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 파룬따파 제자
[밍후이왕] 나는 병을 제거하겠다는 생각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에 들어왔다. 법공부하고 연공을 한 지 1개월도 안 되어 몸의 여러 통증과 불편함이 사라지고 오랫동안 치료해도 낫지 않던 기미도 사라졌다. 특히 ‘전법륜(轉法輪)’을 한 번 읽은 후 나는 인생의 진리를 알았고 인생의 길에 희망이 가득한 것을 느꼈다.
나는 본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국영기업에서 일하며 집에서는 시부모님께 효도하고 친정이나 시댁 형제자매들과 사이가 좋았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한 후 직장에서는 나를 출근하지 못하게 하고 가족도 나를 멀리하고 연루될까 두려워했다. 특히 시댁 가족은 나를 더욱 괴롭히고 냉대했다.
2001년 9월, 나는 현지 공안에 체포돼 세뇌반에 들어갔다. 나는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고 박해를 당해 일자리를 잃었다. 내가 다시 집에 돌아가자 시어머니는 불편한 기색으로 “네가 파룬궁을 배우면 이 집에 들어오지 마라”라고 하셨다. 나는 시어머니의 팔을 잡고 “어머니, 어머니도 알다시피 저는 파룬궁을 배운 후 건강해졌고 성격도 점점 좋아졌어요. 어찌 저에게 배우지 말라고 하시나요?”라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팔을 뿌리치고 “배우려면 오지 마!”라고 하셨다. 당시 시어머니 물독에 물이 없는 것을 보고 나는 마당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왔다. 물독에 물을 다 채운 후 나는 돌아갔다. 차를 밀고 문밖을 나서자 너무 억울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사실 남편은 형제가 세 명 있으며 남편은 막내다. 이치대로라면 마땅히 세 집에 교대로 거주해야 하지만 시부모의 안정을 위해 우리는 집을 임대하지 않았다. 결혼한 후 시부모는 줄곧 우리집에 있었다. 나는 생각할수록 억울했고 자신에게 말했다. ‘네가 이러고도 수련인이야?’ 나는 갑자기 사부님께서 경문 중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1] 사부님의 가르침을 생각하자 마음이 단번에 밝아졌고 억울함을 느끼지 않았으며 그 후 나는 평소처럼 시부모를 찾아가 뵈었다.
한 번은 시아버지가 병이 나 대변을 이불에 보았다. 시어머니는 요를 꺼내 마당에 버렸다. 마침 집으로 갓 돌아온 나는 너무 더러워 빨 방법이 없는 것을 보고 시어머니께 버리고 다른 요로 바꾸자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언짢아하면서 나를 한바탕 훈계하고 바꾸지 못하게 하셨다. 사실 나는 이 일을 상관하지 않고 시어머니가 빨게 해도 되지만 시어머니가 연세도 있고 이 큰 요를 정리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러움을 참고 요를 빨면서 한편으로 구역질을 하며 점심때까지 깨끗이 빨았다.
시아버지는 소뇌위축증이기에 사람을 알아보실 수 있지만 식사할 때 내가 집에 있기만 하면 나에게 밥을 먹여달라고 하신다. 나는 매번 참을성 있게 배불리 먹여드린다. 한 번은 나와 큰시누이가 시아버지를 깨워 식사를 대접하려 했다. 큰시누이가 몇 번 불러도 깨우지 못하자 나는 목청을 높여 깨웠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내 목소리가 높다고 하면서 좋지 않는 얼굴로 나에게 눈을 부릅뜨고 꾸짖으셨다. 큰시누이는 어머니에게 말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낮은 소리로 나에게 “네가 아무리 잘해도 어머니는 만족하지 않고 또 이렇게 말하네. 네가 아직도 파룬궁을 배우는 것을 싫어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형님, 제가 만약 파룬궁을 배우지 않으면 제가 이렇게 어머님을 대할 수 있겠어요? 제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이렇게 처세하라고 가르쳐주셨어요”라고 말했다.
나와 남편은 신앙을 견지했기에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또 강요당해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게 되어 형편이 곤란했다. 큰어머님(남편의 백모)은 보고 걱정하시며 우리가 사는 집을 1년에 5천 위안에 임대하라고 하셨다. 시부모님이 사시는데 영향 주지 않고 5천 위안은 당시 우리에게 정말 큰돈이기에 시어머니도 동의하셨다. 그러나 이 일을 둘째 아주버니가 알고 둘째 시누이에게 말했다. 둘째 아주버니와 둘째 시누이는 기세등등하게 우리집에 왔다. 둘째 아주버니는 시어머니께 큰소리로 “왜 집을 임대하시나요? 어머니가 돈이 부족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주버님, 어머니께 그러지 마세요. 제가 돈이 부족해 임대하자고 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둘째 시누이는 마치 싸움을 하는 것처럼 큰소리로 “이 집은 제가 결정합니다. 제가 임대하지 말라고 하면 누구도 임대할 생각을 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시어머니께 “어머니, 아주버님과 형님이 임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머니가 더욱 조용히 지내려고 하는 것이므로 우리 임대하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또 둘째 시누이에게 “형님도 화내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사실 둘째 아주버니는 도시에서 장사를 하기에 집이 넓고 좋다. 여러 해 줄곧 비었지만 시어머니를 살지 못하게 했다. 내가 집 문을 나설 때 나는 억울함을 느끼지 못했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나는 수련인이다. 나는 이 일로 그들과 다투지 않겠다. 후! 내 자신의 집도 내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니 정말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고통으로 마음을 제거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리집에는 큰 참죽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내가 참죽 잎을 따려 하면 시어머니는 따지 못하게 하며 둘째 아들과 둘째 딸에게 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10여 년 동안 나는 잎사귀 하나도 따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어쩌다가 나에게 조금 주면 나는 적다고 하지 않았다.
큰시누이는 농촌에서 채소농사를 짓는다. 친정에 올 때 여러 가지 채소를 여러 묶음 가져온다. 시어머니는 나누기 시작하는데 좋은 것은 다 골라 잘 묶어놓고 다른 자식과 손자에게 주신다. 그리고 남은 작고 나쁜 것을 우리집에 주신다. 내가 옆에 있어도 시어머니는 이렇게 고르신다. 나는 한 번도 따지지 않고 주면 웃으며 가져갔다. 곁에 좋은 것이 많아도 묻지 않았다.
한 번은 큰시누이가 상추를 가득 가져왔다. 나와 시누이는 방에 있었고 어머니는 또 고르기 시작하셨다. 다 고른 후 남은 가장 작고 제일 가는 상추를 묶기 시작했다. 시누이는 나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작은 것을 누구에게 주려고 그러지?”라고 물었다. 나는 “저에게 주실 거예요”라고 말했다. 시누이는 믿지 않고 시어머니께 “이 작은 걸 누구에게 주려고요?”라고 물었다. 시어머니는 머리를 들고 “쟤네들 주려고”라고 말했다. 시누이는 너무 불공평한 것을 보고 큰 부추 몇 개를 가져와 묶어 나에게 주면서 작은 목소리로 “너무 편애하시네. 관리와 돈 있는 사람만 봐주시네.[둘째 시누이의 남편은 진(鎭) 위원회 서기고 둘째 아주버니는 현지에서 유명한 판매상임]”라고 말했다. 나는 “형님, 저는 수련인입니다. 괜찮고 따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시누이는 화를 내며 “파룬궁을 배우면 도둑질도 하지 않고 빼앗지도 않으며 죽을 짓을 한 것도 아닌데”라고 말했다. 이후 큰시누이는 채소를 인편에 보낼 때 봉지에 따로 담아 시어머니께 나에게 주라고 부탁한다. 설령 그렇게 해도 간혹 시어머니는 열어보고 우리 것을 더 꺼내신다. 나는 따지지 않고 큰시누이에게 말한 적도 없다.
2006년 새해를 며칠 앞두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우리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갓 도착했다가 잠복근무를 하던 610과 국가안정보위국(국보)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에 협조하지 않았기에 나는 집에서 그들에게 맞아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남편은 온밤 고문당해 자백을 강요당했다. 전기충격, 혁대로 구타, 담배로 지지기 등 고문을 당했다. 맞아서 피부가 찢기고 살이 터졌으며 허리도 부러졌다. 우리 부부가 구치소에 10여일 감금된 후 610주임은 우리 부부가 심하게 다쳤지만 자백도 받지 못했고 책임질까 두려워했다. 또한 가족에게 집으로 데려가라고 할 엄두도 나지 않아 경찰과 610 주임은 우리 두 사람을 시 세뇌반에 끌고 갔다. 세뇌반 두목과 ‘유다(파룬궁 수련을 포기하고 공산당에게 세뇌된 자를 의미)’는 우리 부부가 심하게 맞은 것을 보고 우리를 더 이상 박해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시댁 식구들은 소식을 듣고 큰시누이, 둘째 시누이 등이 남편을 보러 갔다. 그러나 나를 보러 오지는 않고 다른 사람의 권고로 억지로 왔다. 나는 둘째 시누이를 불렀다. 그녀는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의적으로 내 화를 돋우었다. 그녀는 자신을 둘째 시누이로 부르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야 나는 둘째 시누이와 둘째 아주버니가 우리 부부가 집에 돌아가면 이혼을 시키자고 상의한 것을 알았다. 세뇌반에서 20여일 후 우리 부부의 몸이 호전이 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610두목은 책임을 감당하기 두려워 우리 두 사람을 데려가라고 가족에게 통지했다. 우리 부부를 이혼시키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둘째 시누이와 둘째 아주버니는 세뇌반에서 남편을 데려가 연금했고 또 나를 우리 친정에 데려다 놓으려 했다. 내가 단호히 거절해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시어머니와 다른 형제자매를 부추겨 나를 대처하게 했다. 둘째 시누이는 내 친정오빠 집에 전화해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기에 동생이 연루되므로 이혼을 시키겠다고 했다. 또 내가 단정치 못하다고 욕해 내 오빠와 올케가 모두 울었다. 둘째 아주버니는 우리 친정 사촌오빠에게 전화해 이혼을 시키겠다고 말했다. 사촌오빠 댁은 화가 나 밖에 나가 마을 사람들에게 시댁의 잘못을 말해 온 마을 사람들이 이 일을 논의했다. 정말 이혼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다.
한 달 후 내가 집으로 돌아오자 시어머니는 더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다. 또한 우리가 사는 집을 잠그고 나에게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나는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시어머니는 알려주지 않고 다른 형제자매에게 물어보아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이것은 구세력이 설치한 함정이며 남편과 시댁식구를 파멸시키려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절대로 꼬임에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께 빌어서야 남편을 찾을 수 있었고 또 지혜롭게 남편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시댁식구가 나에게 어떻게 대해도 나는 대법제자의 풍모를 유지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큰 소리로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한 번은 우리집에서 사람을 시켜 문을 설치할 때였다. 나는 마당의 쓰레기를 쓸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갑자기 나에게 화를 내더니 “너는 상관하지 마. 너는 일하지 말고 가라”고 말했다. 이때 마침 이웃집 아주머니가 우리 집 앞을 지나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아주머니를 보고 갑자기 화제를 바꾸더니 목청을 높여 대문 쪽을 향해 “네가 날 내쫓으려 하지 않느냐? 나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곁에 있었다. 나는 시어머니가 또 내 심성을 제고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와 남편은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곁에서 일하던 부부가 말했다. “어머님이 예수님을 믿어 평소에 보기에는 아주 좋은데 이렇게 며느리를 대할 줄 생각지도 못했네요. 며느리가 어머님을 잘 대해주고 또 그녀 집에 살고 계시는데,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정말 견디지 못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일하던 남자는 또 그의 아내에게 “형수님은 파룬궁을 배워 이렇게 좋은데 당신도 형수님을 따라 파룬궁을 배우는 것이 어떻겠어?”라고 말했다.
2014년 겨울 시어머니는 허벅지에 화상을 입었다. 그해는 눈이 특별히 많이 내렸다. 어머니가 시에 있는 우리집에 살기에 나는 매일 왕복했다. 어머니를 보살피고 또 돌아와 시어머니에게 식사를 차려드리고 상처를 보살펴드렸다. 몇 번이나 차가 길에서 미끄러져 차를 밀고 갈 수밖에 없었다. 왕복 10리 길을 걸었다. 시어머니께 식사를 대접할 때 나는 매번 다른 음식으로 바꾸어 좋아하시는 것을 해드렸다. 간혹 마트에 가서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을 사드렸다. 옷이 더러워지면 나는 갖고 와 집에서 세탁기로 빨았다. 이렇게 보름동안 다니자 시어머니의 화상이 완전히 좋아졌다. 상처가 다 아물기 전 둘째 시누이 부부가 한 번 보러 왔다. 시어머니는 내가 자신을 어떻게 돌보았고 맛있는 것을 사준 것을 모두 알려주었다. 둘째 시누이는 매우 감동했다. 그 후 내가 둘째 시누이 집에 가면 시누이는 “우리 어머니는 자네가 제일 좋다고 말했네. 자네는 정말 대단해. 정말 탄복했어”라고 말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이렇게 잘하라고 하셨어요”라고 말했다. 그 몇 해 동안 둘째 시누이가 어떻게 나를 대해도 오직 그녀가 친정에 오기만 하면 나는 웃는 얼굴로 맞이하고 예의 있게 대했다. 설이나 명절이면 우리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그녀를 보러 갔다. 둘째 시누이는 속으로 똑똑히 알고 있었다. 시련 속에서 요 몇 해간 그들은 너무나 나에게 미안한 점이 많았고 그 후 둘째 시누이 남편은 우리 남편에게 사과했다. 새해에 둘째 시누이는 우리 아이에게 세배 돈을 다른 애들보다 수백 위안씩 더 주었다. 나는 내가 대법 중에서 수련해낸 대선대인(大善大忍)이 그들을 감화했고 시댁식구들을 감화했다는 것을 안다. 친정집의 둘째 올케는 나에게 “나는 자네와 같은 며느리를 얻는 것이 소원이야”라고 말했다. 작은 조카는(둘째 아주버니의 아들) 가족 모임에서 “우리 가족 중 제 작은 삼촌과 숙모가 파룬궁을 배워 마음씨가 제일 좋아요”라고 말했다.
5년 전, 큰아주버니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을 보고 우리를 도와 집 두 채를 지어 임대하게 방법을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나에게 “나는 둘째에게 돈을 내게 해서 너희들에게 동서 양쪽 방을 지어 임대하게 했다”고 말씀하셨다. 둘째 시누이는 “내가 3만 위안을 낼 테니 양쪽 방을 지어 임대하게!”라고 말했다. 나는 “형님, 형님의 마음은 제가 받을게요. 누구의 돈도 쓰지 않고 제가 중고자재 시장에 가서 자재를 사면 얼마 들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리해 나와 남편은 시멘트, 모래, 스티로폼 등을 샀다. 수련생 언니는 남편을 데려왔고 또 큰시누이네 부부와 몇몇 수련생과 함께 며칠 동안 12칸짜리 간이 가옥인 사합원을 지었다. 전등을 다는데 사용한 전력 케이블, 전선줄은 모두 둘째 아주버니 부부가 보내주고 설치는 모두 작은 조카가 친구를 보내서 했다. 집을 짓는 기간 둘째 시누이와 둘째 아주버니는 두 번이나 우리에게 돈을 보내왔지만 모두 받지 않았다.
집을 갓 지은 후 정리도 하기 전에 끊임 없이 세를 들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나와 남편은 너무 기뻤다. 우리 이 집은 진상을 알리는 좋은 장소가 되지 않겠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어있던 북쪽 방 두 개까지 모두 14칸에 방방곳곳에서 온 세입자들로 꽉 찼다. 사합원은 정말 떠들썩했다. 세입자들 외, 또 그들과 왕래하는 고향사람과 친구들이 놀러 왔다. 온 가족이 놀러오면 진상을 알려 온 가족 모두를 탈퇴시키고 한 사람이 오면 한 사람을 탈퇴시켰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오래 있는 사람에게 임대하기 좋아하지만 우리집은 며칠만 있어도 번거로워하지 않았다. 우리의 목적은 사람을 많이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오래된 세입자는 우리 부부가 대법을 수련하고 돈, 전기로 그들과 따지지 않는 것을 알고 늘 우리집에 와 머문다. 또 늘 고향 사람도 데리고 와 묵게 한다. 어떤 세입자는 집에 일이 있어 임대료를 수개월 밀려도 우리는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극히 자질이 좋지 않은 사람도 있어서 수개월 방세를 빚지고 도망가도 우리는 그저 웃어넘겼다. 누가 집으로 돌아갈 여비가 없다고 하면 우리는 잠시 대신 지불해주었다. 설령 속임수를 당해도 이전에 빚진 것을 갚았다고 간주했다. 늘 우리집을 임대하는 한 세입자는 나에게 “형수님, 저는 형수님 집세가 비싸고 싸고를 떠나 형수님이 파룬궁을 배워 마음이 좋아서 왔어요”라고 말했다. 또 한 부부는 나에게 “형수님, 형수님 집에 있으니 정말 좋아요. 우리 부부는 형수님이 주신 책(진상 정기간행물)을 보고 싸우지 않게 됐어요. 이 책은 정말 사람을 교육시켜요”라고 말했다. 적지 않은 사람은 진상을 명백히 안 후 삼퇴를 하고 또 가족과 아이를 탈퇴해달라고 한다. 나는 늘 그들에게 진상자료를 갖고 집에 가 잘 말한 후 다시 나에게 알려달라고 말했다. 이 몇 년간 세입자가 떠날 때마다 나와 남편은 그들에게 한 세트의 진상책자와 CD를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들에게 가족과 친척, 친구가 보도록 가져가라 한다. 내가 진상을 긴 시간을 말하면 시어머니는 간혹 두려워하지만 더는 반대하지는 않으신다. 간혹 세입자가 우리가 준 진상자료를 잊고 가져가지 않으면 시어머니는 잘 보관해둔다. 새로운 세입자가 오면 나는 앞에서 말하고 시어머니는 뒤에서 나에게 잘 접은 자료를 주신다. 몇 년 동안 우리집 사합원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경제 수입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장소가 됐다.
작년에 시어머니께서 병이 나셨다. 입원하고 수술하며 4개 병원을 전전하셨다. 시댁 식구들은 교대로 시어머니를 간호했다. 두 사람이 한 팀이 됐고 큰시누이와 둘째 시누이는 모두 나와 한 팀이 되자고 했다. 그녀들은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을 내가 앞다투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병실 사람들은 시어머니가 못됐는데 자식들은 그렇지 않다고 수군거렸다. 그들은 내가 딸인 줄로 여긴 것이다. 내가 며느리인 것을 알았을 때 한 사람은 지금 아직도 이렇게 좋은 며느리가 있다며 정말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4개 병원을 전전했고 많은 의사, 간호사와 환자는 내가 시어머니의 딸인 줄로 여겼다. 나는 며느리며 파룬궁을 배운다고 말하자 그들은 TV에서 말한 것과 다르다고 말했다. 나는 행동으로 대법을 실증했다. 이로 인해 내가 병실 사람들에게 진상을 말하면 모두 듣기 좋아하고 많은 사람이 삼퇴했으며 한 번에 20명을 탈퇴시켰다.
둘째 아주버니 부부는 장사가 바쁘다며 시어머니를 한 번도 보살펴드리지 않았다. 큰시누이와 둘째 시누이는 병원에서 시어머니를 돌보며 서로 다툰다. 시어머니는 마음이 괴로워 간혹 슬그머니 눈물을 훔치신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병세에 대해 확신이 없어 나를 슬그머니 불러 “집에 돌아가면 자네만 믿겠네”라고 말했다. 한 번은 병원에서 시어머니를 목욕시켜 드렸다. 시어머니는 나에게 “내 한평생 목욕을 시켜준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네. 누가 좋고 나쁜지 나는 명백해졌어”라고 말했다.
시어머니가 퇴원할 때 우리 부부는 보러 갔다. 시어머니는 좁쌀 한 봉지와 녹두 한 봉지를 우리에게 주셨다. 나는 우리에게 주지 말고 보관해 죽을 쑤어 드시라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는 더 있다고 하셨다. 나는 큰시누이가 잘 살지 못하니 큰시누이를 주라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는 화를 내며 “안줘, 이후 물건이나 돈이 있으면 누구도 안 주고 자네만 주겠네”라고 말했다. 방법이 없어 나는 “일이 있어 내일 애 아빠를 보내겠어요”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시어머니는 나를 풀어주었다. 돈을 가져온 후 우리는 시어머니께 신선한 우유를 주문해드렸다.
수술하고 퇴원한 후 시어머니의 몸은 줄곧 정정하셨다. 수개 월 후 시어머니는 갑자기 나는 곧 세상을 떠난다고 하셨다. 모두들 비록 믿지 않았지만 확신이 없어 억지로 시어머니를 병원에 데려갔고 아무런 병도 검사해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시어머니는 갑자기 돌아가셨다. 나는 여러 사람에게 시어머니가 진상을 명백히 알았기에 고생하지 않고 복을 받으셨다고 말했다. 차를 세내어 시어머니를 집으로 데려갈 때 운전기사는 “아들딸은 차에 올라 어머니를 집까지 모셔다 드려요!”하고 높은 소리로 말했다. 큰시누이, 둘째 시누이와 둘째 아주버니는 서있기만 하고 차에 타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또 한 번 높은 소리로 말해도 그들은 차에 타지 않았다. 시아주버니와 남편이 사전에 집을 정리하러 갔기에 방법이 없어 내가 차에 올랐다. 차에 타자 운전기사는 “그래도 작은 딸이 좋구나”라고 말했다. 나는 “아저씨, 저는 며느리예요”라고 말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그에게 파룬궁을 배운다고 말하고 파룬궁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당신이 시어머니를 대하는 것만 봐도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겠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에요”라고 말했다. 집에 가는 5, 6리 길에 나는 그에게 대법 진상을 말했고 마지막에 그는 통쾌하게 삼퇴했다. 또 연속 감사하다고 말했다.
수련의 길에서 나는 언행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실증해 시댁식구 및 친척, 이웃은 모두 삼퇴하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알게 됐다. 제일 완고한 둘째 시누이의 남편도 끊임없이 진상을 알려주고 한 번 또 한 번 CD와 진상책자를 보게 해 마침내 사당 조직에서 탈퇴했다. 또 높은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사부님 좋습니다”라고 외쳤다. 그의 아들은 검찰원에 다닌다. 처음에 그에게 진상을 알리자 듣지 않았고 나와 남편이 진상 정기간행물을 주어도 그는 받지 않았다. 둘째 시누이는 아들에게 가져가서 잘 보라고 했다. 그 후 그는 사악한 당의 일체 조직에서 탈퇴했다.
지금 진상을 명백히 안 가족과 조카들은 사업이 순리롭고 장사가 번창하며 둘째 시아주버니의 딸마저 최근 대학 교수로 재직하게 됐다. 대법은 진상을 명백히 아는 수많은 중생에게 복을 주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
원문발표: 2018년 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언행으로 대법을 실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0/3594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