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올해 5월에 사람의 마음을 없애는 과정을 겪었다. 이번 사람의 마음을 벗기는 과정 중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고심의 배치를 체득했다. 수련의 길에 사람 마음을 없애는 고난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고 ‘진주’와 같다.
남편은 대학원에 다닐 때의 동창이었고 우리는 결혼한 지 19년이 됐다. 남편은 장기적으로 외지에서 일하고 있기에 우리 부부는 13년간 별거했다. 아이가 자라는 11년간 남편은 명절 기간에만 아빠 역할을 했는데 그 기간은 너무 짧고도 총망했다. 집 안팎에서 전부 나 혼자서 버텨야 했고 출근해야 할 뿐만 아니라 홀로 아이를 돌봐야 했다. 처음에 그는 3년 후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3년을 기다리고 또 3년을 기다리고 또 3년을 기다려 10여년이 지나갔지만 그는 여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올해 5월 2일, 남편은 내게 이혼하자고 했을 뿐만 아니라 급하게 이혼하자고 했다. 이것은 제고하라는 기회라는 것을 알고 속으로 사부님께 ‘이번 기회를 꼭 잘 틀어쥐고 사람의 마음을 없애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일이 갑자기 닥쳤기에 당시 좀 어쩔 바를 몰랐고 괴로움이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자신에게 ‘아직 그에게 미련이 있는가? 그에 대한 정을 아직 완전히 내려놓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결혼 3년째 사부님께서는 꿈에서 남편에 대한 집착을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고 점화해주셨다. 이후에 남편이 장기적으로 외지에서 일하자 우리 관계는 갈수록 소원해졌고 그에 대한 감정도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혼자 아이를 돌보고 생활하며 출근하는 압력으로 인해 늘 골머리가 아팠기에 마음속 고통과 억울함이 남편에 대해 깊은 원망으로 바뀌었다. 이 원망심은 아주 완고했으므로 매번 속으로 그를 원망하고 억울한 감정에 빠질 때마다 끊임없이 법을 외웠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 마음이 조용해지고 머릿속에서 이런 일들을 생각하지 않을 때야 멈췄다. 이렇게 3년이 걸려서야 진정으로 이 원망심을 없애버렸다. 지금 남편에 대해 사랑도 원망도 없다.
그러나 마음이 괴로워 여전히 울고 싶었다. 도대체 아직 무슨 사람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는지 조용히 또 안으로 찾았다. 이때 머리에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망망한 눈밭에 내가 딸의 작은 손을 잡고 어렵게 앞으로 가고 있었는데 누구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었으며 처량하고 또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었다. 날 괴롭게 하는 사람 마음은 고독함과 외로움이라는 것을 의식했다. 사부님께서 “사람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적막이다. 적막은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고, 적막은 사람으로 하여금 과거의 일체를 잊어버리게 할 수 있으며, 적막은 심지어 사람으로 하여금 언어를 잊어버리게 할 수 있는데 가장 두려운 고통 중 하나이다.”[2] 이런 마음은 정말로 아주 무섭게 느껴지고 빛이 보이지 않는 공포였다. 이 사람 마음이 확실한 물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를 아래로 힘껏 잡아당겨 아주 고통스러웠다. 이 사람의 마음이 교란한다는 것을 안 이상 끊임없이 발정념으로 고독함과 외로움이 나에 대해 교란하는 것을 제거했다. 이튿날 어떤 때 정념이 족하고 어떤 때 고독에 잠겼다. 두 가지 생각은 끊임없이 교체하면서 점차 고독하고 외로워하는 물질이 갈수록 약해졌다. 셋째 날 이 사람의 마음이 철저히 제거됐고 아래로 잡아당기는 현상도 없어졌으며 대법에 대해 확고했고 정념이 족했다. 다시 태어난 듯 마음이 상쾌하고 기뻤다.
셋째 날 이혼에 동의했고 남편과 어떻게 이혼합의서를 쓰겠는지 상의했다. 그에게 “저는 한평생 돈도 명리도 추구하지 않았고 고생도 두려워하지 않아요. 다만 아이가 건강하고 기쁘게 성장하길 바래요. 이것이 바로 제 유일한 요구예요”라고 했다. 이후로 아이가 부모의 이혼을 대면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자 슬픔이 또 올라왔고 눈물이 끊임없이 나왔다. 이것은 아이에 대한 정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혼자서 키운 아이가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사람은 제각기 명이 있게 마련이라, 가족이라 해도 말이다. 어찌 당신에게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개변하도록 할 수 있는가?”[3]라고 했다. 아이는 아이대로의 인생이 있고 내가 대신할 수도 결정할 수도 없다. 나는 끊임없이 법공부를 강화했다. 아주 빨리 이 마음을 제거했고 마음속의 슬픔은 존재하지 않게 됐다.
또 며칠이 지났다. 이혼이 여전히 마음을 맴돌고 떠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언제나 남편과 관련된 일이 떠올라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만약 정말로 내려놓았다면 이런 교란을 받아서는 안 되는데 왜 아직도 생각나지? 아직도 없애지 못한 사람 마음이 있을 것이다. 무슨 마음일까? 오랫동안 찾아도 찾지 못했다. 어느 날 사부님께서는 뜬구름 같은 생각, 즉 ‘기분 나쁜 마음’을 붙잡게 해주셨다. 자신에게 물었다. ‘왜 기분이 나쁠까? 여전히 마음의 균형을 잡을 수 없는 배후에 은폐된 마음은 바로 질투심이었다. 나는 아내로서의 도를 지키고 고생을 참고 견뎌가며 10여년 아이를 키웠는데 결국엔 이런 봉변을 당했기에 밖에서 자유롭게 사는 남편을 질투했다. 내연녀의 학력이 나보고 훨씬 못할 뿐만 아니라 사생아도 있었는데 뜻밖에도 친딸에 대해서는 관심도 두지 않는 남편을 질투했다. 남편이 그 여자와 시작한지 반년 쯤 됐는데 뜻밖에도 한시를 지체할세라 우리의 20년 가까이 되는 혼인 관계를 깨버리려는 남편을 질투했다. 이 질투심은 아주 깊게 은폐되어 있고 많은 사람의 마음은 다 질투심에서 온 것이며 감정의 배후에 숨어있기에 감지하기 힘들다. 사부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붙잡게 해주셨고 이 더러운 사람의 마음을 보게 해주셨다. 이 사람의 마음을 잡은 후 질투심을 겨냥해 오랫동안 발정념하자 아주 빨리 해체됐다. 이혼 문제는 드디어 내 마음을 동요할 수 없게 됐다.
이후에 남편은 최근 몇 년간 그가 외지에서 한 황당하고 더러운 생활을 나에게 알려줬다. 이번에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남편보다 14살이나 어리고 반항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사생활이 아주 난잡한 사람이라고 했다. 남편은 내가 자신을 깔볼까 봐 내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고 몇 년이나 날 속여서 아주 미안하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듣자 나는 인간세상의 고생은 끝이 없고 대법을 수련할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소중한 기연이라고 더욱 감탄했다. 하늘의 이치를 모르는 이 사람들이 가장 불쌍하고 슬픈 사람들이다.
내가 이 일을 법공부 팀에서 교류할 때 어떤 수련생은 날 위해 눈물을 흘렸고 의분을 느꼈다. 이 몇 년간 내가 홀로 아이를 키우느라 갖은 고초를 겪는 것을 그녀들이 전부 봤기 때문이다. 나는 “슬퍼하지 말아요. 이건 좋은 일이에요. 우리는 일의 표면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서는 안 되고 누구의 잘못인가에 집착해서는 안 돼요. 이렇게 하면 속인이잖아요”라고 했다. 사부님께서 “생활 중의 고생을 자신에 대한 불공평으로 여겨, 많은 사람이 아래로 뚝뚝 떨어진다.”[1]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불공평한 것들을 제고하는 자신의 기회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 어떤 수련생이 “정말로 남편을 미워하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에 대해서 지금은 사랑도 원망도 미움도 없어요. 마치 남편이 점차 제 공간장에서 떠난 것 같아요. ‘남편’이란 이 단어가 저와 아주 멀리 있는 것 같고 멀어서 이런 역할이 있다는 것도 생각나지 않아요”라고 했다. 또 어떤 수련생은 “이혼해서는 안 돼요. 그를 구해야 해요”라고 했다. 그렇다. 대법제자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자신을 잘 수련하고 중생을 구도하러 온 것이다. 일찍이 남편과 함께 있을 때부터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준 적이 있고 그도 대법 책을 본 적이 있지만 굽이치는 인간세상에서 나와 멀리 한 시간 중에서 사회에 오염되어 그의 본성이 묻힌 것이었다. 이번에 나는 그에게 “전생의 원한은 10여 년의 기다림으로 당신에게 다 갚았어요. 지금 당신이 본성을 찾고 선량함을 되찾으며 ‘진선인(眞善忍)’을 기억하고 좋은 집안의 여자와 평생 평안하고 기쁘게 살기만 바래요”라고 했다. 그는 “알았어. 이후로 나쁜 사람들과 멀리 하며 적게 다닐게”라고 했다.
우리는 원래 5월 31일에 이혼수속을 밟으려고 했는데 남동생의 개입으로 좌초됐다. 어떤 수련생은 “이혼하는 것이 나아요. 그와 깨끗이 끊어요”라고 했다. 이혼하는가 이혼하지 않는가에서 한동안 또 망설였다. 이후에 법리에서 사실의 표면형식은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출발점이 법에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혼하려는 이유가 만약 번거로움을 줄이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난잡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고 잘못된 것이다. 이혼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만약 남이 험담할까 봐, 깔볼까 봐 걱정하는 것이라면 역시 사람의 마음이고 잘못된 것이다. 이 한 층의 법리를 깨달은 후 다시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혼’하든 ‘이혼’하지 말든 사부님께 맡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끊임없이 사람의 마음을 발견하고 사람의 마음을 없애는 것뿐이고 기타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전법륜’ 6강을 배우고 있을 때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셨다. 남편은 내가 수련하는 길에서의 하나의 바둑알이고 내 사람의 마음을 없애기 위해 배치한 것으로 그 바둑알을 다 사용했으면 그가 가야 할 곳으로 가야한다고 깨닫자 마음이 단번에 훤해졌다.
이번 사람의 마음을 없애는 과정은 아주 깔끔했고 이전처럼 질질 끌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바로 내 곁에 계시고 끊임없이 점화해주시고 가지해주신다는 것을 시시각각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수련 최후의 시각에 매번의 갈등, 매번의 시련은 모두 아주 드문 기회고 모두 사부님께서 아주 많은 심혈을 기울여 우리의 제고를 위해 만들어주신 기회라는 것을 체득했다. 놓치면 다시 있기 힘들다. 매번의 기회를 꽉 틀어쥐고 자신의 모든 생각을 잡고 자신을 잘 수련하며 중생을 구도하고 원만해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자.
사부님의 깊은 은혜에 감사드린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11- 무엇이 대법제자인가’[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법해-광저우(廣州) 설법 문답풀이’
원문발표: 2017년 11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30/357307.html