이 넓은 도로에서도 사람을 치냐면서 오늘 우리 동생을 쳤으니 어떻게 할 거냐며 마치 내가 가족인 것처럼 그녀들은 차주를 욕했다. 그녀들은 경찰에 신고할지 아니면 동생을 병원에 데려갈지 물었다. 차주는 나를 보고 그녀들 몇몇과 둘러싸고 있는 구경꾼들을 보았다. 그 뜻은 차에 치인 사람은 괜찮다고 하는데 왜 그녀들이 이렇게 난폭하냐는 뜻이었다. 나는 급히 그 몇몇 아주머니들에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나는 아무데도 다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믿지 않으면 보라면서 다리를 들어 보이고 머리를 움직여 보였으며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면서 보여주었다. 그녀들은 내 앞뒤 좌우를 살펴보았고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내 옷의 먼지를 털어주면서 그녀의 딸에게 차량번호를 적어놓게 하겠다면서 또 차주에게 내가 괜찮다면 몰라도 일이 생기면 하늘 끝까지 갈 것이고 외국에 가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차주는 그 말을 듣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자고 한사코 우겼으나 나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빨리 가라고 말하니 그는 갔다.
나는 돌아서서 그 몇몇 아주머니들에게 고맙다고 했더니 그 중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참 멍청하다면서 왜 돈을 뜯어내지 않느냐고 했다. 그가 낡은 차를 몰면서 돈이 있으면서 없는 척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만약 도시 사람이 치였다면 그에게 돈을 뜯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중의 한 아주머니는 작은 소리로 다른 아주머니에게 차에 치인 사람은 모두 그 당시에는 괜찮다가 이틀 지나서 아프다고 했다. 세 동료들도 내가 그들을 화나게 했다면서 모두들 좋은 뜻으로 그 차주를 에워쌓는데 괜찮다고 그를 돌려보내야 했냐고 했다. 또 내가 개인적으로 합의를 봐서 그에게 5천 위안(한화 8십4만원)을 뜯어내 2천 위안(한화 3십3만원)으로 이 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한 번 사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말했다. 나는 다치지 않았는데 돈을 뜯어내서 뭘 하냐고 했다. 방금 내가 먹을 것을 탐하다가 차에 치인 것이라고 했다. 음식점의 한 동생이 다가와서 내가 운이 좋았다면서 그들은 모두 내가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 동료가 비웃으며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아냐고 물으면서 바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라며 내가 어떤 위험한 일에 부딪히나 모두 괜찮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차에 치여 날아가면서 특급 기술을 선보이고 땅에 떨어졌으니 괜찮다고 했다. 어린 동생은 오늘 그 차주가 어느 절에서 높은 향을 피웠는지 좋은 사람을 만났다며 만약 그들 얼다오(二道)구 사람을 만났다면 돈을 뜯어내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다음 날 우리는 차에 물건을 실었고 길 건너편에 전날 구경하던 그 몇몇 사람들이 서있었는데 그 사고를 낸 차량번호를 적은 그 아가씨가 나를 가리키며 그녀의 엄마에게 빨리 와서 보라고 외쳤고 차에서 포대를 나르는 나를 보면서 운이 참 좋다고 했다. 그녀들은 한참 보다가 말하고 웃으면서 한 시름 놓는다는 듯이 주택단지로 돌아갔다. 나는 사부님의 고향 창춘 얼다오구에서 그 낯선 가족들이 나에게 마음을 써주는 것을 보고 아주 감동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의 고향 사람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후 며칠은 계속 피곤함을 느꼈고 무엇을 하나 정신이 나지 않았으며 법공부 할 때도 늘 자고 싶었다. 며칠 후에 집에 갔는데 밤이 깊어지고 인적이 드물 때 나는 연공을 시작했다. 포륜을 할 때 나는 하나의 큰 손이 푹신하게 내 두개골 위에 있고 다른 한 손에 거위 깃털 하나로 내 두 콧구멍을 뚫는 느낌을 받았으며 콧구멍이 간지러웠다. 내 귓가에는 “연공할 때 어떤 일이 생겨도 모두 상관하지 말고 너는 연공을 해라”라는 말이 들렸고 나는 눈을 뜨지 않고 계속 연공했다. 갑자기 몸 전체가 마치 휴대폰처럼 진동했고 한 줄기 열기가 나를 감쌌으며 열기가 내 몸 주변에서 돌아 피부와 살이 모두 좀 뜨거웠다. 마치 끓는 솥을 연 것처럼 열기가 얼굴을 덮쳤고 나는 세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재채기를 한번 했다. 나는 계속해서 연공하고 움직이지 않았고 속으로 기제(機制)를 혼란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콧구멍에서 물이 아래로 똑, 똑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좀 있으니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또 좀 있다가 콧구멍에서 밖으로 무엇이 한 덩이 한 덩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포륜 연공을 마치고 눈을 떠보니 옷이 핏물과 핏덩이로 붉게 물들었고 땅에도 흥건했다. 그러나 내 머리는 아주 상쾌했고 피곤하지도 않았으며 늘 자고 싶던 그런 느낌과 상태도 없어졌다. 나는 그 두 누나들의 말이 생각났다. “차에 치인 당시에는 모두들 괜찮다고 하지만 그 후에 아프지.” 아마도 차에 치인 당시에 머리 안에 피가 고였고 사부님께서 나에게 억제해주셨다가 내가 연공할 때 나를 도와 청리해주신 것이다. 사부님께서 또 제자를 보살펴주어 큰 난을 넘게 하신 것이었다.
그 이후에 나는 연공에 더 매진했고 각종 공능이 아주 대단했으며 원영도 두 자 높이로 자랐으며 사람 전체가 추쓰젠파(出世間法) 높이에 도달했다. 그리고 또 작은 영해(嬰孩)가 콧구멍으로 드나드는 것을 보았다.
박해를 타파할 때의 기적
나는 세 번이나 법을 얻을 기회를 놓쳤고 법을 얻은 후에 몇 차례 생사관을 넘은 경험으로 인해 대법책을 읽는 것을 생명보다 중하게 여겼다. 대법은 바로 내 생명을 구하는 법보(法寶)이고 누구도 나에게서 대법책을 가져가거나 불태울 생각을 하지 말라. 세상에서 아내와 재물, 녹(祿)은 모두 없을 수 있고 나도 추구하지 않지만 대법은 없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당시에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사부님의 각지 설법, 경문, 밍후이주간(明慧周刊), 신탕런(新唐人)과 진상자료는 모두 다 있고 있어야 할 것은 전부 갖추었다.
한번은 우리 촌의 그릇되게 깨달은 수련생의 아들이 내가 법공부를 하고 있는데 우리 집에 왔고 나의 책, 오디오와 연공 테이프를 붉은 색 작은 종이 상자에 넣어둔 것을 보다가 갔다. 그가 간 후에 나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즉시 책을 잘 숨겨놓았고 종이상자에 큰 무 몇 개를 담아두고 종이상자를 원래 위치에 놓아두었다. 좀 있으니 경찰이 우리 집으로 와서 나에게 책을 달라고 하면서 두 마리의 금룡이 있는 붉은 상자에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상자를 가져와서 땅에 놓으면서 당당하게 수련생 아들을 보았다. 경찰이 그에게 당시에 본 것이 이 상자가 맞느냐고 물었고 책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안에 있는 것이 무인 것을 보고 결국 그들은 기분이 나쁘게 헤어졌고 의기소침해서 갔다.
어떤 사람이 진상자료는 나에게 연락해서 받는다고 하자 경찰이 우리 집에 와서 샅샅이 뒤졌고 다음날에 와서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책을 아버지 방에 놓았는데 그들은 아버지 방만 뒤지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또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책을 첫날에 그들이 뒤졌던 밧줄을 담아놓은 마대 아래쪽에 넣고 위에 밧줄을 담고 입구를 묶었다. 그리고 그 상자 안에 필요 없는 헌 책들을 넣고 또 일부러 그 위에 헌 옷 두 벌을 던져놓았다. 과연 다음날 그들이 왔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아버지 방으로 갔다. 원래 우리 촌의 어떤 사람이 고자질을 해서 500위안(한화 8만4천원)을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곧장 상자가 있는 데로 가서 열어보고 힘이 빠졌다. 그들은 나와서 곳곳을 뒤쳤고 내가 책을 담아놓은 마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마대를 눕혀놓고 쪼그려 앉으면서 손으로 마대를 잡고 얼굴을 들면서 첫날에 뒤졌던 것인데 믿지 못하면 다시 쏟아서 보여주겠다고 했다. 한 경찰이 쏟고 나서 또 담을 건데 쏟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또 우리 집 뒤뜰에 가서 보다가 바로 갔는데 가기 전에 나에게 앞으로 우리 집에서 종이 한 조각이라도 뒤져서 나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들이 간 후에 나는 돌아서서 즉시 책을 여동생 집으로 가져갔다. 그 다음 마대에 밧줄을 가득 담았다. 그들이 불의의 습격을 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어머니도 여동생 창문에 기대어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여동생이 두 권의 책을 경찰에게 주고 그들을 돌려보내자고 하자 엄마는 안 된다면서 그러면 오빠에게 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여동생은 듣지 않고 두 권의 책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금방 방을 나섰는데 마치 누가 등을 한 대 때리듯 여동생을 밀어 앞으로 넘어지게 했다. 여동생은 일어나면서 책을 안고 뒤돌아 뛰어오면서 엄마에게 “엄마, 엄마 이 책을 정말 줄 수 없나 봐요. 정말로 불경이에요! 방금 누가 나를 한번 밀었어요!” 라고 말했다. 이후에 나를 신고한 그 사람은 파출소에 불려가서 신고가 사실이 아니라고 500위안(한화 8만4천원)을 도로 토해냈다. 그 다음 해에 그 사람은 병에 걸려 죽었는데 당시 겨우 50 몇 세였다. 한번은 여동생이 내가 없는 사이에 내 단독 경문을 태웠는데 20여 편이나 됐다. 다음날 아침에 그곳에서 재를 파보니 경문이 완전한 것을 보고 끄집어냈다. 여동생은 놀라서 멍해졌고 오빠가 말한 것이 전부 사실이라며 정말로 부처님이 말한 법이라고 했다. 전날 저녁에 여동생과 여동생 남편은 경문이 타서 없어진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고 훨훨 타서 방이 전부 빨갛게 됐는데 어찌 타지 않을 수가 있냐고 말했다.
진상을 알리던 중의 기적
박해가 시작된 후에 우리도 각지 수련생들과 마찬가지로 현지에서 늘 밤새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어떤 때는 밤에 1천 가구나 배포했는데 시간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개를 만나도 짖지 않고 순찰차도 우리를 보지 못했다. 다음날 평소처럼 일해도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낮에 백리를 가도 힘들지 않았고 3일을 먹지 않아도 여전히 밭에서 김을 매고 일을 했다. 한번은 밤에 우리 몇몇 수련생들이 흩어져서 갔는데 내가 돌아보니 그 수련생이 한 집 앞에 진상자료를 놓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작았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소인국의 소인만 했다. 내가 손으로 그녀를 들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그녀를 부르자 그녀는 듣고 즉시 원상태로 돌아왔고 우리 옆으로 걸어왔다. 사실은 내 몸이 크게 변한 것이었고 시공이 어긋난 현상이었다.
한 번은 내가 자료를 배포할 때 순찰차가 따라왔다. 나는 신족통(神足通)으로 걸어서 경찰차를 따돌렸고 그 후에 옥수수 밭에 몸을 숨기고 쪼그리고 앉았다. 순찰차가 멈춰선 후 경찰들은 내려와서 어떻게 이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냐며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했다. 이런 일은 여러 번 발생했다.
어떤 때 발정념 할 때 온 대지와 하늘이 붉은 색으로 변했다. 어떤 때 밤에 무스강(木石河)을 지날 때 교룡(蛟龍)을 만나도 해치지 않았다. 한번은 저녁에 내가 무스강을 지나 자료를 가지러 갈 때 한 야윈 노인이 물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속인 같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언제 돌아 오냐고 물었고 나는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9시 경에 내가 자료를 한 짐 지고 무스강에 돌아왔을 때 하나의 용 모양 물체가 떠올라 거기에 서있었고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내 마음에 ‘내가 짊어지고 있는 물건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너는 나를 교란 할 수 없다.’ 라는 일념이 생기자 그것은 물에 움츠려 들어가서 위쪽으로 유유히 갔다. 한번은 내가 무스강의 교룡이 살고 있는 곳을 탐사해보았는데 2미터 되는 옥수수 대 4개를 연결했는데도 땅에 닿지 않았다.
또 한 번은 달밤에 나가서 자료를 배포할 때 황금색 비행물체가 옥수수 밭에 서 있었다. 직경은 1미터가 넘었고 원형모양인데 안에는 붉은 빛을 띠고 있었으며 쏴쏴 소리를 낸 후에 L자 모양으로 변해서 남쪽방향으로 날아갔는데 순식간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모든 수련생들에게 기원한다. 당신이 어느 층 공간, 우주, 천체, 하늘에서 왔든지, 당신이 무슨 원인인지, 근기가 깊은지 얕은지, 어떻게 다시 태어났는지, 당신의 오성이 높은지 낮은지, 생활환경이 좋은지 나쁜지 상관없이 오직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진·선·인(眞·善·忍) 우주 근본대법에 따라 진심으로 순정하고 착실히 수련해 금강불괴지체로 수련한다면 일체 시간의 방해를 초월할 수 있다. 하지만 수련해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착실하게 수련하는 제자들에게 모두 지혜를 열어주셨고 우리는 지혜를 이용해 세 가지 일을 잘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수련생들이여, 정진하자!
원문발표: 2018년 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의 신기함을 전하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3/3595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