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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이 일어나자 길이 저절로 통하다

글/ 산둥(山東)대법제자 칭롄(清蓮)

[밍후이왕] 나는 1999년 운 좋게 법을 얻은 노제자이다. 모든 시련을 겪고 갈팡질팡하며 18년을 걸어왔다.

중국공산당이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박해를 막 시작했을 때였다. 보서(寶書) ‘전법륜’이 부족해 사람마다 한 권씩 보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낮에 근무한 뒤 저녁 시간을 이용해 전법륜을 베껴쓰기 시작했다. 저녁마다 견지하면서 어떤 땐 새벽 두세 시까지 하고 연공을 했다. 거의 매일 잠자는 시간이 적었지만 피곤하지 않았고 낮에 정상적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나는 ‘전법륜’을 세 번 베껴쓰고 ‘홍음’, ‘정진요지’ 등도 수차례 베껴썼다. 법을 베껴쓰는 것을 통해 법을 배우는 기초를 닦으면서 관을 아주 쉽게 넘을 수 있었다.

2001년, 나는 시골에 사는 수련생 6명과 함께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어려서부터 먼길을 가본 적이 없던 우리들은 베이징에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그때는 무엇이 법을 실증하는 것인지 몰랐고, 그저 이 공법이 좋다고 생각해 베이징에 가서 양심적이고 공평한 말을 하려고 했다.

가는 길에 사부님께서 점화(点化)해주셔서 진(鎭)당위원회, 교육위원회, 파출소의 포위를 교묘하게 벗어나 성(省) 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뜻밖에 성 공안 당국에 저지당했다. 당시는 베이징에 갔다. 이미 공안 당국에 저지당한 타지 사람이 많았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타지 수련생들을 통해 우리를 점화해주셨다. “하나의 부동(不動)이 만(萬) 가지 움직임을 제약하는 것이다!”[1] 그때 우리를 심문하던 악한 사람들은 매 사람이 정말 지옥에서 나온 귀신 같았다. 흉악한 얼굴이 한눈에도 음산하고 공포스러웠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의 부동(不動)이 만(萬) 가지 움직임을 제약하는 것이다!”[1]을 기억했다. 악독한 경찰은 내게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침착하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죄를 짓는 것을 바라지 않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사람이 되려면 우리 일에 협조해야지 않겠습니까? 참말도 감히 하지 못하네요?”라고 했다. 나는 “저는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일 뿐 감히 참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청원하려고 쓴 편지를 한 번 보시지요.”라고 했다. 좀 있다가 그는 내게서 강탈한 300위안을 돌려주면서 “아이도 데리고 왔는데 얼마나 힘들겠어요.”라고 했다. 어떤 수련생은 두려운 마음이 나오면서 사존의 점화도 잊어버렸다. 악독한 사람은 고성을 내지르며 수련생이 주소와 이름을 밝힐 때까지 줄곧 위협했다.

이후에 우리는 현지 진 정부에 끌려갔는데, 진 당위원회, 파출소 등 사람들은 온갖 수단으로 미친 듯이 박해했다. 유혹하고, 전향시키고 때리고 욕하고 위협하고 압력을 가하며 우리에게 사부님을 욕하게 하고 수련생들에게 수갑을 채웠다. 어느 날은 우리에게 바닥에 앉으라고 압력을 가하더니 두 손은 위로, 두 다리는 앞으로 뻗은 채 장시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굵은 쇠사슬로 연달아 때리면서 또 연마할 것인지 물으며 압력을 가했다. “연마할 것입니다.”라고 하면 극심하게 구타하고 발로 밟고 찼다. 어떤 수련생은 악독한 경찰에게 머리를 발로 차이고 벽에 부딪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내 차례가 오자 나는 즉시 ‘당신은 내게 물을 자격이 없고 나를 때릴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들은 정말 묻지도 때리지도 않았다. 그때는 발정념하는 것도 몰랐다. 나는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이 또 전기방망이를 준비해서 우리를 구타하려 했을 때 나는 일어서서 “해치지 마세요. 제가 이 분들을 데리고 베이징으로 가려고 했던 것이에요. 제가 생각한 것이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하자 그들은 의외로 나에게 벌을 주지 않았고 스스로 물러갔다.

이후 그들은 또 추위에 얼게 하고 유혹하고 위협하고 학생, 가장, 교사, 친구, 친척들을 시켜 나를 설득하게 했다. 내가 마음을 움직이지 않자 76세 되는 모친이 2.4km되는 길을 매일 걸어 파출소까지 오셔서 밥을 가져다 주셨다(그때는 바로 6월 고온 날씨였다). 나에게 ‘연공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압박을 주었지만 마지막까지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들은 또 나를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15일 동안 가뒀고 또 어린이집 교사 직무를 박탈했다.

박해가 절정에 치닫던 날에 파출소 경찰, 시 ‘610’은 늘 수련생들에게 책을 제출하고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게 하고, 사진을 찍게 압박했다. 어느 날, 촌 위원이 우리 집에 찾아와 “위에서 당신에게 또 서명하라고 하네요.”라고 말했다. 전에 그들은 나를 찾아온 적이 없었다. 나는 펜을 들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펜아, 나는 너를 통해 많은 대법 책을 베껴썼는데 내가 어찌 연공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겠니? 절대 안 된다.”이렇게 생각하면서 대대(大隊)사무실 입구에 도착했다. 그 위원은 “집으로 돌아가요. 당신 이름은 없네요.”라고 말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나의 심성이 제 위치에 도달하자 또 한 번 나를 보호해 주셨다.

아마 2002년 여름일 것이다. 시 ‘610’은 어떤 사람이 나를 모함해 (사립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연공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나를 강제로 세뇌반에 납치했다. 그들은 온갖 수단으로 수련을 포기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기회 삼아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갓 세뇌반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내게 작은 의자에 앉으라고 명령했다. 나는 ‘당신들이 가서 앉으라’고 생각하면서 발정념을 했는데 과연 그들은 스스로 내려가 작은 의자에 앉아 나와 말을 했다. 매번 내가 ‘610’을 볼 때마다 미소짓자 그녀는 큰 소리로 “앞으로 웃지 마세요.”라고 했다. 나는 “전에는 생활이 고달파서 잘 웃지 않았어요. 지금은 대법을 배우니 생활이 충족하고 편안해요. 이것은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고 자연스럽게 나온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매번 그녀를 만나면 미소 지었는데 그녀는 어색해하면서 물러갔다.

이후 그들은 또 시급, 진(鎭)급의 온갖 사람을 배치해 한 그룹 한 그룹 돌아가면서 나를 ‘전향’시키려 했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그들에게 끊임없이 진상을 알렸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또 전향한 사람들이 쓴 회개서, 대법을 모욕하는 TV, 벽보 등을 강제로 보게 했다. 나는 모두 이것을 기회로 삼아 발정념하면서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최후 그들은 나더러 글을 써서 사상표현을 하라고 했는데 나는 대답하지도 쓰지도 않았다. 저녁에 꿈을 꾸었는데 이튿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튿날 오후, 나는 먼저 그들에게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해서 ‘길에는 안개가 가득 차 연무가 피어오르고,명백한 자는 스스로 명백해지고 어지럽히는 자는 스스로 어지럽히며, 길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마음은 이미 결심했노라. 확고히 끝까지 수련하고 뒤돌아보지 않으리라!’라고 적었다. 610 주임은 보고 나서 의외로 화내지 않고 “너무 간단하게 썼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방법이 없군, 구치소로 보낼 수밖에.”라며 위협했다. 나는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라고 생각했다. 과연 오전 10시 진 파출소는 나를 풀어줬다.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하고, 기다리지 않고 의지하지 않아

나는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면에서 정진하는 수련생과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나 컸다. 박해가 가장 심할 때 나는 자신을 엄격히 요구했고 심성도 잘 파악하고 두려운 마음도 없었다. 내가 10여 년 가르친 학생들 중에서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건 나는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회를 찾아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3퇴를 시켰다. 양가 친척, 가족, 친구, 이웃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3퇴를 시켰다. 이후에는 전문적으로 핸드폰을 이용한 진상 알리기와 전화로 녹음 내용을 틀어주는 진상 알리기 활동을 했다. 때로는 진상 관련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는 편지를 쓰고 진상 관련 내용이 찍힌 지폐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는 항목 등에도 참여했다.

나는 핸드폰 진상을 이미 6년 넘게 견지해왔다. 막 시작했을 때, 기술이 완벽하지 않고 또 두려운 마음, 안전 문제가 있었다. 특히 겨울에 늘 밖에서 때가 되면 전화번호를 입력하기 때문에 손발이 꽁꽁 얼어서 전화를 걸어도 통화가 한 통도 안 될 때가 있어서 강제로 핸드폰을 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매일 전화 진상을 견지했으며 쉬지 않고 끊임없이 경험을 쌓고 정념을 강화했다.

어떤 때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가 카드를 심하게 봉쇄했다. 다른 수련생은 전화가 안 되면 핸드폰을 나에게 주고 진상을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구하는 법기들이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면을 겨냥해 매일 저녁 발정념 시간을 1~2시간 늘렸고 심지어 3시간씩 늘렸다. 낮에는 핸드폰 3대를 동시에 켜서 진상을 알렸다. 녹음 진상 전화가 안 되면 메시지, 멀티미디어 메시지를 보냈다. 멀티미디어 메시지의 내용은 밍후이왕, 밍후이주간, 혹은 진상 소책자에서 감동적인 이야기나 고대 예언, 아니면 악보받은 관원 등등 내용을 선택했다. 몇 년 동안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수련생들의 좋은 문장을 보면 시간을 짜내어 몇 부를 복사해 친구들한테 알려 인연있는 사람을 구도했다.

몇 년 동안 나는 잘하는 수련생과 비하면 수확이 많지 않지만 매일 바쁘고 충실하게 보냈다. 이후 시간에 나는 비학비수해서 열심히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길을 잘 걸을 것이다.

일사일념을 바로잡으니 병업이 사라져

몇 년 동안 수련했지만 넘기 힘든 큰 병업관에 부딪히지 않았고 모두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감당하셨고 자신이 감당하는 것은 적었다. 가끔 한두 번 병업관이 있었지만 수련생들이 발정념으로 도와주는 데 의지하지 않았다. 수련생들은 모두 자신의 일이 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넘을 수 있다고 확고히 믿었다.

며칠 전 아침에 일어나 연공했는데 제3장을 했을 때 오른손은 충꽌(冲灌)해 올라갔지만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아래로 떨어졌다. 마치 표면의 피부가 연결되지 않았던 것 같았고 전체 팔이 땅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다. 나는 신경쓰지 않고 5장공법을 모두 마쳤다.

연공을 다 마치고 나니 팔이 아프기 시작했다. 어깨에서부터 손가락까지 다 아팠고 전체 팔은 다 부어서 굵고 딱딱했다. 때로는 안에서 어떤 것이 뜯어먹는 것 같았고 어깨 연결부위의 뼈가 몹시 아파 전체 팔을 움직일 수 없었고 눕기도 겁이 났다. 움직이기만 하면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이것은 구세력의 교란임을 알았다. 밀려오는 기세는 사나웠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이 며칠 동안 잘못한 것이 없는지 자신을 찾아보았다. 표면에서는 그날 저녁 나는 수련생과 협력해 그녀의 친척을 구하는 진상 편지를 썼다. 7~8장을 베껴썼다. 피곤했나? 사실 그게 아니다. ‘전법륜’을 베껴쓸 때 심야까지 베껴도 이런 현상이 없었다. 나는 계속 자신에게 문제가 없는지 찾았다.

아, 원래 어느 날 점심 때 몇 명 수련생이 우리 집에서 법공부를 했을 때, 갑 수련생은 이 몇 년 동안 병업이 자신을 괴롭혀 잘 지내지도 못했다면서 속상해 하면서 울었다, 당시 나는 이상하다고 느끼고 ‘이 몇 년 동안 다 지나왔는데 어쩌면 아직도 이렇게 크게 원망하는 마음이 있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2]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우리 마을 많은 수련생들 중에서 당신이 고생을 제일 많이 했기 때문에 가장 많이 백색물질로 전화(轉化)됐을 거에요.”라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당시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구세력은 이 틈을 타 내가 그녀와 같이 고생하고 같이 괴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며칠은 무더위가 심해서 옷을 벗을 수도 밥을 할 수도 없고 세 살 된 손자도 돌볼 수 없었다. 가족들은 전부 타지에서 일하고 있어서 집으로 올 수 없었다. 어쩌면 좋지? 다행히 수련생이 나를 도와 밥을 해주고 옷을 빨아주고 손자를 보살펴 주었다. 꼬박 4일을 눕지도 서지도 앉지도 못 하며 고통을 참기 힘들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끊임없이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사존께 가지(加持)해 주십사 청했고 발정념으로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하고 선해(善解)했다.

B수련생은 내가 이렇게 심한 것을 보고 걱정하면서 “병원에 가서 약을 짓고 이후에 잘 수련하면 되잖아요. 손자도 보살펴야 하니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병원에 안 갑니다. 약은 더더욱 먹지 않을 거에요. 오늘 점심에 손자를 좀 봐주세요. 저는 가부좌 할께요. 연공하면 좋아질 거예요.”라고 말했다. 정공을 2시간 연마하니 다리가 아프다는 느낌은 없었다(때로는 3시간 가부좌를 한다). 출정한 후 손과 팔을 정말 움직일 수 있었고 아프지 않았다. 며칠 안 돼 부종은 사라지고 몸도 좋아졌다.

이번 교훈을 통해 나는 한 수련인이로서 일사일념(一思一念)에서, 매 한 마디 말이 모두 법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련은 엄숙하다! 정념은 또 얼마나 중요한가! 신사신법(信師信法)은 더욱더 중요하고 중요하다! 당시 수련생이 내게 병원에 가라고 하고 약을 먹으라고 했을 때 나는 약간 짜증이 났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것은 내게 심성을 높이라는 것이 아닌가? 모두 나의 매 한 가지 마음을 겨냥해 온 시험이었던 것이다. 정말 수련생들의 도움에 감사하고 향상하는 것만이 정답이다. 나는 또 다시 한 번 사존께서 제자를 위해 감당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미국중부법회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마음 고생’

 

원문발표: 2018년 1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3591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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