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집에서는 나 한 사람만 대법을 믿고 수련하며 다른 사람은 모두 지지하지 않거나 심지어 반대해 나에게 아주 큰 교란을 조성했다.
큰아버지는 나에게만 압력을 가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도 압력을 가해 나에게 책을 보지 못하게 지키게 하고 수련생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했다. 내가 집 문만 나서면 아내가 뒤를 밟았다. 큰아버지는 내 대법 책을 다 빼앗아서 내가 집에 숨겨놓은 책은 아내가 보지 못하게 했다. 경서를 보호하려고 몇 권 안 남은 책을 수련생 집으로 가져갔다. 아내가 또 사부님 설법 녹음마저 다 가져가려 하자 나는 말했다. “만일 설법 녹음마저 듣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이 집을 떠나겠소.” 그래서 대법 녹음은 남아있게 됐다.
나에게 ‘만약 아내가 설법 녹음마저 남겨놓지 않는다면 나는 이 집에 있지 않겠다’라는 염두가 생긴 후부터 나는 법을 들을 수 있었고 연공하고 발정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조건을 갖게 됐다. 그러나 이후에는 이 염두가 너무 강렬해 나는 연공할 때 늘 나쁜 것만 생각하게 돼 아예 조용해질 수 없었고, 심지어 문을 나설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해 집에 돌아오면 사부님 설법 녹음마저 찾을 수 없을까 봐 겁이 났다.
이 염두는 강렬하게 나를 교란했다. 그래서 나는 안으로 찾아보았고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나는 자신은 구세력의 박해를 소극적으로 감당할 뿐 주위 환경을 바로 잡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대법제자이므로 마땅히 가족에게 진상을 똑바로 알려 자신의 수련 환경을 개척해야지 구세력이 함부로 배치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염두가 있게 되자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그런 압력이 대번에 사라졌다.
다른 부서의 부장이 한 번은 우리에게 프로젝터를 설치하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불평했다. ‘당신들 부서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 왜 우리에게 하라고 하지, 이건 사람을 업신여기는 게 아닌가?’ 나는 마음이 매우 불편했고 심지어 하지 않으려 했다. ‘아무튼, 당신들 부서 일이니까 우리하고는 상관없어. 손해를 봐도 당신들 일이지.’ 나는 이 생각이 아주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내 마음의 평형을 잡지 못했다.
그날 저녁 연공을 마치고 자리에 누워서 진지하게 자신에게 말했다.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이 일을 착실히 반성하고 정리하지 않았으니 사부님의 고심한 구도에 죄송스럽구나. 자신의 집착을 찾아내지 못하면 잠을 자지 않겠다.” 그래서 나는 무슨 집착심으로 조성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가 첫 번째로 찾아낸 좋지 못한 집착심은 악의적으로 남을 추측한 것이었다. 아마 상대는 나를 얕보려는 뜻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단지 우리가 프로젝터를 설치한 경험이 많고 그들은 이 일을 해보지 못해 우리에게 도와달라고 한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가 고의로 나를 얕잡아 본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자신이 너무 소인배의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이 집착심을 찾아냈지만 나는 반성이 철저하지 못하다고 느끼고는 잇따라 또 생각했다, ‘너는 그에게 또 화를 내려 하지 않았느냐? 누가 손해를 보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건 쟁투심의 표현이 아닌가? 이건 남이 문 앞까지 찾아왔는데 번거로움이 생길까 두려워 도와주려 하지 않는 이기적인 심리가 아닌가? 남을 배려했는가? 사부님께서는 ‘곳곳에서 남을 배려하라’[1]고 요구하셨지만, 차이가 너무나 멀구나.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나는 직장에서 숙박한다. 직장에서는 날마다 아침 식사를 책임져주며 반찬이 무척 풍성했다. 그러나 처음 왔을 때 반찬이 놓인 곳과 거리가 멀어 반찬 먹기가 아주 불편했다. 이후에는 기본상 그 위치에 고정됐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또 밥상 앞에 갔는데 좋은 위치에 앉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누가 먼저 오면 그가 좋은 자리에 앉기 마련인데 무엇 때문에 내가 늘 일찍 오는데 나쁜 위치에 앉아야 하고, 그들은 늦게 왔는데도 좋은 위치에 앉아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반찬이 가까운 위치에 앉았다. 나는 밥을 먹을 때 방금 내가 한 생각이 아주 대법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설법 녹음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그는 이로운 것을 많이 얻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은 곧 해로운 것을 많이 얻게 되며”[2], 게다가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자신의 수련은 백성에게도 이롭도다.”[3] 나는 자기에게 유리하게만 생각했지 어디 ‘백성을 이롭게’ 했는가.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면 자신에게 좋은 점만 다투어 가지려 했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여전히 나의 사심과 쟁투심을 반영한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어디에 앉든 모두 아주 자연스럽게 대했다.
한 번은 우리 회사 과학기술원 내 기업에서 회의를 열었다. 나는 갑자기 아주 훌륭한 개회사가 생각나 속으로 몰래 기뻤다. 마침 나는 회의장을 준비하는 팀으로 가게 됐고 게다가 이 회의에 참가하게 됐다. 나는 내빈이 자리에 앉은 후 몇 마디 하면 틀림없이 아주 대단해 보일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이 개회사가 이렇듯 훌륭한데 내가 사장에게 써주어 그에게 말하게 할지 아니면 내가 말할지 생각해보았다. 그때 나는 아주 고민했다. 나는 날마다 저녁에 잠자기 전에 ‘논어’를 암송했다. 이번에 내가 막 첫 구절 ”대법은 창세주의 지혜이다.”[4]를 외웠는데 한 가지 염두가 뇌리를 스쳤다. 창세주는 지혜마저 다 이타적으로 세인에게 전수해주시는데 너는 작디작은 개회사마저 내려놓지 못하는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해 사장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자기가 뽐내려고 하니 이 속에는 얼마나 강한 사심과 명을 구하는 마음이 있는가. 결국 이튿날 나는 자신이 생각한 개회사를 제출했다. 나는 이것이 무슨 보류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 사회의 무슨 지적소유권 등 역시 이기심을 인도하는 것으로서 우리 수련인의 표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직장에 숙박할 때면 이따금 사장과 함께 노래방에 가기도 한다. 두 차례 간 후 나는 어느 때면 나도 우리 부서 동료를 조직해 함께 가서 노래를 부를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나는 우리 부서 여 동료들과도 아주 사이가 좋다. 그 며칠 동안 늘 이런 일을 생각했다. 월급을 지급하면서 무슨 이유를 찾아 그녀들과 함께 갈 수 있을지 생각했다. 나는 이 생각이 틀림없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향락을 즐기려는 마음이 제거되지 않았고 게다가 ‘색심’이 수작을 부린 것이다. 남자 동료만이라면 내가 이렇게 적극적이겠는가? 왜 즉시 여자 동료가 떠올랐는가? 이성과 함께 식사하고 노래를 부르면 비록 다른 생각은 없다 하더라도 ‘색심’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강사 초빙에 응해 한 사립대학에 갔다. 나는 아침 6시 45분에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서 떠나 한 시간 후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에 도착한 후 같이 초빙된 사람은 이 사립대학 학생들이 매우 형편없다고 비난했다. 모두 대학 입시에서 100~200점을 맞은 아이들로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소란을 피울 줄은 잘 아는 열등생들이라 그들을 가르치면 짜증이 날 뿐만 아니라 월급도 적다고 불평했다. 머리를 돌렸더니 마침 가르마를 내고 머리를 길게 드리운 남학생이 머리를 쳐들고 오고 있었는데 온 얼굴에 도발하는 기운이 흘러넘쳤다. 나는 그때 맥이 탁 빠졌다. 하지만 즉시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 부딪히든 마음속 느낌을 첫 자리에 놓는 것은 사심이다. 우리는 마땅히 자신의 신분은 ‘대법제자’임을 단단히 명심해야 한다. 말법시기에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도하는데 열등생이라고 해서 진상을 알리지 말고 구도하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지금의 인류는 모두 이런 ‘열등생’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중생이 열등하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으셨다. 나는 어렴풋하게 사부님의 고생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줄곤 소극적이고 곤란을 매우 크게 봤다. 무엇이나 잘하지 못하고 무엇을 하든 모두 대충하는 편이었다. 이번에 강사 초빙에 응하면서 나에게는 한 가지 생각이 생겼는데 준비를 착실히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대법제자의 길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므로 우연한 일이란 없다. 사부님께서 안배한 길에서 어떤 일을 만났던 이전처럼 그렇게 대충 대처할 것인가? 사부님께 죄송한 일이다. 나는 꼭 착실히 준비하고 수업준비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과 내 수업 준비는 아주 잘 되어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고 중간에 훌륭한 생각이 여러 번 나타났다. 준비가 충분한 데다 강연도 아주 잘했다. 나는 이는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하신 것이며 내 문제는 무엇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착실하지 못한 데 있음을 깨닫게 하셨다.
나는 정진하는 대법제자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사부님의 격려와 관심을 느낄 수 있고, 사부님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러분은 절대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사실 줄곧 우리 모두를 보호해주시고 정진하도록 격려해주시고 계신다.
위대하신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눈물 머금고 사존께 큰절 올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북미 제1차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원명’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논어’
원문발표: 2017년 12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 수련체험> 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31/3586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