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번 달 한 수련생이 갑자기 우리집에 왔다. 원인은 수련생이 진상을 전할 때 일시적인 홀시로 누락이 생긴 것 같아 구세력이 빈틈을 타 박해할까 봐 두렵다면서 나에게 그를 도와 발정념해 사악한 박해를 해체해달라고 했다.
수련생은 말하면서 본인의 많은 추측을 보태 말했는데 모두 부정적인 사유였다. 나는 그에게 인위적으로 본인에게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주지 말도록 부정적인 사유를 버리라고 말했는데 그는 수련생인 내가 그를 돕지 않겠다는 걸로 오해하고 눈물을 머금고 나에게 온통 도와달라는 말을 했다. 그가 아무렇게나 한 말들은 대법제자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이어서 나는 아주 놀랐다. 마지막에 우리는 오해를 풀고 매일 그를 도와 오전 오후 각 한 번씩 두 번 발정념해주겠다고 대답했다. 이후에 그는 또 나에게 구치소에 불법 수감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척을 도와 발정념해달라고 했다. 그 수련생의 일부 기본 정황을 물은 후 나는 대답했다. 수련생이 간 후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방금 발생한 모든 것을 돌이켜 보면서 느낀 바가 있어 생각 끝에 나와 수련생에게 깨우침을 주려고 이 글을 쓰기로 했다.
1. 본인이 어렵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제 일념은 사부님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사존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1] 사존의 이 단락 설법은 매 대법제자에 대한 오성에 대한 검증이고 신사신법 근본 문제에 대한 검증이라고 나는 깨달았다. 우리 매 대법제자 옆에는 모두 사부님의 법신이 계신다. 한 분뿐이 아니다. 사존께서는 바로 우리 옆에 계신다! 그러나 수련생의 제 일념은 사부님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수련생)였고 다음은 다른 수련생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사존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사존께서는 못하시는 것이 없고 대법의 위력은 끝이 없는데 왜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는가? 이것이 수련의 근본 문제가 아닌가? 수련생은 행할 때 두려워하지 않았고 행하는 과정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집에 돌아간 후 전체 과정을 돌이켜보면서 어떤 부분을 세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여겨 두려웠던 것이다. 수련생이 하는 일은 사람을 구하는 일이고 행하면서 두려워하지도 않았는데 사존께서 그를 보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집에 돌아간 후 두려워 진 것은 결국 스스로 본인을 놀라게 한 것이다. 사실 나도 수련생과 비슷한 체험이 여러 번 있었다.
집에 돌아간 후 두려워지는 것은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본인이 두려운 물질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았는데 어느 부분을 잘하지 못하면 불안전감을 느껴 사람마음이 올라와 두려운 물질 요소가 작용을 일으켜 두려워진 것이다. 두 번째는 다른 공간의 악이 그가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그의 잘하지 못한 부분을 더 크게 만들어 그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생각할수록 두려워지게 하고 점점 두려움을 느끼게 하면서 다시 사람 구하러 나가는지 보는 것이다. 악은 그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그를 망치려는 것이다. 절대 속임수에 들어서는 안 된다. 시실 이때 우리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두려운 마음을 억제하고 극복하며 사존께 도움을 청해 해결하고 본인의 사람마음 집착을 찾아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아울러 구세력의 배치를 전부 부정하고 발정념으로 다른 공간의 흑수, 난귀, 공산 사령을 제거해야 한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2] 두려운 마음이 없어지고 정념이 족하면 사존께서는 무엇이든 다 우리를 위해 하실 수 있다. 누구든 박해하면 사존께서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사부님의 제자이고 대법을 같이 수련하는 동수(同修) 관계이지 속인 관계가 아니기에 대가가 없다. 누가 누굴 위해 무엇을 하든 모두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사존께서는 바로 이렇게 안배하셨다. 수련의 길에는 우연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대법제자는 한 정체(整體)이기에 겉보기엔 그가 다른 수련생을 도와주고 다른 수련생을 위해 뭘 하는 것 같지만 실은 모두 본인에게 해주는 것이다. 무슨 억울해할 것이 없고 원망할 것 없다. 그는 손해 본 것이 없다. 그가 얻은 것은 아주 소중한 위덕이다. 미래 신우주는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정각(正覺)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 진정하게 사람을 제도하고 구하는 분은 사부님이시다
사존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타이르셨다. “사실 사람을 제도하는 것은 법이며, 이 일을 하는 것은 오로지 사부뿐이다. 당신들은 다만 인연이 있는 사람을 인도하여 법을 얻게 했을 뿐이다. 정말로 제도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여전히 그 사람이 수련하여 원만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고 정해야 한다. 절대 주의하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을 함부로 하면 부처마저도 놀라게 되는데, 자신의 수련에 장애를 조성하지 말고 이 방면에서도 수구해야 한다. 여러분들이 명백하기를 바란다.”[3] 수련생 중에는 수련을 오래한 사람이 있고 수련 시간이 짧은 사람이 있으며, 사존의 전수반에 참가해 사존을 뵌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수반에 참가하지 못해 사존을 뵙지 못한 사람이 있고, 정진하는 수련생이 있는가하면 수련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이 있다. 정념이 강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사람 마음이 중한 사람도 있고, 천목이 열려 일부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무 감각도 없는 사람이 있으며, 세 가지 일을 잘하는 수련생이 있는가하면 두려운 마음이 심해 일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층차가 같지 않고 경지가 다르고 수련 상태도 다르다.
그러나 누가 어떻든 간에 수련은 사실 자신을 닦는 것이다. 99년 이전은 개인 수련 단계이기에 주로는 법공부, 마음 닦기, 연공, 법 알리기였다. 그 중에는 각종 심성 표현이 다 있었다. 자신의 수련 요소가 그 속에 있어 사람 마음이 부풀은 적이 있고 자심생마한 사례도 있다. 99년 이후에는 개인 수련에서 전면적으로 정법 수련으로 진입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일에서 체현된다. 법공부를 하고 마음 닦으며 연공하는 것은 직접 법에 동화되는 것이고 심성 수련이 그 속에 있어 자신을 수련해야 하고 발정념과 진상을 알려 사람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심성 수련이 그 속에 있어 자신을 수련할 요소가 다 있다. 발정념에서 자신을 닦고 진상 알리기와 사람 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닦아야 한다. 어느 방면에 잘하고 빼어나면 칭찬의 소리를 듣게 되고 따라서 배우는 사람이 있게 된다. 법리에서 사존의 말씀을 듣고 법을 사부님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알고, 법을 배우지 않고 사람을 따라 배우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전철을 밟는 사람이 여전히 있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수련생들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칭찬하는 말을 하고 따라 배우는데, 단순하게 수련생이 이끌어 진상을 알려 사람 구하는 경험과 방법을 배우는 것은 문제없지만 심성 문제가 있으면(저도 모르게 하든 잠재의식이든 숭배하고, 의지하는 마음) 다른 수련생을 위험한 지경으로 미는 것이다. 칭찬 받는 사람, 따라 배울 상대가 되는 수련생은 이때 더욱 냉정하게 자신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본인의 어느 방면의 특기나 능력은 사존께서 준 것이고 대법이 부여한 것이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1]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진정하게 사람을 구하고 제도하시는 분은 사부님밖에 없다. 본인은 가서 하고 말하기만 한 것이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중에서 자신을 수련하고 제고해 승화하면 문제가 없다. 자신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본인이 잘한다고 여기며 다른 수련생의 칭찬을 듣고 인정과 긍정을 받으면 흐뭇해하고 들떠서 어느새 자신을 높이고 과시하면서 ‘나는 괜찮다, 당신들은 안 된다, 당신들은 나를 따라 배우고 나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여기면 문제가 생긴다. 사존께서는 가르치셨다. “과시심, 게다가 환희심은 마(魔)에게 이용당하기가 가장 쉽다.”[4] 저도 모르거나 잠재적인 것이라도 이것은 심성 문제이고 심성에 누락이 있는 것이다. 제때에 바로잡지 않으면 구세력은 손을 써 박해할 것이다. 그것은 구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표면적인 기타 요소도 있다. 예를 들면 참여한 사람이 많고 장기간 한 곳에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는 현상도 홀시해서는 안 된다. 이 방면의 교훈은 너무 많고 대가도 너무 크다. 때문에 겸손하고 자신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아야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바다는 용량이 커 많은 강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바다의 ‘용량’만 중시할 뿐 바다의 ‘낮음’을 잊어버렸다. 바다는 영원히 자신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는다. 대법제자는 자신마저 사존이 구도해야 하는데 사존과 대법이 없으면 대법제자의 오늘날이 없고 사존과 대법을 떠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을 얼마나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것은 수련에서 가장 꺼리는 일이고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일이다. 특히 피비린내 나는 사악한 박해에서 오늘까지 걸어온 대법제자는 자신과 다른 수련생을 각별히 소중히 여기고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3. 수련생을 도와 발정념할 때 부정적인 사유를 더해서는 안 된다
내가 수련생과 발정념 내용을 확정할 때 저도 모르게 한 마디 물었다. “○○씨 어머니(수련생)는 어떻게 발정념합니까?” 수련생이 그의 어머니가 발정념하는 내용을 알려줬을 때 나는 아주 놀랐다. 어찌 이렇게 많은 부정적인 사유를 더할 수 있을까? 그의 박해가 사실로 되지 않았는데 어찌 이미 사실로 된 것처럼 발정념할 수 있을까? 모두 본인이 가상한 것이다. 이것은 역작용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그런 일이 아닌데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것은 악에게 방법을 대주고 본인에게 덫을 놓는 것이 아닌가? 절대 계속 이렇게 발정념해서는 안 된다. 우리 대법제자에게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내보낸 물질이 유지하는 시간이 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밍후이왕에서 수련생의 교류문장 한편을 보았다. 그 중 한 단락에 이렇게 썼다. “나는 어떻게 병업관을 넘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법을 잘 배우고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길 수밖에 없다. 안으로 찾아 집착심을 버려야 해낼 수 있다. 저녁에 나는 수련생 집에 법공부를 하러 갔다. 이 노년수련생 집의 에너지장이 각별히 좋았다. 나는 침대에 앉자마자 저도 모르게 다리를 꼬고 앉을 수 있었다.(다리 붓기가 심해 보통 법공부할 때 뻗고 있었음) 또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세 사람이 같이 법공부를 했다. 매일 법공부, 발정념을 했다. 이 수련생 집에 가면 다리를 꼬고 앉을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집에 가면 안 됐다. 어찌된 일인가? 한 번은 내가 노수련생에게 물었더니 그녀는 말했다. ‘나는 ○○씨에게 부정적인 사유를 더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씨가 나았는지 물으면 수련생들이 어떤 부정적인 사유를 갖지 않도록 나는 나았다고 말했습니다.’ 노수련생은 나에게 정념을 가했기 때문이었다. 매번 법공부가 끝나면 우리는 좀 교류했는데 매번 그녀는 나를 격려했다. ‘오늘 많이 좋아졌습니다. 어제보다 낫습니다. 다리 붓기가 내렸습니다!’ 나에게 신심을 북돋아주었다.”
수련생의 정념이 난관 속에 있는 수련생에게는 얼마나 중요한지 보아낼 수 있다! 정념과 부정적인 사유가 수련생에게 주는 결과는 크게 다르다.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상유심생(相由心生)’[5]의 법을 알려주셨다. 대법제자의 마음이 외부 환경의 바른 작용 혹은 역효과를 좌우지할 수 있기에 자신의 이 마음을 잘 파악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하나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무리 큰 일이 발생하더라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평소대로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당신들이 걷는 길이며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남겨놓는 위덕이다.”[6] 대법제자는 오늘날 이 부정적이 요소가 있는 사회에서 시시각각 본인의 부정적인 사유를 제거하도록 중시해야 한다. 특히 사악한 당문화가 장기간 주입한, 모든 것을 의심하며 생긴 부정적인 사유를 제거해야 한다. 수련생을 도와 발정념할 때 꼭 수련생의 구체적이 정황에 근거해 발정념 내용을 확정해야 한다. 으레 그러려니 하면 안 되고 상황에 맞게 겨냥성 있게 발정념을 해야 하고 꼭 정념을 내보내야 한다. 정념으로 수련생을 가지하고 정념으로 악을 제거하면서 과정 중에 절대 조금의 부정적인 사유가 있어서는 안 된다. 부정적인 사유는 난관 속에 있는 수련생을 더 위험한 경지로 몰 수 있다. 엄중하게 말하면 수련생을 돕는 것이 아니라 악을 돕는 것이다. 때문에 수련생을 도와 발정념할 때 반드시 법에서 정념을 내보내야 한다. 어떤 부정적인 사유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역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발정념할 때 이렇게 해야 할뿐만 아니라 평소 접촉하고 왕래하고 생활 속에서도 이렇게 해야 한다. 발견하기만 하면 즉시 제거해야 한다.
개인적인 체험이니 법에 부합되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2-사도은(師徒恩)’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광언을 하지 말라(不講狂語)’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정론(定論)’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6-2004년 워싱턴DC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12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18/3580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