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신쥔(新俊)
[밍후이왕] 2015년, 나는 치료를 위해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법공부를 통해 진정으로 건강해지려면 진수(眞修)제자가 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련 후, 나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심성을 수련하면서 50여 년 인간 세상에서 양성된 각종 나쁜 습관을 끊임없이 닦아버렸다. 아내(수련생)의 이끌음으로 날마다 전 세계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연공했으며, 일이 있어 지체하게 되면 보충하면서 5장 공법을 전부 했다. 지난 해 10월부터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했는데 이제 50쪽만 외우면 한 번 다 외우게 된다. 4개 정각 발정념도 아주 명심하고 한다. 수련생과 협력해 대법을 실증하는 일도 한 번도 미루지 않았다. 대면 진상 알리기는 두려운 마음이 심해서 잘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아주 고민스럽다. 사부님께 죄송하고 대법이 나에게 부여한 일체에 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제자를 자비롭게 보호해주셨다. 지금 내 몸은 건강을 회복했는데 사부님과 대법에 감사한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얼마 전에 벌어졌던 ‘월병 사건’은 나에게 마음 깊이 숨어져 있어 드러나지 않았던 의심을 끄집어내 주었다.
월병 사건
올 8월 15일, 외종질이 나에게 월병 두 박스를 보냈는데 총12개였다. 나는 오늘 한 개, 내일 반개씩 먹다 보니 어느덧 한 개만 남게 됐다.
어느 날, 나는 배가 갑갑하면서 몸이 불편했다. 며칠 동안은 아무거나 막 먹은 일도 없는데 왜 이럴까 하고 생각했다. ‘외종질이 보낸 월병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집에 아직도 하나 남아 있으니 얼른 버려야지.’
집에 돌아와서 남아 있는 월병을 바라보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찌푸려 있던 양미간이 갑자기 펴지면서 나도 모르게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어찌 이런 생각을 한담? 이게 수련인의 생각인가? 너의 선(善)은 어디로 갔지? 이게 진정한 나인가?’ 이 때, 외종질의 온갖 못된 행실이 뇌리에 떠올랐다.
조카를 아는 사람은 늘 나에게 말했다. “당신 조카가 남의 돈을 빌리고도 갚는 법이 없어 지금은 누구도 그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아요.” 6,7년 전에 조카가 내 돈을 빌려갔는데 지금까지 아직도 2천여 위안(한화 32만원)을 갚지 않고 있었다.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조차 이 일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내가 아프던 동안에 조카는 나를 데리고 외지로 치료하러 간다는 명목을 대고 그의 친구, 내 사촌 동생에게서 돈을 빌렸고, 또 그의 어머니와 이모에게서도 나를 치료해 준다면서 돈을 빌렸다. 그는 또 집에 돌아와서 그의 부모에게 말했다. “외삼촌에게 3만8천 위안(한화 621만원)을 빌려줘 치료해주었는데 아마도 나에게 돌려줄 것 같지 않네요.” 이건 모두 없던 일인데 그는 정말 그럴 듯하게 꾸며냈다.
이 말이 돌고 돌아 이모를 통해 내 귀에까지 전해졌다. 나는 말했다. “그 아이에게 돈이 없는데 내가 그의 돈을 빌릴 수 있겠어요? 그는 내 빚도 아직 갚지 않았는데요.” 한 번은 외종질의 아버지가 나를 지켜보더니 뜻밖에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 아들이 거짓말 한다고 쳐도 내 며느리야 거짓말을 안 하겠지. 며느리가 우리 집에 와서 자네에게 돈을 빌려줬다고 하던데.” 이런 말을 들었지만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자신이 수련하고 있으며 이는 나의 심성 제고를 위해서 온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이렇게 지나가버렸다. 그 후부터 나는 외종질과 다투는 일이 별로 없었다.
뜻밖에 이 일이 지금 또 뒤집혀 나왔다. 이 역시 내가 진정으로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다시 뒤집혀 나온 것이다. 이런 일이 나타난 것은 아무 까닭 없는 것이 아니란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아직도 어떤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는지 나는 안으로 찾아야 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최근 수련 상태를 회고해보았다. 결가부좌하고 발정념을 하거나 5장 공법을 할 때 다리가 늘 미끄러져 떨어지고 사상이 조용하지 않고 정신이 딴 데 가 있었으며, 탁구 치기를 좋아해 날마다 탁구를 치는 것에 집착했다. 날마다 중국 슈퍼리그, CBA뉴스를 보았고, 진상 알리기는 두려운 마음이 심해 혼자 있는 사람에게만 가서 진상을 알려주었다. 어떤 때 3,5명 친구들이 점심을 먹자고 약속하면 나도 갔다. 가끔씩 그들과 함께 남을 흉봤다. 한가할 때면 가끔씩 염주나 운동용 공을 굴리기도 했고 어떤 때는 미리 퇴근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따라 갔다.
법에 있지 않는 이 일련의 일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이게 어디 수련인의 모습인가? 이런 현상을 꿰뚫고 나는 자신의 쟁투심, 이익의 마음, 환희심, 과시심, 두려움, 비교하는 마음, 수구하지 않는 등등을 보아냈다. 이렇게 많은 집착심이 엉켜있으니 연공할 때 사상이 조용할 수 있겠는가? 나는 즉각 입장하고 발정념을 하면서 사부님께 제자를 도와 이런 나쁜 마음을 제거해 달라고 요청 드렸다.
막 입장하자 ‘의심’이란 두 글자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랐다. 원래 외종질의 모든 행위는 나에게 자신의 의심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집착심 가운데서 의심은 아주 큰 하나의 누락이었고 게다가 그것은 아주 깊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 때 2016년 ’차량 수리 사건’이 또 내 뇌리에 나타났다.
차량 수리 사건
2016년 11월 하순, 차가 긁혀서 개인 카센터에 수리를 맡겼다. 차를 찾으러 갔을 때 차 수리공이 아직도 차를 수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첫 눈에 내 차의 엔진 커버(그때는 커버 아래가 엔진임을 알지 못했음)가 아주 더러운 것을 보았고, 내 머리 속에는 잇따라 한 화면이 나타났다. 얼마 전에 4S카센터에서 수리할 때는 커버가 깨끗했는데 왜 낡은 것으로 됐을까? 내가 없는 동안에 주인이 낡은 것으로 바꾼 게 아닐까? 반대로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럴 수 없어. 그렇게 되면 그의 이 카센터는 얼마 운영하지 못하고 진작 문을 닫았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지금은 어떤 사람이든 다 있으니.’ 속으로는 내가 그래도 4S카센터의 수리 기록을 갖고 있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4S카센터에 가서 당시 커버가 깨끗했음을 확인하고, 만약 지금 이 카센터 주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수리기록을 증거로 삼고 속으로 그에게 어떻게 대응할 지를 생각했다.
어느 날, 내가 막 인터넷에 접속했을 때 무의식중에 그 커버는 원래 엔진 커버였음을 발견했다. 엔진은 위에 엔진 번호가 있으므로 감히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나는 그것이 의심이라는 발견하고는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지나쳐 버렸던 것이다.
생각 밖에 오늘 이 일이 또 생각났다. 나는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계속 안으로 찾았더니 일상생활 가운데는 아직도 수많은 비슷한 갖가지 이런 의심이 많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각양각색의 의심
시장에 가서 야채를 살 때 나는 먼저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값을 물어본 다음 산다. 한 가지 일을 알아보면서 보통 여러 사람에게 물어본다. 인터넷에서 물건 살 때면 구매자의 평가를 많이 본다. 백화점에 가서 큰 물건을 살 때면 여러 집을 돌아보고 세 집을 비교보고 나서야 산다. 어느 사람이 나와 틀어지게 되면 그가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모두 괴이하고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직장에서 두 사람이 몰래 귓속말을 하고 나를 보면, 피해가는 것은 모두 나를 흉본 게 아닌지 생각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상생활 속에서 모두 의심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총명해 남이 나를 속이지 못한다고 여겼다!
이런 것은 모두 평소 생활에서 형성된 관념이고 진정한 자신이 아니며, 모두 자신이 손해 볼까 두려워 오랫동안 형성된 층층의 보호막으로서 이런 행위는 모두 이기적인 것이었다. 지금은 수련함으로 이런 층층의 껍질을 버리고 무사무아(無私無我)로 수련 성취해 진정한 나를 드러내야만 반본귀진(返本歸眞)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수련을 생각하니 나는 자신이 대면해 진상을 감히 알리지 못하는 것은 두려운 마음 때문이고, 또 두려운 마음은 사부님에 대해, 대법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없기 때문으로 생각됐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1] 가령 사부님을 확고히 믿는다면 누가 감히 당신을 박해할 수 있겠는가? 확고히 믿지 않는 게 바로 의심이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는 감히 계속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게 작은 일인가? 그러기에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법은 엄숙하며,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1]
나는 이 ‘의심’이 진정한 내가 아니고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임을 안다. 두려운 마음의 배후는 의심이고, 의심의 배후는 사심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자신이 해를 입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임을 나는 지금 알게 됐다. 오직 사심이 없어야만(명, 이, 정에 집착하지 말아야) 의심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의심이 없으면 두려운 마음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대면하여 진상도 정정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병을 치료하려는 목적으로 수련에 들어섰고, 법공부를 통해 나는 수련은 병을 치료할 수 있지만 수련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반본귀진을 하라는 것임을 알게 됐다. 2년 남짓한 동안, 사부님 법신은 줄곧 나를 보호해 주셨으므로 병을 치료하겠다는 염두를 버릴 때가 됐다. 이틀 전에 ‘세어인생(細語人生)’에서 ‘대법의 기적을 증명하다 제5집’에 수련생이 인터뷰를 하면서 대법에 감사드리고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눈물이 샘솟듯 흐르는 장면을 볼 때 내 마음은 강렬한 감동을 받았고, 사부님께 감사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번에 나는 마음껏 흐르라고 눈물을 훔치지 않았다. 그것은 수련생이 내 마음속 말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삶의 절망에 빠졌을 때 사부님께서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다. 마음속으로 절실하게 외쳤다. “사부님,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게 하는 의심을 버리도록 제자를 도와주십시오, 제자는 사부님의 진수제자로 되어 사부님을 따라 원만하여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미국동부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12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22/3581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