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9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한 제자이며 올해 73살이다. 남편은 70년대부터 앓고 있던 심한 위하수가 94년에는 또 위축성 위염으로 됐다. 즉 위암 직전이었다. 95년에는 건강상태가 더욱 나빠져 무엇을 먹어도 소화가 안 돼 무척 괴로웠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다했다고 느꼈다. 다방면으로 명의를 찾아 치료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다행히 대법을 만났고 대법 수련을 한 지 두 달 만에 건강을 회복했다.
남편의 변화를 보고 대법의 비범함을 인식한 나는 예전의 취미를 버리고 수련의 길에 들어서기로 결심했다. 수련 후 몸이 정화됐는데 예를 들면 결핵 후유증인 만성 기침, 3차신경통, 신경쇠약, 불면증 등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다. 특히 남편의 건강이 회복되어 붕괴 직전에 처한 가정이 예전의 즐거움을 되찾게 됐다.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는 우리를 깊이 감격하게 했다. 그래서 대법을 널리 알리는 것은 도의상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또한 많은 사람이 대법을 얻도록 인도했다. 하지만 그 때는 단지 감성적으로 대법이 좋다고 인식했을 뿐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는 방면에서는 형편없었다. 때문에 수련의 길에서는 그야 말로 비틀거리고 곤두박질치면서 고비를 잘 넘기지 못했다. 아래에 나의 수련 과정 중의 몇 가지 일을 사부님께 알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정과 두려움은 고난의 화근
회고해 보면 어느 한 번의 고난이든 모두 자신의 각종 사람마음으로 빚어진 것이었다. 2001년 10월, 잔혹한 박해 형세 하에서 수련생들이 끊임없이 붙잡히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심해졌다. 결국 아들 집에 5, 6명이 찾아왔고 우리는 떠돌이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직장에서는 우리의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
2003년 사스 시기, 나는 자식 정에 얽매여 식사를 할 수 없었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딸은 주임 의사로서 사스 팀에 들어가 2주 동안 집에 오지 못했다. 외손녀는 막 젖을 뗐는데 아이 할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 아이를 돌볼 사람이 급히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집에 돌아가지 못하니 그야말로 조급한 마음이 소용돌이쳤고 법공부와 연공에서 전혀 조용해지지 못했다.
이 강렬한 집착심은 사악에게 꼬리를 잡혀 7, 8명이 우리가 사는 거처로 쳐들어왔다. 우리는 지붕으로 도망치려고 지붕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 나는 전봇대를 안고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와 기와 변두리를 밟았다. 기와가 무너지면서 나도 따라 넘어졌는데 오른 팔꿈치가 기와 모서리에 부딪쳤다. 내가 일어나 보니 오른팔을 조금도 들 수 없었다. 하지만 통증은 없었다. 아마 탈골됐겠지 생각하며 왼손으로 오른팔을 돌리고 위로 누르면서 몇 번 시도했으나 맞춰지지 않았다. 속으로는 의사에게 맞춰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으니 분쇄성 골절이었고 뼈 한 조각은 원래 위치에서 벗어났다. 밤 12시였으므로 당직 의사는 치료할 수 없어 잠시 5백 위안(한화 80,000원)의 보증금을 내고 입원했다가 이튿날 석고를 붙이든지 아니면 수술하라고 했다. 게다가 말했다. “어느 방식을 취하던 당신 손은 머리까지 올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의사가 말했다. “상한 부위가 팔꿈치어서 고정시키기 어렵습니다. 당신이 팔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후유증이 조금도 남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이 말에 나는 번득 놀라 깨어났다. 우리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신체에는 모두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고 특히 남편의 그렇게 치료가 어려운 병도 사부님께서 다 고쳐 주셨는데 나는 왜 병원에 와서 치료할 생각을 했는가? 아이고, 정말 어리석구나!
나는 남편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난 입원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 어디 가서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면 곧 나을 거예요.” 그가 말했다. “당신이 결심했으니 나도 당신을 지지해. 전반생에 당신이 나를 시중들어 주었으니 후반생에는 내가 당신을 시중들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지금 와서 이 말을 생각해 보니 역시 정념이 아니었음) 하지만 당시에는 이 말이 나에게는 매우 큰 격려였다.
우리는 병원에서 나와 한 수련생 집에 묵게 됐다. 수련생은 헝겊을 얻어다 내 팔을 목에 달아맸다. 이튿날 팔, 손가락이 모두 퉁퉁 부어나고 죄다 검은 색깔로 변했다. 하지만 그다지 아픈 느낌은 없었다.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고통을 대신하신 것이다. 이 때 내 마음은 오히려 안정됐다. 어차피 집에 가도 아이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할게 뻔했기에 오히려 그곳에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와 연공을 할 수 있었다.
“속인 중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을 당신에게 모두 내려놓게 해야 한다. 어떠한 집착심이든 당신에게 있기만 하면, 각종 환경 중에서 그것을 닳아 없어지게 해야 한다. 당신에게 곤두박질치게 하고 그 중에서 도(道)를 깨닫게 하는데, 바로 이렇게 수련해 온 것이다.”[1]를 배웠을 때, 사부님의 법은 나를 일깨워 주셨다. 자신이 너무 자식 정에 집착했음을 인식했다. 이는 그야말로 사부님께서 무거운 망치로 나를 때려 일깨웠고 이 집착심을 내려놓도록 강제하신 것이다.
이틀간 차분하게 법공부를 하고 나서 사흘째 점심에 나는 소파에 앉아서 소파 손잡이에 손을 놓았다. 비몽사몽간에 나는 한 남자와 함께 나무판자 두 장을 메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나무판자 한 장은 오른쪽 귀퉁이가 없고, 다른 한 장은 오른쪽 모서리가 튀어나와 나와 있었다. 복도 모퉁이에서 두 장의 널판자를 한데 붙여 놓으니 딱 들어맞았다. 내 팔이 진동하기에 나는 즉각 깨어났다. 팔이 아주 편안한 것 같았고 그 후부터 팔로부터 손가락에 이르기까지 부기가 가라앉았는데 날마다 그랬다.
약 2주 사이에 팔은 기본상 정상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근골을 상하면 백일이 걸린다.” 는 사람의 관념이 변하지 않아 아직도 어깨에 붕대를 걸고 있었다. 한 달이 됐을 때 어느 날 누군가 말했다. “누가 팔을 다쳤는데 석고를 2,3주 붙였다가 다 풀어버렸지.” 나는 즉각 깨달았다. 이는 사부님께서 속인의 입을 통해 나를 점화하신 게 아닌가? 내 팔도 다 나았으니 붕대도 풀어 버렸다. 처음엔 확실히 팔이 입까지 닿지 않았지만 3,4일 후에는 오른손으로 밥을 먹었고 40일 후에는 완전히 곧게 펼 수 있었으며 일체 기능이 회복됐다. 이번에 그야말로 심하게 곤두박질했다. 고난을 당할 때 법에서 깨닫지 못하고 사람마음으로 생각했으니 넘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관념을 바꾸니 나쁜 일이 좋은 일로
팔을 다친 이 사실을 통해 나는 사부님께서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고 동시에 정념을 강화하게 됐다. 나는 떠돌이 생활은 대법제자가 걸어야 할 길이 아니며 반드시 집에 돌아가 정정당당하게 속인 속에서 생활해야만 비로소 속인에게 이해될 수 있고, 비로소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법공부, 발정념을 다그치고 직장과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전화를 했다. 친척, 친구의 도움으로 2003년 11월에 돌아갔고 임금도 추가로 받았다. 그야말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1]였다. 그런데도 이 정념이 약해지자 속으로는 형세가 호전돼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
2004년 사부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란 경문을 발표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시작하여, 특히 중국대륙의 대법제자, 신노(新老) 수련생들은 장기간 집착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전면적으로 세인을 구도함을 다그쳐야 한다.”[2]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진상 알리기를 시작했다. 먼저 친척, 친구로부터 시작해 누구 집에 가든 모두 선물을 갖고 갔고 그들이 진상을 알도록 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아주 열정적이었고 진상도 잘 받아들였다. 이번 진상 알리기는 2005년 삼퇴를 알릴 때 기반을 다져주었다. 산시성 외삼촌 집에 갔을 때 한 번에 6, 70명을 탈퇴시켰다.
낯선 사람에게 진상을 알릴 때 나는 제3자 신분으로 진상을 알렸는데 말할수록 정념이 더 강해졌다. 삼퇴를 말하는 데는 우리 생활환경에 관통됨으로서 곳곳에서 모두 진상을 알릴 수 있다. 오전에 진상을 알리고 오후에 법공부를 하면서 날마다 열 명, 스무 명 정도를 탈퇴시킬 수 있었다. 버스에 앉아서는 같은 좌석에 앉은 사람에게 말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여학생에게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뭘 배우는지 물으니 중의학을 배운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중의학을 배우면 참 좋아요. 우리 중국 고대의 중의는 박대정심(博大精深)하죠. 중의학은 근본을 다스리고 정기가 몸에 배이면 사기는 어쩔 수 없는 거죠. 정기란 뭐예요? 바로 도덕 양심이죠.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덕을 쌓으라 하는 것은 신체 건강에 유리하죠. 파룬궁 역시 사람에게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하도록 가르친답니다. 중의학에서 요구하는 것과 같지요.” 그녀는 몹시 찬성하면서 나보고 무슨 학교를 졸업했기에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학생에게 파룬궁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녀는 파룬궁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또 파룬궁의 기본 진상을 알려 주었고 삼퇴도 해 주었더니 그녀는 몹시 감동해 줄곧 고맙다고 했다.
나는 대부분 시간을 버스정류장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진상을 알린다. 이곳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좋다. 남북으로 오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래도 시간을 아껴야 하고 말은 간단명료해야 한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을 거쳐 탈당시킨 사람이 얼마인지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말로 사부님께서 신변에 계신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물론 가끔씩은 심성 파악을 잘하지 못해 비난을 듣거나 고발하려 하거나 비웃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모두 사부님의 가호 하에 놀라긴 했지만 위험은 없었고. 비교적 평온하게 거의 13년을 걸어왔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
원문발표: 2017년 12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12/3577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